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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수 24: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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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수 24:14-25)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16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23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한지라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더라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우실 때 여호수아의 신앙이 모세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며 여호수아에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시며 여러 모양으로 사명에 대한 의욕을 북돋워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여호수아는 힘을 얻어 요단을 건널 수 있었고 11지파에게 경계를 정하여 지역을 나누어 주었고 평생을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이스라벨 백성을 애굽땅 고센에서 유월절에 출발시켰을 때 남녀노소 약 200만명이 출애굽 하였으나 광야에서 다 죽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갈렙은 원래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었지만 그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의지하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누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믿음은 하나님의 기대에 이르지 못하면서 하나님께 넘치게 기대합니다. 이것은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평생 하나님만 믿고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죽는 날이 다가오니 백성 앞에서 담대히 말합니다. 백성들 앞에서 애타는 당부를 한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1. 여호수아의 당부의 말씀

14절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는 1절부터 13절까지 출애굽의 과정과 모세의 시종으로 살면서 보고, 듣고, 체험한 지난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여호와만 성실과 진정으로 섬겨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강 저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모든 것들을 다 제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패를 자기 이름으로 달고 그 땅을 자기의 소유로 삼고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지덕지하면서 감사와 찬송 가운데 하나님을 더 잘 섬기며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살지 않고 유브라데스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을 다시 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는 참된 영적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마음을 슬프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제사 드리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보면 제사를 드리는 것은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며 자신의 집에 귀신들이 더 많이 와서 자신들을 더욱 못살게 괴롭히다가 결국 지옥으로 끌고 가라는 행위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목자의 입장에서 집사가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것을 거들어 준다든지, 제사에 참여한다든지, 제사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모습은 염려가 되는 모습입니다. 성도는 고린도전서 10장 20~21절의 말씀을 이러한 때 처신의 원리로 삼아야 합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10:20 ~ 21)

참으로 염치없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제사도 참여하고 성찬에도 참여하면서 하나님께 온갖 요구와 주문만 많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달라고 보채는데 과연 하나님이 주시겠습니까? 왜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순수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배우고 순수한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앙은 순수하고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 듣고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목자는 그래서 애가 탑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권력 있는 사람을 더 의지하여 우상을 만들고, 물질에 대한 기대가 더 커서 물질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고, 소망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환란이나 핍박이나 고문을 당해도 죽을 각오로 하늘의 소망을 결신하려는 목적으로 살 때 하나님이 기대를 걸고 그 때 우리를 요긴하게 들어 쓰십니다.

15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믿음을 공인하시고 보증하셔서 그를 신실한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그는 사심이 없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따라 생각과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출애굽 후 2대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마음이 애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우상을 버려야 한다. 버리기 싫으면 차라리 멸망의 길을 택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선포합니다.

16~18절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여호수아의 설교는 매우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설교를 듣고 여호수아의 말씀대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강력한 질책을 합니다.

19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즉, 너희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직도 일편단심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믿음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안타까워하며 책망하며 권면합니다. 

교회에서 목자가 안타깝게 부르짖고 책망하며,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과 목회자가 바라보는 시각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도를 위해 애타게 부르짖습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기에 양떼의 잘못된 신앙을 볼 때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습니다. 애타는 심정으로 양떼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 더 정열을 쏟는 것이 틀린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데 엉뚱한 것에 마음을 두고 다른 것을 섬기며 사는 이율배반적이고 배은방덕한 삶은 멸망을 재촉하는 삶이요, 어리석은 삶인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권사님이면서 화투장을 펼쳐 놓고 오늘의 운이 어떨지를 떼어보는가 하면 우환질고가 떠나지 않는다고 집사님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푸닥거리를 하는 모습이 어떻게 하나님의 기대에 맞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은 말씀에 이끌리며 성령께 쓰임받는 것입니다. 잘 믿는척 하다가 지옥가면 얼마나 후회하고 울겠습니까? 그런 불행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육신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마귀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도록 주님을 향한 믿음의 정절이 변함없고 일편단심이어야겠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며 고문 당하고 여러 모양으로 위협 당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100% 인정하면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신앙생활이 엉망진창인데 자기형편만 하나님 앞에 늘어놓고 원망을 하면 그것은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말합니다.

20절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3.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은 생각지 않고 죄값에 대하여 오히려 불평만을 하나님께 더 늘어놓는 것은 더 많은 채찍질을 청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다며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놀아나는데 그것을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은 관심이 없는 것이며 사랑하지 않고 포기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남자 내 여자라면 정성을 쏟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이 있을 때 상처가 되며 속이 상해서 질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생리가 우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시켜서 우리를 위해 죽음까지 허락하셨는데 기업의 후사로 우리를 가꾸시며 다듬어 가시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날 때 그 인생의 결과가 비참할 것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그냥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정성과 애정을 쏟는 성도들이 다른 것들을 정성스레 섬기면 질투하시고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성도에게 유익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채찍질하고 징계하심은 아직 우리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다는 증거이며 기대가 있고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새출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끝까지 다른 것을 사랑하고 섬기면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에 대하여는 혹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다시 주신 복을 거두시고 돌이켜 화를 내리실 것이라는 엄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는 재차 확신 있는 고백을 하고 다짐을 합니다.

21~25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한지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베풀었더라

여호수아는 다짐하는 백성들과 더불어 세겜에서 언약을 세웁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요, 사자로서 백성들의 신앙고백이 긍정적이고 소망적임을 확인하고 짐승을 잡고 피를 흘리며 하나님 앞에서 피의 맹세를 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대신하여 짐승이 죽음으로 흘린 피를 담아 목숨을 걸고 맹세를 한 것입니다.
 
죽은 짐승은 짐승 하나의 생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대신한 것이며 이 언약은 순교의 자리에 가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 언약을 세운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예식을 하면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예식일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의 안타까운 심정은 목자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다른 뜻을 좆는 것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성은교회는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일편단심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건성으로 하지 말고 믿음의 정절을 지켜 하나님께 인정받으십시오. (장재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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