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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캄캄한 굴 속의 기적 (시 1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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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굴 속의 기적 (시 142:1-7)

(1절)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절)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절)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절)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절)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절)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요즈음 전 세계적인 인물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J. Snowden, 1983년생)이란 청년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 평범한 직원 출신으로 고급정보누설죄로 미국의 추격을 받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의 환승구역에 몸을 숨기고선 자신을 받아줄 나라를 찾고 있으나 여의치 않습니다. 그가 과연 망명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성공한다 할지라도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시편 142편 표제를 보면,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42편은 사무엘상 24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십 광야에서 구사일생으로 몸을 피한 다윗이 이번엔 엔게디 광야에 몸을 숨겼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또 그가 있는 곳을 사울에게 고해바쳤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정예군사 삼천을 데리고선 엔게디 광야로 겹겹이 포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저쪽에 굴이 하나 보이는 게 아닙니까!(삼상 24:1-3)

사울의 예측대로 다윗은 그 굴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시 142:4). 

그런데 그 캄캄한 굴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방이 조용해졌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다윗이 바깥 동정을 살폈는데, 사울이 굴 입구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후에 사울은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갔습니다(삼상 24:7). 

왜 사울은 의심스런 굴을 보고도 더 이상 수색하지 않았을까요? 왜 깊은 잠에 빠져버렸을까요? 왜 잠에서 깨자마자 자기 길을 갔을까요?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삼상 24:3). 

이전 성경에는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레겔’이라는 단어는 번역이 참 어렵습니다. ‘발, 외음부, 용변, 잠, 걸음’ 등으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이 중 용변, 혹은 잠으로 번역하는 방향으로 의견들이 모아져있습니다. 

본문을 보면서 ‘삼상사(三上思)’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상(馬上), 침상(寢上), 측상(厠上), 즉 말을 타고 가는 도중, 베갯머리와 화장실에 있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지금 삼상사(三上思)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마상(馬上)-말을 타고 와서, 측상(厠上)-볼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침상(寢上)-잠을 자고 있습니다. 만일 그때 뭔가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면, 그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학자는 하나님께서 아마 거미를 사용하셨을 것이라고 합니다. 굴속으로 수색해 들어가는데 자꾸 얼굴에 거미줄이 달라붙는 것입니다. 그리고 볼일을 보고, 자려고 누웠는데 ‘거미줄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없다는 징표다. 다윗이 다른 곳에 숨어있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에서 깬 사울이 굴 밖으로 나와 다른 곳을 수색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추정이지만, 정황으로 볼 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는 메뚜기, 이, 개구리, 우박, 흑암, 파리 떼도 이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설령 거미줄이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 캄캄한 굴속의 다윗의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어떻게 그 캄캄한 굴속에서 이런 기적이 나타났을까요? 

다윗이 지금 그 깊은 굴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시 142:1,2,5,6). ‘부르짖는다’, ‘소리 낸다’는 특이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원수들이 수색해오기 때문에 인기척조차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부르짖고, 소리 냈고, 토로했고, 진술했습니다. 비상한 기도입니다. 그야말로 온전히 그분께 자신의 생명을 맡기고, 의지하고, 기댑니다. 하나님은 비상한 기도를 들으셨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6.25전쟁은 미스터리의 총집결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치도 모른 채 직접 참전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물자지원 39개국, 전후복구 7개국, 도합 67개국이 어떻게 참여했을까요? 

또 하나, 1950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에 소련이 참석했더라면 거부권 행사로 유엔의 한국전 참전이 불가능했을 텐데 왜 소련이 불참했을까요? 

우리는 당시 부산 초량교회에서 가졌던 구국기도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이런 기도를 들으시고 이 나라를 위하여 모든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신 줄 믿습니다.

또 한 가지, 다윗의 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잠든 사울을 바라보며 다윗의 부하들이 사울을 해칠 기회가 왔다고 했습니다(삼상 24:4a). 

만약 내 앞에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벱니다(삼상 24:4b).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고 하면서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쉽게 칼을 뽑지 않습니다(삼상 24:6).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긍휼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긍휼을 입어야 될 자이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가 긍휼함을 입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사울의 발걸음을 바깥으로 인도하신 줄 믿습니다. 

노자(老子)에게 상용(商容)이란 스승이 있었습니다. 스승이 숨을 거두기 전에 노자에게 입을 벌리고는 ‘뭐가 보이느냐?’고 했습니다. 노자가 스승의 입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는 다 빠졌고, 혀만 보이기에 ‘혀가 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스승은 ‘그러면 됐다.’하고선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노자가 곰곰이 생각하니 깊은 뜻이 생각났습니다. 입안이라는 굴속에 이빨과 혀가 있습니다. 이빨은 강하고, 씹고, 자르고, 물고, 뜯지만, 어느 틈엔가 흔들리고, 썩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다 뽑혀 없어집니다. 그런데 혀는 부드럽습니다. 한 번도 치료한 적도 없습니다. 끝까지 남아있습니다. 

강한 것은 쉬이 부러지고, 깨집니다. 온유한 것은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사울은 그야말로 이빨이었습니다. 남을 질근질근 씹기도 하고, 끊어버리기도 하고, 잘라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온유했습니다. 끝까지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다윗이 결국은 승리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합니다(마 5:5).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시면 하나님이 내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캄캄한 굴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 캄캄한 굴속에서 기적을 맛보기를 원하십니까? 비상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입술로 올리시기 바랍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때로는 이런 방법으로, 때로는 저런 방법으로 그 위기에서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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