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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우울증을 치료하라 (왕상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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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우울증을 치료하라 (왕상 19:1-10)
 
작년 한 해의 통계를 보면 매일 평균 하루 자살자의 수가 42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숫자의 60%인 25명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합니다. 이걸 다시 계산하면 우울증으로 이해서 연간 13000여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통계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릅니다. 

감기는 가벼운 병입니까, 무거운 병입니까? 가벼운 병이죠. 감기정도를 뭐 큰 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감기 걸렸다 하면 몇 일 쉬든가, 쌍화탕 먹고, 약 먹고, 잘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게 감기정도로 생각하는데 여러분 감기를 바로 처리하지 못하면 그것이 독감이 될 수도 있어요. 또 그것이 폐렴이 될 수도 있어요. 합병증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가벼운 감기를 잘못처리하면 감기로 인해 합병증이 오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울증도 그런 거예요. 감기와 같은 거예요. 그걸 잘 처리하면은 쉽게 떠나가는데 그걸 잘 처리하지 못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울증, 우울이라는 말을 한자로 보면 우자는 근심할 우(虞)자입니다. 그래서 어떤 걱정거리에 골몰해 있는 모습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걱정거리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그게 근심할 우자입니다. 또 울자는 뭐냐. 답답할 울(鬱), 막힐 울 그런 뜻입니다. 이 울자의 의미를 따지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숲속에 끌고 들어가서 눕혀 놓고 짓밟는 모습의 글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인도 모르채 억울한 일을 당해서 숨이 막히고 답답해 하는 모습이 바로 울자의 유래입니다. 그래서 우울이라는 것은 이유도 모르채 마음이 답답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의 증세로는 탈진이 될 수 있습니다. 의욕을 상실합니다. 또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또 자살충동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것은 가볍게 처리할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주로 이 우울증이라는 것은 폐경기에 있는 중년 여성들에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40대, 50대 중반의 여성들이 대개 폐경기 때에 우울증을 겪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40%는 가볍게든 길게든 이 우울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또 남성들의 15%정도도 우울증을 겪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10대 20대의 아이들도 우울증을 겼습니다. 10대의 자살의 원인들이 우울증로 인한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 노인들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연령을 가리지 않고 우울증이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주로 믿음 없는 사람들, 비그리스도인들에게만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나 요즘에는 목회자에게도 또 교회 장로님에게도, 권사님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 믿음이 없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울증은 더 많이 번져 가고 있다고 우리는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이 엘리야라고 하는 한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우울증의 증상을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이 이 엘리야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먹지도 않고 잠만 자면서 죽기를 청했거든요. 모든 일에 그가 손을 놔버리고 낙심한채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우울증의 한 현상이라고 보기도합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그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이단 선지자들을 대항해서 영적 싸움을 벌였는데 거기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850명을 기손 시내가로 끌고 가서 그들을 다 목 베어 죽인 인물이 바로 이 엘리야입니다. 더구나 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느냐 그 당시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그 배후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런 엄청난 이들을 수행할 정도로 담대하고 능력있는 예언자였다는 것입니다. 

또 엘리야가 갈멜산 정상에서 기도할 때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다가 하늘이 문을 열고 단비를 내려서 온 땅에 비가 내리는 이런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또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을 때 그 여인의 가정을 축복해서 기근이 끝날 때까지 통에 밀가루가 끊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기적을 선물한 인물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이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가 도망해서 두려움 가운데 도망해서 로뎀 나무 밑에 숨어서 죽기를 소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참 안타까운 모습이죠. 

자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우리 한 번 읽어보십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아멘. 

이 로뎀나무라고 하는 것은 키가 한 1m에서 2m정도 되는 덤불입니다. 주로 콩과류의 식물이라고 하는데 아마 그것이 그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그늘 밑에서 그는 잠을 청하면서 먹지도 않고 아마 굶어죽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이 넉넉하다는 말은 다른 번역으로 보면 하나님 이제는 내 인생이 끝났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하니 제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다시 말하면 제가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제 생명을 거두어 가십시오. 그가 그렇게 죽음을 소원하며 기도하고 있는 모습니다. 뭐 기도라기보다는 푸념인 것이죠. 여러분, 자 우리는 이러한 이 초라한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의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먼저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굉장히 강하고 담대한 것 같은데 인간처럼 연약한 존재가 없어요. 엘리야도 예외가 아니예요. 엘리야도 우리와 성장이 같다고 야고보는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강하고 능력을 행하던 엘리야도 하루아침에 두려움에 휩싸이고 그는 죽기를 소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코 신격화 돼서는 안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되는 인간은 사실 없습니다. 우리가 그의 좋은 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지 누구에게나 흠이 있고 실수가 있습니다. 여기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즘 전직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이 겪는 부끄러움과 수난을 우리가 봅니다. 그가 횡령한 몇 천억, 뇌물로 받은 거 그냥 내놓으면 될 텐데 내놓지 않으면서 온 가문에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아마 그분에게는 명예보다도 돈이 더 귀중한 것 같아요. 명예는 땅 바닥에 떨어져도 어째든 돈만 감춰놓으면 된다. 이런 생각, 참 부끄러운 모습이죠.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 쯤 했으면 자기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고 할텐데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엘리야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두려움 가운데서 왔습니다. 자 우리 오늘 2절과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여기 보니까 오늘 아합 왕이 돌아와서 갈멜산에서 있었던 엄청난 영적 대결의 승리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았던 아합과 아세라의 죽음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이세벨 왕비가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서 내일 이 맘 때즘 되면 너도 그 선지자들처럼 죽을 것이다. 네가 죽인 사람들처럼 너도 죽을 것이라고 그를 위협합니다. 

사실 주석가들에 의하면 이세벨은 죽이지도 못할 것이다. 왜? 온 백성들이 보고 있는데 어떻게 위대한 선지자를 죽이겠느냐. 어찌 보면 그것은 위협에 불과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것이 엘리야에게는 큰 두려움이 됐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에다 덧 붙여서 엘리야는 엄청난 갈멜산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제단에 불이 내려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엄청난 광경을 연출했습니다.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또 그가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비를 내렸습니다. 세상이 다 변할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그를 향한 위협도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역시 세상은 그대로이고 아합과 이세벨은 그를 죽이려 하고 그리고 자기 생명을 빼앗으려고 그 때 그는 너무나도 큰 절망 가운데서 그는 두려움 가운데 결국 도망을 치게 되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3절을 보니까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을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으로 보면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더라. 그는 두려움 가운데 두려움에 떨면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아니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이 위협가운데 두려워할 수가 있느냐. 모든 상황이 그를 우울함과 절망으로 몰고 같다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이스르엘이라는 곳에서 갈멜산 아래 도시에서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갔는데 약 140킬로입니다. 어마어마한 거리입니다. 그는 그 길을 부지런히 걸어서 멀리 피하고 광야로 들어가서 그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주기를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는 엘리야에게서 인간에게는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어찌보면 3년 6개월 동안 이 이스라엘 땅에 비가 오지 않는 동안 그는 너무 긴장 했을 거예요. 그리고 아합 왕과 쫓고 쫓기는 그런 긴장 가운데 있었을 거예요. 적어도 갈멜산에서 제단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를 기도할 때 아마 그는 온 전심을 다해서 기도했을 것이에요. 또 그는 하늘에서 비를 내리기 위해서 일곱 번 반복해서 기도했다고 그랬습니다. 아마 진액을 다 빼놓는 기도였을 거예요. 그 사건이 끝난다음에 그는 몹시 피곤함을 느꼈을 겁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번 아웃 탈진된 상태입니다. 거기에다 그를 죽인다는 위협이 닥쳐왔을 때 그는 아마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그 우울증이 주는 절망감 자살의 충동 때문에 광야까지 도망가서 죽기를 소원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엘리야는 지금 육신적으로 너무 탈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육신적으로 피곤하면 마음도 피곤해 지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장애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축원합니다. 

피곤한 분들은 쉬셔야 됩니다. 너무 피곤하면 쉬세요. 특히 예배때 와서 주무시는 분들 집에서 잘 쉬고 오세요. 토요일 날 너무 늦게 까지 TV보지 마시고 잘 쉬고 오셔야 예배를 잘 드릴수가 있어요. 그런데 교회 와서 반은 졸고 반은 듣다가 하니까 뭔 이야기인지 몰라요. 

은혜가 안 되죠? 여러분 기도하다가 주무시는 분들도 이왕이면 좀 잠을 잘 주무시고 오세요. 여러분 졸면서 기도하는 것도 안하는 것보단 낫지만 이왕이면 맑은 정신을 가지고 기도하면 더 좋지 않겠어요?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해요. 

여러분 지금은 휴가철입니다. 여름휴가를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휴가 안 가려고 했던 분들도 가능하면 휴가를 가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해요. 쉬지 않는 사람들은 병이 생기고 몸에 무리가 옵니다. 가정에도 문제가 생겨요. 나 하나는 돈이 아까워서 휴가를 안 간다고 하지만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옆에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합시다. “여름휴가 잘 다녀오세요.” 또 그렇다고 주일 날 다 가시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주일을 좀 피해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목사에게도 쉼이 필요하고 장로님께도 쉼이 필요해요. 쉬지 않으면 사람은 쓰러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마음 적으로 이미 허해져서 우리 마음이 쉽게 상처를 받고 마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우리는 잘 쉬어야겠다.

또 우리가 이런 우울증의 증상 가운데 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감쌉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엘리야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왔을 거예요. 너무 피곤하죠. 그는 위협을 느끼죠. 두려움을 갖죠. 그 때 어떤 마음이 드느냐? 나는 혼자라는 생각. 나는 도울 자가 없다. 갈멜산에서도 혼자 싸워 왔는데 지금 또 혼자 이 일들을 감당해 내야 해. 그래서 10절에 보니까 “오직 나뿐이니이다.” 자기 혼자 밖에 없다는 거죠. 또 부정적인 생각이 ‘나는 끝난 인생이다.’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의미한 삶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부정적인 생각. 여러분 부정적인 생각은 누가 주는 거예요? 마귀가 주는 거예요. 타락한 인간에게는 긍정적인 믿음의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용납하시면 안돼요. 마귀는 내 마음 속에 ‘야 너는 쓸데없는 인생이야 너는 무의미한 인생이야 너 같은 것이 살아서 뭐하냐? 빨리 죽어 사라져 버려.’ 그 말을 믿으시면 안돼요. 그 말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예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오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생각을 쫓아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포하시고 쫓아 내셔야 해요. 그것을 인정하시면 안돼요. 

여러분 속에 자꾸 열등감에 빠져요. ‘난 아무것도 못해. 난 쓸모없는 사람이야. 난 죽어야 해.’ 이런 생각들 다 마귀가 주는 생각이예요. 이 부정적인 생각을 경계하셔야 해요. 여러분 생각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을 용납하면 안돼요. 자꾸 내 쫓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고 우리를 고독가운데 내버려 두시면 안돼요. 혼자 있는 사람이 제일 위험해요. 여러분 가능하면 혼자 계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딱 한 가지!! 기도할 때 성경 읽을 때는 괜찮아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1:1로 기도해요. 그러나 그 외에는 혼자 있는 분들은 좀 위험해요. 자식들이 어디 가면 좀 같이 가세요. 그냥 혼자 집 지킨다고 다 갔다 오라고 하고 집에서 불 꺼놓고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우울증 신호에요. 밖에 나가기 싫고 먹기도 싫고 사람 만나기도 싫고 여행도 싫고 혼자 있으면 안돼요. 

그래서 고독감이 올 때 내 안에 허무주의, 무기력감, 의욕상실, 열등감이 찾아오는 거예요. 특별히 장마철에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대요. 자꾸 비가 오면 사람들이 밖에도 안 나가고 습기 차고 그러니까 마음이 내려앉아요. 귀찮아요.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요. 덥고 그러니까 이러니까 우울증이 찾아와요. 그래서 해가 나오면 밖에 나가서 좀 걸어야 해요. 해를 많이 쐬셔야 해요. 일조량이 부족해요. 그리고 운동도 하셔야 해요. 여행도 하셔야 해요. 

또 필요하면 수다도 좀 많이 떠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자 분들이 이렇게 만나서 한 시간씩 이야기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상당히 좋습니다. ‘말 안하고 3일 동안 말 한마디도 안했다.’하시는 분들은 병원에 가봐야 해요. 말 안하고 살면 병들었다는 얘기예요. 가능하면 좀 많이! 그러나 제발 1층 로비에서는 좀 덜 말하시길 바랍니다. 1층 로비에서 너무 시끄럽게 말하니까 예배에 방해가 돼요. 4층 커피숍에 가서 말하시면 괜찮아요. 그런데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은 문제예요. 이것이 적신호예요. 우리는 고독감에 있으면 안 된다.

이렇게 죽기를 소원하는 엘리야를 하나님이 찾아 오셨어요. 그리고 엘리야를 어떻게 치료하시는가?!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방법을 여러분이 잘 배우셔야 해요. 그래서 나 자신의 우울한 마음을 치료해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우울증도 내가 치료해줘야 해요. 도와줘야 해요. 

하나님은 어떻게 엘리야를 다루시는가? 간단해요. 

첫째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십니다. 잘 먹는 것이 첫째요. 자 5절 말씀입니다.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또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아멘! 

여호와의 천사가 와서 하는 말이 뭐예요? 일어나서 먹으라는 거예요. 이것은 육신의 양식을 먹으라는 거예요. 왜? 엘리야가 지금 굶어 죽으려고 먹지도 않고 지금 잠만 자고 늘어져 있거든요. 이러다가 정말 굻어 죽죠. 여러분 잘 드시는 것이 건강에 비결입니다. 잘 드셔야 해요. 가능하면 식사를 끼니 거르지 마세요. 특히 혼자 있는 분들이 끼니 거르기 쉬워요. 가족이 있으면 같이 먹는데 혼자 있으면 ‘에잇 귀찮고 별로 식욕도 안 당기고 밥하기도 귀찮고 건너뛰자!’ 이것이 좋은게 아니예요. 

여러분 잘 드시기 바랍니다. 잘 먹고 잘 주무시면 우울증이 찾아올 틈이 없어요. 잘 드시는 분이 우울증 왔다!! 내 그런 말은 들어 본적이 없어요. 밥이 맛있다! 그런 분은 절대 우울증이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밥이 맛있어요. 우리 집 반찬은 별론데 밥이 맛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우울증이 안 찾아옵니다. 밥을 맛있게 드셔야 해요. 운동도 하셔야 해요. 그리고 잠을 주무셔야 해요. 불면증이 오면 식욕이 떨어져 나가요. 운동하시면 몸이 피곤해서 잠을 잘 주무실 수 있어요. 옆에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해 보세요. “잘 주무시고 잘 드시기 바랍니다.” 건강의 기본은 잘 드시고 잘 주무시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휴 나 3일동안 밥을 못 먹었어!’ 그러면 빚을 내서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을 좀 사주세요. 먹어야 사니까!! 잘 먹는 것. 그것이 중요해요.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십니다. ‘일어나 먹으라. 일어나 먹으라.’ 두 번 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비결이 뭐예요? 먹이시고 나서 그 다음에 어루만지셨어요. 자 5절을 보니까 “그를 어루만지시며” 7절 말씀을 같이 한 번 읽어 볼까요?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이 어루만진다는 표현이 참 재미있죠? 우리말로 하면 쓰다듬었다는 말이죠. 천사가 하나님이 엘리야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그러면서 그를 위로해 주시고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거예요. 이 어루만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다 따뜻한 접촉이 필요해요.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예요. 둘, 셋이 좋은 거예요. 왜? 우리 서로 부부간에도 서로 등을 긁어주고 안마도 해주고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리고 우리 김신실 권사님 어떻게 하면 좋아?! 손주들한테도 자꾸 ‘안마 좀 해라 해라’ 하면서 자꾸 부딪쳐야 해요. 절충을 해야 해요. 

여러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어떻습니까? 강아지들도 그냥 내버려 두면 정이 없어요. 그런데 자꾸 쓰다듬어 주면 따르고 좋아하는 거예요. 왜? 자꾸 생기가 돌거든요. 누가 자꾸 내 몸을 만져 주고 접촉해주면 그것이 살아가는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셨다. 부부간에도 자꾸 쓰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에도 앉으시면 자꾸 쓰다듬어 주셔야 해요. 등도 긁어 주셔야 합니다. 

지난번에 두 달 전인가 극동방송에 어린이들이 와서 아름다운 찬양을 하고 내려와서 참석한 모든 분들을 다 안아 준 적이 있어요.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분들은 오후 예배 안 나오는 분들이예요. 아무튼 그 친구들이 천사 같아요. 그렇게 끝나는데 다 내려와서 우리 어르신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오빠 언니 누나들을 다 와서 꼭 껴안아 줬어요. 그리고 귀에다 대고 축복해줬어요. 나는 안 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해주더라구요. 예쁜 손녀가 와서 안아주고 축복해줬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고 소화 불량이 다 떠나버렸어요. 허리 디스크가 다 떠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 어르신들에게 굉장한 힐링, 치료가 되는 거에요. 그 어린 아이들이 안아 주면서 축복해주는 말이 몇일 동안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줬어요. 이것이 힐링이예요. 꼭 약 먹어서 병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안아주는 것 만으로도요 마음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우리 권사님들 혹시 집에서 안아줄 영감님들이 없으시면 저한테 오세요. 제가 한 번씩 안아 드릴께요. 악수 대신 제가 안아 드릴게요. 안아주시는 것이 굉장한 사랑의 접촉이고 치유가 일어나는 거예요.

또 우리 교회 권사님들을 보면 대부분 건강하십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은 환자가 많은 것 같지만요 다른 교회에 가면 훨씬 더 많다는 거예요. 이 80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건강한 것도 있지만요. 우리 경로대학 때문에 그래요. 이 경로대학에 가면 어버이날이 되면 이번에도 마침 5월 8일이 수요일이고 어버이 날이예요. 

제가 한 번 가 봤더니 우리 어린이 집 어린이들이 한 120명 되는데 경로대학 교실에 다 옵니다. 다 와서 우리 어르신들을 다 안아드리고 노래하고 공연하고 떡도 드리고 음료수도 드리고 옆에 와서 앉고 손잡아 주고 목을 껴안아 주고. 이것이 어마어마한 치료가 됩니다. 우리 김신실 권사님도 경로대학을 안 와서 그런거여요. 거기만 오면 단박에 일어납니다. 그 아이들이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안아주는데 그것이 엄청난 치유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경로대학 학생들이 다 건강한 이유가 거기 있어요. 

앞으로 억울한 분들은 경로대학을 개강하면 제일 먼저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이 어린이집 아이들이 천사들이예요. 그 친구들이 와서 안아주고 손잡아 주고 등 두드려 주고 이것이 어마어마한 치료라는 거예요. 왜? 외롭지 않아요. 고독을 이길 수 있고 우울증을 이길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어린 아이들이 만져줘도 이렇게 힘이 나는데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만지심을 경험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만져 주심을 경험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마음 속 기쁨을 주시고 내 상한 마음을 싸매 주시고 치료해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예배다. 

또 세 번째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처방하시는가? 하나님은 말을 거세요. 대화를 하세요. 이 대화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자 9절 말씀을 한 번 읽어볼까요?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아멘 엘리야가 도망을 쳤는데 300km를 도망가서 호렙산 동굴에 도망을 갔습니다. 떡을 먹고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대화를 시작하십니다. ‘엘리야야!! 너 어찌 여기 와 있느냐?’ 일일이 대답을 해야 해요. 엘리야가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자 10절 말씀입니다. 10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나님이 물으시고 엘리야가 대답하는 거예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대화가 시작된 거예요. 이것이 한 번만 아니라 하나님은 두 번씩 엘리야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엘리야도 똑같은 대답을 두 번씩 합니다. 엘리야의 마음속에 지금 분노가 꽉 차 있어요. 뭐냐? 

10절에 보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렸습니다!!” 이것은 개탄할 일입니다. “그들이 주의 제단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분노할 일입니다.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만 남았는데 이제 내 생명도 뺏으려 합니다. 엘리야의 마음속에 꽉 차 있는 이 분노를 터뜨리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쏟아 놓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우울증을 치료 받습니다. 

부부끼리 대화를 해도 전기세 냈어? 우유값 냈어? 이건 대화가 아니에요. 자기 마음속의 분노, 괴로움, 고통 이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어떤 아줌마들은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강아지한테 자기 속상한 것,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해요. 강아지라도 없으면 그 사람 못살아요. 

여러분 우리가 이웃에게 같은 구역식구들끼리 모여서 그 사람에게 상담의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논다는 것 그 자체로 치료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생명의 전화아시죠? 자살할 사람이 전화를 걸면 들어주는 거예요. 당신 억울한게 뭐냐? 왜 죽으려고 하냐? 섭섭한거 괴로운거 다 이야기하면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는 상담자도 필요하고 교역자도 필요한 거예요. 교회 내에 전문 상담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야도 하나님 앞에 자기 속상한 것을 다 털어놓았어요. 그러니까 회복이 되기 시작해요. 대화라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특별히 여러분 하나님과의 대화가 중요해요. 우리가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도 우울증의 예방에 중요한 거예요. 보통 여자들은 3만 마디에서 4만 마디의 대화가 필요한데 그거 못하면 안 됩니다. 남편들은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해야해요. 대화하지 않으면 우울증이 생깁니다. 

자. 그다음에 중요한 게 있어요. 엘리야가 육체적으로 먹고 마심으로 회복이 됩니다. 또 어루만져 주니까 정신적으로 회복이 되는데 대화도 되니까 마음도 회복이 되요. 그런데 한 가지 아직도 영적으로 회복이 안됐어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영적으로 회복이 됩니다. 

우리 12절 말씀 읽어봅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아멘.

호렙산 동굴에 들어갔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폭풍가운데 있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안계셨어요. 지진이 몰려와요. 거기에도 하나님이 안계셨어요. 불이 몰려오는데 불가운데도 안계셨어요. 그런데 세미한 소리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어요. 하나님의 음성을듣는 순가 엘리야는 영적으로도 회복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영적인 회복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시는 거예요. 예배란 그런거에요. 정말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해요. 그것이 준비된 예배고 성령충만한 예배고 생명력있는 예배입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5절 말씀을 보면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절을 보면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그 소리를 엘리야는 세미한 소리를 통해 듣게 하고 영혼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갖게 되고 다시 일어나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하나님 말씀하세요. 아직 바알에게 무릎끓지 않는 7천명을 내가 동굴속에 감쳐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7천명이 너와 함께 있고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체 우울감 영적인 우울감이 다 떠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우리는 날마다 기대감 가운데 오늘 보다 내일이 기대가 돼야 해요.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가 돼야지 내 인생은 완전히 내리막길이야 내일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 살아봐야 무슨 이익이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더 좋은 날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준비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은 거예요. 그걸 보실 수 있어요. 

그래서 로마서를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우리는 기대하는 가운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1952년 7월 4일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해안 카타리나이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캘리포니아 해안과 카타리나 해안 사이에는 약 21마일 약 33키로 정도 되는 거리에요. 그런데 프로랜스 체득이라는 34살의 수영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세우려고 도전을 합니다. 이 카타리나 섬을 출발해서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무려 21마일을 헤엄을 쳐서 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시작해도 깜깜한 밤에 까지 헤엄을 쳐야 해요. 그런데 바닷물이 얼마나 추운지 그러나 그는 열심히 헤엄을 쳤습니다. 

15시간 55분을 헤엄을 쳤어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대단한거 아닙니까? 거의 도착을 했는데 그가 절망을 했어요. 앞이 하나도 안보여 목표물이 안보여요. 그는 절망에 빠졌어요. 그리고는 포기해 버렸어요, 그런데 사실은 반마일만 가면 되는데 800미터만 가면 되는데 33킬로를 달려온 사람이 그 800미터를 남겨두고 포기해 버렸어요. 왜? 짙은 안개 때문에 만약 캘리포니아 해변이 보였다면 아마 그는 힘을 냈을거예요. 

어찌보면 우리 인생도 그래요. 내 앞을 볼 수 있다면 포기할 사람 없어요. 그런데 그걸 못보니까 절망에 빠져요.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더 좋을 것을 주시는데 그것을 못 보니까 정말에 빠져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울증이 찾아올 수 없어요.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엘리야도 마찬가지에요.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합니다. 살아 승천한 분은 에녹, 엘리야, 예수님 밖에 없어요. 어마어마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죽기를 소원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종말을 모르기 때문에 실망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에 해피엔딩의 종말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날마다 기대감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희 교회 김선호 집사님이 계신데 코이카라고 하는 국제 교류 재단에서 파송받아서 주로 해외에서 6개월씩 1년씩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이분이 과테말라에 가서 한 일년 넘게 있었는데 그곳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셨어요. 그래서 두주 전에 저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제목이 과테말라의 입맞춤입니다. 

그 책 74페이지를 보면 2008년 8월 나의 딸 혜인이와 함께 과테말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과테말라에 도착한다는 날짜가 정해지자 하루하루 지나가는 날짜가 지루하였다. 나의 마음은 설레임으로 어린아이처럼 들떠있었다. 

과테말라에서 일하는데 사랑하는 가족이 방문한다니까 어린아이처럼 설레인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설레임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인생이 기대감과 설레임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여러분의 삶이 늘 예수님 때문에 설레고 예수님 때문에 기대되는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지난 주간 화요일에 대전에 총회 회의가 있어서 대전에 다녀왔는데 여기 영등포역에서 KTX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갔는데 시간이 쫓겨서 택시를 타고 유성에 가는데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할머니에요. 그래서 제가 할머니가 운전을 하시네 연세가 얼마나 되세요. 하니까 65세라고 하더라고요. 대전에서 여자 중에 연세가 가장 많은 분이 66세이고 자기가 두 번째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할아버지 기사는 80세도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는 30년 동안 기사생활을 삼남매를 다 대학까지 보내면서 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 직장이 시원찮아서 애들 도시락도 싸주고 새벽에 밤새 운전을 하면서 그렇게 애들을 키워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자기 친구들을 보니까 다들 환자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만 건강하대요. 그러면서 얼마나 명랑한지 몰라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혹시 신앙생활 하시냐고 물으니까 교인이지요. 그러면서 자기는 목사님 설교 테이프, 기독교 방송 자주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교회를 못 나가지만 목사님 설교 듣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할머니가 새벽기도 그렇게 잘나갔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이제 은퇴하면 나갈꺼라고 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나는 그분을 만나고 나서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세상에 저렇게 열심있는 할머니가 계시구나. 그리고 기독요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몰라. 자기 며느리가 크리스천인데 그렇게 좋아다는 거예요. 

자기가 제일 좋은게 주일 날 며느리가 어머님 곱게 화장시켜서 교회 모시고 가는 모습을 보면 자기는 그렇게 감동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 아들 교회 나가라고 추천할 정도로 예수 믿는 며느리가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분을 만나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왜 너무 열심히 일하니까 너무 행복해 하시니까 여러분 이렇게 우리 크리스천 모습의 한 부분을 말해주더라고요. 우리가 바로 그래야 돼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데 어떻게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의 삶이 우울증은 접근도 하지 못하고 주님 주시는 능력과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은혜 가운데 늘 감사하고 찬양하는 복된 삶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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