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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신하는 사람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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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는 사람

사도행전 6:1-7


나사렛 예수께서 믿으신 대로 예수의 삶은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전에 말씀하신대로 예수는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자, 실망했던 제자들이 용기를 냈습니다.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갈릴리로 돌아가서 다시 고기잡이를 시작했던 했던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까지 다시 뜨겁게 예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사십일 지내고, 부활 하신 주님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마가의 다락방으로 돌아가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기도에 전념하다가 오순절날 성령강림의 체험을 합니다. 이때부터 예루살렘 교회가 생겨나서 지금까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장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의 성장과정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으로 겪은 시험이 바로 본문 사도행전 6:1-7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본문에 보면 당시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크게 두 종류의 교인이 있었습니다. 첫째 부류는 팔레스타인에서 나서 자란 유대인 출신의 교인으로 이들은 대부분이 아람어와 히브리말만을 상요하는 교인들입니다. 다른 부류는 디아스포라 출신의 교인들인데 이들은 대개가 이방 땅에서 나서 성장한 사람들이라 언어는 아람어나 히브리말보다는 헬라말이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교회가 구제해야 할 과부들 가운데 헬라말이 자유로운 과부들이 아마도 헬라말에 서투른 사도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발생해서, 헬라말을 하는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과부들의 구제만을 전담하는 지도자로 일곱 사람의 집사를 선출합니다. 그래서 누가는 본문 2-6절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된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기를,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예수의 정신과 가르침을 가지고, 그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 나라 시민이 가야만 하는 길과 메시지를 제시한다면, 봉사와 친교의 사명을 담당하는 일곱 집사는, 교회의 팔과 다리가 되어서 봉사와 친교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담당하는 일꾼입니다. 

이런 신실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본문 5절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먼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오늘은 그 점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정신이 투철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마음이 온통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관심, 예수님께서 추구하는 정신으로 가득해 있는 상태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집사란 직분이 봉사와 구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세워진  직분이지만, 철두철미하게 예수님의 정신으로 무장된 사람들로 세워졌기 때문에 봉사와 친교의 사명만이 아니라 전도의 사명도 놀랍게 감당한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의 마음과 정신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면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자면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1)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자면, 예수의 마음이 가득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산하려는 사람은 본문 3절에서 사도들이 언급한 것처럼, ‘성도들 가운데서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곧 거룩한 영과 생각,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생각과 뜻이 충만하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거룩한 생각이 가득하려면, 예수님의 마음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하자면, 나사렛 예수의 삶을 닮아가고자 사모하고 갈망해야 하며, 늘상 이런 형편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판단을 하셨을까? 겸손하고 정직하게 물어보면서, 자기중심의 생각을 버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생각을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글인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인 성경말씀을 바로 나에게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겸손한 자세로 자주 읽어야만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을 한다고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마치 모르는 길을 네비게이션이 없이 떠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좋아지려면,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성경말씀을 자주 꾸준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구원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꼭 하루에 한 번 이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 되려면, 진실하고,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무시로 기도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기도하기 전에 먼저 신령한 노래를 부르거나 듣거나 성경을 읽으면, 신령한 노래를 부르다가 기도할 마음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다가 보면 기도할 마음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다보면, 기도할 마음이 생깁니다. 바로 그때에 정직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잘못된 자신의 생각을 교정하고,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나가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청구서가 아니라 겸손하게 나를 향하여 말씀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지한 여러분이 주님의 음성을 깨닫고, 진실하게 아멘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과 나누는 영적인 대회이고, 호흡이며, 이런 영적인 대화와 호흡을 기도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은 먼저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신령한 노래인 찬송을 부르고, 들어야만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기도할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 때 열려진 마음으로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이처럼 무시로 성경을 읽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기도하게 되고,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의 영과 대화를 하게 됨으로, 자연스럽게 성품이 변회 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집니다. 그러니 결국은 먼저 교인들 사이에서 칭찬을 듣고,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거룩하고 온유하신 예수의 마음이 가득하니 자연스럽게 삶이 안정되고, 성품이 예수처럼 겸손하니, 이웃과 평화를 이루게 되고, 그 결과 평안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현대인을 ‘소란한 내면을 가지고 사는 존재’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인의 내면을 보면 걱정이 가득합니다. 불안과 염려와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매일의 삶의 자리가 평안하고, 안정된 심령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기도생활을 통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 되자면 먼저 평안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무시로, 성경말씀을 가까이하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하여,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뜻만을 알고, 그 뜻을 따라서 믿음생활을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려는 사람은 믿음생활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려는 사람은 먼저 믿는 이웃보다 조금 더 희생을 하고, 삶의 모습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선생님이신 나사렛 예수처럼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본이 된다는 것은, 믿는 이웃에게 의도적으로 모범을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믿는 이웃들보다 더 충성을 하고, 헌신을 하려고 정성을 다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된 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 3:8-9절에서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권면하기를, ‘이와 같이 집사들도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으며, 술을 탐닉하지 않으며,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으며,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라야 합니다.’라고 하셨고, 딤전 3:11-12절에서는 교회 안에 있는 여자 집사들에 대하여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 이와 같이 여자들도 신중하며, 험담하지 않으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성실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라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은 다른 형제자매나 이웃을 헐뜯지 말고, 성실한 삶을 살아서, 교인들 가운데서 삶의 모범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교회 안에서 화목을 이루고, 한 가족 같은 삶을 살고, 그런 분위기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마다 먼저 가정과 속회와 선교회 안에서 믿음생활의 모범이 되기 위하여, 오직 성령님의 거룩하신 뜻과 섭리만을 따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려는 사람은 교회라는 믿음공동체에 대하여 책임의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구체화되는 장소이고, 성령의 능력이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믿음공동체이고, 나사렛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사람들이 모여서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는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아래 있는 나를 통하여 나타난다.’ 라는 의식을 가지고,  모든 은혜받는 자리인 예배와 성찬에 꼭 참석하고, 거짓 없는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를 돌보아야만 합니다.

어려울 때에라도 낙심하지 말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보세요.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 두 아들과 사는 과부가 있었는데, 살림이 어려워서 남의 일을 해주고 품값을 받아 근근히 지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양식이 떨어져서 굶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부는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나서는, 두 아들에게 강변에 가서 모래를 퍼다가 정원에 뿌리라고 합니다. 과부가 아침을 차리고 있는데, 두 아들이 큰 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옵니다. “모래는 안 파고 웬 고기냐?”, “모래를 파다가 보니까 무엇이 펄쩍 뛰어 오르기에 잡아왔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때 마침 이웃집 부인이 찾아와서는 “당신 남편이 생존했을 때에, 품값을 줄 것이 있었는데, 이제야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옥수수가루 닷 말을 줍니다. 그래서 과부는 두 아들에게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고는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이 이야기가 동리에 퍼지자, 신자들이 알고, 과부의 생활을 도와주어서 더 큰 어려움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두 아들도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 훌륭한 인물이 됬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자는 감사생활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무신론자협회가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협회의 창립 회원은 3,400명이었고, 1년 회비는 10달러로 책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체는 2년도 못 넘기고, 해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유는 회원들이 회비를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출발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우렁찼습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의 교회들은 그들 때문에 모두 문을 닫고 ‘하나님이 없다.’고 선언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는데, 1년에 단돈 10달러도 내지를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계시다.’라는 확신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무명의 증언자가 그들의 소중한 시간과 생명을 바쳐서, 전 세계의 오지에서 ‘하나님은 계시다.’라는 확신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질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도록 세움을 받은 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목회자 디모데에게 딤전 3;13절에서 권면하기를, ‘집사의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은 좋은 지위를 얻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자유보다도 오히려 누군가에게 매어있고, 그를 위해서 자기의 삶을 바친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고,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부모님의 삶이 왜 가치가 있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입니까? 자녀를 위하여 마지막까지 헌신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희생한 것만큼 보람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늘상 희생이 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께 예쁜 옷을 한 벌 사드리고 돌아서는, 자식의 마음이 왜  행복하겠습니까? 그 옷 한 벌을 사서 드리는 과정에 사랑이 있고, 희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께서는 여러분을 향해서 사랑하라고 봉사하라고, 희생을 하라고 합니다. 썩어질 돈과 명예와 세상에 속한 것에 집착하여 사는 삶은, 즐거운 삶이 아니라 불안한 삶입니다. 영원하고 아름다운 가치는 그리스도 예수만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는 삶입니다. 헌신의 대상을 바로 찾은 사람은 영원을 소유한 삶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데, 맡은바 책임에 전혀 소홀함이 없는 삶을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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