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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이지 않는 소망 (롬 8: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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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망
로마서 8:24-25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로마교인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기를,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서,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보이지 않는 소망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은 평범하고 흔한 것 속에 소중한 것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왕왕 많은 사람이 평범한 것에, 흔한 것에, 귀한 것이 있다는 점을 간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과 공기, 이런 것은 너무 흔하고 평범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심각하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소금도 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것은 평범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것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너무나 평범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듣고, 하나님이란 이름을 들어도 무덤덤합니다. 거룩한 이름에 대한 감동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어떤 이웃사람의 이름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나사렛 예수란 이름을 들으면서, 예 성인들이 느꼈던, 그런 감격과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나사렛 예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금 여러분의 앞에 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현존하고 있고, 임마누엘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때문에 여러분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기업을 얻게 되었다.’라고 하는 사실을, 지금 이 땅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고 산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의 무뎌진 가슴에서, 나사렛 에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분임을, 분명하게 깨달아야만, 성령 안에서, 영혼이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나사렛 예수의 사랑 안에서 살고, 존재해야만 합니다. 신자는 장차 들어갈 소망의 처소인, 하나님의 나라와 삶의 푯대인 나사레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야만 합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때문에 들어가게 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삶의 소망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요일 4:7절에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나신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고 하십니다.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란 이름이 너무나 익숙하고, 오랫동안 들어온 이름이라서, 나사렛 예수에 대한 갈급한 마음과 뜨거운 사랑이 메말라지고, 냉냉해졌습니다. 마음과 사랑이 메말라지고 냉냉해지자, 그 결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무관심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는, 사도 바울은, 바로 나사렛 예수가 인류의 그리스도 되심을 발견한 후에 온마음으로 영접하고는, 그 때까지 자기가 유익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처럼 버리고는,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발견되려고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전 2:2절에서 고린도 교인에게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고 하면서, 이어서 말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R. F 밀러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이 부인은 어린 아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바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를 고민하면서, 누구를 모델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말해줄까? 누구를 모델로 제시할까? 그래야 생의 목적과 목표를 바로 세우고 나아갈 텐데,’ 라고 고심하던 중,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노래하기를,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그의 아들 셰어는,,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자기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립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저와 여러분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만 소망을 두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 사랑하는 삶을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귀중히 여기기 바랍니다.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로마교인에게 말하기를,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라고 하셨고, 그러면서 바울은 말하기를,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참 소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목표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삶의 진정한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지나갈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일 2:15-17절에서 말하기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세상에서 온 것이고, 정요처럼 세상에서 온 것은 다 지나간다.’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육신의 정욕은, 여러분의 육신적인 본능을 충족시키려는 욕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과 성적인 욕구, 이런 것들이 육신의 정욕입니다. 이런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든 욕구들입니다. 좋은 것, 값진 것 등 눈에 좋은 것을 볼 때,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명예욕입니다.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 교만함 자체입니다. 사단은 이것으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 이런 유혹을 받았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여러분을 이런 것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공통점은 특별한 것이요,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사단은 이 세 가지 정욕의 욕구를 통해서, 여러분이 새로운 것, 더 많은 것, 특별한 것을 요구하도록 유혹을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다양한 과일 나무의 실과를 마음껏 먹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자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하와의 헛된 욕심을 자극해서, 아담과 하와의 눈과 마음이, 하나님께서 금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은 잊은 채, 사탄의 말만 믿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는 순간, 그 열매는 먹음직 해 보였고, 보암직해 보였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비록 너희의 눈에는 그럴듯하게 보일지라도,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다 지나간다. 다 헛된 것일 뿐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해야합니다. 소중한 것은 흔하고 평범하면서, 가까이 있으면서, 소중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3절에서 말하기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 곧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은 다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 가운데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권력도 지나갑니다. 재물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명예도 지식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교권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향력이란 것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지나가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얻은 영예가 영원할 줄 알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불신앙적인 행위가 없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 그리스도 예수의 힘이, 실제로는 보이는 세계를 존재하게 한다는 점을, 이 시간 굳게 믿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힘은 세상에 실재하고 영원합니다. 

역사를 보세요,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 속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 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사람은 그 힘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어린 시절의 윈스턴 처칠은 아주 우둔했답니다. 오죽하면 처칠의 아버지조차 처칠이 자라서 자신의 밥벌이조차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생각을 했다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를 영국, 아니 세계의 정치지도자로 세웁니다.  영국 유명한 작가인 길버트 카이스 체스터론은 열 살이 될 때까지도, 글을 읽지 못했다고 합니다. 길버트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너의 머리 속에는 뇌는 없고, 지방질만 가득 찬 모양이다.”라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을 처음으로 가르쳤던 선생님도, 에디슨을 열등생으로 판정하였고, 에디슨의 아버지는 아들이 저능아라고 믿고, 교육을 포기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받은, 공식적인 교육은 통털어서, 2년이 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선생님은 포기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대한 정치가로 문학가로 발명가로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힘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보이지 않는 힘과 사랑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보이지 않는 힘과 능력과 사랑을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이 결혼 선물로 주고받는 반지는 사랑의 증표입니다. 결혼 반지가 소중한 것은, 보물이기 이전에, 반지에 진정한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반지는 하나의 값이 나가는 액세서리일 뿐입니다.

그러면 반지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반지에 담긴 사랑이 중요합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반지에 담겨져 있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랑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랑은 그릴 수도 없습니다. 단지 상징으로 하트를 그리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일 뿐입니다. 사랑은 감정입니다. 피차에 거짓없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이런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13:8절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에게 말하기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런 영원한 사랑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영원한 것을 생각하고, 영원한 것을 보아야만 합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성당에는 아름다운 세 개의 아치문이 있는데, 한 문에는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장미가 조각되어 있고, 그 밑에는 "기쁘게 해주는 그 모든 것들은 잠시뿐이다."
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문에는 십자고상이 아주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그 밑에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모든 것들도 잠시뿐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
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에는 아무런 그림이 조각되어 있지 않은채로 다만 "오직 영원한 것
만이 중요할 뿐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 성당의 문에 조작처럼 영원한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영원한 것이라는 의미가 부여되면 참으로 귀중한 것이 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리더포드(1600∼1661)가 감옥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의지 때문에, 박해를 받아 투옥된 리더포드는 어느 날 밤 갑자기 감옥 안이 환해지
면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리더포드 생애에서 가장 신비
로운 경험이었는데, 후에 그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을 때, 그 날의 경험을 말하기를, "그 날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방에 오셨습니다. 그 순간 주위에 있었던 돌이란 돌은 모두 
보석처럼 빛났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찮은 감옥 안의 돌까지도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분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으면, 황금이 아니라 소금이나 돌덩어리 같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꾸만 여러분의 눈에 귀중하게 보이고, 값이 나가게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마세요. 그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직 돌덩어리도 소금덩어리도 보석처럼 빛나게 하실, 참으로 영원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여러분의 마음과 눈을 고정시키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황금 같고, 보석 같고, 진주 같은 사랑이 아니라, 소금 같은 사랑입니다. 흔하고 평범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것, 그것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간절한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더욱 소중한 것이 된다는 것을 이 시간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만난 어리석고 모자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만난 지식 있고, 물질 있는 능력자보다 귀한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마치 바울 사도에게 바울을 떠나 세상으로 간 데마보다는 도망친 노예였지만 바울의 심복이 된 오네시모와 같은 경우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 안에서 만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거짓 없이 사랑하고, 자기보다 귀중히 여깁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예수께서 함께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귀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나사렛 예수께서 사랑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잘 분별하여, 세상에 속한 사람들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그들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데 후회가 없는 삶을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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