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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주제 (마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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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제
마태복음 6:6-8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의미입니다. 인간은 의미로 삽니다. 뜻으로 삽니다. 여러분에게 아무리 큰 것과 많은 것이 있다 한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한들, 여러분이 소유한 것 속에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점은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하는 일을 통해서, 나의 삶의 자리를 통해서, 자신의 만족과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결부되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내가 열심히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봉사하고, 일하면서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주제, 곧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다면, 나의 삶은 열심히 산 것은 분명하지만, 상을 주실 분에게 있어서는 무의미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믿음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믿음여정을 준비하면서 이것만은 분명히 점검하고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 마태복음 7:21-23절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 점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신 주제와 상관없는 그림을 그리지 말자.
예수님께서는 본문 7:21절에서 말씀하기를,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상당히 하나님께서 주신 주제와는 상관이 없이, 곧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이 표현은 자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고,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능력을 행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면적인 행동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일과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나 바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을 가르키는 표현입니다.

본문 7:22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이미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의 일을 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의 능력을 받아서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기를, 놀랍게도,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이 느껴집니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것, 여러분의 삶 자체 속에서 여러분을 이끌고 인도하며, 여러분을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나타내기를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신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자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뜻과 선하신 섭리에서 벗어나면, 여러분이 아무리 화려하게 살았고, 아무리 세상이 알아주는 이름이라 해도, 뛰어난 화법의 그림이지만 마치 주제에서 벗어난 그림을 그린 아이처럼, 그리스도 예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바람을 잡은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오직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이 없어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겸손하고 온유한 뜻을 따라서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의미 있는 삶을 살자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만 살아야 합니다. 본문 21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하늘나라 기업을 얻으려면, 먼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미가서 6:6-8절에서 예언자 미가는 야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언하기를,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 올리브기름을 드리면, 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야훼께서 왜 예언자 미가를 통하여 이런 예언을 하게 하셨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릴까를 고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를 위하여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갈까? 아니면 수천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 정도의 올리브 기름을 가지고 갈까, 내 허물을 위하여 맏아들을 드려야 할까,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무엇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야훼께서 미가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좋은 제물을 드리는 것은 예배자의 기본입니다. 각자의 분수에 맞게 흠 없는 제물과 물질을 드리는 것은 바른 자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기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예물이 없다면, 진심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과 물질은 함께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물만 있고, 마음은 바로 서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삶의 내용이 더 우선이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훼 하나님께서는 제물에만 눈이 팔려 있고, 제사의 의식과 형식에만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로 야훼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미가란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야훼께서 원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1) 야훼께서는 공의를 행하는 삶 곧 정직하고 진실한 생활을 원합니다.
미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공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곧 야훼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예배를 많이 드린다고 하더라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리쳐서 부르고, 증거한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과 삶 속에 정직함과 진실함이 없다면, 여러분이 드린 기도와 예배와 헌신과 전도가 헛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세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생명의 위협을 느끼시면서까지, 합법적으로 성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돈을 바꿔주고, 제사를 위하여 제사장의 검열을 받은 제물을 파는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의 상을 둘러엎으시고, 채찍질을 하신 것입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다 합법적이고 거룩한 일같아 보이지만, 그들의 하는 일에 정직함과 진실함과 공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전의 이방인을 위한 구역에서 이루어진 제물을 팔고, 돈을 바꿔주고 하는 일은 예배자를 위하여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때가 되면, 유다 땅 외에 디아스포라가 되어서 세계 전지역을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까지 와서 야훼에게 제사하고,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몰려옵니다.

그런데 먼 나라에서 오는 예배자가 산 짐승을 제물로 끌고 오기가 실제로 어렵습니다. 여행 거리가 가까운 사람은 가능하지만, 멀리 사는 사람은 이스라엘 땅에 와서, 좋은 제물을 사서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어느 특정한 구역에서 제물로 드릴 짐승을 팔고, 성전에서만 쓰는 화폐인 세겔로 돈을 바꿔주고 하는 장사꾼은 사실 필요했습니다.

마치 졸업식 시즌이 되면, 교문 앞에서 꽃을 파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리 화원이나 주변 꽃집에 가서 꽃을 사서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집과 거리가 있거나 바쁜 일정으로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에, 학교 정문 앞에서 꽃을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꽃 파는 사람이 필요하듯이 예루살렘 성전에도 환전상과 제사장의 검열을 받은 제물을 파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불의함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공평한 저울을 사용해야 합니다. 남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한국교회사의 기록에 보면, 선교 초기에 어떤 마을에 교회가 서거나 그리스도인이 몇몇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을엔 도둑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정직과 진실이 감염되어, 마을 전체가 깨끗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대한민국이 이 만큼 살게 된 것도, 진실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희망이 있고, 여러분 주변이 밝은 것도, 여러분이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세상에 다실 오실 그때까지, 공의로운 삶을 지켜 나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정직과 진실함으로 살아갈 때, 여러분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산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런 삶을 살고자 진실하고 정직하게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비를 사랑하기를 원합니다.(이웃사랑)
그렇습니다, 미가가 말하는 ‘인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자비’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긍휼히 여길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보다도 더 우선적인 것이 바로 자비입니다. 
복음서를 보세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범했다고 책망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마 12:7-8절에서 바리새인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한, 이 말은, 구약의 예언자 호세야의 예언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은 제사보다는 자비를 원하신다. 는 의미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쳐 갔고,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가서 살펴보고 상처를 치료해 주고, 여관에 데려다 놓고는 자기 돈으로 그를 돌보아주도록 여관 주인에게 비용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후, 누가 이웃인지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혹시 이 사람을 만졌는데 죽었을 경우 부정하게 되어 제사를 집례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배를 위하여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먼저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안처럼 강도 만난 자에게 자비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예배를 드린다는 핑계로 사람 사랑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나보다 연약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고 돌보는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축원합니다.    

(3) 미가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상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만 나의 하나님 아니라 어디서든지 나와 함께 하는 하나님을 느끼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다가, 루스라는 곳에서 하루 밤을 자게 됩니다. 그 날 밤 꿈에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잠에서 깨어나 창 28:16-17절에서 고백하기를,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아버지 이삭의 성은인 브엘세바에서 출발하여,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도망을 치는, 불안하고 괴로운 여정을 가다가, 전혀 기대하지 못한 땅인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야곱은 벧엘에서 야훼 하나님께서는 어디나 계시며, 언제나 자신과 동행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믿게 됩니다. 족장 야곱의 믿음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기에,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겸손하게 제단을 쌓을 때, 여러분의 삶은 전 과정이 예배가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주제는 지금 어디에 맞춰져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주제에 맞춰져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정한, 세상에서 정한 것에 맞춰서, 여러분의 삶을 그려나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빗나가 있다면, 이 땅에서 아무리 멋진 삶을 살았다 해도, 비록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사람이 보기에 큰일을 했다고 해도, 그 일은 무의미한 것이고, 바람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는 주제 안에서 여러분이 살아간다면, 삶이 비록 좀 서툴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 나라에 합한 자로 여김을 받고, 하나님 나라와 하늘의 기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금년에는 그런 삶의 그림을 그려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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