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 술은 새 부대에 (막 2:18-22)

첨부 1


새 술은 새 부대에
마가복음 2:18-22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도 변해야만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생각이 변해야 하고, 방법이 달라져야 하고, 여러분이 그동안 맺고 있던 모든 관계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믿음공동체인 교회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물론 오래된 것 가운데에도 좋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오래 된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래된 것 중에는 보물도 있다.’라는 말이 있기는 합니다. 이 말은 오래 된 것은 다 귀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 가운데에는, 혹시 보물이 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옛것 가운데에는 분명히 좋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잘 지키고, 보존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늘상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하여, 새 그릇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본문 마가복음 2:18-22절의 비유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새 그릇을 준비하라고 교훈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점에 대해서, 몇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세관 옆을 자나가시다가, 세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세리 마태에게, ‘당신을 따라오라.’고 제자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리 마태가,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조금도 머뭇거리지를 않고, 즉각적으로, 예수님의 부름에 ‘아멘’으로 응답을 하고, 세리란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나사렛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모든 이에게 알리고자, 자기의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풉니다. 마태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또 이별을 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려고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마태가 베푼 잔치자리는, 마태로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가지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자리이자, 지금까지 마태가 가졌던 세상인연을 끊고, 오직 예수만을 따라가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결단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마태의 전직이 세리였기 때문에 마태의 친구들은 대부분 세리이거나 아니면 당시 먹고 사는 것이 힘이 들어서, 유대인의 정결례 규정을 를 잘 지키지 못하는, 부정한 사람들 곧 죄인이라고도 불리고, ‘땅에 속한 사람;암하레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자리에는 당시 경간하다고 일컬어지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께서는 전혀 꺼리지 않고, 그 자리에 참석을 해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잔치음식을 드신 것입니다.예수의 이런 모습을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보고는,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비난하기를, ‘어찌하여 저 사람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습니까?"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는 대답하기를,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하십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이번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질문하기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더니, 예수님께서 대답하기를,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을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라고 하시고는,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기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의 말씀은 바로 예수님과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와 세례 요한을 비교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과 모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인 미쉬나 장전을 비교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교훈과 구태의연하고 경직된 종교제도인, 유대교의 낡은 전통을 비교한 말씀입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로 인하여, 새로운 시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형식과 의식적인 율법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 복음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옛 계명이 아니라 새 계명을 가지고, 나사렛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생명이 임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낡은 제도와 방식과 관습과 정신을 가지고는, 새로운 구원의 도리인 복음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찢어진 낡은 옷을 깁기 위하여, 낡은 천에 새 천을 대 기우면, 새 천 조각이 낡은 천 조각을 잡아 당겨서, 더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새 포도주가 숙성하면서, 그 숙성하면서 생기는 가스가 낡은 가죽부대를 터지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은 포도주를 담을 때에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운동은, 새 포도주와 생베조각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주고, 죄인들과 함께 하는 삶은, 유대교의 율법학자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교의 기득권을 가진 유대교 지도자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또 말씀의 깊이가 다릅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모두가 ‘나사렛 예수의 말씀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은 점에.’대하여 놀랐다고, 복음서는 증거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낡은 부대, 곧 낡은 정신과 의식과 방법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새 포도주가 담겨질 때,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말씀과 교훈을 담기에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너무나 낡은 의식과 방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새 포도주가 낡은 가죽부대 속에서 터지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와 대제사장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혔다고 폄하를 하다가, 예수를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라는 죄목을 씌워서, 그러니까 정치범으로 몰아서 십자가형으로 처형을 당하게 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겸손히 살펴보고, 지금 나는 아직도 낡은 것에 매여 있지는 않은지, 옛 것을 좋은 것으로, 옳은 것으로 고집하고 있지 않은지,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2013년 한 해 동안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여러분에게 있어서, 새 포도주와 새 옷은 무엇인가?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여러분의 새 가죽부대를 준비하는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여러분에게 있어서 새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때를 따라서 여러분에게, 새 포도주를 줍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준 새 술은, 나사렛 예수께서 보여주고, 말씀하신 복음과 예수께서 갈릴리 여러 마을을 친히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운동을 전개하면서 감당하신, 모든 예수의 사역과 앞으로 세워질 교회와 열국을 향해 뻗어 나갈, 예수가 머리가 된 믿음공동체인 교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새 술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새 술이란, 성령의 은혜 안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날들’과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계획’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새 술’이란 성령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제도’를 포함하는 ‘성령의 능력 아래서 감당하는 새 삶’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지, 성령의 능력 아래서, 날마다 순간마다 새로운 삶을 삽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항상 새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새로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구원 역사가, 아무리 지난 시간과 이어져 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심령이 새로워졌다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은, 다 새로운 일이 됩니다. 

바리새인 사울을 보세요. 그는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수호하는데 남보다 열심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의 죽음도 마땅하다고 여겼고, 많은 예수당을 잡아다가 죽이고 옥에 가두고, 핍박을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마스커스로 도망간 예수당을 잡아다가 핍박을 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공한을 가지고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새 포도주가 사울에게 가득 채워지자, 바리새인이란 낡은 가죽부대는 터져버리고, 생명을 걸고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이라는 새 가죽부대가 됩니다. 갈릴리 어부 베드로라는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인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자, 십자가에서 거꾸로 못을 박히기까지,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는, 새 가죽부대가 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여러분의 심령 속에 새 포도주인 예수의 마음과 성령을 모시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새 포도주를 담은 새 가죽부대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준비할 새 가죽부대란 (1) 새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준비해야만 하는 새 가죽부대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준비 곧 새 마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말하기를, ‘우리가 현재 대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현재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사고의 유형 자체를 바꾸는(paradigm shift)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12:2절에서 로마교인엑 말하기를,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셨고, 엡 4:22-24절에서는 에베소 교인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새로운 마음의 부대가 바로 먼저 성결한 마음’입니다. 광야 여정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는 의식을 가집니다. 여호수아 3:5절에 보면, 지도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여라. 주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먼저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성결한 마음이 바로 여러분이 가져야 할, 첫 번째 준비입니다. 마음의 성결함이 없이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역사를 위해서,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셔야 하는데,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려면,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성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이란, 강하고 담대한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마음은 성결할 뿐만 아니라 강한 마음과 담대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기에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야훼께서는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수 1:9절에서 명하기를,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없이는 새 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역사를 감당하자면 믿음 안에서 예수께서 주신 약속을 굳게 붙잡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마음을 더 강하게 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요동하지 말고, 약해지지 마세요. 장차 감당할 일을 소망하면서, ‘할 수 있다. 더 새로워질 것이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담대하게 소망을 이루고자 노력을 한다면, 모든 일을 능히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난 약하다, 난 못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려는 유혹만큼, 여러분을 쉽게 넘어지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난 강하다, 난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꾸기만 해도, 포기할 때보다 다섯 배는 나아집니다. 그러니 ‘할 수 있다.’는 마음과 정신으로 준비가 된다면, 여러분 안에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그것이 아무리 역동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변화를, 여러분은 능히 감당할 수 있고, 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언제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새 가죽부대는 미래입니다. 미래는 준비 된 사람의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즈음 이런 준비된 사람과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포중앙교회가 장차 해야 할 사역과 일을 생각하면서 기도합니다. 새로운 것, 주님께서 바라는 것을 담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장차 교회가 감당할 일을 위하여 기도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함께 준비하기 바랍니다. 모든 준비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희생도 필요합니다. 새 가죽부대는 금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을 잡아서 피와 기름을 발라내고, 가죽 통부대로 만들어 적당히 건조시킨 후에야 포도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짐승을 잡아야 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새 가죽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야 합니다. 바리새인 사울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바울이란 그릇에 복음의 능력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자랑거리를 버릴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그리스도께서 상용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자신이 연단되고, 성령의 조명으로 자신이 잘 건조될 때, 그런 사람이 예수께서 사용하는 새 가죽부대가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런 그릇에 당신의 능력과 지혜와 자비와 사랑을 담아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은 매일 새롭고, 시대는 빠르게 변화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낡은 것을 고집하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창조적인 역사를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세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늘 새로워지려고 갈망하세요. 그리고 새 역사를 감당하는데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가지세요. 늘상 성령 안에서 능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세요. 예수 안에서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세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장차 해야만 할 새 일을 위하여 새 부대를 준비하세요.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함께 힘을 모으고, 성령의 도우심을 갈망하고, 합심하여 기도하며,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사는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