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욘 1:4-6)

첨부 1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욘 1:4-6)


캐나다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는 나라입니다. 62세로 퇴직하면 매달 8백달러씩 정부에서 연금이 나옵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은퇴하면 5년안에 거의 반수 이상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을 위한 ‘깨워주기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출근을 할 때는 아침 7시에 일어났지만 직장에 가지 않으니 마음 푹 놓고 얼마동안 8시까지 편히 자다가 그 다음에는 9시, 다음에는 10시, 11시, 12시까지 잔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잠이 계속 늘어 하루 세 끼 먹던 식사를 두 끼로 줄이고 얼마 후에는 하루 한 끼로 줄입니다. 

그리고 하루 8시간 자던 사람이 20시간까지 자는데 그때쯤 되면 잠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고 합니다. 잠이 좋아 계속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다가 그만 곧바로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로서 며칠 동안 배달된 우유가 문 앞에 놓여 있으면 이웃 사람들이 신고를 하고 곧 그 집에 살던 노인이 죽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고 합니다. 어디고 100미터만 가면 공원이 있는데도 은퇴 후 잠밖에 잘 것이 없어 결국 잠을 자다 갑니다. 이렇듯 노인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죽어가므로 서로 깨워주기 모임을 조직하여 당번은 앉아서 회원들을 깨우는 전화 걸기에 바쁩니다.

물고기는 잠을 잘 때 눈을 감지 않습니다. 죽을 때도 눈을 뜨고 죽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피해 로마 외곽의 지하 동굴 카타콤으로 도피했습니다. 이곳은 시체를 매장하던 장소였습니다. 로마는 장례지를 신성불가침한 곳으로 여기고 접근을 꺼렸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300년 동안 카타콤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들은 카타콤 벽에 물고기(ICHTHUS) 그림을 새겨 놓았습니다. 물고기를 그려놓은 이유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요나는 BC 8세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무리하게 조공을 요구하던 죄악이 관영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고 심판을 전하라는 명령을 요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불순종합니다. 니느웨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을 갑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는 영혼은 영적 잠에 빠집니다. 영적 불감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도 무디어 집니다. 

요나가 탄 배에 폭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 요나를 선장이 흔들어 깨우며 말합니다. “자는 자여 어찌함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기도해야 할 선지자가 도리어 기도하라는 충고를 듣다니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다면 우리도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이 시대도 엄청난 풍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혹시 풍랑의 원인이 나때문인데 도 불구하고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자는 자여, 어찌함이뇨” 라는 말씀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회개하라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소위는 필리핀으로 파병되었습니다. 게릴라전을 통해 적의 공격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습니다. 오노다는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30년동안 나름대로 섬을 방어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섬에 마지막 병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 정부는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전단, 신문, 사진, 친구들의 편지를 정글에 투하했습니다. 스피커로 나오라고 권유하는 방송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전직 상관이 나서서 설득한 후에야 오노다는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항복은 없다. 나의 30년 전쟁’ 이라는 자서전에서 동굴에서 나온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마치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제대로 깨달았다. 탄창을 풀고 실탄을 제거했다. 항상 메고 다녔던 군장을 벗고 총을 그 위에 내려놓았다. 그때 전쟁은 끝났다.” 오노다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려들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출발점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요나는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합니다. 회개의 증거로 죽기로 결단합니다. 죽으리라는 각오로 바다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사흘 동안 머뭅니다. 질식해 죽을 것 같았지만 살아났습니다. 물고기는 요나를 니느웨로 토해냅니다.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일이 복잡하다해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회개도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인생의 가장 깊은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해결책은 오직 회개뿐입니다. 남을 탓하며 원망하면 하나님의 긍휼도 없고 피할 길도 없습니다. 무디어진 양심에서 깨어나 회개해야 합니다. 비록 잘못했지만 뉘우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주신 요나처럼 회개함으로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하라

노만 그럽(Norman P. Grubb)의 저서 ‘탁월한 중보기도의 사람 리즈 하월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웨일즈 대학 학장이었던 리즈 하월즈(Rees Howells)의 영향으로 처칠 수상은 전쟁 중 두 번에 걸쳐 기도의 날을 선포하면서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리즈도 공습이 시작되자 강당에서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매일 아침 1시간, 점심 후 1시간, 그리고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기도에 힘썼고, 공습이 절정에 달할 때마다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독일 공군이 이유 없는 후퇴를 하던 9월 15일 바로 직전에도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잦은 공습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지옥에서 구원받은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공습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믿지 못하십니까? 우리가 만일 이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면 나치 속에 역사하는 마귀의 체제가 결코 오래 가지 못해 종말을 고할 것이며, 이 땅의 고귀한 생명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전쟁의 흐름을 바꾸시는 일을 반드시 행하실 것입니다” 그의 말은 예언이 되었고, 며칠 내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리즈 하월즈와 영국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가리켜 ‘역사를 바꾸는 기도’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본서 2장 1절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가 기도한 곳은 물고기 뱃속에서였습니다. 엄청난 폭풍이 일어났을 때에도 요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요나가 영적으로 잠자고 있을 때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더욱 더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숨도 쉴 수 없는 환경에서 기도하였습니다. 두려움의 고통 속에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합니까? 기도하지 않고 영적으로 잠자는 상태가 아닙니까? 기도로 깨어나야 합니다. 깨어 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깨어난 요나에게 물고기 뱃속은 더 이상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기도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깨어서 기도하면 어려운 상황이 변합니다. 하나님은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새롭게 하십니다. 
 
셋째로 감당하라

캐나다의 여러 곳에 테리 폭스(Terry Fox)의 동상이 있습니다. 2달러짜리 주화에도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농구를 좋아하던 테리 폭스는 대학 1학년 때, 악성골종양 판정을 받고 오른쪽 무릎 위 15cm까지 다리를 잘라야 했습니다. 수술 후 뉴욕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의족을 한 채 완주한 마라토너의 이야기를 접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테리 역시 마라톤을 통해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로 생각합니다.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캐나다를 동서로 종단하는 8,000Km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부모와 친구들이 반대했지만 테리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퀘백에 도착했을 때, 미국 시애틀방송이 인터뷰하여 내보냈습니다. 이후 방송마다 테리를 보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테리는 말했습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닙니다.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자신이 죽는다 해도 기금으로 암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달리기 탓에 절단된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염증으로 고통이 가중되었습니다. 

결국 테리는 143일째 쓰러지고 말았고 22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달리기를 중단했을 때 170만 달러였던 모금액은 죽었을 때는 2,300만 달러가 되었고, 최근까지 계속된 모금액은 무려 5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암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사명을 감당하는 그의 모습이 실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즐거운 일은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본서 3장 3절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요나는 영적 잠에서 깨어나자 순종하게 됩니다. 말씀 선포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사명을 피해 도망친 요나가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깨어서 사명을 감당할 때 놀라운 일을 목도할 것입니다. 요나가 심판을 외치자 완악하던 니느웨 백성들은 왕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깨어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주신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독수리과에 속한 세크러터리(Secretary Bird)라는 새가 있습니다. 여느 새와는 달리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하면 아무도 그 새를 쫓아갈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날개를 움츠리고 앉으면 두뇌의 기능이 둔감해집니다. 얼마나 심한지 앉아있을 때 다른 동물이 잡아먹으려고 해도 도망갈 줄 모를 정도입니다. 그러다가도 날개를 펴기만 하면 높이 하늘을 날아가고 높은 곳에서도 작은 짐승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밝다고 합니다. 인생은 세크러터리 새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영적 잠에 빠지면 사단이 농락해도 깨닫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영적 잠에서 깨어나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영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가 아닙니까?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부디 요나처럼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니느웨를 찾아 복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요나가 외친 말 한마디가 12만의 영혼을 살린 것처럼 우리가 전하는 말 한 마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로 잠자는 심령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깨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명을 감당함으로 항상 깨어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