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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섬기는 자의 복 (삼하 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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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기독교서적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토미 테니 목사의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신다고 강조한다. 그가 지은 “다윗의 장막”이란 또 다른 책에서는 예배의 회복이 부흥임을 말하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의 모형을 다윗의 장막에서 찾고 있다. 다윗의 장막은 솔로몬의 성전처럼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제사를 기쁨으로 받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우시고 자손 대대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는 큰 복을 주셨다.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복을 받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는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기를 원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바라고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바라고 구했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군들은 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윗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했던 다윗의 신앙을 보여주고 그가 왜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가를 함께 살펴보자.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이다. 사람들은 결과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동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다. 동기가 잘못되면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신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바알레 유다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메어 오려고 했다. 그래서 삼만 명을 동원해서 내려갔다.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하나님을 잘 섬기려는 간절한 열망과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드와잇 무디는 “하나님은 지식이 있고 열정이 없는 사람보다는 지식은 없어도 열정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말했다. 가슴에 열정이 없는 사람은 어떤 일을 추진하거나 끝까지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이 있어야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고 끝까지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일군들은 순수한 믿음의 동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을 하나님을 잘 섬기고 더 잘 섬기려는 순수한 동기와 열정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용하신다. 

우리의 모든 섬김과 헌신의 목적과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이 순수한 동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기가 순수하면 좀 실수가 있고 부족해도 받아주신다.

다윗에게도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순수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신 것이다. 7장에 보면 그는 자신은 화려한 궁궐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천막에 있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했고 하나님은 그의 이런 순수한 믿음을 받으시고 그의 자손 대대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복을 주셨다.

솔로몬도 왕이 되었을 때에 제일 먼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 받으시고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구한 것과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셨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믿음의 동기로 주를 섬기라.

하나님의 일은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는데 생각지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오는데 갑자기 수레를 끄는 소가 뛰는 바람에 궤가 떨어지려고 했고 웃사라는 사람이 깜짝 놀라서 궤를 붙잡았다고 그만 죽고 말았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를 치셨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고 했다. “2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그런데 갑자기 방법을 바꾸어서 새 수레에 싣고 왔다. “3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의 궤에 고리를 달고 나무채를 끼어서 레위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기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므로 아무도 손으로 만질 수 없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새 수레에 싣고 온 것이다.

그래서 수레를 끄는 소가 뛰는 일이 벌어졌고 하나님의 궤가 떨어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웃사가 손으로 붙잡았던 것이다. 만약에 수레에 싣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레위자손이 어깨에 메고 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 다윗이 갑자기 궤를 메고 오지 않고 새 수레에 싣고 오기로 방법을 바꾸었을까? 자기 생각에는 그것이 더 좋다고 보았을 것이다. 혹은 옆에서 다른 사람이 그 방법이 더 좋다고 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아니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방법도, 옳은 방법도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순수한 동기와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 자칫 이런 실수를 하기 쉽다. 내 딴에는 열심히 잘한다고 한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방법을 사용하게 되고 그래서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될 때가 많지 않은가?

오늘날 사탄은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목적과 동기를 바꾸거나 버리라고 유혹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목적과 동기는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방법을 바꾸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모든 일은 동기가 순수하고 목적이 옳으면 방법과 과정도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동기가 순수하고 목적이 정당해도 과정과 방법이 옳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방법이 옳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으신다. 참된 섬김과 헌신은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들을 올바른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체를 즐거워해야 한다.
다윗은 이 생각지 않은 사태에 놀라서 하나님의 궤를 더 이상 옮겨오지 못하고 오벳에돔의 집으로 보낸다.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선한 동기로 시작했다가 일이 어그러지니까 놀라고 실망하고 또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만 그 일을 중단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벳에돔의 집에 큰 복을 주셨다. 그는 하나님의 궤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그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가 사람이 죽었는데, 다윗 왕도 놀라서 모셔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그 하나님의 궤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오벳에돔은 이에 대한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궤가 자기 집으로 오게 되고 하나님을 모시게 된 것 자체로 감사하고 겸손히 순종하고 모셔 들인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했기 때문이다.

12절을 보면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기로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잘못된 방법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리게 했다.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  쌔.” 그래서 이번에는 전처럼 돌발사건이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궤 앞에서 크게 춤추며 찬양하며 올라갔다. 얼마나 열심히 춤을 추었는지 왕의 체통도 잊어버리고 속옷이 다 삐져나올 정도였다. 하나님의 궤가 성으로 들어오고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 일이 귀한 일이든 천한 일이든 다윗처럼 그리고 오벳에돔처럼 내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시편 84:10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춤을 추는 것을 그의 아내인 사울의 딸 미갈이 내려다보고 그를 업신여겼다. 그리고 다윗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에게 비아냥거렸다.(20절) 그러자 다윗은 “21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든 언제라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겠다고 했다. 

왜 미갈은 이렇게 다윗을 비웃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섬기기를 기뻐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축복도 없었다. “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언젠가 어느 교회 임직식에 갔는데 한수집사님이 이렇게 답사를 했다.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귀중한 직분을 맡겨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그렇게 고백했고 큰 감동을 받았다. 주님의 자녀를 삼아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주님을 섬기게 하심을 기뻐하며 섬기자.

오래 전에 미국에 있을 때에 한국에서 온 친구목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귀한 간증을 들었다. 모 교회 존경받는 장로님이 팔순을 맞아 자녀들이 잔치를 열었는데 장로님이 수십 명의 자녀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북에서 혼자 내려와서 갖은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렇게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또 수많은 자녀손들이 생기고 또 예수를 잘 믿고 사회에서도 성공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것은 다 내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살아왔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맡겨주신 일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너희도 이런 믿음으로 살아서 계속 복을 누려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는 큰 축복이 있다. 다윗처럼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자손 대대로 큰 복을 주신다. 모든 하나님의 일군들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고 다윗처럼 복을 받으라. 시편 112: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주를 잘 섬겨서 여러분의 가정과 자손들의 삶에 큰 복이 넘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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