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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발판 (시 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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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발판 
시편 60:1-12

승리에 익숙한 사람과 실패에 익숙한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승리에 익숙한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패배에 익숙한 사람은 어떤 실패를 만나도 충격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덤덤합니다. 공부하기를 포기한 학생은 낙제 점수를 받아도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성적을 높이려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일등인 인생은 작은 실수에도 크게 충격을 받고, 그 충격을 발판으로 해서 더 열심히 보완하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원리,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고, 실패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창조주이자,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을 이긴 분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편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 8:31절에서 로마교인에게 담대하게 말하기를, ‘그런즉 이 일에 대 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의 말씀으로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대적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존재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여 쓰러지고, 악한 것과 싸워서 패배할 때가 있다는 것이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삶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시편 60:1-12절의 말씀과 삼하 8:3-13절의 말씀을 가지고 그런 점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시편 60편에서 여러분은 실패에 큰 충격을 받은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시편 60편을 노래한 다윗은 작은 실패에 대해서도 큰 충격을 받은 사람입니다. 시편 60편의 표제를 보세요.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라는 이 시편을 다윗이 노래하게 된 삶의 자리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시편 60편은 다윗의 군대가 에돔과 아람의 연합군과 싸울 때에 지은 노래입니다. 이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사무엘하 8:3-1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전쟁은 다윗이 대승을 거둔 전쟁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전쟁을 시편60편에서 마치 큰 패배를 한 전쟁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본문 1-2절에서 바울은 노래하기를,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내버리시고, 흩으시고, 우리에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주께서 땅을 흔드시고 갈라지게 하셨으니, 이제는 그 갈라지고 깨어진 틈을 메워 주시어서, 땅이 요동치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합니다. 내용인즉 전쟁에 패배하여서 군사들은 흩어졌고, 이 전쟁을 이끈 다윗의 마음은 충격을 받아서, 마치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꺼진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렇게 노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학자들은 이 전쟁이 다윗이 승리한 전쟁이지만, 전쟁초기에는 다윗의 작전의 실패로, 다윗이 작은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작전의 실패로, 일시적으로 작은 패전을 했는데, 다윗은 이것을 마치 큰 전쟁에서 대패를 하고,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참담해 한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 동안 언제나 야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늘상 다윗이 어디에 가든지, 다윗이 감당한 전쟁에서는 승리를 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삼하 8:5-6절에는 기록하기를, ‘다마스커스의 시리아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려고 군대를 보내자, 다윗은 시리아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쳐죽이고,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 주둔군을 두니, 시리아도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야훼의 도우심으로 언제든지 전쟁을 했다하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야훼께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 번 패배를 하니까, 다윗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마치 다윗의 마음속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이라는 다윗이 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았습니까? 언제나 함께 하시는 야훼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해왔는데,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패전을 하자, 다윗으로서는 혹시 내가 야훼께 범죄한 것 때문에, 야훼의 도우심이 나를 떠난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야훼께서 다윗을 떠나신다면, 지금까지 다윗이 거둔 모든 승리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다윗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많은 허물을 지니고 있는 죄인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비록 작은 규모의 패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애통하며 야훼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간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점을 항상 인식하고, 언제든지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의 부정함 때문에 ‘나는 너를 전혀 모른다.’라고 하시면서 외면할 수 있다는점을 기억하고, 두려움으로 깨어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간절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간구하고 갈망하세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도 ‘이만하면 되었다. 목사가 이고 장로이고 권사이고 마포중앙교회 교인인데! 무슨 일이 있겠느냐?’라고 착각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삶을 살기를 사모하고, 성령의 은혜 아래 있는 증거를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살기를 갈망하고, 진정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정할만한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영적자세, 믿음의 자세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실패를 하고도 실패의 충격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발전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믿음생활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고도, 충격을 별로 받지 않습니다. 실패하고도 자세가 느긋합니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여러분의 삶의 자세, 영적 자세가 변화되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세상과 싸워서 언제나 연전연승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 아래에만 있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령 아래서 사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 할 때에, ‘승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본문에서 야훼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세력도, 악한 영의 세력까지도 포함하여, 그 누구도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을 넘어지게 하거나 패배하게 할 수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33절에서 말씀하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에서 환란을 당해도 담대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이유는 예수의 말씀처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지금 저와 여러분이 승리자라는 것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승리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세상에서 실패자의 모습으로, 패한 자의 모습으로, 낙심한 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지금 여러분이 여기서 당한 작은 실패라는 충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배의 경험이 없다가 한 번 실패한 것 때문에 지나치게 좌절을 하고 절망을 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비록 작은 실패일지라도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서 다음에는 승리하겠다고 하는 진지한 믿음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당한 작은 실패 때문에 주저 앉지를 말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서 더 높이 뛰고, 넓게 뛸 생각을 하고 소망 중에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단단히 붙잡고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냥 작은 실패일 뿐이라고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범상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발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원인을 살피고 문제를 극복할 준비를 갖추고, 주 안에서 승리할 다음날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란 본래가 세상을 이긴 분께서 승리를 약속한, 그 승리를 소망하면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승리하라고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지, 실패하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디로 가든지 승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위한 승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그리스도인은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하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을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이 놀라운 복을 여러분이 이미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도 술에 취해서 방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둘러 자신의 이런 어리석은 모습에 대해서 큰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내가 또 술에 취했었구나!’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실패에 대하여 진심으로 애통해하고, 참담한 심정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술에 취하고, 방탕한 삶을 살면서도,자신은 의례히 그렇게 살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고, 느긋해하고 당연시하고,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면, 바로 그런 영적자세와 믿음자세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혈기를 부리고, 분노하고, 신경질을 부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믄 바로 그런 감정적이고 어리석은 순간이 끝나면, 나사렛 예수처럼 온유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애통해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혈기부리고 분노하고, 신경질을 부리면서 사는 삶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완전하게 벗어버리고 거듭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감정적이고, 육신적인 삶을 사는 것을 진정으로 부끄럽게 여기고, 그런 것을 후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듭나고, 옛 사람의 모습을 완전하게 벗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혈기부리고 분노하고 신경질적으로, 세상을 살라고 부름을 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신경질을 내서는 안 되는 데, 혈기를 부려서는 안 되는데, 이처럼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하고, 그런 삶의 모습 때문에 진정으로 애통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런 모습이 완전하게 거룩하 모양으로 변화되기를 사모하고 갈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답게 겸손하고 온유하게 살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헛된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거짓말에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능력과 자비 안에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도 어리석은 욕심이나 영적인 게으름이나, 한 순간의 부정직한 마음을 가진 연고로 큰 실패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실패를 경했을 때에, 오히려 크게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갖 더러운 것과 잘못된 것에서부터 마치 도망을 치듯이 빠져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길을 달려가다가 예상하지 못한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도, 전혀 충격을 받지 않고, 진지하게 실패를 곱씹어보지도 않고, 쉽게 ‘인생이란 것이 늘 그런 것이지 뭐’ 이렇게 자위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실패를 했으면, 그것에 대하여 왜 내가 실패를 해야만 했는지를 잘 살펴보고, 원인에 대하여 철저하게 분석을 해서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본래 실패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실패한 것은, 여러분의 영적자세와 삶을 사는 자세에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작은 실패를 맞았을 때에, 철저하게 그 원인을 살피고, 잘못된 점을 바르게 고치고, 회개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와 바른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언제든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승리의 생활을 넉넉하게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라면 실패의 충격을 다윗처럼 야훼께 가지고 나와야만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실패를 했을 때에 한 가지 꼭 기억해야만 할 것이 있습니다. 실패힌 신자가 그런 상황에서도 꼭 기억할 사항은, 실패의 충격은 겸손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이되, 그 충격을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가지고 나와야만 합니다.
누구나 충격을 강하게 받으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냥 충격만 받고, 받은 충격을 잘 해소하지 못하면, 전에 겪은 실패보다 더 큰 비극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을 보세요, 다윗은 늘 승리하다가, 작은 패전을 당했을 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패전의 충격을 잘 이용하여, 오히려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은 패전의 충격을 오직 야훼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본문 시편 60:4-5절에서 다윗은 노래하기를, ‘활을 쏘는 자들에게서 피하여 도망치도록, 깃발을 세워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시오.(셀라) 주의 오른손을 내미셔서,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실패와 패배의 충격을 자신이 다 흡수하자면, 혼자서 감당하지를 못합니다. 여기서 다윗의 위대한 점은 다윗은 자신의 패전의 충격을 혼자 감다하려고 하지를 않고, 야훼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갔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믿음이자 지혜이고, 아픔과 상처를 생각보다 쉽게 치료받고 감당할 수 있는 신앙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든 아픔과 부정적인 상처와 실패의 경험들을 사람에게 가지고 가지를 말고, 세상을 이긴 분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지고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실패하라고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생활을 감당하라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어찌하여 어떤 사건에서 실패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은 절대로 실패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 예수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라도 승리를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될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비록 어떤 실패를 당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시비하거나 낙심하지를 말고, 받은 패배의 충격을 그대로 가지고, 겸손하시고 온유하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신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담대하게 나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 모두가 그런 복을 누리도록 하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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