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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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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 2:1-13)

안국동에 안동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함경도에서 아들 둘을 데리고 온 한 50대 되는 아주머니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어디에서 왔느냐고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섭섭하긴 했지만 이 분은 물러서지 않고 그 교회에 계속 출석했습니다. 

그렇게 7년을 다녔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늘 뒤에만 앉다가 그날은 앞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날 비로소 처음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한 70쯤 된 부인이 옆에 앉았다가 "내가 처음보는 아주머니인데 어디서 왔소? 라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평범한 분들 같았으면 이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하도 유명한 분들이니까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 분은 윤보선씨의 어머니시고 또 한분은 백두진씨의 어머니시랍니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심해 볼 수도 있지만 이 일화에서 우리는 오늘날 현대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오늘 현대 교회는 예배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 자리에서 예배하면서도 옆자리의 형제 자매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관심을 가져주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 할 정도입니다. 몇 년을 한 교회에 다니면서도 성도의 교통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예배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교인들 서로가 만나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야 합니다. 큐티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일대일의 만남이라면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만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장로는 교회안에서 성도간의 교제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교회안에서 사람을 외모로 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편견을 갖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흔하게 나타났던 편견이 있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자에 대한 편견입니다. 예배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면 ‘얼른가서 여기 앉으세요' 하며 상석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남루한 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면 ‘여기 앉든지 발을 얹어 놓는 발등상 옆에 쪼그리고 앉든지 하라' 고 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이런 일이 상식일지 모릅니다. 은행을 가도, 호텔을 가도 대우가 다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편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4절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성도들끼리 하는 구별' 이며 ‘악한 생각에서 나온 판단'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야 합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당시 교회안에 가난한 자들은 대개 예수 믿는 다는 이유로 가난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시고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형제들을 보아야 편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한 것일까요? 정말 그들을 사랑해서일까요? 성경은 그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정말 그들의 영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돈을 사랑하는 악한 편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자들에게 성경은 오늘 이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편견 대신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거니와 먼저 교회안에서 가난한 형제든, 부한 형제든 차별없이 사랑으로 대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들은 나를 괴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안에서 늘 만나는 사람 가운데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나 나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 최고의 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것처럼 말하고 행하라 긍휼로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긍휼로 대하라고 하십니다. 기독교는 심판을 믿는 종교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따라 우리가 받을 심판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긍휼없는 자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 성도가 교제할 때 편견없이 사랑으로 대하고 또한 긍휼로 대하십시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긍휼은 같은 마음을 가져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나 직장에서도 그래야 하지만 특히 교회안에서 다른 성도님들을 대할 때 오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는 돈에 대한 편견이 언급되어 있지만 우리 중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편견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이지만 아직도 미국 교회에는 인종 차별의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인 한 사람이 어느 백인 교회에 예배하러 들어 갔다가 들어가자 마자 쫓겨났답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하나님, 당신은 백인만의 하나님이십니까? 너무 합니다” 하고 항의성 기도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너는 한번 쫓겨난 것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 나는 매번 쫓겨나는 걸” 이것은 미국교회의 편견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편견이 없습니까? 어떤 종류의 편견이든 편견이 있는 교회에서 우리 주님은 쫓겨나십니다. 우리에게 지방색의 편견은 없습니까? 가난한 자에 대한 편견은 없습니까? 또 부자들에 대한 편견은 없습니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없습니까? 여성이나 남성에 대한 편견은 없습니까? 그리고 젊은이들에 대한 편견은 없습니까? 또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에 대한 편견은 없습니까? 사랑과 긍휼로써 편견을 녹여 버립시다. 


* 기도 : 우리를 편견없이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여 영광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가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광의 주를 알고 교제하기 전에는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외적인 조건에 따라 택하시지 않고 은혜로 불러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은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속물근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연약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사람을 돈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아부하고 가난하고 사회적 배경이 없는 자들을 괄시하는 것과 같이 외모로 보고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렇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도 큰 죄이며, 살인한 자나 간음한 자와 마찬가지로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히려 가난한 자들을 볼 때 긍휼히 여기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돕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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