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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씨 (사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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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씨 (사 6:9-13)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장군과 타냐가 대화를 하는데 장군이 타냐에게 물어봅니다. ‘너 어떻게 해서 아버지와 헤어졌느냐?’ 타냐가 대답합니다. ‘그때는 혁명 중이었고 거리에는 불이 붙었고 복잡해서 도망을 가다보니까 그래서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때에 장군이 말합니다. ‘아니야, 네가 아버지와 헤어진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닐 거야. 너 어떻게 아버지를 잃었어?’ 그러자 타냐는 ‘사실은 저희 아버지가 제 손을 그냥 놓아버렸어요.’ 라고 말합니다. 

그때에 장군이 타냐에게 말합니다. ‘내가 사실을 말해주마. 코마로프는 네 친아버지가 아니었어. 너희 친아버지는 닥터 지바고였다. 만일 코마로프가 네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혁명 와중이라고 해서 어찌 네 손을 놔버리겠니? 고난을 당할 때 손을 더 꼭 잡아야지.’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물론 모든 친아버지 의붓아버지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큰 환난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에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내 친딸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왔을 때에 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친아버지는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딸 때문에 내가 죽어도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결코 여러분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설령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더라도 아버지께서는 나를 붙잡으신 그 손은 놓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붙잡으신 그 손을 놓지 않으셨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증명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밝혀보고자 합니다.

이사야서 6:1-8의 말씀은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을 때에 먼저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 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천사들로부터 영광의 찬양을 받으시고 계시며 그 거룩함의 임재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서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수치를 깨닫는 자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셔서 죄인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정결케 된 자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역에 보내시기 위하여 물으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그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합니다. 허물과 죄악으로 가득했던 이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가라 그리고 말하라(go and tell this people)”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6:9-10절의 말씀을 보면,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가는 목적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전하는 말로는 세상 사람들이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서 구원받을 것을 염려하고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시는 목적이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을 염려하시다니 말이 됩니까? 왜 이런 염려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던 분들이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일이 참으로 힘든 것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절 말씀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사탄의 세력인 어두움이 그 빛을 알지 못하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죄악 속에 있는 사람들이 진리와 생명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럼 주님 어느때까지 그렇게 하시겠습니까”라고 11절에서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11-12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게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범죄한 유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유다가 완전히 황폐할 때까지 이를 것이고 혹시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라고 할지라도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벨론 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초대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제압하고 천하를 통일하면서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는 자유령을 선포할 때 그 때에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다른 데 가면 뭐 좋은 수가 있겠느냐? 정들면 고향이지, 우리는 안 돌아가겠다 하고 유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벨론에 남아서 삽니다. 

이방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손을 놓아버린 백성들, 그러나 그 때에도 유대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서운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 중에서도 스룹바벨이라고 하는 총독을 앞장세우고 일차로 43,260명이 귀환합니다.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우리의 고국이고 본향이니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의 땅으로 가야된다고 돌아왔습니다. 그 돌아온 사람들이 거룩한 씨, 그루터기입니다.

백성이 멸망하고 그 후에 비록 10분의 1이 남는다 할지라도 또 다른 파멸의 물결이 닥쳐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소수의 그루터기가 남는데 거룩한 씨로 남아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듯이, 백성이 모두 멸절된다 할지라도 그 중에 거룩한 씨는 남아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맥을 이어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입니까? 대부분의 나무들은 몸통이 잘리면 죽습니다. 그러나 이 두 나무,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는 잘리어도 뿌리만 있으면 다시 가지가 나고 잎사귀가 솟아납니다.

이 그루터기는 "거룩한 씨"로서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멸된 후 새로운 이스라엘이 솟아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대다수는 절망적으로 버림을 받지만 믿음을 지키는 신실한 그루터기는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으로 성장하여 그 열매가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루터기를 통하여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합니다. 

욥14:7-9을 보십시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운 심은 것과 같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의 역사 가운데 인간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거룩한 씨, 그루터기들은 언제나 중요한 역활을 하였습니다. 노아는 인류의 생명을 이어갔고,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기근에서 가족을 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시대에 거룩한 씨, 그루터기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주일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에 모여서 그 분을 보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분부하시는 바를 이루어 드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죄악으로 물들어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대의 거룩한 씨, 그루터기가 되어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비추는 말씀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본문에서 말하는 그루터기는 보다 구체적으로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의 역사입니다. 성전 중심으로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느냐가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한 것은 성막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전을 건축하여 성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질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앗수르,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끔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을 버리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룩한 씨는 하나님께서 남겨둔 자들,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루터기는 교회를 가르킵니다. 그루터기는 외형적으로보면 볼품이 없습니다. 가지도 잎사귀도 없습니다. 그저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가지와 잎사귀는 없을지라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밑으로 그 그루터기를 지탱해주는 뿌리가 살아있다면 언젠가 그 그루터기에는 다시 가지와 잎사귀가 솟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든 거룩한 백성들은 참된 그루터기들로써 교회를 사랑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켜 주님의 아름다운 교회를 형성해 가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은 한사랑교회의 그루터기가 되어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역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2년 전에 이 교회에 파송을 받았을 때에 남아 있던 분들조차도 우리 교회가 문을 닫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2년이 지난 오늘, 그때에 남은 분들,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거룩한 씨가 남아져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교회를 버리고 떠날 수 있으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끝까지 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 교회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도 이 한사랑교회가 내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결코 한사랑교회, 남아 있는 그 분들의 손을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붙잡은 손을 놓치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가? 그것은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는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이 죄인들에게 증거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세상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즉 그루터기, 거룩한 씨로 남겨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로 물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오직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죽어가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무런 자극도 없이 그저 교회 문턱만 넘나들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성전안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가를 잘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한 때에 우리를 부르셔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실 때에 우리가 거룩한 씨가 되어 이 지역 뿐만 아니라 한국을 그리고 온 세상에 거룩한 씨를 뿌리는 복음화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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