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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주권 사상의 가치 (딤후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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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사상의 가치 (딤후 3:15-17)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은 개혁주의 사상의 최대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성경 제일주의 사상입니다. 성경 제일주의 사상의 최대 표현은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구속사(Redemption)란 구원(Salvation)과 구속(Redemption)과 역사(History)의 합성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뻐하신 주권적 의지와 계획을 따라 죄로 인하여 타락한 그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주의 몸된 교회 운동을 통해서 성취해 가시는 역사적 진행과정이 구속사입니다. 구속사의 중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목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39절에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18절에 『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사상이 우리를 지배하는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합니다.

Ⅰ.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을 공경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에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창조주 하나님께 절대적 권한을 부여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권리는 진흙으로 자신이 원하시는 형태의 그릇을 만들 수 있는 토기장이의 권한이라고 주장합니다.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 『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사상 앞에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비난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그 하나님의 권위 앞에 인간의 취할 태도는 겸손한 복종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높일 수도 없고 절대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지만 많은 인간이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에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른 피조물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인간이 타락할 때 좌절되지 아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 KJV)이란 말을 감안할 때 인간의 타락이 예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인간의 구원계시를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인간의 사악함이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시편 76편 10절에 『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의 뜻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 전에 시작되었고 변하지 않고 영원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모든 일에 미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그의 뜻대로 진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인간과 영계의 마귀의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99편 1절에 『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Ⅱ.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이행득구를 배격하고 이신득구의 은혜를 주장합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했습니다.

은혜란 공로 없이 받는 과분한 호의입니다. 은혜는 자격 없고 무지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는 완전 공짜(Free)입니다. 따라서 은혜는 주권적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에 대한 반항의 마음을 꺾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생각에서 일어나는 그에 대한 적대감을 가라앉히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15절에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하나님이 지존하시다는 사실과 마땅히 경외해야 될 분이심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는 육신의 무례한 행위로 전락될 뿐입니다.

우리의 모든 섬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죽은 행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이 서로 말하고 있을 때 요한복음 4장 34절에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고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도 주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고

린도전서 4장 16절에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절에 『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님 자신의 본을 동일하게 표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를 얼마나 본받는 자 된 척도는 마태복음 11장 29절에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 했습니다.

행위에 대한 구원은 모든 인간들에게 어쩔 수 없이 미련을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행위로써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에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1절에 『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0-31절에 『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행해야 구원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가치를 무익하게 하고 폄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은 성경의 진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스스로 도울 힘이 없는 자를 도우시며 실패를 반복하고 반복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죄인의 구원이 자기 의지의 행위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로마서 9장 16절에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겸손한 자를 도우십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에 『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자신의 구원이 타계에서 온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자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피조물로 하여금 절대 겸손, 절대 안전, 절대 위로를 줍니다. 

로마서 8장 37-39절에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고 했습니다. 진심어린 시편기자의 고백을 보십시오. 시편 87편 2절에 『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율법의 진노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해줄 의무가 없으신대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시편 115편 1절에 『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라고 했습니다.

죄인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채우지만 성도의 마음은 찬양으로 채웁니다. 시편 18편 1-2절에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고별 설교를 할 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명기 33장 26-27절에 『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약하고 힘없고 어리석은 한 마리 양인데 그러나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안전합니다(시 91:9-16). 내가 거기서 안전한 것은 나를 붙잡은 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나를 빼앗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그는 강하시고 나는 가난하지만 그는 부요하시고 나는 무지하지만 그는 지혜로우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보호와 사랑하심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2절에 『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고 했습니다. 그분은 능력이 많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기만 하면 당장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그리스도인에게 확실한 평화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흔들릴 수 없는 기초이며 성경의 중심사상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그렇다고 마귀에게서 오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정하시고 명하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3절에 『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류를 범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욥기 9장 12절에 『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을 빼앗는 자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이 그분의 손에 달렸으니 생각할수록 다행한 일입니다. 욥기 14장 5절에 『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이라고 했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연약한 마음에 큰 위로와 평안을 얻게 합니다. 


Ⅳ.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악에 대한 최종 승리를 보장합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에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성도들이 억압을 받고 불신자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도는 적고 불신자는 많습니다. 옳은 자들은 패하고 부정한 자들은 승리합니다. 

성도들에게 환난은 아무 배려도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위를 보지 말고 위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욥기 23장 13절에 『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고 성취됩니다. 소망하고 기대하고 믿는 자는 우리를 불성곽으로 보호하시며 화염검으로 지키시는 하나님을 시마다 때마다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에 『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났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이 지극히 높으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그분이 지극히 겸손한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어 자신의 죄악된 피조물의 짐을 대신 지셨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 『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입니다(행 20:28).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찬송이 되었고 존귀와 영광이 되었습니다(계 5:12).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습니다(창 12:1-8). 하나님 주권사상을 제대로 알면 모세처럼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15장 11절에 『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제대로 알면 사도 바울처럼 로마서 8장 18절에 『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처럼 야고보서 1장 17절에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마침내 시편 116편 12절에 『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에 『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보답하기를 배우게 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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