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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충분합니다! (시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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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보신다면 충분합니다! (시 53:1-6)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2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3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구나. 
5 하나님이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셨기에,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셨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6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1944년 7월 20일의 히틀러 암살기도 사건에 관여한 것때문에 사형을 당한 괴들러(Goedler) 박사의 수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잠을 잘 이룰 수가 없다. 개인의 운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은 과연 있는가? 나는 그것을 믿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수십 만의 사람들이 공포과 절망 속에서 미쳐가는 것을 그대로 놓아두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수백 만의 사람들이 공포의 풀무불 속에 떨어져 허우적거릴 때 손 끝 하나 꼼짝하지 않고 죽게 버려 두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실까?’ 절망하는 때가 있습니다. 
아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이 있다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일 것입니다.
시편 53편은 바로 그 탄식입니다. 
다윗은 주위 사람들이 다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한다고 탄식하면서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모두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시편 53편은 이렇게 영적으로 대단히 답답하고 고통스런 탄식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치 어둠 속에 빛처럼, 쓰레기 더미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구절 하나를 뱔견하였습니다. 2절입니다. 
2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물론 이 구절은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탄식으로 끝납니다.
3절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그렇지만 저는 2절 말씀에서 놀라운 은혜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라는 말씀이 놀라왔습니다.
그저 읽을 때는 몰랐는데, 묵상하며 말씀 기도를 하면서 본문 전체가 환한 빛으로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을 정말 보는 것 같았습니다. 
“굽어보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말씀하고 있어서 손이라도 흔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시려고 하늘에서 굽어 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 고 설교하고 또 도전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잘 따라 주시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힘들어 하기도 했습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나요?”
“아무리 해도 나는 안돼요!”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하여 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받았구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막연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바로 그 사람이예요.” 하고 외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외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은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려는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 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것입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단 한 사람 뿐이었던 적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홍수 심판 전에 노아가 그랬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불심판으로 멸망할 때 롯도 그랬습니다. 혼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 안 믿어진다고 하여도 나는 믿어지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믿어지고 갈망하게 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혼자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에 올 때마다 우리는 감격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노아 때 롯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이세벨 때문에 절망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는 자기 혼자 남았으니 죽여달라고 탄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가 7천 명이나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가 많지 않은 것 같아도 실제로 허다히 많은 증인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

여러분, 문제는 세상도 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 한번 진심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을 찾고 또 찾고 계십니까?”

정말 그렇다면 주위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부인할지라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때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혼자라도 얼마든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눈이 뜨이고 나면 혼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가 많음을 알게 됩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들 조차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하나님이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셨기에,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셨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 세상이 불 심판을 당하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세상은 노아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노아의 때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부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세계 2차 대전 때, 사람들이 온통 광기에 사로잡히는 경우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당시 독일과 일본은 가장 지성적인 나라, 당대 최고의 문명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어떤 일을 하였습니까? 
이런 일이 우리 때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러시아의 반체제 작가‘솔제니친’이 러시아에 실망해서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돌아가면서 [서방세계에 대한 경고]라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나는 러시아의 혁명사만 50년 연구한 사람이다. 6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러시아 혁명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러시아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온 비극이었다.” 

“예수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길을 가는 것은 목표가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러시아가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실망해서 조국 마저 버리고 미국으로 왔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까 러시아가 과거에 갔던 길을 미국이 지금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그러면 미국도 러시아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라고 해서 미국에 왔더니 실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 믿더라는 것입니다. 두려운 경고입니다.

다윗은 탄식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6절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시오! ...
하나님께서 드러나 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이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세가 분명해야 합니다. 
때때로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님은 정말 나를 아실까?’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고 계시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확인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2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렘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만 분명히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찾고자 갈망하고 있는가?’

사람에게 우리 마음을 보여주기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 마음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우리의 갈망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굽어 살펴 보고 계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국의 열쇠라는 소설을 쓴 A.J 크로닌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젊은 의사로서 영국의 한 탄광촌에 있는 보건소에 부임해 갔습니다. 가보니 시설도 여건도 형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올리브라는 간호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올리브의 봉급이 너무 적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올리브 간호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더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곳 주민들도 하나님도 그렇게 인정하실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엄숙하고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크로닌 박사님, 하나님께서 제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알아주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마음에 진정 주님을 갈망하는 자라면 과거 어떤 사람이었을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리고에 사는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그는 그 지역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동족의 돈을 갈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삭개오에게 예수님을 향한 열망을 생겼습니다. 그는 돈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자기도 예수님이란 분을 한번 만나 마음의 답답함을 해결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말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갈망이 생긴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는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마을에서 삭개오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갈급하면 누구나 받아주십니다.

갇 톨드 미 (God Told Me) 짐 삼라 
라브리 공동체를 설립한 프란시스 쉐퍼는 십 대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신학교에 가서 사역자의 길을 가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프란시스의 아버지는 대단히 반대하였습니다.
갈등하던 프랜시스는 결심을 하고 가방을 꾸려 방에 나왔는데, 아버지가 현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프란시스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말했습니다. "나는 목사 아들을 원하지 않아. 네가 그 길을 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때 프란시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아버지, 지하실로 내려가 몇 분간만 기도할 시간을 주세l요.”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함과 두려움 가운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것온 아버지를 위한 슬픔의 뜨거운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몇 분내로 진로를 선택해야 했지만 하나닝이 원하시는 대로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짧은 몇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띨사적이고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길을 가르쳐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넘 제발 저의 길을 알려 주세요.” 
그리고 나서 그는 동전을 꺼냈습니다.

“앞면이 나오면 아버지가 목사의 길을 반대하셔도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전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앞면이었고 그는 다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하나님, 한 번만 더 확신을 주세요 이번에는 뒷면이 나오면 아버지의 반대에도 목사의 길을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동전을 던졌을 때 뒷면이 나왔습니다. 그런더l도 그는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한 번 더 하나님 아버지께 실수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다시 한번 동전을 던지면 앞면이 나오게 해 주세요.”그는 기도했고 마지막으로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 아버지께 말했습니다.“아버지, 저는 가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그를 냉정하게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쾅하고 닫았습니다. 그런데 문이 닫히기 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내가 반학기 등록금은 보내 주마.”그 후 수년 뒤 프란시스의 아버지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그 순간이 아버지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동전 던지기로 알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갈망하라는 것입니다.‘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나온 기도가“오직 주님만을 갈망합니다.”였습니다. 
어느 분이 저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나는 죽고 예수로 사시는 목사님께서 주님을 간절히 갈망하시는 고백이 의아해 했습니다. 나처럼 영적인 눈이 완전히 열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미 예수님으로 사신다면서 왜 주님을 그렇게 갈망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속죄의 교리를 알고 입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면 돈을 주머니에 넣는 것처럼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갈망하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교리적인 확신이 아니라,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더 깊어지고 더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하면 결혼은 끝입니까? 부부 사이는 평생 깊이 교제하고 알아가는 축복이 아닙니까?
예수님과 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목사 밴드에서 우리 자신의 영적 진단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가?’그 자라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교인들에게 너무나 죄송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과 8월 한달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데 전념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다들 동의하였습니다. 

주님을 믿고 살면서 우리가 할 일은 ‘나에겐 왕이 계십니다.’ ‘24 시간 주님만 바라보자.’ 뿐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 2/12자 글에‘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기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그러면서 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출 20:19『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여러분, 정직하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어떤 말씀을 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이제는 된다 안된다 하지 않겠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결단이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는 말이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라 하시면 저는 못합니다!”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힘들고 어려운 것을 명령하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는 말이 거짓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에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은, 주님을 정말 마음으로부터 사모하며 왕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라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 안에 오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만 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펴 보고 계시고 반드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성찬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려는 갈망에 대한 주님의 응답입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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