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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기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 (1) (레 23:4-14,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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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절기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1) (Christ and the Feasts of the LORD)
성경 : 레 23:4-14, 44
 
“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세우시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수치를 당하게 하셨고, 그를 부활시키심으로 성경의 모든 약속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의 분명한 목표는 철저하고 온전하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를 확고하게 선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에 예수님으로 수건을 벗기지 않으면 유대인처럼 완고한 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고후 3:15).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지금까지 구원을 발로 차버리고 헛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성도 여러분에게 수건을 벗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특별히 구약의 절기들을 보면 거기 신약성경 전체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절기는 단순한 이스라엘의 풍습이 아닙니다. 절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자로 담고 있습니다. 절기들 속에 그리스도의 일생에 대한 예언적 의미가 담겨 있는데, 그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절기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질서정연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고, 정확하게 성취된 하나님 말씀의 신비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7절기를 가르치시고 이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7절기를 공포했습니다.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44절).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약이 얼마나 정교하게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지, 특히 절기들이 얼마나 놀라운 수준으로 예수님의 일생의 사역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유월절 (=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 
 
5절=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유월절, 그 베일이 벗겨지면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 위의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그 십자가 피의 능력을 힘입어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월절 절기속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400년간이나 애굽의 쇠풀무속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셔서 애굽을 벗어나게 하신 바로 그날 밤을 기념하여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출 12:3=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유월절의 제물은 반드시 어린 양이어야 하고, 소나 비둘기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성경에 등장하는 어린 양은 바로 많은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성령님의 계시를 통해 어린 양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도 바울도 수건을 벗고 유월절 양을 보니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주전 1446년에 양으로 예언되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1500여년 후에 정확히 어린 양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그것이 신약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놀라고 가슴 뛰는 감격을 누립니다. 
 
애굽에서의 유월절이 모형(type)이라면 그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린 양을 제물로 잡은 것이 모형이라면 그 원형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왜 ‘양’으로 예언되었을까요? 양의 특징을 살펴볼 때 그 속에 담긴 풍성한 영적 의미가 드러납니다. 양은 낮은 데를 좋아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겸손과 비하의 신분을 예표합니다(빌 2:5-11).  
 
양의 흰색은 예수님의 성결을 상징합니다. 양의 순종은 순종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잘 나타냅니다. 양이 털과 고기와 가죽 등 모든 것을 주인을 위해 바치듯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을 때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반드시 처음 난 새끼 양을 수컷으로 골라잡아야만 했습니다(출 13:2).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맏아들로 이 땅에 오실 것을 가리킵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그 형제들 중에서 육적 장자이셨을 뿐만 아니라 장자 지파인 유다 지파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유월절 양이 수컷이었듯이 예수님은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이스라엘이요 영적 장자로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2. 무교절 (= 무덤에 장사되신 그리스도) 
 
6절=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유월절의 경이로움은 이제 무교절로 이어집니다. 무교절은 '그 장사 지낸 것의 축제일‘ 또는 ’그 누룩 없는 떡의 경축일‘이란 뜻이며, 유월절을 포함하여 7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화제를 드렸습니다. 
 
7-8절=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무교절의 첫 날과 마지막 날은 큰 성회로 모였고, 이 성회의 날에는 노동을 금하였습니다. 무교절은 급히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생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무교절은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水葬)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로 나옵니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출 12:17-18)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홍해를 만났습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무섭게 추격해 오는데 앞은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한 다음 애굽의 군사들을 모두 홍해 속에 수장시키셨습니다. 

홍해라는 말은 붉은 바다, 곧 죽음의 바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무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홍해를 건너는 것은 죽음의 바다를 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넘으로써 애굽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야 했습니다.  
 
무교절은 누룩 없는 떡을 삼일 동안 땅 속에 묻어두는 것이고, 묻어 두는 것은 장례를 지내는 것의 모형입니다. 즉 미래에 있을 어떤 장례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후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넌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유월절 양이 되시고 무덤 속에 장사지낸 것을 예언적으로 말해줍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적 짝을 찾아야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 무덤 속에 예수님의 시신을 정한 세마포로 싸서 장사지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홍해 사건을 영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 무덤 속에 들어가셨다는 사실은 우주적인 충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무덤 속에 계시지 않고 죽으신 그 십자가에서 부활하실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은 친히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는 곧 무교절을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레 23:6=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 

1월 15일은 무교절로 지냈는데, 이것의 원형은 예수께서 1월 15일에 무덤에 계신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요 19: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그 안식일이 큰 날’ 이란 말은 무교절과 안식일(토요일)이 겹친 날을 의미합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날을 매우 크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시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급히 장례를 치루었고, 이것은 15일 무교절에 예수께서 무덤에 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교절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우리의 대속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무교절 그리고 무덤, 이 놀라운 성취를 보십시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무교절에 하나님의 백성은 누룩 없는 떡을 먹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으시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이고, 주님의 백성들도 주위에 죄 된 것을 물리쳐야 함을 가리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5:8).
 
무교절 첫 날에 이스라엘이 성회로 모였던 것처럼 예수님은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가지셨습니다. 
 
무교절 7일 동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화제(火祭)를 드리라는 명령대로 제물을 완전히 태워 없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죽으셔서 무덤 속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교절 신앙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신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가셨듯이 우리도 무덤에 가야 합니다. 주님이 죽으셔서 장례를 지내셨듯이 우리의 육(肉)도 죽어 장례를 치루어야 합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3. 초실절 (= 부활하신 그리스도) 
 
10-11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초실절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은 후 첫 곡식을 추수한 것을 감사드리며 기념하는 절기로서, 여기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초실절은 봄에 보리 농사를 마친 후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봉헌하는 절기인데, 특이한 것은 단을 흔들어 드려야 하고,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는 떡이든 볶은 곡식이든 생이삭이든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초실절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초실절에는 단을 흔들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을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 즉 요제라고 말합니다. 제사장은 양 손에 제물을 올려놓고 제단 앞에서 전후로 수평이 되게 흔드는 것입니다.   

요제를 드릴 때 제물을 흔드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왜 흔들어야만 하도록 하셨을까요? 이 의식 속에는 ‘살아난다’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흔들어보는 것은 살아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곡식을 흔들어 드리던 요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표였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무덤을 깨고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초실절은 무교절 속에 들어 있는 주일입니다. 11절에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라고 한 것은 1월 16일 주일에 드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예언대로 우리 주님은 정확히 안식일 이튿날 곧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복음서가 모두 거듭 증거하고 있습니다(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삼일 후에 살아나실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삼일이라는 날짜와 부활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14일에 죽으시고 15일에 무덤에, 그리고 16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한 예언이었고 이는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주님의 일요일 부활은 주일 성수의 근거가 됩니다. 초대교인들은 안식 후 첫날 곧 예수님 부활하신 그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고, 사도들은 그날에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주일을 성수하느냐의 여부는 단순히 교회 출석의 의미가 아닙니다. 부활의 그 광대한 의미를 정말로 아는 성도라면 주일 성수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초실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합니다. 이날에는 농사 지은 것 중 첫 이삭을 드려야 했습니다. 구약은 특별히 처음 것은 철저히 구별하였습니다. 그러면 초실절에 첫 이삭을 구별하여 드린 복음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약 시대에 초실절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듯이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가셨습니다. 
 
첫 열매를 따면 나머지 열매도 익어서 따게 됩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놀라운 것은 초실절의 제물이 이삭 한 단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10절). 복음적 진리가 여기 숨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 때 자던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50-53).
 
초실절에 이삭 한 단을 드렸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실 때 부활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 한 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 곧 집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자던 성도들은 구약의 구원받은 일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좀더 나가볼까요? 초실절에는 단을 흔들어 여호와께 드릴 때 네 가지 제사를 병행하였습니다.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12-13절).
 
네 가지 제사란 번제(흠 없는 일 년 된 수양), 소제(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2/10), 화제(향기로운 냄새), 전제(포도주 힌 1/4)인데, 여기에도 깊은 복음적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번제의 숫양은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소제 가루는 예수님의 몸이 가루가 되셔서 희생하신 사건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으며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온 몸은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가루가 되신 것입니다. 
 
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화제의 영적 의미는 예수께서 희생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전제는 포도주를 쏟아붓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단독으로는 드릴 수 없고 번제나 소제와 함께 드려졌습니다. 포도주 힌 1/4을 드린 것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모형인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5대 제사 중 화목제와 속죄제, 속건제는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실절 이삭을 드릴 땅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 곧 가나안 땅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여기 가나안 땅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천국으로 올라가심으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초실절을 지키듯 천국 갈 때 우리도 부활합니다. 이것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중요합니다. 재림 신앙이 어떻게 이토록 큰 힘과 위로를 줍니까? 재림 안에 부활의 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7절기 중 나머지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살펴본대로 구약의 절기 하나 하나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깊숙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더욱 사랑합시다. 성경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찾아내기 위해 수건을 벗기는 일에 더욱 힘씁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이 각각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통하여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표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하여 예언대로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가슴 가득히 담으십시오.

성경 말씀을 더욱 신뢰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속히 다시 오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시고 소망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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