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출 13:17-22)

첨부 1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출 13:17-22) 

출애굽 운동은 하나님이 장차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기 위한 구속사적 거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나왔지만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최종 목적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를 계속해서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구름기둥은 그들을 위하여 낮 동안 작열하는 햇빛을 막아주고 갈 길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의 보호 방법이었습니다. 
불기둥은 캄캄한 밤에 갈 길을 비춰주고 온갖 맹수들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통과해야 할 땅은 계속되는 광야 사막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장 6절에 『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막과 광야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군대열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온갖 은혜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상징되었습니다. 불가불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의지하고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아모스 5장 6절에 『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고 했습니다. 

아모스 5장 4-5절에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276명과 함께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를 보기 위해 가던 도중에 풍랑으로 인해 배가 부서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께만 속하여 그분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신령한 소속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행 27:23). 

지금 여러분의 소속은 어디입니까? 내가 섬기는 세상입니까 내가 섬기는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의 진정한 소속이 여러분의 직장입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갈보리교회입니까?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광야 길을 행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귀한 존재입니다. 
이 땅에 끝없이 전개되는 과학문명의 발달은 도리어 과학의 한계를 알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광야를 행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정면으로 도전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인간은 절대자의 존재를 의식하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마저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자들이 없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는 그 자체가 죄악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도전하고 하나님의 종들에게 대적하고 결국 얻어지는 것은 온갖 비도덕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타락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모세를 따라 광야를 행군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다른 신을 만들라고 했습니다(행 7:40).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범죄할 때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대답 중에 하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Ⅰ.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표적입니다. 

본문 13장 21절에 『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서로 다른 별개의 두 기둥이 아니라 한 기둥이 이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징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다른 신을 요구할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자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성경의 시작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시편 10편 4절에 『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시편 14편 1절에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Ⅱ.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알리는 표적입니다. 

본문 13장 22절에 『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의 현장에 임재하고 계심을 보여 주시는 표징입니다. 
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막제도가 정착되기 이전부터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청각을 통하여 세미한 음성으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시각을 통하여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신 것은 인간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2절에 『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난 자기 백성에 대한 자신의 직접적인 통치를 상징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도자였으며 그들을 지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홀笏이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Ⅲ. 하나님 자신의 구원을 알리는 표적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9-20절에 『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세워준 지도자 모세의 지도에 따라 숙곳에서 발행한 후 에담에 장막을 쳤습니다. 
이때부터 나타난 불기둥과 구름기둥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는 장정만 60만인 것을 감안하면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합하면 200만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여행 경험으로도 사막에는 인간이 정상적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마실 물이나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가야될 방향조차 알 수 없는 곳입니다.

사막에 내리쬐는 작열하는 태양의 복사열은 모든 생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충분합니다. 낮과 밤의 심한 기온 차이는 사람들을 쉽게 지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사막생활에 연단된 각종 파충류와 맹수들은 저마다의 생존 법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맹독성과 먹이를 보면 놓치지 않는 집착성과 표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이러한 환경에서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을 때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Ⅳ. 하나님의 피로 값주고 산 교회운동의 예표입 니다. 

사도행전 7장 37-38절에 『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스데반이 죽음을 앞두고 대제사장들 앞에 설교한 내용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던 광야길을 광야교회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은 곧 세상에서 예수께로 나와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현현顯現입니다. 
하나님의 현현 중에 최대의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成肉身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교회운동을 위하여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더 확실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그의 성령을 교회운동을 위하여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에 보낸 보혜사 성령, 진리의 영, 영광의 영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성령이 기록하고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신구약 성경입니다. 
언제 어느 때나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불기둥이요 구름기둥입니다. 말씀과 성령은 죽음의 사막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고 모든 위해적인 요소로부터 보호하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전파하는 설교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오늘의 교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우리 교회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우리 교회를 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습니다(행 20:28). 그의 몸된 교회라고 했습니다(골 1:24).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고전 11:22).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했습니다(엡 1:23).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했습니다(엡 5:23). 

결국 우리 교회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소유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출입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함께하고 우리의 소원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진행하면 우리도 진행하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멈추면 우리도 멈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말하지 아니하는 것은 말하지 아니합니다. 성경이 진행하는 데까지 진행하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추는 것을 우리의 자랑으로 삼습니다. 
우리 교회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평안을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공급해 주는 관수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의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진정 이것만이 우리의 자본이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영예요, 우리의 미래요, 우리의 비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루를 밤낮으로 나누고, 일 년을 밤낮으로 나누고, 한 세기를 밤낮으로 나누고, 이 세상 역사를 밤낮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낮과 밤은 이 세상 시간의 반씩입니다. 낮과 밤은 이 세상 공간의 반씩입니다. 낮과 밤은 이 세상 역사의 반씩입니다. 

이 세상의 낮의 역사의 중심은 구름기둥입니다. 이 세상의 밤의 역사의 중심은 불기둥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밤에는 불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이 기둥은 별개의 기둥이 아니라 하나의 기둥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밤과 낮은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밤과 낮은 성경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밤과 낮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설교가 없이는 못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밤과 낮은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밤과 낮에 목사의 설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밤과 낮은 교회운동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 교회운동의 핵심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곧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강구원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