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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마 13: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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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한 쌍의 비유라고 한다. 이 비유는 천국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같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한 쌍이라고 한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막4:30~32, 눅13:18~21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눅13;18~21에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으며, 무엇에 비교하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마13:31에 기록된 “천국은 마치 ... 겨자씨 한 알 같으니”란 말보다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즉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으냐’ 하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이요 또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를 부풀케 한 누룩이라는 것이다. 

겨자씨와 누룩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다.

1.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다.

밭에다 심겨지는 겨자씨, 이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다. 씨알 하나 하나는 너무나도 작아서 손으로 집어올리기 조차 어렵다. 마찬가지로 누룩도 그렇다.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도 눈에 보이지 않는 효소다.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미미하다. 허나 밭에 떨어지는 순간, 밀가루 속에 들어가는 순간 이 작은 것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겨자씨와 누룩의 공통점은 시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도 이렇다. 그 시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밭 속에 들어가 있기에, 가루 속에 들어가 있기에 꿈틀거리는 것, 움직이는 것이 안보이듯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는지를 잘 알아보기 어렵다. 물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너무도 작고 미미한 것으로 출발하기에 눈치를 채기도 어렵다.


2. 하나님 나라는 점점 성장하고 확대되어 간다.

겨자씨와 누룩, 그것은 분명히 미미하고 보이지 않을 만큼 작다. 그러나 일단 밭에 심겨지고, 가루 서말 속에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난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내일과 모레가 다르며 자꾸만 겨자씨는 커져 간다. 가루 속의 누룩은 가루 서말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결국 일정한 시간이 되면 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가루 서말은 전부 부풀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도 어느 시간이 되면 시간을 따라 성장하고 확대되어 가는데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되어진다.

겨자씨가 큰 나무로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외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말한다. 누룩이 가루 서말을 부풀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내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작고 작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주므로 영향력이 커지고 작은 것이 전체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서 겨자씨와 누룩은 누구일까? 하나님 나라의 외적 성장과 내적 확장을 나타내는 겨자씨와 누룩은 복음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복음이 유대 땅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복음이지만 겨자씨가 자라듯, 누룩이 부풀게 하듯 예수의 복음, 하나님 나라는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12제자로, 120문도로, 3000명의 제자로, 5천명으로, 유다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로마 제국으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흘러가고 제 3세계인 아프리카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무명의 사람들,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 가난뱅이, 어둠 속에 있었던 사람들, 그들 속에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 하나님 나라의 누룩이 들어올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던져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성장하고 확대되었다. 이렇게 되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① 생명성 때문이다.

겨자씨와 누룩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힘이란 그 무엇도 내리누를 수 없다. 생명은 솟아오른다. 무거운 흙도 뚫고 올라온다. 바위라도 그 틈 사이로 뚫고 올라온다. 생명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복음이란 죽은 것이 아니다. 복음이란 부활을 거짓으로 쌓아놓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부활 생명, 참 생명으로 꿈틀거리는 것이 복음이기에 성장해 가는 것이다.

② 변화성 때문이다.

누룩의 발효하는 힘, 그 발효의 힘은 밀가루의 성질을 바꿔놓는다. 아무리 변화되지 않으려 해도 누룩의 변화의 힘은 가루 서말을 지배한다. 질긴 것을 부드럽게, 맛없는 것을 맛있게, 작은 양을 더 크게 되도록 변화시킨다. 복음의 힘은 변화시키는데 있다. 불신자 가정에 들어오면 변화된다. 술꾼의 가정에 들어오면 변화된다. 변질이 아니고 더 나은 변화다.

③ 진행성 때문이다.

겨자씨와 누룩은 소리내지 않고 진행한다. 사실 복음의 진행성은 중단되지 않는다. 예수의 복음이 닿는 곳마다 성장과 확대의 진행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된 나라요, 현재 진행 중인 도중의 나라요, 곧 완성을 향해 가는 아직의 나라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서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겨자씨와 누룩의 이야기로 보면 밭과 가루 서말이다. 밭과 가루 서말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자리라면 밭과 가루 서말은 무엇인가? 밭은 마음 밭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장소적 개념이라기보다 존재론적인 인간, 그 인간의 마음이 바로 겨자씨가 심겨지는 밭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란 내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고 진행되는 것인데 내가 밭이다. 이것을 알면 내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가루 서말은 무엇인가? 가루 서말은 모든 인류다. 마음 밭을 지닌 모든 인류가 가루 서말이다. R. Trench는 「우리 주님의 비유에 대한 노트」 에서 가루 서말을 가리켜 몸, 마음, 영혼을 의미하고 또 3색 인종(흑인, 백인, 황색인)의 인류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 나라는 내 심령에 이루어지고 온 세계에 사는 인종들, 사람들에게 퍼져가고 확대되어야 하는 나라다.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이 그 심정에 임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한다는 뜻이다. 처음에 복음을 받아드릴 때 참 미미하고 보잘 것 없지만 이젠 하나님의 복음으로 지배받고 부활의 생명으로 살고 있음을 고백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가루 서말이고 내 가족이 가루 서말이고 내 교회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가루 서말이다. 내 마음이 씨를 기다리는 밭이다. 그러므로 겨자씨 같은 복음, 누룩과도 같은 복음, 복음이 떨어지고 들려오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확대, 성장되는 것이다. 이것을 두려워하는 이가 있다. 바로 악마들이다. 복음의 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박해한다. 허나 씨의 힘, 누룩의 힘은 계속 퍼져나간다.


3. 하나님 나라는 모두를 유익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함과 같이 너무도 좋은 것이다. 왜 좋은가? 성숙에 이르기 때문이다. 모두를 유익하게 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겨자씨는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고 하였다.(마13:32)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 겨자씨인데 자라서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된다. 나무가 되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을 들인다. 새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안식의 자리라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공중의 새들을 안식하게 한다. 그리고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일이 끝난 누룩은 가루 서말의 떡을 맛있게 한다. 맛의 변화가 일어난 가루 서말은 어디에서든지 찾는 양식이 된다. 

하나님 나라는 나의 성장이고 나의 성숙이고 나의 변화다. 그러나 내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유익을 얻고 안식과 쉼을 얻으며 뜻밖의 누림을 만인들이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지닌 교회는 유익하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유익하다.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진 밭과 가루 서말이 되어 남을 유익하게, 나라와 지역을 유익하게, 가정과 학교를 유익하게 할 만큼 먼저 내적으로, 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복음 운동을 강력하게 일으켜야 한다. 씨가 나무가 되고 누룩이 가루를 다 부풀리는 그 긴 시간을 인내로 기다리면서 복음 운동을 일으켜 온 세계 열방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게 하자. 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도를 살해하는 그런 열방에도 복음의 겨자씨와 복음의 누룩이 들어가도록 하자. 그것이 선교요, 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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