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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흉년이 닥쳤을 때 (룻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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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흉년이 닥쳤을 때 (룻 1:1-5)

성경에 나타난 위인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사람들이 혹독한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잘아는 요셉도 혹독한 고난을 극복했던 사람입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들어 쓰시 것입니다. 

또 한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시편에 보면 그가 겪었던 고난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려서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깁니다. 노년에는 그의 아들 압살놈에게 반역을 당하여 쫓겨 다니며 고난을 겪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역대왕들 중에 다윗처럼 고난을 많이 당한 왕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고백한 시편을 보면 그의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119:71절을 보세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고난당할 때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때문에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배우고 의지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오늘 이시대를 사는 사람 쳐놓고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크든 작든 다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 고난이 때로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도 고난이 닥쳐서 고난을 피하기 위해 고향땅을 떠났던 한 가정을 보게 됩니다. 그는 베들레헴이란 동네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나오미’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낳고 오붓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멜렉은 결단을 합니다. 온가족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에서 살기가 힘들어지자 그런 엄청난 모험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엘리멜렉의 가정을 통해 중요한 몇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흉년을 닥칩니다. 그러면 그때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엘리멜렉의 가정을 통해 몇 가지를 살펴보며 은혜받기를 축원합니다.  
이 가정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이 가정은 흉년이 닥쳤을 때 어찌했나요? 


1. 중요한 문제를 너무 성급히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가정이 베들레헴을 포기하고 모압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뭘까요? 

여러 가지가 있었겠으나 가장 결정적 문제점은 흉년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성급하게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흉년이 닥치니까 우리 가정이 여기서 살다가는 망하겠다. 내가 가진 재산을 다 날릴지도 모르겠다는 는 두려움이 찾아 온 것입니다.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가진 재산이 있었습니다. 엘레멜렉의 가족이 모압으로 이사 갈 때 그들은 죽을 만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룻1:21절에 보니 나오미가 고백합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라고 했습니다. 

많은 재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가정이 모압으로 이사를 갈 때는 빈손으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닥쳤다고 모압으로 피신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는 것입니다. 흉년이 닥쳤어도 좀 더 버텨보고 기다려 보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눈앞에 전재되는 환경만 보고 너무 성급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예상치 못한 고난이 닥치고 흉년이 찾아옵니다. 어떤 흉년인가요? 건강의 흉년이 찾아옵니다. 사업의 흉년이 찾아옵니다. 자녀들의 흉년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믿음의 사람이라면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만 보고 성급하게 결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만 보면 이러다 죽겠구나 망하겠구나 큰일 나겠구나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우리,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고난이 찾아오고 예상치 못한 어려운 일이 닥쳤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먼저 기도해 봐야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만 합니다. 고난이 닥치는 것은 우리가 망하게 하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고난당했다고 다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그 고난이 우리에게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좀 여유 있게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베들레헴에 닥친 흉년이 심각한 흉년이었다면 왜 다른 사람들은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에는 나오미 가족만 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엘리멜렉 가족은 너무도 성급히 고향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모압 땅은 가서는 안 되는 땅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갈 곳이 있고 가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모압 땅은 안 되나요? 그 땅은 이방인들이 거하는 땅입니다. 

그 땅은 모압 족속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 땅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성에서 피신해서 딸들과 관계해서 낳은 아들 모압이라는 사람의 후손들이 사는 땅입니다. 성경은 그 땅에 대해 평가하기를 그 땅은 ‘교만의 땅’이며 ‘멸망의 땅’이라 했습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이었던 땅입니다.

그러기에 그들과는 상종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흉년이 닥쳤다고 그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성급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정하 여러분도 여러 종류의 흉년이 닥칠 수 있는데 그때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며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거나 성급하게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흉년이 닥쳤을 때 어찌했나요?


2. 약속의 땅을 너무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멜렉 부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온 가정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은혜의 땅이고 약속의 땅입니다. ‘베들레헴’이란 말은 “떡집” “빵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생명의 떡집이요. 은혜의 떡집이요. 말씀의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그 땅은 축복의 땅이요 은혜의 땅입니다. 그런데 흉년이 닥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성급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베들레헴 같은 땅이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입니다. 그곳은 우리의 영의 양식이 있는 떡집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 맘에 들지 않고 자기 기분에 들지 않으면 쉽게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가 많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교회를 중심으로 700미터 반경으로 한 바퀴 빙 돌려서 세어 보니 교회가 약 40개가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은 복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너무 많다 보니 교회의 가치의 희소성이 없습니다. 너무 많다보니 여기만 교회냐 하고 떠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정해주신 베들레헴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쉽게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엘리멜렉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난 이유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을 쉽게 떠나는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1) 먹고 살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세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훙년이 오면 뭐가 제일 힘드나요? 먹고 마실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그런 일에 지나치게 염려하여 흉년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멜렉은 가족은 신앙에 대한 걱정보다는 육신적인 문제에 대하여 더 걱정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마치 팥죽 한 그릇 때문에 귀한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와 같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쉽게 그렇게 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약속의 땅을 버리고 모압 땅으로 가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먹고 살기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눈앞에 작은 이익을 움켜잡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도 쉽게 포기하고 세상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는 것이죠? 
왜 주일에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것이죠?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입니다. 

결혼식에 참여치 안하면 친척에게 욕을 먹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어서... 합니다. 

주일에 친구들과 등산을 안가면 따를 당할 것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에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멜렉이 흉년을 피해 좀 더 잘 살기위해 베들레헴을 포기한 것과 다른바가 없는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약속의 땅을 포기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사단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세상이 바쁘니 어쩔수 없어... 하며 유혹합니다.  

사단은 모압과 같은 세상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조금만 벗어나면 재미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세상 것은 잎만 무성한 나무일뿐입니다. 실제로는 열매는 없는 것입니다. 
 

2) 흉년을 극복할 만한 신앙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에게 나름대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과 시련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없으면 문제입니다. 눈앞에 흉년이 닥쳤으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흉년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엘리멜렉 부부는 그 흉년을 너무 두려워해서 싸워보지도 않고 베들레헴을 포기하고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흉년이 문제가 아니고 믿음이 없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지요? 물이 깊어서 죽나요? 아닙니다. 

수영을 할 줄 몰라서 죽는 것입니다. 수영을 할 줄 알면 물깊이가 10미터든 100미터든 상관이 없습니다. 수영을 못하면 2미터도 안되는 곳에서 죽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닥치는 흉년 때문에 우리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흉년을 이겨낼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평상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약속의 땅을 포기하고 모압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땅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다가 흉년이 닥치자 주저 없이 모압 땅으로 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우리의 영적 베들레헴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몸인 교회는 영적 베들레헴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떠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만약에 엘리멜렉이나 나오미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모압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여보 우리 모압으로 갑시다 했을 때 “여보! 우리 그곳으로 가면 하나님이 싫어하셔요. 그러니 가면 안 돼요, 좀 참고 기다려 봅시다” 했다면 그들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지워진 십자가가 무겁고 힘들다고 그래서 견디기 어렵다고 모압 땅으로 피하려 하진 않나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흉년은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흉년이 닥치거든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내가 어찌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다 응답하십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은 이미 말씀으로 응답해 놓으셨습니다. 

고전10:13절을 아시지요? 다 같이 읽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할 시험을 주십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실 때는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신앙 신앙은 고난 앞에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신앙은 고난과 역경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담대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환경을 이기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상을 더 사랑했던 것이 문제입니다. 

왜 엘레멜렉의 집이 모압으로 피신했나요? 

가난했나요? 먹고 살기 힘들었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왜죠? 세상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자기 재산, 자기 생명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흉년이 닥치면 자기 재산이 다 날라간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피신한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늘 양자택일을 해야 할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이 닥치면 과거로 돌아가려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홍해 앞에 도착했을 때 앞에는 홍해 뒤에는 군사들이 쫓아 옵니다. 그러니 모세를 향해 원망 불평합니다. 

홍해를 건너서도 물이 없다고 원망불평합니다. 고기를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불평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을 종에서 구해준 하나님의 은혜는 다 잊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낫다고 울부짖습니다. 

결국 그런 불 신앙적 선택이 그들의 길을 망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만 20세 미만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만 가나안땅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다 못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가게 하고 나머지는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는 그 후손들만 들어가게 합니다. 왜죠? 그들의 말대로 해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민14:28절을 보세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따라서 하세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우리 입술의 말대로 그대로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니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은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요. “아이고 미치겠다” 하면 미치고, “아이고 죽겠다”하면 죽게 됩니다. 결국 약속의 땅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더 사랑합니까? 세상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3. 약속의 땅을 포기한 자들의 결과는 망하는 것입니다. 

엘리멜렉 가장의 모압 땅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아내와 두 아들 그야말로 오붓하게 잘 살았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잘살기 위해 모압 땅에 갔으나 결과는 완전 패가망신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세요.  

1) 가장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엘리멜렉은 흉년이 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에 가면 잘 먹고 잘 살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 살던 그에게는 그런 꿈은 사라지고 그 땅에 거한지 얼마 못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3절을 보세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질병으로 죽었는지 사고로 죽었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든 죽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게 무슨 낭패입니까?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분명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고 찾아간 그곳에서 죽다니요. 그러니 인생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 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약4:14절에 보세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렇습니다. 내일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라하면 다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교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여기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유혹에 한눈을 팔지 마셔야 합니다.  

2) 두 아들이 불신 결혼을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백성들이 믿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불신 결혼을 경계하십니다. 노아 때를 보세요. 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믿는 백성이 불신자들과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이 죽자 두 아들을 결혼을 시키는데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을 했습니다. 4절을 보세요.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결국 이일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이런 일이 10년 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결혼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돌아가기 어려우면 고향에서 가서 아내를 구하여 데리고 올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설사 이방 여인이라도 개종시켜서 결혼을 했더라면 되었을 터인데 결혼부터 시켰습니다. 결국 그 가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3) 사랑하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세요, 

“그들이 거기 거한지 10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꿈에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그 가정에 닥친 것입니다. 살려고 흉년을 피해 왔는데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것도 큰일이었는데 결혼한 두 아들이 또 죽었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죽음 앞에는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먼저 죽는 것도 아닙니다. 젊다고 오래 산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오미 가족의 처참함을 보세요.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만 남았습니다. 손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살려고 왔는데 쫄딱 망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모압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흉년이 닥쳐도 좀 참고 이겨내야 합니다. 조금 힘들다고 세상으로 떠나면 안 됩니다. 환경이 아무리 악조건이라도 약속의 땅은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흉년이 닥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걷어차고 세상을 향해 내려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모압 땅의 무서움을 모릅니다. 그곳은 죄악이 가득한 것임을 모르고 내려갑니다. 

결국 그곳에 내려가는 목적은 살기 위함이었는데 결과는 죽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영적인 약속의 땅인 교회를 등지시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교회를 통해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등지고 나가는 것은 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은혜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흉년을 이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견디어내는 것은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라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상치 못하게 닥치는 흉년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잠시 편하게 살기 위해 모압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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