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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아멘하여 (고후 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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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멘하여 (고후 1:15-22)


예전에 한옥을 지을 때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습니다. 주춧돌을 묻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기에 주춧돌이 판판하게 다듬어졌을 것이라고 대개 생각하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다듬지 않아서 돌의 윗면이 울퉁불퉁합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주춧돌의 울퉁불퉁한 면에 맞춰 기둥의 밑동을 파냅니다. 물론 목수 중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도편수가 맡아서 합니다. 도편수가 울퉁불퉁한 주춧돌에 잘 맞도록 기둥의 밑동을 파내는 것을 그랭이질이라 합니다. 돌과 나무, 성질이 전혀 다른 두 물체를 접착제 없이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때 무엇을 중심으로 그랭이질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춧돌을 깎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에 맞추어야 합니다. 주춧돌을 중심으로 집을 지어가는 그 정신이 아름답고 귀합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그랭이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춧돌로 예수를 삼고 그 위에 인생의 집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둥을 편하게 세우기 위해 주춧돌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춧돌이신 예수를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고르고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으로 한 그랭이질의 속성이 바로 믿음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아비의 어미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용납하고, 잘못된 성찬 예식이 거행되며, 부활에 대한 신앙이 뿌리채 흔들리는 문제들을 바로잡기위해 사도바울이 눈물로 편지를 보냈던 교회였습니다. 특히 본문을 통하여 바울은 자신의 대적자들과 성도들에게 아멘이 있어야 분쟁을 해결할 수 있으며, 모든 범죄와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까닭은 아멘이 단순히 입술 로만의 고백이 아니라 인격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동사 ‘아만’에서 온 것으로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 입니다. 아멘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구약에서 아멘은 예배시 말씀과 기도와 찬송에 동의하는 태도로, 복종을 서약할 때에 사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멘은 하나님께 대한 화답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아멘이 살아있는 성도는 신앙이 살아있는 증거이며 아멘이 사라지는 신앙은 점차 죽어가는 신앙입니다. 아멘이 떠나면 은혜도 떠납니다. 그러나 아멘이 확실하면 신앙도 확실해집니다. 아멘이 커지면 능력도 커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멘하여’ 무엇을 이루게 됩니까?
 
첫째로 믿음을 보이노라

미국 텍사스에 달라스 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가 있습니다. 현재는 명문이지만 초창기는 시련이 많아 폐교의 위기에 몰릴 때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위기가 봉착했을 때 설립자 루이스 쉐퍼(Lewis S. Chafer)박사가 동역자들과 함께 학장실 문을 잠그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쉐퍼 박사 옆에 있던 아이언사이드(Harry A. Ironside) 목사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모든 산과 언덕, 가축들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가 아닙니까? 가축 중 일부를 팔아 돈 좀 보내주세요. 그러면 빚을 청산하고 학생들을 계속 가르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 순간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람이 서무실로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목축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 마차 두 대에 가축을 실어다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투자할 계획이었는데, 왠지 보람 있는 데 사용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 학교 생각이 나서 기부하러 왔습니다. 어서 이 수표를 받으세요!” 직원은 수표를 쥔 채 학장실로 달려 왔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기도가 끝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표를 받아든 쉐퍼 박사는 아이언 사이드 목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방금 가축을 팔아서 돈을 보내셨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본문 19절입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여기의 ‘예’ 라고 대답하는 것은 확고한 믿음의 고백을 의미합니다. 믿음을 고백하려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약속을 맺으셨고 그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성취시켜 주셨습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은 아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에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지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며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고 안 되는 것을 될 줄로 확신하기에 ‘아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멘을 요구하십니다. 아멘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요,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순종을 행하노라

아프리카로 파송된 선교사 헨리 리차드(Henry Richard)는 사역의 하나로 원주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누가복음을 택하여 매일 일정한 분량씩 원주민의 말로 번역하여 읽어주고 그 뜻을 풀이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복음 6장 30절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에 이르러 선교사 생각에 이 말씀을 가르쳤다가는 원주민들이 자기 것을 모두 달라고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선교사는 슬쩍 그 부분을 뛰어 넘고 말았습니다. 이 후 며칠 동안 선교사는 자기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데 대한 죄책감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6장 30절 말씀으로 돌아와 그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 선교사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원주민들이 그를 괴롭힐 요량으로 선교사의 집으로 물려와 모든 것을 달라 하였습니다. 이에 선교사는 흔쾌히 생활용품과 옷가지 등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물건을 가져간 원주민들은 그 날 저녁, 되돌아와 물건을 모두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야 말로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따라 가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것을 아끼지 않은 결과, 원주민들 마음에 감동을 주었을 뿐 아니라 뭇 영혼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본문 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되니” 이는 아멘으로 순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통해 전능하심과 아울러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약속을 변경하신다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며 순종에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이행하십니다. 따라서 아멘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멘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손해냐 이익이냐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까닭은 하나님의 뜻 안에 보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아멘”으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칠지라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리라는 약속 때문에 아들을 살려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런즉 우리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아멘으로 순종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셋째로 영광을 돌리노라 

데이빗 링(David Ring)은 뇌성마비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증장애자입니다.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은 훌륭한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링은 자신의 저서 “내 모습 이대로(Just As I Am)”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가 쓰레기 더미 속으로 들어갑니까? 우리의 눈을 처지나 생활에 두기 때문입니다. 눈을 환경에서 돌려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환경만 바라보고 살 때 쓰레기 더미로 내려갑니다. 그러기에 상황을 장애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뇌성마비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축복이 됩니다. 더 이상 나는 무능력한 장애가 아닙니다. 오히려 뇌성마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아직도 절뚝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소리도 어눌합니다. 그렇지만 기쁨이 영혼에 넘쳐 납니다. 예수께서 나를 만지시고 온전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버지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없습니다. 심지어 건강한 몸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당신들에게도 넘쳐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데이빗 링은 비통해 할 수밖에 없는 환경 가운데서도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의 인생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을 지라도, 뇌성마비가 더 이상 그를 가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독하고 쓸쓸하게 보일 때가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도리어 영광을 가로막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까? 

본문 20절입니다.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 목적이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아멘하고, 입술로 아멘하고, 행동으로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하심으로 이루신 구원의 은혜가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내 소유가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로 쓰임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황수관(黃樹寬) 박사는 아멘을 한 번 할 때마다 몸속에서 이로운 약이 분비된다고 말합니다. 아멘을 해야 할 순간에 아멘이 나오면 하나님을 향한 정상적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는 증표라는 것입니다. 아멘은 성령이 주시는 마음의 감동이 있어야 나옵니다. 마음에 욕심과 세상 잡념이 자리 잡고 있으면 아멘이 나오지 않습니다. 본래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약보다 신체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분비되는 약이 특효약인데 아멘 할 때 분비되는 약을 ‘아멘약’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멘약을 항상 복용해야 합니다. 아멘 약은 모든 질병을 미연에 방지하는 예방약이기도 합니다. 

아멘이라는 별명을 지닌 할머니가 계셨는데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아멘’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벙어리처럼 앉아 있던 교인들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며느리가 말합니다. “어머님, 체통을 지키시고 아멘을 작게 좀 하세요” 그때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으려 해도 아멘이 먼저 나가니 어떻게 막을 수 있다냐?”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아멘에 인색하십니까? 체면을 지키느라 아멘을 참고 있습니까? 아멘으로 화답하십시오. 의심이 올 때마다 ‘아멘’ 하고 외치십시오. 유혹이 올 때마다 ‘아멘’을 외치십시오. 절망이 닥쳐올 때마다 ‘아멘’ 하고 외치십시오. 말씀을 받을 때마다 ‘아멘’ 으로 외치십시오. 아멘은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은 기적을 불러옵니다. 부디 아멘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아멘하여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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