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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참된 터 (고전 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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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참된 터 (고전 3:10-15)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연일 계속되는 폭염의 기세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울산시 송정동에서는 82년 만에 기온이 40.3도까지 올라갔다고 하며, 이러한 살인더위로 곳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온이 불과 40도만 올라가도 이렇듯 사람들이 살기에 힘이 드는데,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지 않습니까? 불볕더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바다와 계곡을 찾아가는 바캉스 계절에, 오늘도 주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생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3:6-9절에서, 모든 전도자들을 농부로 비유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사도 바울 자신은 씨를 심은 자로, 목회자는 싹이 튼 식물에 물을 주는 자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라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은 씨도, 물도, 그리고 전도자들이 헌신 봉사한 힘까지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무엇도 자랑할 수 없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의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정한 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의 교계 현실을 보면, 가끔 신문 지상에 교회 매매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한 사도 바울은, 이제 10-15절에서 사역자들을 건축자로 비유합니다. 10절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자처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를 교회의 기초로, 바울 자신을 기초 공사자로, 다른 지도자들은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우는 건축자로 묘사하였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면, 반드시 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터를 잘 잡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풍수지리설이 밝은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외국의 선교사들보다 훨씬 안목이 좁고 어두운 것 같습니다. 외국인들이 교회나 성당, 혹은 선교사 사택의 터를 잡아 놓은 걸 보면, 감탄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시야가 단견이라면 그들의 시야는 확실히 멀리 내어다 보는 안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터, 좋은 장소는 교회 부흥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목사의 메시지만 좋으면 교회가 다 부흥되는 것이지 하고 부정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나 좋은 장소에 자리 잡고, 그 목회자에게 영력이 있으면, 더 큰 부흥과 성장이 있을 것은 자명합니다. 10년 20년 침체되어 있던 교회라도, 도시가 개발되면서 주택이 들어서고,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하면, 수년 내에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우리 송정 교회가 이만한 성장을 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날 교회당의 터를 송정리의 중심지에 잡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현재는 더욱 큰 부흥을 꿈꾸며 이곳으로 옮겨왔지만, 어떻든 교회당의 터를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교회의 터는, 결코 공간적이고 장소적인 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니 장소적인 터보다 훨씬 더 중요한 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의미에서의 교회의 터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가는 데마다 교회의 터를 잡고 혹은 닦아 두었는데, 저 숙련되고 위대한 건축자 사도 바울이 말하는 교회의 터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이곳저곳 열심히 전도하여 고린도에, 혹은 에베소에, 데살로니가에, 혹은 빌립보에 수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처럼 많은 교회들을 세웠으나, 그가 교회를 세우는데 갈고 닦은 터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습니다. 11절에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라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기본 사상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하사람 중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으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 고백에 근거하여 세워진, 신앙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자신이 교회의 머릿돌이심을 주장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디에 가든지 똑같은 터를 닦았습니다. 그 터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구주로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나, 철학이나,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엡 2:20절 이하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신령한 반석이시고,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시며, 그의 말씀이 반석이 되시고, 그를 믿는 신앙이 반석이 되시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과거 죄의 용서를 얻는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함을 믿게 되고, 자신이 하나님과 원수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됨을 확신하게 됩니다.

2)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현재를 살아갈 진정한 힘을 얻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생의 난관에 대처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이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의 길을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의 싸움터에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결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세계, 만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 생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그러한 세계에서 살다가, 언젠가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죽음은 곧 종말이 아니라, 보다 큰 영광을 위한 하나의 서곡이요, 하늘나라 영생복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소망 속에서 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터로 삼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러한 생을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이러한 축복을 누리도록,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사명임을 한 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의 기초가 되십니다.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은 것만이 무너지지 아니하며, 그 외의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떠한 터도, 곧 사람에 의해 닦여진 사상이나 업적에 의한 그 어떤 것들도, 참다운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로마 제국을 보십시오. 얼마나 위대한 나라였습니까?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늑대에게 길러진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티베르 강변의 작은 언덕에서 시작된 이 조그만 나라는, 이후 지중해 전 지역을 정복하며 그야말로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제국이 되었습니다. “지중해는 로마 제국의 호수다.”라거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하는 말들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세력과 문명을 자랑하던 로마제국도, 결국 때가 되자 게르만 민족의 이동과 함께 허망하게 붕괴되어, 이제는 그 유물만이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련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소련은 20세기 초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레닌이 제정 러시아를 쓰러뜨리고 건설한 공산국가입니다. 그리고 이후 한 때는 세계 최초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국과 경쟁하며 세계를 양분하여 지배하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때가 되자 허망하게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련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세웠던 레닌의 동상은 이제 거의 모두 철거되어, 공원 한구석에 거적으로 덮여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간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은 제아무리 강대해 보이는 나라라도,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한 나라 뿐만 아니라, 각 사람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기초로 삼지 않는 사람들 역시, 제아무리 화려하게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때가 되면 무너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인생의 기초로 삼지 않은 자들은, 장차 마지막 심판 날에 자신이 세운 모든 공적이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며, 그 자신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주목하며, 과연 우리의 삶이 어디에 기초해 있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그 어떤 다른 기초에 두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두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사, 우리를 요동치 않게 하실 영원한 반석이 되심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와 인생의 터라 믿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혹 집을 그 위에 잘못 짓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12-13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열거된 여섯 가지 건축 자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금, 은, 보석이고, 둘째는 나무, 풀, 짚입니다. 루터나 칼빈은 금, 은, 보석은 영속적이고 순결한 하나님의 진리를 의미하고, 나무, 풀, 짚은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거짓된 교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를 세우면서도, 자신의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나무와 풀과 짚 같은 보잘것없는 사상을 섞어 잘못된 건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재료로 지었던지, 각각 공적이 나타날 때가 있는데, 곧 주님의 날에 밝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으로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마지막 때에 상급과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건축자로서 어떻게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지를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깨닫게 되는 것은, 구원은 믿음과 은혜로 받지만, 상급은 각자의 삶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종교 개혁이후,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모토 아래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적 진리를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성경이 일관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해 다소 관심을 소홀히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믿어 구원만 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믿음 이후의 생활과 영적 성숙에 대해서는, 다소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같은 믿음의 터 위에 있어도, 신앙의 집을 짓는 재료는 다를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금, 은, 보석과 같이 귀한 재료로 짓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나무, 풀, 짚과 같은 값싼 재료로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재료로 신앙의 집을 짓느냐에 따라, 구원 이후의 상급에는 천양지차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재료로 집을 짓는가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인 각 개인의 결단과 의지에 달려있으며, 따라서 구원 이후에 어떠한 상급을 받게 될지도,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단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나는 어떠한 재료로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너무나 풀과 짚과 같은 값싸고 보잘것없는 재료로 집을 지을 것이 아니라,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값지고 견고한 재료로 신앙의 집을 지음으로써, 마지막 날 모든 불 시험을 이기고, 많은 상급과 함께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생명과 영광의 부활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면, 그 집을 세울 터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교회의 참된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송정 중앙 교회는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인생과 가정도,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 그들의 가정을 돈 위에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돈은 우리의 인생 건축에 있어서 모래와 같은 것이지, 결코 반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해서보다 많은 돈 때문에 오히려 방탕하고 범죄하고 가정이 파탄에 빠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아서, 재물은 가정과 인생의 기초로서 반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단 번에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가정을, 부부간의 애정 위에 세우려고 합니다. 한 가정을 이룩하는데 부부간의 사랑과 애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하는 것, 애정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결혼 3년 만에 이혼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한 때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렸던 톱 탤런트 최진실과 야구 선수 조성민 부부는, 별거와 이혼을 하고 가정이 파탄에 이르더니, 결국 한 편의 자살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우리가 다 목격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가정을 건강 위에 세우려고 합니다. 이 시대에 건강은 모든 사람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믿을 만한 반석이 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 우리의 건강이 망가질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외에 권력, 인기, 사업, 직장, 그 무엇도 인생의 반석이 될 수 없고, 가정의 견고한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철학도 흔들리는 기초이며, 과학도 불완전한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위의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에는, 우리의 인생을 마음 놓고 세울만한 반석이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 각자가 지은 집의 공력을 따라 영영 상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집은 어디에 지어야 할 것입니까? 어떤 부인이 어느 봄 날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는데, 어미 새 한 마리가 땅위에서 높지 않은 나무 위에 둥우리를 짓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광경을 보고 “아 가엾은 친구, 너무 집을 낮은 곳에 짖는군!” 이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서, 그 둥우리를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어미 새는 다시 돌아와서 낮은 장소에 둥우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미 새가 미친 듯 울어대기에, 그 부인은 창가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마리 커다란 뱀이 그 둥우리를 발견하고서, 새끼들을 모두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어매 새는 너무 낮은 곳에 집을 지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의 가정을, 좀 더 높은 곳 위에 지으십시오.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의 가정을 교회의 참된 터인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감히 넘겨다보고 해칠 수 없는 가정, 천만 풍파가 밀어닥쳐도 무너지지 아니하는 인생,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주실 때 지혜로운 인생 건축자로 인정받아, 영원한 하늘의 상급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교회와 인생의 참된 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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