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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 (고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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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 (고전 3:16-17)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외경인 토비트 2장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토비트라는 사람이 날씨가 너무 더워서 목욕을 하고, 얼굴을 덮지 않고 담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새들이 담 위로 날아가다가 뜨거운 똥을 토비트의 눈에 누고 가버려서, 토비트가 양쪽 눈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토비트는 그런 것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을 때 이방 민족의 음식을 먹었지만, 그는 단호하게 그런 음식을 거절했던 사람, 즉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절개를 지키고, 자기의 몸을 소중하게 간직했던 경건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구약성경에도 보면 이와 비슷한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왕의 진미대신 채소만 먹고서도, 그 나라의 고기를 먹는 소년들보다 더 건강한 몸을 유지했던 기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간직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긴 사람이란,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목욕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죄와 더러운 것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나라를 위해 절개를 지켰던 정몽주나, 한 임금을 섬기기 위해 충절을 지켰던 사육신과 같은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열녀나 충신을 칭송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해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부제목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기초라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일관된 사상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하사람 중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으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나, 철학이나,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습니다. 철학도 흔들리는 기초이며, 과학도 불완전한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위의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에는, 우리의 인생을 마음 놓고 세울만한 반석이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기초가 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의 기초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떠한 터도, 곧 사람에 의해 닦여진 사상이나 업적에 의한 그 어떤 것들도, 참다운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소련은 20세기 초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레닌이 제정 러시아를 쓰러뜨리고 건설한 공산국가라고 했지요? 한 때는 세계 최초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국과 경쟁하며 세계를 양분하여 지배하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자 허망하게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세웠던 레닌의 동상은 이제 거의 모두 철거되어, 공원 한구석에 거적으로 덮여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간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은 제아무리 강대해 보이는 나라라도,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한 나라 뿐만 아니라, 각 사람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기초로 삼지 않는 사람들 역시, 제아무리 화려하게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때가 되면 무너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인생의 기초로 삼지 않은 자들은, 장차 마지막 심판 날에 자신이 세운 모든 공적이 무너지는 것을 볼 것이며, 그 자신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그 어떤 다른 기초에 두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사, 우리를 요동치 않게 하실 영원한 반석이 되심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리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그들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만 세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언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요, 그들에 대한 정면 도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은 오로지 예루살렘에 있는 돌로 지은 성전 한 곳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은 자신들조차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거룩한 곳이어서, 이방인들은 일정한 한계를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렇게 제한적으로만 성전 접근을 허락하던 이방인들에게, 성전의 출입을 허락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들이 성전 그 자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전파하고 다니는 사도 바울을 가리켜, 절대로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흥분하며 티끌을 날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무슨 근거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도 안에 계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 순간 성령께서 각 성도의 심령에 들어와 내주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누구십니까? 삼위 하나님 가운데 제 3위시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시는 성도 역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즉 구약 시대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신 것과 같이,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각 성도 안에 내주하심으로, 각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각 성도들의 집합체인 교회 역시, 하나님의 성전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성도나 교회를 구약의 성전에 비유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성도나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에 비유한 것은, 교인들이 나뉘어 분쟁하는 것이 교회를 부패시키고 파괴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중대한 죄악임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은 사형에 처하거나, 하나님의 선민 공동체에서 추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모독하고 도전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하거나 선민 공동체에서 추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징벌하신 사례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율법에 지시되지 않은 불로 분향함으로써, 성소를 더럽혔던 나납과 아비후를 즉시 불로 심판하셨으며,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스스로 하나님께 제사했던 사울 왕과 웃시야 왕을 심판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돌로 지어진 성전을 더럽히는 자에게조차, 엄중한 형벌을 내리도록 규정하신 하나님께서, 영적 성전인 교회 공동체를 더럽히는 자들을 멸하실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므로, 분쟁을 그치고 교회를 거룩하게 유지하라는 것이 곧 사도 바울의 교훈인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먼저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더럽히는 일에 대한 경고가 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 역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더럽히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파당을 만들어 분쟁함으로써,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간혹 자기의 이기적인 탐심을 위해, 교회를 나누고 더럽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결단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도 자신을 더럽히는 일에 대한 경고가 됩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각자는 스스로 죄와 불의를 멀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깨끗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만일 성도가 자기 몸을 죄 가운데 두며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불의를 행하면,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 중 첫 번째는 ‘순결한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것은 먼저 우리 교회가 신학적으로 영적으로 너무도 혼란한 이 시대에, 순수 복음 신앙을 간직한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자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훨씬 능가하는 성적으로 타락한 이 시대에, 육체적으로도 순결한 신앙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정한 표어입니다. 

벌써 수십 년 전에 현시대를 가리켜 3S 시대라고 했습니다. Science, Sports, Sex, 이 세 가지는 확실히 현대인의 우상이라 할 만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문화와 성을 찬미하는, 소위 성의 혁명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현대의 가장 강력한 종교는 성의 종교라고도 했습니다. 이 성의 종교는 가장 많은 숫자의 신도들을 거느리고, 우리의 세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전 미국의 ‘패인’ 제단에서, 유명한 교육자들을 통하여 영화를 연구케 한 일이 있습니다. 

그들은 1500편의 영화를 검열한 후, 대부분의 영화 주제가 성문제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미 우리의 청소년들도 이와 같은 음란한 영상물을 보며 자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잡지와 T. V의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화면, 컴퓨터의 사이버 포르노 등, 도처에서 성문화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엘톤 트루불러드(Elton Trueblood)는 말하기를 “문명의 부패는 잘못된 성 모럴의 미화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 시대 한 문화 한 사회가 몰락하기 이전에, 그 사회가 성의 문제를 어떻게 취급했는가를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되고 부패한 성모랄 성도덕을,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그 사회는 언제나 멸망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음행이라는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폼페이의 최후와 로마의 멸망은, 음란과 간음의 죄가 가져온 무서운 최후였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이러한 로마의 멸망사를 취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는 희랍을 정복했지만, 희랍의 다신 문화와 오염된 섹스 문화는 마침내 로마를 정복하고 말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로마는 희랍을 정복했지만, 희랍의 썩고 부패한 성문화까지 정복할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이 그들의 속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이 강대국은 부패한 성도덕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부도덕을 정복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공할 성도덕의 타락상을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한 타락성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현상이 성적인 타락입니다. 그런데 현시대의 성적 타락상은, 가히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향해 혼전순결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메시지로 들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여러 해 전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미국의 한 여대생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의 처녀성을 경매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국내에서만도 하루 평균 500개씩의 음란 사이트가 생성되고 있다고 하며, 이 사이트들을 통해 배포되는 국내외 음란 동영상은, 하루에 1,000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온 나라가 음풍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성적 타락은 청소년 문제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T. V 드라마는 불륜을 소재로 하여 안방을 침투하고, 간음을 조장하여 이 사회를 온통 병들게 하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불륜으로 깨어지고,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들의 가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를 훨씬 능가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이러한 세태를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부끄러움을 간직해야 할 처녀들까지도, 야한 모습이나 옷차림을 즐기며 섹시하다면서, 옛날 같으면 입에 올리지도 못할 말을 예사롭게 합니다. 

전국의 모든 경치 좋은 곳에는 러브호텔이 즐비하고, 도시에도 모텔들이 교회당보다 더 많아 보이는 현실인가 하면, 사회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간통죄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여가 합의해서 하는 성행위는 죄가 아니므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폰팅이니 채팅이니 원조 교제니 해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과 가정들이 무너져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마치 나비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훨훨 날아다니고, 새들이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듯이, 이 남편에서 저 남편으로 이 아내에게서 저 아내에게로 옮겨 다닙니다. 

급기야는 ‘스와핑 클럽’이라는 것까지 생겨나서, 회원들은 모임이 있을 때 부부가 꼭 동반해서 가는데, 거기에 가서 남편과 아내를 바꾸어 쾌락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은 이제 갈 데까지 간 것 같습니다. 세상은 온통 타락한 성문화의 범람으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미 인류는 핵전쟁, 자원 고갈, 혹은 공해 같은 문제로 멸망 직전에 있지만, 전술한 바와 같은 타락한 성도덕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렇듯 악한 시대에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실로 소중한 경종을 울려줍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임재해 계시는 성도의 몸은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을 모신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 역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교회를 더럽히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불평으로 오염시키고, 교회를 나누고 분열시키고, 파당을 만들어 분쟁함으로써,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자들이 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다음으로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는 죄 가운데 하나가 곧 간음입니다. 성도덕이 참으로 무섭게 타락한 시대, 성 문화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시대, 예술과 문학이 아무리 성을 예찬하고 미화시킬지라도, 인본주의자들이 아무리 간통죄의 폐지를 주장할지라도, 성경은 분명히 간음은 죄라고 말씀합니다. 이 죄의 대부분이 은밀한 중에 행하여지기 때문에, 혹 사람의 정죄는 받지 않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로 피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간음죄에 대한 성경의 경고를 들어보십시오. 욥 31:11에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고 했고, 잠 6:27-29절에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했으며, 고전 6:9-10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음행하는 자나....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했고, 레 20:10절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간음하는 자들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 살인자들과 함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롬은 말하기를 “순간적인 쾌락을 얻고, 영원한 고통을 대신 얻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송정 중앙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교회와, 우리의 몸을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고 성결하게 간직하는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되어서,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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