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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섣불리 무시할 수 없는 성경의 증언 (출 16: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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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불리 무시할 수 없는 성경의 증언 (출 16:13-31)

아버님은 저에게 군대나 전쟁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낙하산에 대한 것입니다. 공수부대원이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 남이 접어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립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낙하산이 펴지지만, 낙하산을 잘못 접었으면 펴지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낙하산에는 그 낙하산을 접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고, 자기가 매고 내릴 낙하산을 직접 접는 군인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낙하산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러분 중에 낙하산 접는 법을 아는 분 계십니까? 낙하산을 올바로 접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건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매우 전문적인 지식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세월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여전히 더 많이 있습니다. 일평생 배우고 배워도 세상에는 우리가 다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섣불리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낙하산 접는 법, 그건 전문적인 지식인데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수년 전에 어느 주일에 설교를 하다가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의학 상식에 대해서 섣불리 예화로 말을 했는데 예배 후에 어느 성도님이 조용히 다가오시더니 ‘목사님, 아까 설교 중에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아니고 이것입니다.’라고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의학박사이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러나 그건 당연한 지적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섣불리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설교 하는 중에…. 그 이후로 저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했는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신앙에 대해서만큼은 본인이 많이 알고 적게 알고를 떠나서 섣불리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신앙에 대해서만큼은 사람마다 강한 의견을 피력하려고 합니다.

대학교 선교회를 창시하신 故김준곤 목사님이 한번은 어떤 사람과 신앙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데 그 사람이 자신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더랍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김준곤 목사님이 종이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이 동그라미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이 중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작은 부분이 되겠지요? 그럼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이 나머지 부분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합니까?’라고 질문했다고 하는데 당연한 얘기입니다. 

우리가 땅에 있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하늘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이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한 후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여기에 계시건만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성경말씀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당연히 여러분은 성경말씀을 존중하실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내가 갑이고 성경말씀이 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에 갑을논쟁이 많지 않습니까. 제가 며칠 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왜 갑순이와 갑돌이가 맺어지지 못했느냐? 서로 사랑했다는데 왜 갑돌이와 갑순이가 맺어지지 못했을까? 이유가 분명합니다. 둘 다 갑이었기 때문입니다. 둘 다 갑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누군가는 을이 되어야 하는데 둘 다 갑이 되려고 하니까 서로 사랑하지만 하지만 맺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목소리를 높일 부분이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갑이 되고 우리가 을이 돼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내가 갑이고 성경이 을일 때가 많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내가 성경을 읽는 거예요. 내가 성경을 이해해줘야 돼요. 때로는 성경말씀이 할아버지와 같아서 내가 부축해 드려야 되는 거예요. 성경이 좀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내가 들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성경이 어린이 동화와 같아서 곧이들으면 안 되고, 새겨들어야 되고 의미를 내가 찾아줘야 되는, 마치 성경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태도가 내가 갑이 되고 성경이 을이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태도가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생각할수록 사람은 자기가 주도해서 성경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경의 의미를 찾고, 성경이 이 시대 사람에게 의미 있는 문서가 되기 위하여 자기가 뭔가 도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 같은 사람은 성경의 기적,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전부 삭제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을 골라서 편집했는데 그것을 제퍼슨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제퍼슨은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을 사람들의 의구심으로부터 건져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는데 그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성경말씀 스스로 얼마든지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얕보면 안 됩니다. 제퍼슨 같은 사람은 성경을 얕본 것입니다.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가다가 오늘 본문 말씀 같은 구절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만나에 대한 구절인데 만나라는 말은 맛있다는 뜻이 아니고 이게 무엇이냐 라는 히브리어에서 파생한 말입니다. 만나가 처음 땅에 내렸을 때 사람들이 그게 뭔지 몰랐기 때문에 이게 뭐냐 라고 물은 데에서 만나라는 이름이 유래가 됐습니다. 

오늘 본문 31절을 보면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깟씨라 함은 코리앤더로 더 잘 알려진 식물의 일종입니다. 멕시코 음식에 코리앤더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 맛을 맛볼 수 있는데 왜 제가 이 구절을 지목하느냐? 만나에 대한 성경구절이 비유에 불과했다면, 굳이 만나의 맛이 코리앤더와 같았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40년 동안 먹이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하나의 비유적인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영적인 교훈을 주기 위한 신화라고 생각할 때는 없습니까? 만일 만나가 비유에 불과했다면 만나의 맛이 무엇과 같았는지를 말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건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만나의 맛이 무엇과 같았는지를 굳이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영적인 비유가 아니고 역사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만나를 먹어본 사람들이 그 맛이 어떠했는지를 증언했고 그것을 성경이 기록한 한 것입니다. 코리앤더 같았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실제로 코리앤더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만나가 코리앤더였다는 말은 아니에요. 코리앤더 같았다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무엇과 같았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천국의 비밀을 사람이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알고 익숙한 것에 빗대어 그것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천국은 ‘무엇과 같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누룩과 같다, 겨자씨와 같다, ‘같다’와 같은 말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하늘의 비밀을 우리가 알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에 빗대어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구절에서 우리는 성경에 대한 깊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됩니다. 성경은 픽션이 아니고 동화가 아니고 그리고 어떤 영적인 진리를 말하기 위한 비유도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며칠 전이 광복절 아닙니까? 어떤 청년이 ‘흙 한번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춘다 - 광복절 노래입니다 -’ 그 가사를 페이스 북에 올렸더니 친구 한 명이 그 밑에 ‘시 쓰고 있네’ 이렇게 댓글을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글을 올린 친구가 ‘광복절 노래 가사거든!’ 그랬더니 그제서야 그 친구가 ‘앗, 그런 게 있는지 몰랐네. 미안.’ 이 세대의 무식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광복절이 되면 반드시 행사를 하고 그 노래를 불렀는데 요즘은 수능 공부하느라고 광복절이든 삼일절이든 제헌절이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많이 배우는 것 같은데 무식한 세대를 양산하고 있어요. 

과거에 일어난 일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직접 경험해서가 아니고 그것을 그때 목격한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도들의 증언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가 갈라져서 그 가운데 길을 걸어 홍해를 건넌 것을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지만 그때 그것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의 증언을 성경에 기록한 것을 통하여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무얼 먹고 살았느냐? 만나를 내려주셨어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맛이 무엇과 같았는지를 성경이 기록을 했는데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목격하고 증언했을지라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 목격자들은 다 죽어 없어지고 무엇만 남습니까? 기록만이 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후세 사람들이 그 기록을 진지하게 대해주지 않으면 과거에 아무리 놀라운 일이 일어났었을 지라도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이지만 과거에 하나님이 아무리 놀라운 일을 하셨더라도 그것을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증인들의 기록을 남기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 이외에는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같으면 글뿐만이 아니고 동영상을 찍어서 남기겠지만 그러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는 동영상이든 녹음이든 사진이든 글이든 결국은 증거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마찬가지에요. 요즘도 동영상을 보고도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에요. 글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신뢰할만한 증거를 남겨도 그것을 믿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가르쳐야 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광복절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태인들이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만들어서 끊임없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후대에 전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과거에 끔찍한 일이 있었더라도 세월이 지나가고 사람들의 기억이 지워져 버리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존중해서 책장에 꽂아두기는 하지만 정작 그것을 진지하게 읽고 그 말씀이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도록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성경은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제일 안 읽는 책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에게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슨 말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칼 바르트가 찬송가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Yes, Jesus Loves Me, for the Bible Tells Me So -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성경에 써 있지 아니하면 내가 경험을 하던, 감정을 갖든 그것은 근거가 희박한 것입니다. 성경에 써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성경의 기록, 성경의 증언을 우리는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뢰할만한 말씀이에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있느니라’ 할렐루야! (김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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