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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출 15:22-27, 요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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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시키시는 하나님 (출 15:22-27, 요 2:6-11)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중략)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출애굽기 15장 22∼27절, 요한복음 2장 6∼11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들이나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은 어디든 교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광야 생활은 가는 곳마다 참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한 곳이 바로 광야 교회입니다.

1.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한 나뭇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모세의 뒤를 따라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광야에 이르러서 사흘을 걸어가는데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사흘 동안 광야의 햇빛이 내리쬐는 먼지투성이의 길을 아무리 걸어가도 물 한 방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겨우 사흘 만에 물웅덩이 하나를 발견하자 사람들이 뛰어가서 물을 마시더니 전부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웅덩이는 쓴물로 가득 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셨고, 그 나무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순식간에 물이 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교회 성도들이 목말라 할 때 쓴물을 달게 해서 물을 마시게 해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로 25절은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야훼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쓴물이 달아진 이런 기적에 대한 기록을 읽고도 별로 관심도 감응도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것이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살다보면 인생길도 참 광야 같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눈에 보이는 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솟아나는 원망, 불평, 탄식, 고난의 쓴물도 굉장히 많습니다. 마음의 쓴물이 사실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병보다 마음의 쓴물이 가장 무서운 병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는 결코 건강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쓴물은 바로 죄와 허물의 쓴물, 불안과 공포의 쓴물, 미움과 분노의 쓴물, 좌절과 절망, 그리고 우울의 쓴물입니다. 

이러한 우리 마음의 쓴물을 달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입니다. 마음의 쓴물이 소화제를 마신다고 달아 집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의 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달아 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신기하게 달아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의 쓴물이 달아져야 행복합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며, 수천평의 문전옥답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관계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어야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의 행복지수는 조사국가 36개 국가 중에 26위에 머물렀습니다. 또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1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중 불안장애를 겪은 사람이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26%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한 심리가 점점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에 미움, 분노 등 여러 가지 쓴 물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불안을 먹고, 불안을 낳으며,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이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예언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모진 고난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불안과 공포는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시므로 우리 마음에 평화가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미움과 분노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주님께서 치료하시고, 사망과 절망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시므로 모두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필요한 절대적인 평안을 찾아 주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진실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면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평안만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영적인 향기도 허락해 주십니다.

2.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

아무리 산해진미가 넘친다고 해도 잔치에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바로 포도주와 같은 음료수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청받아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참석하셨습니다. 한창 잔치가 무르익을 때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신랑이 아주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뛰어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좀 도와주실 수 없냐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가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좀 도와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잠시 후 예수님께서 그 집에 있는 하인들에게 유대인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결례통으로 쓰이는 물이 두세 통 들어가는 그런 큰 물독 여섯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물통이 가득 채워지자 이제 잔치 자리에 갖다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인들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떠다주자 그 물이 변하여 아주 향기로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떨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잔치를 위해 물을 변화시켜 이전보다 더 향기로운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생애를 통해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이 바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변화시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맹물같이 살면 삶의 재미가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참으로 가치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동안 향기롭게 살아야지 맹물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스스로 살펴봐도 맹물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삶의 향기가 전혀없는 맹물 같은 인생을 살지 말고, 오직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내적인 향기가 있는 향기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 같은 향기나는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 오셔서 은혜에 취하게 되고 천국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도들도 은혜에 취하고 목사도 취하면 가나의 혼인잔치와 같은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가 그와 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기록합니다. 성령으로 취하면 이 세상에서 체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마음이 그 향기에 취하게 되고 즐겁게 되면,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게 됩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넘쳐나서 맹물 같은 삶이 포도주 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에 즐거움이 있어 소리 내어 웃는 것입니다. 웃음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많은 학자와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웃음의 효과에 대해 연구한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웃음은 심리적 조깅이며 에어로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직접 에어로빅이나 조깅을 하지 않아도 많이 웃기만 해도 그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웃으면 우리 몸속에 좋은 호르몬인 엔돌핀이 작용하여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증대하고 스트레스가 감소된다고 합니다. 5∼6세 유치원생들은 하루에 300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하루에 15번 웃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작정을 하고 억지로라도 웃어야겠습니다. 웃음은 굉장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웃음의 치유력에 대해 연구한 사람인 노먼 커즌스가 웃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자신의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그 병은 손발을 움직일 수조차 없고 침대에서 돌아누울 수도 없는 당시 의학기술로는 아무런 치료방법이 없는 희귀질환이었습니다. 그는 독한 항생제와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틸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일한 덕분에 의학분야에 대해 남다른 지식이 있었기에 그는 웃음으로 자신의 병을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 누워 코미디 영화를 보며 10분 동안 실컷 웃었습니다. 

10분 동안 웃고 나니까 2시간 동안 진통제 없이도 편안하게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8주가 지나자 겨우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몇 개월을 날마다 웃었더니 꼼짝도 안하던 목이 4분의 1쯤 돌아가더랍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웃음을 통해 그의 병은 완전히 나아버렸습니다. 그 후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웃음의 치유력」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책에서 그는 “웃음은 유효기간이 없는 최고의 약이며, 병을 막아주는 방탄조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기쁜 웃음은 예수님을 모시고 즐거운 일이 있어야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감사하고, 감사하며, 또 감사하며 살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고난과 고통이 많고 문제와 스트레스가 넘쳐나는 인생에서 웃을 이유가 있어야 웃지요. 웃을 이유가 없으니 웃을 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 놓고 웃을 이유는 오직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아무 염려와 분노와 공포 그리고 미움이 없이 웃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방법뿐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종교는 오히려 부담이요 짐일 뿐입니다. 그것 말고도 우리 인생은 이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데 종교적인 수고와 무거운 짐까지 더 보태어지면 인생이 더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평안해지고 향기로운 인격을 갖게 되고 기쁨이 넘쳐 행복해야만 합니다.

3. 복음과 변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하며,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변화되어 새것이 되어야만 되지 옛날 그대로 인간으로 있으면 우리가 믿는다는 증거도 없고 효과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평안해져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 죄를 주님께 다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1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기록합니다. 마음의 평안은 굉장한 은혜요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화평을 누리게 되고 이웃과의 사이에서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불의를 청산하고 의로움을 주셔서 허물진 삶을 거룩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디도서 3장 5절에서 6절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부족한 것을 다 청산하고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께 구하면 무엇이든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죽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예배는 바로 순종의 모범이요, 은혜와 치료의 시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치료의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는 영과 혼과 육간에 치료함을 받아 심신이 건강해져야 진정으로 행복해 집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분노와 미움과 우울함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귀가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기도하면서 우리 마음을 가만히 살펴보면 악한 마귀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 마귀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쫓아내지 않으면 나중에는 우리를 억압하고 축복을 가로막고 병들고 못살게 하여 계속해서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마귀의 종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일평생 살면서 끊임없이 마귀를 대적하고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십자가의 보혈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에게는 주님이 주신 영적인 무기가 많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말씀과 성령과 예수 보혈로 마귀를 대적하고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의 저주들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고난당하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주신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75세 때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면서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덩어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앉아도 복을 받고 일어서도 복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 일천만 성도가 있기 때문에 5천만 민족이 다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복이 더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바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게 장수하여 우리도 행복하고, 우리와 같이 하는 사람들도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종교적 교양이나 형식과 의식으로 전락하면 교회는 쓴물이 넘쳐나는 메마른 광야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통해 설교도 듣고 기도하는 것은 쓴물이 달아지고 맹물이 달아지는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계셔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무엇보다도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포도주에 취해야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변화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채우고 계십니다. 이제 귀신은 쫓겨나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항상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과 만족을 누리며, 성령에 취해 이 땅에서도 천국의 영광 가운데 살 수 있게 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쓴물만 가득한 광야 같고,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져 버린 것 같이 고난과 절망만이 가득한 우리의 인생에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 가운데 이미 놀라운 변화와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성령의 포도주에 취해 살며, 복을 받고 장수하며, 진정한 평안과 만족을 누리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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