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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옷이 아름다운 옷입니다 (슥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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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옷이 아름다운 옷입니다 (슥 3:1-6)


본문의 배경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약 900조원의 금을 들여서 성전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BC 586년 바벨론이 쳐들어 와서 그 성전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성벽도 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쓸 만한 남자나 여자는 다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노인, 병자, 어린아이같은 찌끄러기 인생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절망만 남았습니다.

이 때 스가랴 선지자가 나타나서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선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같다면서 세 가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스가랴는 지금 우리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같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 앞에서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참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2)
불속에서 나무가 타고 있습니다. 거냥 두면 모두 타서 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불속에서 타고 있는 나무를 꺼내서 불을 껐습니다. 간신히 살아 남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신세라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떠났습니다.
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 한 명이 생겼습니다. 선교사는 너무나 기뻐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을 믿습니까?”

이 말을 들은 토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낙엽을 긁어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벌레 한 마리를 넣고 불을 질렀습니다. 시뻘겋게 불타고 있을 때 그 토인은 벌레를 꺼내 살려 주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지옥불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나다 나무를 다 쌓아 놓고, 싸우디 석유를 다 붓고, 미국 석탄을 다 쏟아 놓고 불을 지릅니다. 그렇게 뜨거운 불속에 지옥에서 꺼낸 사람을 넣으면 그 사람이 수염에 고드럼이 달린채 나오면서 말합니다.
“아이 추워.”

어느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은 그렇게 뜨거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거냥 두면 다 지옥에서 영원히 영원히 고통을 당하여야 할 인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불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레도 자기가 자기를 가리켜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불타다만 부지갱이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연탄이 없을 때였습니다. 학교에 갔다오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해다 땠습니다. 그 때 부지갱이가 있었습니다. 나무를 잘 타라고 이리 저리 뒤집는 막대기를 무지갱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거냥 내버러두었으면 죽었을 뻔 한 사건이 없습니까?

나는 생각하면 여러 번 죽을 뻔한 고비가 있었습니다.
월남 전쟁이 한 창일 때였습니다. 적들이 많은 쟝글 지내를 지날 때에는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습니다. 혹시 숲속에 베트공이 숨어 있을 지 모르는 데 천천히 달리면 총을 조준하기 쉽고 맞기 쉽습니다. 그러나 빨리 달리면 조준하기도 어렵고 혹이 총을 쏘아도 빗맞을 확율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달리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져서 언덕 아래로 굴렀습니다. 큰 내가 흐르고 있는 데 짚차가 그 냇물속에 잠겼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코 밑으로 물이 흘르고 있었습니다. 10 cm 만 내가 더 잠겼어도 나는 숨을 쉬지 못 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코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데 밖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강 병장은 죽었나보다."
이 소리를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겨우 기어 나온 적이 있습니다. 나는 타나 남은 나무입니다. 불속에서 건져낸 나무입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인우학사 감리교 기숙사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서울 연회 총무로 있던 이 주익 목사와 한 방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방에 모두 연탄 난로였습니다. 기온이 낮아 비가 오려고 잔뜩 찌프린 날 밤이었습니다. 연탄까스가 방안에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주익 목사와 나는 연탄까스 중독으로 죽을 뻔 하다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이 목사와 만나면 그 이야기를 늘 하고 있습니다. 나는 불속에서 건짐받은 부지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경험이 없으신가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대 상자에 모세를 넣고 나일강에 두었습니다. 악어가 많은 곳입니다. 수많은 악어중에 한 마리만 냄새를 맡았어도 모세는 악어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살이 조금만 쎈 곳으로 흘렀어도 모세 상자는 뒤집어져서 모세는 죽었을 것입니다.

모세도 이런 고백을 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불속에서 타는 데 건져낸 나무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시대였습니다. 야고보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 다음은 베드로 차례였습니다. 잡아 감옥에 넣어 두었습니다.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도와 주어서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베드로도 불속에서 꺼집에낸 부지깽이같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나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나를 불속에서 꺼내 주시고 생명을 다시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그 분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기로 재다짐하였습니다.

2.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

이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 그리고 천사 그리고 마귀가 있는 곳에 섰습니다. 그런데 자기 옷을 보니 더러운 옷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3)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대제사장복은 이 세상에 있는 옷중에서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옷입니다. 금실로 짰습니다. 12 보석이 앞 가슴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이라는 보석도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성전 연구소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순간에 대제사장이 입을 대제사장복을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화려한 옷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옷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도 하나님 앞에서는, 천사 앞에서는 더러운 옷으로 보였습니다. 인간의 옷은 더러운 옷입니다.

시기의 옷. 질투의 옷. 음란의 옷. 욕심의 옷. 혈기의 옷같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안 좋은 옷입니다. 더러운 옷입니다. 보이는 옷만 옷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옷도 옷입니다.

3. 항상 사단이 참소하는 사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항상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죄를 참소당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하나님이 참소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1)

욥도 사단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욥도 그런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다윗도 사단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자 마귀는 그를 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훼방거리를 주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회개하였습니다.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삼하 12;14)
하나님으로부터 죄는 용서받았어도 벌은 용서받지 못 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간음으로 태어난 아들은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습니다. 다윗은 몹시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여당에는 반드시 야당이 있습니다. 판사앞에는 항상 검사와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 앞에는 반드시 천사와 사단이 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스가랴는 인간은 이렇게 세 가지 모습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2.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
3. 항상 사단이 참소하는 사람

그 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4-5)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선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니까 더러운 옷을 벗겨 주셨습니다. 천사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고 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에 스가랴가 본 환상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옷이 아름다운 옷입니까?

1. 아름다운 꿈의 옷

화려한 옷이 아름다운 옷이 아닙니다. 비싼 옷이 아름다운 옷이 아닙니다. 꿈을 가진 옷이 아름다운 옷입니다. 

비싼 영국제 신사복보다 작업복이 아름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깨끗한 흰 옷보다 기름붙은 작업복이 더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차밑에서 기어나오며 흙묻은 옷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소망이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쓸 만한 사람은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일할 수 없는 노인과 병신과 아이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죄의 결과입니다. 마귀가 참소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어디를 보나 소망이 없습니다. 모두가 불속에서 타다 남은 부지갱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때 스가랴는 꿈의 옷을 모두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스가랴는 그 후 웨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슥 6;12-13)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성전을 짓고, 성벽을 쌓고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꿈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스가랴의 이런 예언의 모든 백성들은 꿈의 옷으로 갈아 입게 하였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었습니다. 절망의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새 출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꿈이 살아 났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입니다.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대표로 더러운 옷을 하나님 앞에서 벗고 아름다운 옷 꿈의 옷을 입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스가랴 예언으로 꿈의 옷으로 갈아 입은 것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쓰실 때 꿈부터 주시고 쓰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제일 먼저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꿈부터 주셨습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의 모래알 같이 주리라.”
“네가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땅을 네게 주리라.”
“네가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네가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하나님은 꿈부터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꿈이 능력이 되어 앞으로 당당하게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 사용하실 때에도 그랬습니다. 모세에게 꿈부터 주셨습니다. 가시떨기 앞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민족을 인도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간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도 꿈부터 주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지 않고 꿈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꿈의 옷은 정말 아름다운 옷입니다. 꿈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꿈을 잃어 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2. 아름다운 말의 옷

꿈이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것입니다. 말하는 것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스가랴는 이제 절망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인상깊고 아름다운 말을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슥 6;12-13)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앞으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 한 마디는 온 백성에게 용기와 꿈을 주었습니다. 살 맛나게 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포로생활 70년 동안 지치고 지친 사람들을 다시 한번 시도하게 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아내가 밥을 하다 보니 3층 밥이 되었습니다. 위는 설었고 가운데는 제대로 되었고, 맨 밑은 타버렸습니다. 그 때 한 남편은 소리를 지르면서 말합니다.

“이것 밥이라고 한 거야?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는 거야?”
그러나 다른 한 남편은 말했습니다.
“오늘 세 종류 밥을 골고루 먹게 되는 행운은 다 당신 덕분이구먼.”
어느 것이 아름다운 말입니까?

음식점에서 식사도중에 밥에서 돌이 나왔습니다. 
한 손님은 소리를 지릅니다.
“주인 오라고 해. 내 이빨은 강철인 줄 알아?”
그러나 다른 손님은 말했습니다.
“그래도 돌보다 밥알이 많아.”

나중에 어느 손님이 대접을 받았을 가요? 욕한 손님은 밥 다시 갖다 주고 돈을 냈습니다. 주인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을 한 사람은 돈을 내니까 받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오시면 잘 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인사를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아름다운 입이요, 아름다운 옷입니다. 스가랴는 아름다운 말로 온 백성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름다운 옷이란 아름다운 말입니다. 항상 남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주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말이 아름다운 옷입니다.

3. 아름다운 행동의 옷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게 하는 데 용기를 주고 동기를 강하게 부여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포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성전을 짓게 하는 행동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남을 편안하게 살게 만들어 주고, 보람있는 일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행동이요, 아름다운 행동이요,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행동 옷입니다.
더러운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들 중심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딸에 대한 속담이 많습니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다.”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 간다.”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보다 낫다.”
“아들키우면 뻐스타고, 딸 키우면 비행기 탄다.”

이런 말들을 보면 다 뿌리가 있습니다. 딸을 첫 번 낳고 보니 미안해 하는 며느리를 위로하려고 “첫 딸은 살림밑천이다” 하는 말이었습니다.

세 번째까지 딸을 낳으니까 더 위로하려고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 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편안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딸만 낳는 이를 위하여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보다 낫다” “아0들키우면 뻐스타고, 딸 키우면 비행기 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항상 아름다운 행동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운동 코치가 선수들을 데리고 운동 시합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시합이라 모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수 차앞을 장의사차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이 중얼거렸습니다.

“더럽게 재수없네.”
그 때 지혜로운 코치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예전에 내가 선수시절에는 시합하러 나가다가 장의사 차를 보면 꼭 이겼다.”
이 말 한 마디에 모든 선수들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행동입니까? 말 한 마디에 감정의 기폭은 큰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수아 대제사장을 천사들이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옷을 입고 새 출발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얷이 아름다운 옷입니까?

1. 아름다운 꿈의 옷
2. 아름다운 말의 옷
3. 아름다운 행동의 옷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종이 공장을 방문하였습니다. 더러운 폐지들이 산더미처럼 싸여 있었습니다.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공장장이 말했습니다.
“깨끗하고 비싼 종이를 만드는 재료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궁중으로 돌아 왔습니다. 얼마 후 좋은 종이 한 다발과 편지가 왔습니다.

“걸레같던 폐지들이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편지지가 되어 여왕 각하의 손에 들려져 있습니다. 우리 더러운 죄인들도 언젠가는 다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앞에 설 날이 있을 것입니다. 더러운 폐지가 궁에 들어가듯이 우리 죄인들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궁에 들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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