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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감사하자 (시 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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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하자
시편 104:1-18

사람이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마치 운전자가 연료계기판을 보고, 연료탱크에 있는 연료의 양을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고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 시편 104편을 노래한 시인은 자연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야훼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본문에서 자연을 보고, 자신이 야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점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본문에서 시인은 자연을 마음대로 다루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시인은 노래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연을 다루는 것을, 마치 사람이 옷을 벗고 입는 것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놀이용 블록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만드는 것처럼, 야훼 하나님께서도 우주를 당신의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본문 2-5절에서 노래하기를,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은 마치 주인이 하인에게 일을 시키는 것처럼, 자연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루는 분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본문 7-9절에서 노래하기를,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8:23-27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는데, 갑자기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섭고 강한 광풍이 몰아쳐서, 배에 물이 들어와서 배가 가라앉게 될만큼의 위기가 옵니다. 그냥 있다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죽을지도 모르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형편에서도 놀랍게, 예수님께서는 평안히 잠을 자고 계십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이 잠을 자는 선생님을 깨우면서 말하기를,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합니다. 사실 이 제자들 가운데에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면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여럿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광풍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나를 짐작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잠에서 깨어나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라고 하시고 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집니다. 그래서 마태는 마태복음 8:27절에 기록하기를,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이분에게 복종하는가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는 마치 사람을 꾸짖듯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우주와 이 세계와 바다와 땅과 하늘은, 그냥 우연히 창조질서가 유지된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자연을 붙들고 계시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우주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경이로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 볼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해야 합니다. 

만일 짠 바닷물이 스펀지에 젖어든 것처럼, 육지에 배어들면, 지구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습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닷물에게 명하셔서 육지에 더 이상 침범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서 시인은 노래하기를,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을 당신의 거룩한 뜻을 따라서 관리하는 줄 믿으시고, 그런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담대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시인은 짐승과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야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야훼께서는 물을 주셔서 온갖 짐승과 사람이 마시게 하고, 다양한  식물들이 그 물 때문에 살아서, 아름답고 온갖 생명이 살기에 평안한 세상을 만들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본문 10-13절에서 노래하기를,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라고 합니다.

나사렛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식물과 짐승과 사람에게 주신, 가장 대표적인 선물이 바로 햇빛과 비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모든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면서 마태복음 5:45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기를,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라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은, 해는 우연히 생긴 것이며, 해는 우연히 생긴 자연의 질서에 따라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해는,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해의 역할과 기능을 계속 유지하도록, 보존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에게, 비는 자연의 현상에 의해서 내리는 것이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이 비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름이 모여서 비가 되지만, 그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적당한 때에 비를 내려 주셔서, 생명이 자라게 하고, 유지되게 하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마다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감사와 찬양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981년 흑인 가운데 가장 장수한 찰리 스미스가 130세의 나이로 플로리다 주 바토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찰리 스미스에게 130년의 세월은 마치 고통의 전시장과도 같았습니다. 찰리는 노예로 태어나 갓난아이 때부터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미국의 남부와 서부를 헤매며, 매를 맞고, 모욕을 당하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을 고비를 스무 번도 넘게 경험했습니다. 한때는 서부 최고의 총잡이인 제시 제임스의 마구간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30년 동안 고생만 하다가 죽은 찰리가 임종하기 며칠 전에 자신집에 심방을 온 스티븐스 목사 앞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가 흑인으로 태어나게 했음에 감사드립니다. 고통스러운 노동생활도 감사합니다. 130년 간 언제나 내 곁에 계셔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답니다. 스티븐스 목사는 찰리의 기도를 들으며 ‘아하! 이런 신앙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구나!.’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아래서도 여일하게 감사하고 찬양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루 동안에 어떤 말을 많이 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가만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의 대화 속에 감사하는 말이 빠져 있다면, 몹시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무시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나사렛 사람 예수 때문에 온갖 일에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야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한번 가만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 보세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온갖 식물을 창조하고, 자라게 해서는, 그 식물을 동물이 먹고 살아가게 합니다. 아름다운 꽃을 주셔서 세상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시고, 생물이 자라게 하신 것은, 모든 생물이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본문 15절에서 노래하기를,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해 아래 살고 있는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한 피조물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값도 없이 주신 것을, 받은만큼 행복해하지도 않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해 아래 사는 인생들이 그러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모든 것을, 잘 관리하고 돌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관리를 잘못하면 골칫거리가 되고,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 주신 모든 것을 잘 가꾸고 돌보아야 합니다. 모든 자연과 생태계, 바다, 산, 평지, 온갖 식물 동물 등,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주셨기 때문에 마땅히 잘 관리를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창조한 세계 속에서, 여러분이 자연을 통하여 기쁨과 행복을 얻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중심의 욕심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고 있습니다. 동화 가운데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는데, 거위 주인이 욕심이 많아서 거위의 배를 갈랐습니다. 매일 한 개씩 알을 낳는 것이 감질나서, 한꺼번에 배에서 끄집어내기 위해서 거위의 배를 가른 것입니다. 그러나 거위 배 안에는 한 개의 황금알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나친 욕심이 매일 황금알을 얻는 기쁨을 망친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주인처럼, 많은 사람이 지나친 욕심, 곧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 때문에, 매일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버리고,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망치고 있습니다. 산을 깎아 내리고, 바다를 메우고, 산과 기름진 들판을 쓰레기로 덮여가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 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중심의 욕심 때문에, 잘 돌보지를 못하고, 관리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전 인류가 행복과 기쁨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주신, 자연을 통하여 인류가 기쁨과 행복을 얻지 못한 이유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고, 인간에게 한 가지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주었으므로, 인간은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하여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고, 사실 값을 치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단지 한 가지 인간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과 온갖 먹거리를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포도주를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름을 사용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을 먹으면서도 정작 하나님께 감사하지는 않습니다. 

성경도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생각한 것과 다르게 죄를 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관점에서 죄를 봅니다. 우리는 보통,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성범죄나, 이런 것을 큰 죄로 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장 큰 죄는 살인죄도 아니고 도둑질도 아니고 성범죄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과 평생토록 먹고 살 것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입고 먹고 살면서, 그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지 않아도, 정직하고 착하게 살면, 예수 믿는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주위를 살펴보면, 예수 믿는 사람보다, 마음씨도 곱고, 도덕적으로 더 바른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의 복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깨끗하고 바른 삶은 있는지 몰라도,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만 관계된 일이지, 인간의 바른생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살다가 죽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간단합니다. 
(1)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나사렛 사람 예수를 인류의 구세주 곧 그리스도라고 믿어야만 합니다. 
(2)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화목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3)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예수가 생전에 예언한대로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점을 믿고, 담대하게 이웃에게 증언해야만 합니다. 
(4)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이런 구체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잘 관리하고, 가꾸어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예배하는 예배에 참석하여서, 즐거운 모양으로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찬양을 하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말씀에 순종하고 삽니다. 

그러면 나에게 이런 믿음의 모습이 있는지 여러분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가만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겸손하게 받아서 누리며 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하여 무시로 감사하면서, 여러분의 감사하는 마음을 찬양과 예배와 봉헌으로 표현하고 사는 일어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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