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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기를 다하매(중보기도) (행 4: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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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기를 다하매(중보기도) (행 4:23-31)

사도행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도들이 자주 모여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똑 같은 모습은 저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마다 무릎 꿇고 같이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29-30절에도 "주여 이제도 저희 위협함을 굽어 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또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기도했냐 하면 24절에 보니까,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한 마음으로 소리 높여 통성기도 식으로 소리를 높여 큰 소리로 했다는 것입니다. 소곤소곤 기도한 게 아니고 어려운 일을 앞에 놓고 함께 모여서 일심으로 같이 소리 높여서 통성으로 기도했습니다. 

1. 우리의 기도 중 제일 중요한 일은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맛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초대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이 했던 거 그대로 따라 하면 되요. 우리가 그대로 하면 단순하게 어린아이처럼 그들이 했던 것처럼 따라 하면 됩니다. 중보기도, 같이 모여서 기도하는 거예요. 

중보기도는 우리에게 뭔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도전이 왔을 때, 그 도전에 대항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중보기도를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중보기도에 힘썼던 이유는 그들이 지금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하는 그 당시 권력자들이 그들을 핍박하고 또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했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보니까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했습니다. 

얼마나 중대한 문제입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라. 예수 빼면 할 말이 뭐가 있어요. 예수님의 이름을 빼면 할 말이 뭐가 있습니까? 그거 빼면 기독교도 무너지는 거고, 우리 신앙 다 무너지는 거예요. 예수 빼면 할 말이 없잖아요.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이고 예수의 사람들인데, 예수 빼고 할 말이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은 그 종교를 말살하겠다는 거예요. 다른 거 다 해도 좋으니까, 예배도 드려도 좋고 뭐 기도 해도 좋고, 구제해도 좋고 다 좋은데, 봉사해도 좋은데, 예수의 이름으로 하지 말라는 말은 그 종교를 말살하겠다는 거예요. 예수의 이름 빠지면 우린 껍데기죠. 예수님 없이 예배를 어떻게 드립니까? 

우리 예배의 중심이 예수님인데. 예수님 이름 없이 무슨 봉사를 하고 예수님 이름 없이 무슨 구제를 해요. 다른 종교도 다 하는데. 그러니까 예수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이건 아주 가장 심각한 경고입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두고 저들이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근데 문제가 클수록 우리 성도들은 더 강해집니다. 사실 우리가 약해지는 이유는 문제가 작아서 그래요. 좀 말이 이상하지만, 큰 문제가 있어야 강해져요. 

예방주사) 우리가 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서 일부러 몸에 균을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병을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 그리고 몸이 그 병균에 저항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병균을 집어넣습니다. 전 처음에 그게 이해가 안되었어요. 몸속에다 병균을 넣는다는 게 이해가 안되었어요. 왜 멀쩡한 몸에 병균을 집어넣어요. 알고 보니까 몸이 그 병균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예방주사입니다. 마찬가지에요. 하나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수족관에 상어 한 마리를 딱 집어넣었더니 그 다음부터 물고기들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얘기가 있어요. 영양분을 주고 먹이를 주고 환경을 따뜻하게 만들고 편안하게 만들고 다 무슨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도 물고기들이 죽어 갔는데, 적이 나타나니까 물고기들이 죽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편해지기를 원합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자연의 그 어떤 그 법칙은 편한 곳으로 가기를 원해요. 물이 흐르다가 물이 막히면 그걸 피해 가지고 편한 곳으로 흘러가듯이 사람도 가장 저항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사람의 관성이 있어요. 저항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래서 가만 놔두면, 물도 짐승도 사람도 가만히 있으면 가장 저항 없는 쪽으로 갈려고 하는 그런 속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치 수족관에다가 상어를 넣어서 물고기들이 정신 차려 가지고 오래 사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 교회라는 이 수족관에다가 이러한 어려운 숙제를 주셔서 저들이 모여서 기도했을 때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어야 강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실은 우리에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가 그저 먹고 마시는 단순 차원이라면 우리가 사실 매주 모여서 기도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뭔가 그 보다는 조금 더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이 세상을 보고 또 영적인 싸움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실 기도할 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모일 때 마다 뭔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가 없으면 기도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시고 저들이 모여서 일심으로 하나님 앞에 통성으로 기도하는 그러한 장면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강해지는 영적 훈련을 받게 됩니다. 기도만큼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없어요. 기도는 저항이에요. 

기도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내 안에서 편해지려고 하는 내 어떤 육신의 욕심을 내가 스스로 억제하고 싸우지 않고서는 기도가 안돼요. 그러니까 기도는 싸움이에요. 그런데, 이 싸움을 싸우지 않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연약해 질 수 밖에 없고 병들 수 밖에 없어요.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가장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하는 것은 핍박이고 기도입니다.


2.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을 노래로, 찬양으로, 기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24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것이 성도들을 강하게 합니다. 자꾸 우리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 상처, 또 자기 아픔, 그것만 계속 만지고 있으면, 우리는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하나님의 그 주권을 놓고 소리 높여, 대 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결국 신앙의 싸움은 우리 가슴속에 있는 하나님의 크기, 즉 사이즈가 어떤 사이즈이냐 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날마다 고백하고 그 하나님의 크심 속에 푹 빠져서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 속에 우리가 들어갈 때, 담대하게 되는 거예요. 이들은 담대했습니다. 두려움이 없었어요. 하나님 백을 믿었잖아요. 하나님보다 크신 상대가 어디 있어요. 세상의 권력자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비록 자기 자신들이 이 세상의 권력자들 앞에서 힘이 없었지만, 절대로 기가 꺾이지 않고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확신을 가지고 할 때 그 중보기도의 힘이 있어요. 중보기도 할 때, 자꾸 문제를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하게 되어있어요. 자기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살게 되어 있어요. 자꾸 말하면 그대로 삽니다. 먼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하나님께 소리 높여, 그 다음에 한참 가서 나중에, 끝부분에 가 가지고 저희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옵고 라고 했어요. 

없애 달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살펴달라는 기도입니다. 저들의 위협을 없애달라 고난을 없애달라 또 뭐 아픔을 없애달라는 기도가 아니고 생각, 고려해 달라고 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즉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데, 우리는 예수의 이름 증거 하기를 원하는데, 이런 위협이 있고 이런 위험, 이런 어려움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살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신앙생활의 제일 어려운 부분은 바로 하나님과 나에요. 다른 사람, 환경이 아니에요. 내 안에 하나님의 크기가 작아서 문제입니다. 크신 하나님이 내 안에 없어서 예요. 그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없어서 그래요. 하나님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왜 중보기도가 비실비실 힘없이 이렇게 메말라 가냐 하면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에 푹 빠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우리 믿음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크게 생각하느냐. 얼마나 크게 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랬어요. 정말로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예. 믿음이 있어야 기쁨이 와요. 하나님의 백을 믿는 거죠. 분명한 적이 있으면 힘이 나는 거예요. 목표가 분명하여 어디다 총을 대고 쏴야 하는 지 분명하면 기도가 되고 기도가 되면 힘이 나는 겁니다. 우리가 누구를 상대로 싸우는가, 우리의 적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 마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지 않고서는 그 적을 우리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이름 불러야 합니다. 비록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마귀를 상대하려고 하면 절대로 이기지 못하지만, 우리 뒤에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포효하실 때, 사자의 포효를 발산하실 때,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능히 이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니까 31절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비록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모여서 중보기도 했을 때 모인 곳이 진동하면서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랬어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담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속에 폭 빠져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죠.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3. 이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면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30절

예수의 이름을 저들이 끄집어냈어요. 30절에 보니까,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그 주권,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먼저 고백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꺼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행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사도행전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거예요. 뭐 저들이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끄집어 낸 거예요. 계속계속 끄집어내서 사용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능력을 나타내는 힘이 있습니다. 

에너지는 힘을 받지 않으면 에너지를 낼 수 없는데, 예수님은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은 존재적 능력이 있습니다. 그 존재 자체로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용만 하면 되요. 도움이 필요 없어요. 예수의 이름과 말씀에는 누구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전하기만 하면 돼요. 전하면 그 이름과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 땅에서 무엇이든지 메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여러분 이거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에요. 이 말씀과 마태복음 28장에 나온 말씀을 연결시켜 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다시 말하면 예수의 이름을 사용만 하면, 사용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그런데 사용 안 하니까 문제예요. 예수의 이름을 끄집어 내지 않는 거예요. 저들은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을 끄집어냅니다. 예수의 이름 자꾸 부른다고 무슨 특별한 게 있나. 예수의 이름 자꾸 부른다고 무슨?,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십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계셨던 분이에요. 

그 분은 자생적인 능력이 있고 자존적인 능력이 있고 자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에요. 스스로 계신 분. 그 분을 우리가 그냥 끄집어내면 되는 거예요. 그 이름, 예수의 이름을 천국 마스터 카드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마스터, 우리의 주이시니 천국 마스터 카드에요. 그 마스터 카드를 우리가 쓰는 거예요. 카드 쓰듯이 그러면 하나님이 싸인 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 예수의 이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예요. 우리 돈 가지고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돈 가지고 하면 고만큼 밖에 못해요. 그러나 예수님 가지고 하면 그 돈 위에 예수님 이름으로 축사하면 그 예수님 이름 때문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천국 열쇠를 너희에게 주었는데, 땅에서 무엇이든지 메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족속을 제자로 삼아라." 그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가서 내 이름으로 쓰라 이거에요. 긁으세요 여러분, 맘 놓고 긁으세요. 다시 한번 해봅시다. 긁읍시다. 예수의 이름으로 긁읍시다. 한 번 해보세요. 긁으세요. 긁어 가지고 나쁜 데 쓰면 안되죠. 나쁜 데 쓰면 하나님께서 막아버리십니다. "네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멜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쓰는 데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만 맞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4. 저들의 중보기도는 선교, 전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29절

중보기도가 자기들의 내적인 것을 채워 달라는 기도보다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선교와 전도 지향적인 중보기도를 했다 이거에요. 섬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전하게 해달라 그 말이죠.

29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31절에도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다시 말해서 이들의 중보기도의 초점은 안으로 쏠린 게 아니고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달라. 우리의 아픔을 이해해 달라. 또 뭐 우리의 어떤 환경을, 우리의 뭐 어려운 문제들, 물론 그것도 중보기도 속에 들어가야 하지만, 사람이 그렇잖아요. 벌써 기도 소리를 들어보면 그 기도가 어떤 무슨 세부적인 내용보다도 전체 기도가 지금 자기 안쪽으로 향하고 있는 지, 바깥으로 향하고 있는 지 금방 들립니다. 

이들의 기도는 지금 안쪽으로 쏠리는 기도가 아니라, 바깥으로 나가는 기도에요. 그 에너지가 바깥으로 나갑니다. 자기의 모든 가진 것을 남에게 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사람이 중보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중보자로 오셔서 중보자로 살다가 죽으시고 가셨는데, 이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중보자의 그 삶이 이들 속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보기도를 받은 사람이 중보자의 삶을 살아요. 

중보자가 많은 사람을 복되게 하는 이러한 역사와 이러한 기적들이 우리 가운데서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중보기도가 얼마나 위대합니까? 단지 우리가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아니에요.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맡긴,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그 표적과 기사들을 꿈꾸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한 사람이 변함으로 인해서 어떠한 위대한 일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지 우리는 상상하지 못합니다. 우리 돈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뭐 우리의 어떤 능력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앞으로 우리 교회에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그런 놀라운 선교와 전도와 구제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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