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다림의 은혜 (애 3:19-26)

첨부 1


기다림의 은혜 (애 3:19-26)

제가 한국에서 목회하던 곳은 충청북도 단양이라는 곳입니다. 그곳은 산세가 깊고, 큰 강이 흘러서 무척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갖고 있습니다. 거기에 유명한 관광코스가 있는데, 바로 동굴 관광입니다. 고수동굴, 천동동굴, 노동동굴이라고 하는 석회석 동굴들이 세 개나 있습니다. 그 안에 가 보면 다양한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를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입구는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합니다. 그런데, 동굴 입구에 경고문이 하나 있습니다. 절대 안으로 뛰어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면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동굴의 입구에서 우리의 눈이 어두운 데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다음에 가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우리의 몸이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다림은 무척 중요합니다. 하루 아침에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하루 아침에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다림의 은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며 주시는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다림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희망을 키워가기도 하고, 그 기다림 속에서 고통을 견디는 훈련도 합니다. 이처럼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기다림이 없이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가 힘이 듭니다. 기다리며 살 때가 오히려 행복한 것입니다. 학생은 졸업을 기다립니다. 직장인들은 승진을 기다립니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은 밝은 내일을 기다립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민족의 침략을 당하면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왔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위대한 왕들 이후에 이스라엘은 남 왕국과 북 왕국으로 나뉘어 각자 독립된 나라로 지내 오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으로부터 멸망을 당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살던 유대인들은 포로기간 동안 “진정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는가 아니면 우리 조상들의 죄 값으로 오늘의 고통이 우리들에게 임하였는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포로기간 동안 슬픔과 좌절 속에서 언제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낙담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의 소망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신앙인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이러한 기다림이 헛된 소망이 아니라고 하면서 롬5:3-4절에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기다림이 은혜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는 것이 은혜를 가져오는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기다림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것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이단 종말론자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면서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하나님께 바치고 무작정 앉아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기다림의 모습이 아닙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내일 종말이 와도 오늘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이니까 실컷 즐기고,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죄도 짓고 하고 싶은 악한 행동도 거리낌 없이 하는 모습은 잘못된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갈6:9절 말씀에서 몇 주 전에 본 것처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될 때 거둘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끝까지 선을 행하는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잠시 나그네로 사는 인생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믿음을 지키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려고 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희생과 봉사를 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크고 놀라운 은혜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본문 19-23절에 보면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림 속에 고통을 음미하며 낙심하지 않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소망이 있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미래가 있다는 소망을 갖고 있으면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끝날 것이라는 소망이 있으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나갈 것입니다. 

소망이 이런 힘을 주는 것입니다.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소망을 갖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소망으로 인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가져야 할 기다림의 자세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기다림 속에서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진멸당하지 않게 해 주셨고,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에 대해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 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국가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이 가장 빠른 나라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 번 클릭한 후에 화면이 빨리 뜨지 않으면 다시는 그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빨라서 좋은 점도 있지만 빠르기 때문에 놓치는 것도 많습니다. 빨리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걸을 때 보입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잠시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에 대한 감사가 생기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21절 말씀에서 낙심할 만한 일이 있었지만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담아 두었다는 말은 그 의미를 되새기며 묵상했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만 보이던 무서운 심판이 하나님의 자비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로 다가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낙심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절망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술에 취하고, 또 다른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낙심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상할 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발견하면 자동적으로 소망이 생겨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될 때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하는 기회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생각해 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보입니다. 그 자비하심이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기다려야 합니다. 26절에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잠잠히 기다리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고 예레미야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느끼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는 소란하게 난동을 피우며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사람들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잠잠히 기다리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힘들어도 자신의 본문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며 잠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났지만 그 시험을 통과한 후에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우리의 고난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과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스스로 절망 가운데로 자신을 내 몰지 마시고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내모시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향한 계획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기다림은 무려 2500년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한지 2500년이 지난 후 1948년에 다시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기다림의 은혜를 알았기에 이들은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잘 기다리며 날마다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