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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까? (시 5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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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까? (시 56:1-13)


1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짓밟습니다. 온종일 나를 공격하며 억누릅니다. 2 나를 비난하는 원수들이 온종일 나를 짓밟고 거칠게 나를 공격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3 두려움이 온통 나를 휩싸는 날에도, 나는 오히려 주님을 의지합니다. 4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니,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5 그들은 온종일 나의 말을 책잡습니다. 오로지 나를 해칠 생각에만 골몰합니다. 6 그들이 함께 모여 숨어서 내 목숨을 노리더니, 이제는 나의 걸음걸음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7 그들이 악하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뭇 민족들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멸망시켜 주십시오. 8 나의 방황을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님의 가죽부대에 담아 두십시오. 이 사정이 주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9 내가 주님을 부르면, 원수들이 뒷걸음쳐 물러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심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10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는 주님의 말씀만을 찬양합니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내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12 하나님, 내가 주님께 서원한 그대로,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13 주님께서 내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가 생명의 빛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닐 수 있게, 내 발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로 나가기로 결단한 목사님,“어떻게 그런 결단을 하셨습니까?”
“이제야 주님을 의지할 믿음이 생겼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게 된다!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정말 의지가 되십니까?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의지가 되고 두렵지 않는 믿음이 생겼습니까?

우리는 시편 56편에서 다윗의 놀라운 고백을 듣습니다.
3-4절 두려움이 온통 나를 휩싸는 날에도, 나는 오히려 주님을 의지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니,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이 고백은 정말 놀라운 고백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전국 방방 곡곡을 도망다니다가 도저히 갈 데가 없어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이 누구입니까? 골리앗이 블레셋 사람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볼모처럼 잡혀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기록된 시가 시편 56편입니다. 
시 56:1-2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짓밟습니다. 온종일 나를 공격하며 억누릅니다. 나를 비난하는 원수들이 온종일 나를 짓밟고 거칠게 나를 공격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선언하는 다윗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구원받은 것으로 믿고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서약했습니다.
12-13절 하나님, 내가 주님께 서원한 그대로,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내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가 생명의 빛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닐 수 있게, 내 발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하나님을 이렇게 의지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라’ 가 아닙니다. 이것은 명령으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두려운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아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그래서 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설교로 설교자도 교인도 헛 고생만 한 것입니다. 
문제는 ‘결단한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부흥회에서 식사 대접을 해주신 집사님 한 분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요청에 의하여 마지막 날 예정에 없던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연을 듣고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부흥회 첫째 날 저녁집회와 둘째 날 저녁집회 때 너무 은혜를 받았답니다. 주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고 너무 감사하여 눈물 범벅이 될 정도로 기도가 되더랍니다. 남편도“당신 목사님 사모님같이 변했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은혜를 받았답니다. 너무 눈물이 나는데 휴지가 모자라 혼이 났답니다. 그래서 강사 식사를 꼭 대접하겠다고 담임 목사님께 떼를 써서 약속을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전 날 셋째 날, 오늘은 얼마나 더 큰 은혜를 주실까 기대하면서 휴지를 한웅큼 가지고 참석했답니다. 마음껏 울면서 기도하리라 결심을 하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말씀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예” 하기에는 너무 두렵더랍니다.“예.”하고 대답을 못하니 마음만 무겁고 기도도 안되더랍니다. 그런데 말씀 후 기도 시간에 옆자리 뒷자리에 앉으신 교우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기도하더랍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간 휴지를 나눠드렸답니다. 너무 고마워하더랍니다. 
그러고 나니 막상 강사 대접이 너무 부담되더랍니다.
참 불편한 식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겠다! 아무나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말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어지고 의지할 수 있는 분으로 여겨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은 신비한 것입니다.

뉴욕 센트럭 파크에 어느 날  풍선 장수가 풍선을 팝니다. 아이들에게 빨간 색, 파란 색, 노란 색 여러 가지 색깔의 풍선에 헬륨가스를 넣어 팔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흑인 아이가 다가 왔습니다. "아저씨, 까만 풍선도 있나요?" 피부가 검은 것 때문에 마음에 한이 된 그 아이를 보면서 풍선 장수는 얘기해 주었습니다. "얘야, 풍선이 빨갛고 노래서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란다. 풍선이 하늘을 나는 것은 풍선 속에 공기 보다 가벼운 가스가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이 얘기를 들은 아이는 얼굴이 환해져서 풍선을 사가지고 돌았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민권 운동가인 Jessie Jackson목사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믿어지는 것이어야 진정한 믿음입니다.

부목사님이 유아부 아이들 설교할 때, 믿음과 하나님을 신뢰함에 관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무 배고플 때, 어떻게 해요?  엄마, 아빠 나 배고파.  
그럼, 엄마 아빠가 맛있는 것 주실 줄 믿어져요? 아이들은요, 배고파하면 부모님이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더라구요.
좀 당황해서 부모님에 따라 좀 다르겠지? 했는데도 아이들은 너무나 확신에 차사 믿는다고 했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를 의지하세요. 엄마 아빠를 믿어야 돼요 그렇게 설교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런다고 됩니까?

다윗은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믿음을 이해하려면 다윗의 생애 전체를 보아야 됩니다.
다윗의 믿음은 목동 시절부터 계속하여 자랐습니다. 타고난 것도 아니었고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윗도 어려움에 처하면 흔들리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8절 나의 방황을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님의 가죽부대에 담아 두십시오. 이 사정이 주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쳐 죽였던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지만 이처럼 두려움에 떨며 울고 또 울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또 순종하였기에 담대한 믿음, 하나님이 의지가 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의 믿음이 어찌 다윗의 노력 때문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에게 부어졌기에 그의 믿음도 있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그는 살인자요 간음자였습니다.
우리 보다 더한 죄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은혜를 받아도 다윗의 믿음이 유별난 것은 잘하든 못하든 늘 하나님과 살다보니 어느덧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은혜가 항상 먼저이지만 우리의 반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두 목사님이 같은 때 교회 건축을 하시다가 공교롭게도 함께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한 목사님은 감사했습니다. 교회 건축 중 죽거나 떠나거나 다친다는데, 가장 경미한 일을 겪었으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은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나? 그리고는 은퇴하실 때, 인사말을 하는데“너무 열심히 일한 것이 후회된다.”고 하시고 그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목회를 하셔도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리는 것은 사람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입니다.

신경림 시인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사람들은 주위 환경이 어려움이 자기를 흔드는 줄 압니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주위에서 자기를 마구 흔드는 줄 압니다. 실은 자기가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안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도 한 때 설교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크게 낙심하여 전도사역을 포기할 정도까지 내리막길로 치달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1738년 3월 15일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갑자기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설교를 그만 두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가 어떻게 남에게 믿음에 관한 설교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설교를 그만 두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베라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절대로 설교 사역을 그만 두어서는 안된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나는 믿음이 없는 내가 어떻게 믿음에 대해 설교를 할 수 있겠느냐며 설교를 계속해야 한다면 무엇에 대한 설교를 해야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믿음을 갖게 되기까지 믿음에 대해 설교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서 믿음을 갖게 되거든 그 믿음으로 믿음에 대해 설교하세요.󰡓
존 웨슬리는 베라의 권고를 하나님이 베라를 통해 자기에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인 후 더욱 열심히 믿음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 후 2달 후 존 웨슬리는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다 하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하러 나온 것이 믿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가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려 탄식하고 좌절할 그 때도 여전히 우리 안에 믿음은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순간 하나님이 의지가 되는 담대함과 찬양과 감사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주세요 기도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방법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바뀝니다. 믿음이 달라지고 지혜가 생기고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막막하고 하나님도 의지가 안될 때, 우리가 할 일은 더욱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운 상황, 울면서 밤을 지새우는 일을 겪으면서도 우리 믿음은 자랍니다.

재미교포 중에 소련 선교사로 나가서 지금 기독교 대학을 세우고 계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담대함을 가졌는가, 미국 흑인 빈민가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믿음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 동네 사람들이 하루종일 들락날락 하면서 피클도 하나 사고 우유 한 병 사먹고 합니다. 그래서 1년 365일 상점을 열어야 합니다. 그전에는 단 하루도 그 가게가 닫힌 적이 없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주일에 가게 문을 닫았답니다. 

"We go to the church." 라고 써 붙였더니, 월요일에 동네사람들이 몰려와서 항의를 하고 야단이 난 것입니다. "우리도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인도 먹어야 살 것 아니냐?" 그러나 다음 주일에 또 닫았습니다. 역시 몰려와서 야단법석을 합니다. 가게가 망할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에겐 주일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믿음 하나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도 문을 닫고 "We go to the church." 를 붙였더니, 동네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기독교인이 주인이 되어서 반갑다며 자기들도 토요일에 물건을 미리 사놓고 주일에는 교회에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달쯤 지나니까 이전보다 매상이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전혀 손해보지 않고 1년에 52일을 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놀면서 먹고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못 놀며 먹고 산다." 그 분 자녀가 셋인데, 모두 훌륭한 대학을 나왔고 한끼도 굶은 적이 없었고 이제는 가게를 처분하고 소련 선교사로 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했습니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 리가 확신하노라”
우리 마음에 오신 주님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용사로 세우실 것입니다.

믿음은 놀라운 것입니다. 믿음은 착한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의지하는 것입니다.
짚을 수 있는 지팡이만 있어도 얼마나 편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지난 주간은 너무나 슬픈 주간이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후배 목사님이 중국에서 영성훈련을 잘 인도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도 바울이“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고백하였는데. 그 목사님은 정말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복을 받으셨음을 깨닫고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틀림없이 밝게 웃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갔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사모님과 자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렸습니다. 며칠 동안 마음이 여러 가지로 복잡합니다. 왜 이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찬경이 나이 쯤 되었을 때, 저도 어머님을 먼저 하나님께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다예 나이 쯤 되었을 때, 아내도 아버지를 먼저 하나님께 보내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그 어려움이 주는 유익이 있었습니다. 
어머님 장례 때, 하관식하러 갈 때 까지도 마음은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이제 네게 어머니의 기도가 사라졌구나! 동생들을 위하여 누가 어머니처럼 기도해 줄까? 답답한 마음으로 장의차 밖으로 하늘을 보는데, 어머님이 내려다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어머님은 관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큰 위안을 얻고 슬픔에서 벗어났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늘 보고 계시는 어머니를 바라보게 된 것이 보이지 않지만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감각을 얻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친구 목사님, 20대와 지금 다른 게 뭔가 봤더니 그때는 혼자 돌아다니다가 요즘은 자꾸 아내를 따라다니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배가 고파서 아내를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아내를 자꾸 불러본답니다.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으면 궁금해서 또 전화를 합니다. 
제가 주님을 찾는 것이 꼭 그렇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주님!”하고 부르게 됩니다. 
또 임재의 충만한 은혜 속에서도 더 갈망해서 주님을 부릅니다. 

주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주님과의 관계를 제 점검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해결하지 못하고 사는 죄, 습관, 오늘 보혈로 씻어주심을 믿으시고 그 은혜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새 출발하는 은혜를 분명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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