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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몬 베드로의 증언 (벧전 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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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의 증언 (벧전 2:22-25)


오늘은 시몬 베드로의 증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수제자로서 복음서에 보면 열 두 제자 가운데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이는 그만큼 제자들 중에서 역할이 컸음을 말해 줍니다. 

그는 본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였습니다. 하루는 밤이 맟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 배로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했어도 저녁에 고기 잡으러 나가기 위해 그물을 씻어 정돈해 두어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의 수면은 아침 햇빛으로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이 마치 무수한 물고기가 뒤엉켜 펄떡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감상에 잠길 겨를이 없습니다. 빨리 그물을 정돈하고 집에 가서 조반을 먹고 한숨 자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많은 사람들이 시몬이 있는 해변으로 다가왔습니다. 군중의 맨 앞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시몬은 일전에 동생 안드레의 소개를 받아서 예수님을 한번 만나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 말고도 그는 예수님에 관해서 여러 가지 좋은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물가에 대어놓은 빈 배를 보시고 그 중 한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놓으라 하시고는 배에 앉으셔서 해변에 섰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시자 시몬에게 이르시기를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예수님을 배에 모신 그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리했더니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니 물에 잠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부가 많은 고기를 잡았으니 수지맞았습니다. 또한 지난밤의 부진을 말끔히 씻었으니 기분이 상쾌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이라도 붙잡고 “예수님, 너무나 고맙습니다. 덕분에 횡재했습니다.”하고 사례할 일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기적을 통해서 시몬은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자기의 죄인 됨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시니, 시몬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 반의 공생애 기간에 내내 열과 성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같은 시몬을 귀히 여기시고 늘 가까이에 두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시몬 베드로를 생각할 때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한 신앙고백입니다. 때는 공생애가 끝나기 여섯 달 전쯤이었는데, 예수님은 머지않아 자기가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고 죽으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지방으로 여행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저마다 들은 대로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대체로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이 세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에 속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 같은 분으로 인정했으니 아마, 제자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그 말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던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다시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하는 말을 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각 사람의 진실한 생각입니다. 제자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잠히 있는데, 정적을 깨고 시몬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헬라어로서 구세주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몬의 이 고백은 그가 예수님을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시몬의 고백은 예수님의 마음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이 구원받으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쯤으로 알아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습니다. 나의 지혜로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습니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입니다. 육은 영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슨 수로 예수님을 올바로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마음눈을 밝혀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몬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그렇다면 성도님들 역시 하나님 아버지께 은총을 입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이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와 똑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면, 교회의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밝히 알리신 그 때부터 예수님은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껏 예수님은 자기가 고난을 받고 죽임 당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없었는데, 그처럼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예수님이 죽임 당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왜 죽임을 당하셔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고 만류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베드로의 진심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은 시몬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칭찬하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이며 천구 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생각과 베드로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차이란,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셨으나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베드로의 행동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스승이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데 제자로서 담담히 받아들인다면 그편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류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사단”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인들을 대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곧 사단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은 그 때까지도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는지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메시아께서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해서 고난 받으실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위해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유월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기 위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맨 마지막 재앙이 곧 장자가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은 유대월력으로 정월 14일 밤에 임하였는데, 그 때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양이나 염소 중에서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을 택하여 14일 저녁에 잡아서,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고기를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아니하고 불에 구워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두루 다니시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죽이셨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를 문에 바른 이스라엘 자손의 집은 넘어감으로 죽음의 재앙을 면하였습니다. 이렇게 재앙이 넘어갔기 때문에 이 날을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출애굽 당시에 유월절 어린 양이 피 흘려 죽음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듯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해서 제자들은 아직 믿음이 어려서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시몬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복음서를 주의 깊게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어느 복음서든지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서를 기록한 첫째 목적이 예수님의 고난을 증언하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이후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말하기조차 겁을 내고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쉼 없이 십자가를 향하여 다가가셨습니다. 드디어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메시아로 공개적으로 선포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겉옷을 벗어 어린 나귀의 등에 걸치니 그 위에 예수님께서 타셨습니다. 또한 무리가 주님의 입성을 환영하며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또 길가의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앞뒤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지르기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했습니다.

그 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지켜본 제자들의 마음은 어느덧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이제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심으로 자기가 메시아이신 것을 선포하셨으니 곧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제자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벌써 예수님을 처형할 죄목을 정해 두었습니다. 그 죄목은 신성 모독죄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하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들을 때려서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성전의 책임자들이 와서 “당신이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했습니다. 곧 이런 일을 하는 자격을 보이라는 말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시니, 그들이 놀라 말하기를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으나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은 성전 모독죄로 고발당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상황이 급전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근심에 사로 잡혔습니다.

드디어 유월절 저녁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조촐한 유월절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근심에 사로잡혀 각각 여쭙기를 “주여, 내니이까?”, “주여, 내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곧 이어 가룟 유다가 다락방을 나와서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해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들에게서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약조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나갔을 때,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축복하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시고 사례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나누는 제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식사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기에 앞서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려고 하신 것입니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더욱 단호한 어조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베드로의 말을 허풍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심을 말했습니다. 정말로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내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밤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검과 몽치로 무장한 큰 무리를 데리고 왔을 때, 시몬은 검을 빼서 예수님께 손을 대려는 자를 향하여 내리쳐서 그의 한쪽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상대의 머리를 내려친 것이 그만 빗나가서 귀를 잘랐습니다. 자, 이 같은 베드로를 보고 비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드디어 예수님께서 포승에 결박되어 잡혀가시자 제자들은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멀찍이 예수님의 뒤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들어가서 일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려고 모닥불을 쬐고 있는 하속들 틈에 끼어 앉았습니다. 그 밤에,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는 동원된 하인들로 그득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뜰에 모닥불을 쬐고 있는 하속들 틈에 섞여서 예수님이 어떻게 될 것인가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밤에 열린 산헤드린 법정은 예수님을 죽일 목적으로 열린 것이므로 기어코 예수님께 성전 모독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예수님은 거짓 증인들의 증언에 대항하여 한 말씀도 대꾸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말하기를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하자, 이제껏 침묵하시던 예수님께서 침묵을 깨고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생각이 어떠하뇨?”하자 모두 대답하기를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만장일치로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이에 하속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숨을 죽이고 일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때, 한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부인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문으로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하였습니다. 당황한 베드로는 맹세하고 부인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고 말하기를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을 하고 나자 곧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불현듯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시몬의 실패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죽는 데까지 주님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통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가룟 유다와 다른 점입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으나 예수님이 공회에서 사형을 언도 받는 것을 보고서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나무에 목매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눈물로 회개함으로 다시금 주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몬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 뵈었고, 주님의 재신임을 받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제자들이 밤새 수고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 배로 나오는데, 해변에서 웬 사람이 서서 “고기 잡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없다”고 하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시라” 하니,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는 헤엄쳐서 뭍으로 나왔고,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습니다. 해변에는 숯불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떡과 생선을 먹었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후에, 다시 물으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근심하여 대답하기를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야바의 뜰에서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그의 실패를 만회하게 하시고 주님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의 양 무리를 보살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재신임하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사도 베드로는 아세아의 여러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2-25)

베드로는 주님의 공생애 내내 함께 하면서 그 행하신 일과 가르침을 보고 들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도 베드로의 증언을 보면 이사야의 예언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서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그의 사도직을 걸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몬 베드로의 증언을 믿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이천 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이 그의 증언을 믿어 길 잃고 방황하던 상태에서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증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시몬 베드로처럼 생명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충성스런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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