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회복(6) :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 (히 11:24-28)

첨부 1


회복(6) :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 (히 11:24-28)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후대 사람들에 의해 더 과장되거나 수정된 순교 전설이나 순교 사화가 아니라 초대교회 순교자들에게 일어난 재판과정에 대한 보고를 기초로 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ad 120-372년 사이 약 200년 에 걸쳐 일어난 순교자들의 실제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자, 여자, 소년, 소녀, 90넘은 노인, 귀족과 자유인과 노예, 학자와 농부와 상인과 군인, 감독과 장로 같은 성직자에서부터 세례 준비자와 순교의 현장에서 처음 신앙을 가진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이들 모두 순교의 현장에서 핍박과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라고 한 마디만 하면 가족을 잃지 않고, 재산을 잃지 않고, 생명을 잃지 않는데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순교하고 있습니다. 

그 때 상황을 오늘 성경 히브리서 11장 36-3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로 “심포로사와 그의 일곱 아들의 순교”가 나옵니다. 남편이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의 호민관이었는데 그리스도인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동생과 함께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황제가 불러 심포로사를 심문합니다. “네 아들들과 함께 전능한 신들에게 제사를 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너 자신이 네 아들들과 함께 제물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그 때 그녀는 황제에게 말합니다. “내가 나의 아들들과 함께 희생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는 이런 좋은 일(순교)이 어디로부터 나에게 오게 될까요?” 오히려 순교하여 천국 가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입니다. 황제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나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든지 아니면 참혹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든지 하라.” 

저와 우리 성도님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한 마디 하면 자신과 자신의 일곱 자녀들은 살아납니다. 

이 때 심포로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죽음의 두려움이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죽인 나의 남편 게툴리우스와 함께 안식하게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뺨을 맞고 머리카락을 매달림을 당하고 그녀의 목에 큰 돌을 달아 강물에 빠뜨림을 당하였습니다. 황제는 다시 일곱 아들을 모두 한꺼번에 자기 앞으로 불러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전혀 황제의 협박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다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교회의 감독이었던 포카스 같은 사람은 “나는 하늘과 땅에 한 분이신 나의 하나님과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경배할 수 없다.”고 우상숭배를 거절하자 석회 굽는 큰 솥 속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복음을 받은 이그나시우스 같은 사람은 잔인하게 매를 맞고, 몸은 칼로 난도질을 당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지 않자 기름 적신 나무에 묶어서 불을 태웠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순교할 만큼 강력한 믿음을 주었겠습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죽으면 더 좋은 천국이 있다는 소망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상급에 대한 기대입니다. 어차피 한 번 가는 죽음의 길인데 순교하면 하늘나라에 순교자의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삶의 풍요롭다 보니 신앙인도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고 하늘나라 상급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오는 회복 시리즈 6번째로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을 주제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고 천국 상급에 대한 기대도 없습니다. 모두가 현세의 축복이 최고이고 현세의 축복 중의 축복은 머니 머니해도 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와도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힘 있고 능력 있게 살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하늘나라 상급을 바라보는 모세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상주심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장차 받게 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견디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이 땅의 삶은 이 땅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과 연결되어 있고 이 땅의 삶의 마지막 평가는 천국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 

이 사실을 믿습니까? 뭐 천국에 상급이 있느냐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10:41)”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분명히 상급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예수님의 비유 설교를 보십시오. 얼마나 천국의 상급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씨 뿌리는 비유, 보화 비유, 포도원 일꾼 비유, 달라트 비유, 열 므나 비유, 게으른 종 비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종의 비유, 열 처녀 비유, 문지기 비유, 혼인잔치 비유,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부자와 나사로 비유 등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늘에서의 영광스런 승리와 상급을 말씀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교회 다니면서 경륜장에서 사는 사람과 늘 새벽 기도하는 사람과 같겠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순교하는 사람과 순교의 현장에서 현실적 삶을 위해 신앙을 접는 사람과 같겠습니까? 아닙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상급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상급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요한 계시록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삯 받는 삶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천국에서 상 받는 삶으로 인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1. 하늘의 상급을 받는데 방해되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믿음입니다(24).

모세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을 소개하면서 24절에 모세의 믿음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부정하고, 거부하고, 단절하고,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당시 최 강대국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보장됩니다. 명예가 주어집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도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환경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것을 과감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를 거절했습니다. 이제까지 길러준 어머니와 같은 분입니다. 이것을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26절 하반 절에 나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사람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에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이 오히려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올무가 되고 이것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성취하지 못하고 이것으로 안주하여 썩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세상적인 가치에 매달려 살지 말아야 합니다. 

신문에 보니까 로스쿨 다니는 여성이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법연수원생인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무리한 혼수 요구에 시달려 결국 목을 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중요한지 돈으로 주어진 환경이 중요한지를 분별을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적 용어로 천국이 없는 세상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박 모 여인은 2년간 연애했던 대기업 연구원 김모씨와 약혼까지 했으나 올해 파혼했다고 합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김씨 측이 "시어머니와 시누이 2명 등 총 7명에게 1000만 원대인 에르메스 가방을 혼수로 줘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년 12월 변호사인 장모(34)씨와 결혼한 이모(여·28)씨는 결혼 과정에서 지출했던 혼수 비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건강까지 악화돼 항공사 승무원도 그만둬야 했답니다. 결혼할 때 아파트(2억9000만원)· 자동차(5000만원)· 기타(5000만원) 등 3억 9000여억 원을 혼수 비용으로 썼다고 합니다. 

돈으로 주어지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천국과 천국의 상급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신혼여행 대신 신혼 봉사를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혼여행을 아프리카 봉사단에 참여하여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 축의금으로 해외에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과감하게 거절해야 할 것은 거절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의 눈입니다. 믿음으로 장성하여 모세는 알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까 자신이 애굽 사람인가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분명하게 안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버릴 것을 과감히 버렸습니다(24-26). 

24절에 보면 명예를 버렸습니다. 
25절에 보니까 낙을 버렸습니다. 
26절에 보니 재물을 버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참 좋은 것도 버렸는데 어떤 사람은 마땅히 버려야 할 것도 버리지 못하고 더러운 것들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을 해치는 것,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 가난을 재촉하는 습관, 가정을 멍들게 하는 중독 등 버려야 할 것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한 시대 쓰임 받은 주님의 일꾼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소와 도구를 다 버리고 엘리야를 따라 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관에서 일어납니다. 바다의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쫓아갔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내려준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마땅히 우상 앞에 놓였던 음식을 거절한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거절할 순간, 아니오 라고 말해야 할 순간, 단호하고 분명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거절할 것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바로 공주의 아들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익숙한 습관일지라도 아무리 달콤한 것일지라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얼마나 버릴 것을 철저히 버립니까? 우리는 천국의 금메달을 따야할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상급에 방해되는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버린다고 손해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2. 하늘의 상급을 받기 위해 죄악의 낙보다 고난을 더 좋아하는 믿음입니다(25).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25). 얼마나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 낙을 좋아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까? 요즈음 피서 철입니다. 

7, 8월이 되면 '바캉스 베이비'로 인생이 얼룩지는 여성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성들의 부인과 처방건수가 각각 25%, 23.5%로 평소에 비해 10% 씩 높아진다고 합니다. 도덕성도 양심도 없는 재미를 좇는 시대입니다. '심심한 천국보다 즐거운 지옥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전 간디는 7가지 사회악을 말하였습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여기에 아룬 간디가 '책임 없는 권리'를 하나 더 붙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금 이 시대도 여전합니다. 그 중에서도 양심 없는 쾌락이 거리거리를 온통 파고들고 있습니다. 꿀 냄새를 맡고 몰려든 파리 때처럼 넋을 잃고 쾌락에 파묻히다가 날개까지 젖어 버려 다시는 날지 못한다 해도 그 속에 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욕망 중의 하나는 쾌락입니다. 

쾌락은 마약 성분이 있어 계속 유지하려면 쾌락을 주는 것들을 끝없이 찾아 다녀야 하고 더 강력한 것을 요구합니다. 쾌락은 사람의 손에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고 사람을 노예로 삼고 싶어 합니다. 쾌락의 순간은 가장 아름다운 도취요, 혼신을 맡기는 행위가 될 수 있어 그 안에는 시간도 세월도 잊을 수 있습니다. 쾌락에 취하면 권태를 덜게 하는 체험과 쾌락의 묘약을 사기 위해 돈을 얼마든지 지불합니다. 그러나 부나비가 불빛에 취해 불꽃 주변을 돌지만 결국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불에 타 죽고 말듯이 쾌락은 가장 완전하게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쾌락은 쾌감만 주는 것이 아니라 허탈을 늘 꼬리표로 달아 줍니다. 양심을 외출시키는 쾌락은 이슬방울처럼 덧없고 결국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욕망의 덧에 방치되면 삶은 파괴되고 맙니다. 돈으로 쉽게 재미를 사고 쾌락으로 지루함이 추방될 것 같지만 쾌락은 임시적인 아편의 역할을 할 뿐 습관이 되면 파멸의 독약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쾌락은 갈수록 약해지고 쾌락 욕구는 갈수록 강해져 다시 권태와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강도 높은 파괴적인 방식으로 쾌락을 추구하지만 쾌락은 신기루와 같아 늘 강박관념과 공허감을 주는 가짜 신에 불과합니다. 쾌락의 노예가 되면 결국 자기 생명을 갈가 먹힙니다. 

진(秦) 나라부터 청(淸) 나라말까지의 중국 역대 황제들 평균 수명이 마흔 살도 못되는 39.2세였습니다. 전한(前漢)의 원제(元帝)는 후궁이 2천 명이었고 당(唐)의 현종(玄宗)은 양귀비를 비롯, 후궁이 4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帝國)의 황제들도 네로, 가리글라, 티베리우스, 도미티아누스, 헤리오가바루스 등 변태 성욕자가 속출한 때문인지 평균 수명이 37세로 조선 왕조 시대 왕들 평균 수명 43.4세보다 못합니다. 

모세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24). 쾌락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졌습니다(25).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기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봉사의 기쁨이 죄악의 낙을 누리는 기쁨보다 훨씬 기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헌신의 기쁨이 십자가를 지는 기쁨이 이 세상 그 어떤 기쁨보다 기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악의 기쁨은 일시적이고 찰라적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부평에 사시는 변승수 장로님은 [하숙생 모집, 단 주인의 말만 잘 들으면 하숙비 일체 무료]라는 내용의 광고를 부평 시내 곳곳에 붙인답니다. 변 장로님은 구두 수선집을 하면서 돈을 모았답니다. 그는 주의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돈을 벌어 교회와 복음사업을 위하여 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낮에는 구두 수선을 하며 직접간접으로 전도했고 그는 자기 집에 무료 하숙생을 두어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답니다. 

일단 광고를 붙이면 직공이나 학생들이 모여들었답니다. 그러면 장로님은 규칙적인 생활을 시킵니다. 새벽 4시만 되면 변장로는 하숙생들을 깨워 "교회 갑시다."라고 교회로 인도합니다. 이런 생활이 매일 계속됩니다. 그리고 주일날 교회는 꼭 출석하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숙생들 중에서는 이런 생활을 못 견디겠다면서 떠나는 자들도 있으나 교회에 부지런히 출석하여 믿음을 가지고 신앙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늘의 상급을 바라고 사는 사람들은 하늘의 상급을 받기 위해 죄악의 낙보다 고난을 더 좋아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쾌락만 추구하면 쾌락의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사사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에서 쾌락을 찾다가 눈이 뽑힌 것처럼 눈이 가리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을 쾌락 방해꾼이나 기쁨 파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 살았던 솔로몬은 그 모든 쾌락이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참된 쾌락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사 55:2-3). 

하나님을 만나면 지루함과 갈증을 해결받고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쾌락의 종말은 '허무와 죄악' 그리고 `파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세상 기쁨만 좇다가 인생 종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 좋아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장애인 마을서 콩나물 심는 '촌장 주교님'”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만해 평화상을 수상한 김성수 주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83살이지만 강화도에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에서 촌장이 되어 봉사하는 김성수 주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14년 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아 이 공동체를 세웠답니다. 장애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 김 주교는 그저 '촌장' 아니면 '할아버지'로 불린답니다. 50여명의 '친구'는 이곳에서 콩나물을 기르고 빵을 구우며, 간단한 전자부품을 조립해 매달 30만~80만원 월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160평 공장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들이 함께 무농약· 친환경 콩나물을 하루 2t씩 생산한다고 합니다. 

한 여성 장애인은 첫 월급 25만원을 받아 홀어머니께 속옷을 선물했답니다. 태어나 여태껏 바보라고 손가락질만 받고 살던 아이가 난생처음 제 힘으로 번 돈, 홀어머니와 이웃들이 그 속옷을 붙들고 밤새 함께 울었답니다. 

김 주교는 "이제나 저제나 콩나물 많이 팔아 친구들 월급 많이 주는 게 내 소망"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먹고 놀고 잠잤다는 말밖엔 할 게 없는데,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으스대고 잘난 척한 죄를 회개하라고 하나님이 시간을 주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천국과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3.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는 믿음입니다(26) 

2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삶의 태도 문제입니다. 인생에서 무엇이 귀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수모와 이 세상의 부를 택하라면 어떤 것을 택하겠습니까?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를 택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수모가 영원한 천국의 상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물이냐?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냐? 결정의 문제에 단호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신문에서 “유튜브로 독학한 17세 소녀, 카네기홀에 서다”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나의 꿈은 천상의 피아니스트」라는 책을 낸 김 지은 양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다고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음악은 유일한 벗이었다고 합니다. 네 살 때 처음 만난 모형 피아노에 빠진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습에 열을 올렸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를 따라 베트남으로 이민을 떠나 월세 반지하에서 학교도 다닐 수 없을 정도의 형편이어서, 피아노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익혔다고 합니다.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를 비롯해 아르헤리치, 예프게니 키신,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의 연주를 유튜브(YouTube) 보며 열심히 연습을 했답니다. 이들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하면서 장점만을 받아들이는 경지까지 다다랐다고 합니다. 결국 2011년 1월 뉴욕 카네기 메인홀,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독주회를 가지고 2천여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다섯 번의 커튼콜을 하고서야 무대를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과감하게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애지중지하던 피아노를 팔아 비행기 삯을 마련했고, 한국인 자원봉사단체 '비아 이스라엘'을 통해 1년여 간 현지 중증장애인 등을 섬겼다고 합니다. 피아노 연주와 찬양을 통한 복음 전도에 헌신한 것입니다.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통해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 전도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 밖에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간증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달란트를 가지고 부를 축적하면 해복하게 살기를 소원하기 보다는 소년원이나 군대, 병원이나 학교 등을 찾아가 연주하고 섬기는 일들을 해 보고 싶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주님께 잘했다 칭찬받을까?'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어떻게 생기겠습니까? 모세는 천국의 상급만 본 것이 아닙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상급 주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우주의 주인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온통 물질주의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를 당하는 길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크리스챤 문필가인 C.S 루이스는 「기독교인 행위론」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현세를 위해 가장 많이 일한 이들은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한 이들이었다.' 천국의 존재를 확신하고, 천국의 상급을 바라는 사람들이 현세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로마제국을 변화시켰고,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최고의 전도자에게는 기쁨의 면류관(살전 12:19), 선한 싸움을 싸운 자에겐 의의면류관(딤후 4:8),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한 자에겐 영광의 면류관(벧전5:4), 고난받고 순교한 자에겐 생명의 면류관(계 2:10),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를 부정한 자에겐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 9:25)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런 면류관을 실제적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도를 위한 '선교사 수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양화진 묘원에 안치된 선교사 묘는 모두 145기. 그중엔 1903년 원산부흥의 주역이었던 하디 선교사의 두 딸도 묻혔고, '한국의 친구'로 불렸던 헐버트 선교사와 그 아들도 묻혀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1994년 펴낸 '내한선교사총람'에 따르면 1885년부터 한국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는 90년대 중반까지 총 2,956명이었습니다. 그중 1,529명의 선교사가 광복 이전에 한국 땅을 밟았고 이들 가운데 10%는 질병과 사고로 한국에 뼈를 묻었습니다. 이들은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녀를 잃기도 했고 배우자와 사별하는가 하면 본인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를 몸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목숨을 받친 루비 켄드릭 선교사의 비문에는 “내게 백 개의 목숨이 있다면 모두 다 조선을 위해 바칠 것이다.”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서부 아프리카는 아예 '백인들의 무덤'으로 불렸습니다. 시에라리온 교회선교부는 초기 20년 동안 53명의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라이베리아 최초의 미국 감리교 선교사 멜빌 콕스는 1833년 도착 후 4개월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1000명이 죽더라도 아프리카를 포기하지 말게 하소서"였습니다. 

중국에서 1900년 발생한 의화단 사건 때 189명의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국에서 순교했던 선교사 중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릭 리델도 있었습니다. 중국 선교사의 자녀인 그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육상 4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의 영광과 기쁨을 뒤로 한 채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를 당하기 위해 다시 중국에 돌아가 20년을 사역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가택연금을 당했고 영양 부족 등으로 천국에 갔습니다. 그의 불꽃같은 삶은 영화 '불의 전차'에 소개되었습니다. 물질의 부 때문에 주님과 함께 수모를 당하는 것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난을 상급의 통로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현세만 바라보며 살지 말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이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회복해야할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믿음은?

하늘의 상급을 받는데 방해되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믿음입니다(24).
하늘의 상급을 받기 위해 죄악의 낙보다 고난을 더 좋아하는 믿음입니다(25).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는 믿음입니다(26)
(김필곤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