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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의 행복 조건 (마 2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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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행복 조건 (마 22:37-40)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내용과 조건은 일치하거나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가 행복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고 출처가 어디인가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의 내용과 조건도 같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고 젊고 아름답고 돈 많고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았으며 수백 통의 팬레터도 매일 받고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으며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웬일인지 나는 너무나도 공허하고 불행합니다.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라고 한 때 세계 남성들의 우상처럼 군림했던 미국의 여배우 메릴린 먼로가 이렇게 말하고는 결국 1962년 어느 날 밤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닫는 해수욕장과 같다”는 글을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세상의 모든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도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한 교육학 교수가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조사한 결과 항상 기뻐하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아는 사람,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비관적이며 부정적인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항상불평을 하게 되고 자기가 하고있는 일에 보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현재하는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소유나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대에 살고 있고 또한 문화적으로 발달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공허하고 불안 속에서 쫓기듯 살고 있습니다. 이 불안과 공허 그것은 참된 사랑을 알지 못하고,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인간의 행복과 진정한 인간 회복은 오직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될 때 인간의 마음에 기쁨이 생기게 되는 것은 사랑은 기쁨이기 때문인데 이 기쁨은 감격이요,행복입니다.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기쁨을 모른다면 크나큰 모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울한 모습으로 순종하는 자녀를 보시기 원치 않으시고 보다 기쁨이 충만하고 행복한 자녀를 원하십니다.

정말 하나님을 잘 믿는 자는 흔히 구제,봉사,기도 많이 하는 자라고 하지만 정말 잘믿는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웃는 자인데그 웃음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신앙인이면서도 괴로워하고 세상 모든 짐을 다 진것처럼 힘든 표정을 짓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위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감격을 알며 기쁨을 알며, 우리에게 사랑을 주신 하나님을 전심을다하여 사랑하게 될것입니다. 

예수그리도를 믿으면 행복의 조건이 바뀌게 되는데 요즘 대부분의 신자들이 신앙과 행복을 잘 조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신앙은 구원 받기 위해서 믿는 것이고,행복은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사느냐의 문제이므로 예수를 믿어도 세상 사람과는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신자의 행복의 조건은 불신자와 다릅니다.애굽에 살던 이스라엘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40년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 입국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때 모세가 엄숙하게 그들을 향하여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환경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성격만 변화시키지 않고 환경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살았습니다마는 예수 믿은 다음에는가나안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과거에는 어둠에서 살았으나이제는 빛 가운데서 살게 된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므로 행복의 조건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신자는 근본적으로 불신자의 행복의 조건과 다릅니까?첫째,축복의 원천이 다릅니다. 애굽은 전국토의 3%밖에 경작을 못하는 사막지대로 나일강 주변의 삼각지입니다. 이 나일강은 1년에 한번 정도 상류에서 흘러내린 비로 인해 범람하여 삼각지 전체를 휩쓸고 지나가는데 애굽 사람들은 운하를 파고, 수로를 만들고, 웅덩이를 파놓고 강이 넘쳐서 수로를 따라 운하와 웅덩이에 가득차기를 기다리면서 그들은 모든 삶의 원천이 나일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여 나일강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성격만이 아니고 환경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살았지 예수 믿은 다음에는 가나안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과거에는 어둠에서 살았으나 이제는 빛 가운데서 살게 된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므로 행복의 조건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신자는 근본적으로 불신자의 행복의 조건과 다를까요? 첫째,축복의 원천이 다릅니다. 애굽은 전국토의 3%밖에 경작을 못하는 사막지대로 나일강 주변의 삼각지입니다. 이 나일강은 1년에 한번 정도 상류에서 흘러내린 비로 인해 범람하여 삼각지 전체를 휩쓸고 지나가는데 애굽 사람들은 운하를 파고, 수로를 만들고, 웅덩이를 파놓고 강이 넘쳐서 수로를 따라 운하와 웅덩이에 가득차기를 기다리므로 그들은 모든 삶의 원천이 나일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여 나일강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축복의 근원이 나일강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가나안 땅은 물을 끌어들여서 농사를 짓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되는 땅입니다(11절). 요단강이 있으나 계곡이 너무 깊어서 끌어 올릴 수가 없으므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린 다음 하늘을 쳐다보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우리를 위해 사랑으로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의구원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혁명이 수직적인 관계 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도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은 사람의성격만 변화시키지 않고 환경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살았습니다마는 예수 믿은 다음에는 가나안의 생활이 시작됩니다.과거에는 어둠에서 살았으나 이제는 빛 가운데서 살게 된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므로 행복의 조건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신자는 근본적으로 불신자의 행복의 조건과 다릅니까?

첫째, 축복의 원천이 다릅니다. 애굽은 전국토의 3%밖에 경작을 못하는 사막지대로 나일강 주변의 삼각지입니다. 이 나일강은1년에 한번정도 상류에서 흘러내린 비로 인해 범람하여 삼각지 전체를 휩쓸고 지나가는데 애굽 사람들은 운하를 파고, 수로를 만들고, 웅덩이를 파놓고 강이 넘쳐서 수로를 따라 운하와 웅덩이에 가득차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삶의 원천이 나일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여 나일강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으나 가나안은 축복의 근원이 나일강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가나안 땅은 물을 끌어들여서 농사를 짓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되는 땅입니다(11절).

요단강이 있으나 계곡이 너무 깊어서 끌어 올릴 수가 없으므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린 다음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하나님이 비를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아니하시면 살 수 없는여건에 살고 있습니다.예수 믿기 전에는 잘 되던 것이 예수 믿은 후에는 잘 안 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신자의 전 생활권은 하나님이 동의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 수고의 성격이 다릅니다. 애굽은 산이 없으므로 강에서 물을 얼마든지 끌어들일수 있는 반면에 많은 노동력이 요구됩니다. 1년 내내 밭을 일구고 물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의 노력으로 행복해진다고 하는 교만이 가득 차있는데가나안은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나안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부분만 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걱정하시는땅입니다(12절).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사람과같이 노력하지만 자신의 한계점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여기서 우리는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것은 노력의 결실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시127:1-2).

이렇게 여건이 달라진 신자의 삶에는 행복의 조건도 달라졌습니다. 이 행복의 조건은 신명기 11장 13절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께 기쁨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축복을 담당해 주시고, 수고의 열매를 주시고,행복하게 해주십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변화되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되고, 내 가족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참변화의 시작은 나에게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사랑받기 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퍼져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은 남에게 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주고 또 주어도 마음이 기쁘기만 한 것 이것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자신은 사랑하는데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진실은 그것이 아닙니다."사랑은 많이 받았는데 사랑한 것이 별로 없다"고 인정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사랑은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것이요,모든 것을 내어 주신 사랑에 동시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쁨이 없고,고민이 있고,고통이 있다면 참된 사랑,절대적인 사랑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행복은 정신적 만족감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행복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면 행복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면 행복합니다.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치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이란의미를 채우는 삶입니다.내게 허락된 인생이,내 삶의 잔고가 어디쯤에 왔는지,얼마나 남아있는지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거듭거듭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하며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하면 행복하다

미국 국립건강관리소의 에머슨 박사는 감사와 건강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는데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을 A, B, C 세 그룹으로 나눠서 A그룹은 기분 나쁜 말과 행동, B그룹은 감사의 말과 행동, C그룹은 일상적인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더니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각 그룹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B그룹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가장 양호했고, 아울러 행복도도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에머슨 박사는 감사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기만 해도 몸에 면역력이 높아져서 크고 작은 질병을 이겨내고 훨씬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탈무드에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와 아쉬움, 원망과 불평보다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다면 언제나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별로인 것으로 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으로 보내실 때 저마다 맡은 배역이 있는데 그 일을 어떻게 제대로 소화하고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물량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평가하니까, 자신도 그런 유혹에 빠져들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자화상을 밝게 가져야 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행복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화목해야 됩니다(잠 15:17,17:1). 
화목과 화평, 이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행복은 진수성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물 먹고 물 마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화목함에 있습니다(잠 15:16).

가정과 교회는 행복 발전소입니다.행복을 파괴하는 어떤 사탄의 방해도 물리치고, 행복의 발전기를 돌려야만 에너지가 생산되고,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중단되었던 ‘행복 발전기’를 풀가동하십시오. 그러면 주님 안에서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행복을 창조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지상에 친히 세우신 두 기관은 가정과 교회입니다.그러므로 이 두 기관이 바로 행복의 근원지,행복발전소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가정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참다운 행복을 맛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며, 그런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발달로 참 편리한 생활을 살아가고 있으나 이러한 편리함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의 참 평안은 별로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방에서부터 거실, 안방,모두 갖춰야 할 것들이 다 있는지 다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꼭 있어야할 행복 에너지가 생산되고 있지 있다면, 가장 소중한 것이 지금 빠져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며,삶 그 자체가 되어야할 것입니다.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야 됩니다.‘창조’의 히브리 원어는‘빠라’라는 단어인데,이것은‘만들다, 새로 짓다’이런 의미입니다.즉 행복은 그냥 가만히 있는데 다가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만들고 새롭게 지으며 노력할 때 행복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이나 교회 또는 사회에서상대방의 약점이 보이면 덮어주고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상대방의 좋은 점이 있다면 격려하고 칭찬해줄 때 행복한 삶은 가능합니다(잠언16:24).

세상에 약점이 없는 자가 없고 장점이 없는 자도 없습니다.상대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준다면 누구라도 즐거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잠 15:13) 밝은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이’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별로인 것으로 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는 다를 수 있습니다.세상으로 보내실 때 저마다 맡은 배역이 있는데 그 일을 어떻게 제대로 소화하고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물량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평가하니까, 자신도 그런 유혹에 빠져들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자화상을 밝게 가져야 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마지막으로,행복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화목해야 됩니다(잠15:17,17:1).화목과 화평,이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행복은 진수성찬에 있는 것이 아니고,나물 먹고 물 마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화목함에 있습니다(잠 15:16). 가정과 교회는 행복 발전소입니다. 행복을 파괴하는 어떤 사탄의 방해도 물리치고, 행복의 발전기를 돌려야만 에너지가 생산되고,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중단되었던 ‘행복 발전기’를 풀가동하시면 주님 안에서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나 자신은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최선을 다하고 나의 자존감과 자화상을 살펴보고,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봄으로 밝은 자화상을 가지고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화목을 이루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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