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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향기7 : 절제(節制) (고전 9: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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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7 : 절제(節制) (고전 9:19-27)
 
 
❚스포츠와 절제

여러분, 혹시 어제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가 시즌 13승을 거두는 장면을 TV에서 보셨습니까? 제가 이 질문을 하면 여러분의 반응이 한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우선 “예, 저도 봤습니다.” 하는 분은 야구에 꽤 관심이 많은 분일 테고, “예,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소식은 들었습니다.” 하는 분은 그나마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일 텐데, 야구에 관심이 영 관심이 없는 분은 “LA 다저스가 뭐고 류현진이 누구야?” 하는 분도 계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부류 중에 어디에 해당되시는지요?

저는 스포츠를 참 좋아합니다. 운동을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야구뿐 아니라 축구, 농구 할 것 없이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즐겨 봅니다. 그런데 저뿐 아니라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스포츠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기도 할 테고, 또 어떤 목사님은 “스포츠는 인생이다”라는 말처럼 “스포츠는 신앙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스포츠 속에는 인생의 교훈도 있고 신앙적인 교훈도 있다는 뜻이겠지요. 몇 해 전 전 어느 교회가 기독공보에 낸 부목사 청빙 광고에 보니 조건 중에서 “1종 운전면허, 컴퓨터 다룰 줄 아는 분” 하다가 맨 끝에 “축구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그 교회 목사님을 제가 잘 아는데 하도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부목사님을 청빙하는데 웬 축구냐고요. 그랬더니 그 목사님 하는 말이 “물론 제가 축구를 좋아해서 같이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 축구 좋아하는 분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건강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성격도 적극적이어야 목회도 잘 하지요.”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앞으로는 부목사님 청빙할 때 운동 잘 하는 분 뽑으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저처럼 스포츠를 좋아했나 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9장에 나옵니다. 24절을 보세요.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라는 말이 나오지요? 이 말은 말 그대로 달리기 선수, 오늘날의 육상선수를 뜻하는 말이고, 26절에 보면 ‘싸우기’라는 말이 나오지요? 이 말은 바로 권투경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도 목회자들이 가장 즐겨 보는 스포츠 중 하나가 권투경기라는데 이유가 뭘까요? 아무튼 바울도 육상경기와 특별히 권투경기 보는 것을 좋아했던 모양이지요.

그런데 모든 스포츠에 있어 운동선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오늘의 설교 주제인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운동선수는 절대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스포츠는 타고 난 운동신경이나 체격조건, 체력 등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보면 운동이라면 뭐든지 잘하는 그야말로 ‘만능 스포츠맨’도 있고, 반대로 운동이라면 뭐든지 안 되는 ‘만능 몸치’도 있지요? 이렇게 타고난 운동신경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아무리 뛰어난 운동신경을 타고 나도,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 못합니다. 뛰어난 실력으로 몇 십 년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온갖 찬사를 받았지만 결국 절제를 못해 방탕한 삶을 살다가 사그라져 가는 선수들을 종종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운동선수는 절제가 정말 절대적입니다.

한국을 빛낸 최고의 스포츠 스타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올림픽이 끝나고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올림픽이 끝나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습니까?” 그러자 좀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아무거나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군것질 좀 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하다 보니 간식을 거의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또래의 아이들처럼 간식이나 야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체중조절 때문이지요. 

모든 운동선수가 여기 해당되지만 특히 권투선수들에게 체중조절은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경기를 할 때마다 계체량에 통과하기 위해 피를 말리는 혈투를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권투선수는 정작 시합보다 이 계체량에 통과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할 정도니 말입니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체중에 통과하기 위해 계속 운동으로 땀을 흘려 체중을 빼고 또 빼고,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계속 침을 뱉어가면서까지 별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 계체량에 통과해야 하는데 단 한 번이라도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으면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절제입니다.

❚세 가지 교훈

그런데 절제는 운동선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절제가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특별한 목적을 가진 이들은 반드시 절제를 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사도 바울은 오늘 이렇게 말씀합니다. 25절 말씀을 같이 읽읍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누가 절제한다고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앞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가 누구를 뜻한다고 했습니까? 예, 운동선수입니다. 권투든 축구든 야구든 육상이든 그 어떤 종목이든 시합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절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다음에 답이 나옵니다.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바울 당시 운동선수들이 열심히 경기를 해서 승리하면 상금은 없고 면류관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월계수 등 나뭇잎으로 만든 면류관은 시간이 지나면 말라버리고 썩고 맙니다. 이렇게 곧 썩어버릴 면류관도 얻기 위해 운동선수들은 그렇게 참고 절제하는데 하물며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절제하고 참아야 하겠냐는 것입니다. 이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겠습니까? 우리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영원히 썩지 않을 영생과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기 원하는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 신실한 신앙인들 말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운동선수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절제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말씀합니다. 24절을 같이 볼까요?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 편지를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 말이 아주 익숙했을 것입니다. 고린도 시에는 2년마다 ‘이스미안 경기’(Isthmian Games)가 열렸습니다. 그리스의 아테네 시에서 열리는 경기가 바로 올림픽 경기고, 고린도에서 열리는 경기가 이스미안 경기입니다. 이 경기는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습니다. 권투나 육상, 경마 등의 종목이 열릴 때마다 운동장에는 구름떼같이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지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육상경기입니다. 24절을 다시 보세요.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운동장’은 헬라어로 ‘스타디오’입니다. 본디 약 200미터 정도 되는 길이 단위를 뜻하는 말이지만 당시 운동장의 정규 규격이 이 길이였기 때문에 이 말이 점차 굳어져 ‘스타디움’이 된 것입니다. 요즘도 운동장을 스타디움(stadium)이라고 부르지요? 바울도 아마 군중들 틈에 섞여서 이 스타디움에서 열심히 달리는 육상선수들을 본 적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달리기 경기를 보면서 사도 바울이 하나 깨달은 영적 교훈이 있었습니다. 달리기 선수들이 저마다 열심히 달리는데 상은 딱 한 사람, 1등 한 사람만 받더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올림픽 경기에서 1,2,3등에게 상을 주지 않습니까?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주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것 없었습니다. 오직 1등한 사람 단 한명에게만 면류관을 상으로 씌워줍니다. 이런 경기를 지켜보면서 바울은 세 가지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을 깨닫습니다.

첫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나온 대로 운동장(스타디움)에서 달리는 선수들이 1등 상을 받기 위해 모두가 열심히 죽도록 뛰는 것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오늘 영적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 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달리기 선수들처럼 사력을 다해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달리기 선수들이 결승점을 통과하면 체력이 다 소진되어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눕는 장면을 보셨습니까? 다 뛰고도 체력이 남을 정도로 슬슬 뛰는 선수가 1등 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기왕 신앙생활 할 거면 대충 믿지 말고, 페이스 조절 하면서 슬슬 믿지 말고 화끈하게 제대로 믿어보자는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달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상 받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이 운동경기를 통해 깨달은 두 번째 교훈은 앞서 언급한 ‘절제’입니다. 이미 앞에서 설명을 드린 바처럼 운동선수가 절제하지 않고는 절대 상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절제하지 못하면 절대로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 자세라면 두 번째는 절제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절제할 줄 모르면 끝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의 상을 받기 위해 어떤 절제를 해야 할까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지요.

바울이 깨달은 세 번째 교훈은 ‘분명한 목표와 올바른 방향’입니다. 26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달음질’과 ‘싸우기’에 모두 방향이 중요합니다. ‘달음질’은 달리기 경기지요? 열심히 달려서 1등으로 골인했는데 알고 보니 엉뚱한 곳으로 갔어요? 1등입니까? 1등은커녕 꼴찌도 아니라 실격입니다. 지난 4월 28일 영국에서 마라톤 경기가 열렸는데 5천 명의 선수가 참석했지만 완주는 단 한 명이고 나머지는 다 실격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1등으로 달리던 선수는 무사히 골인지점에 잘 들어갔는데 뒤쳐져 2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길을 잘못 들었어요. 

그래서 그 뒤를 따르던 3등부터 5천등까지 몽땅 잘못된 길로 가서 전원 실격한 것이지요. 보세요. 아무리 빨리 뛰어도,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방향이 틀리면 끝입니다. ‘싸우기’는 권투경기지요. 권투선수가 펀치를 아무리 날려도 상대방을 정확히 가격하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허공에 주먹만 휘두르다 힘만 빠지지요. 그래서 정확한 목표와 방향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도 방향도 잘 잡으세요. 내가 왜 믿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저 복만 받아 잘 되려고 믿는다면 방향 잘못 잡은 겁니다. 물론 잘 믿으면 복 받지요.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어야 하고, 그래서 믿으려면 제대로 잘 믿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하는 겁니다. 또 기껏 나 하나 겨우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것만 바라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의 귀한 상급 받는, 면류관을 받는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기왕 믿을 거면 제대로 잘 믿고, 기왕 믿을 거면 상 받는 믿음 되기 바랍니다. 목표도 잘 잡고 방향도 잘 잡으세요.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잘 들어보세요. 운동선수들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상급을 받으려면 해야 할 일 세 가지, 첫째, 최선을 다해 열심히 믿어라! 둘째, 절제해야 한다! 셋째,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이 세 가지 교훈이 다 운동경기에서 얻은 것인데 여러분도 운동선수들처럼 이 세 가지 교훈을 잘 명심하고 지켜나간다면 반드시 1등 신앙인, 상 받고 면류관 받는 영광의 그리스도인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다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절제해야 할 것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인 ‘절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꼭 절제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 상급을 받기 위해 무엇을 그리도 절제하고 참아야 할까요? 우리는 성품, 습관, 언어, 생활 등등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참고 절제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지요. 우리의 성품에 있어 절제가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참고 인내하는 성품입니다. 자기 성질대로 하는 사람은 절제가 안 됩니다.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참아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급한 마음보다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습관에서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술 담배 같은 것도 절제해야 할 습관이지만 취미나 향락에 지나치게 빠져들면 신앙생활에 큰 방해가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취미를 너무 좋아해서, 사람 만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예배에 빠진 적이 있다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주일에는 반드시 예배부터 드리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기도나 말씀생활도 결국 습관입니다. 

신앙에 방해가 되는 나쁜 습관은 점차 끊어가고, 신앙에 도움이 되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절제입니다. 게으름 나태함은 우리의 영혼을 좀 먹는 아주 못된 습관입니다. 대충 살고 대충 믿으려는 적당주의도 마찬가지지요. 다 다스려야 합니다. 또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 하고 살면 절제 못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도 덕이 안 되는 말은 절제하세요. 남을 비하하는 말, 찌르고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마세요. 나 하고 싶은 말만 다 하고 남의 말 안 듣는 것도 절제하세요. 말과 습관에서 절제가 안 되면 우리는 뛰어보지도 못하고 끝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영생을 위해, 상급을 위해 무엇을 그리도 참아야 하나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기 위해 무엇을 그리도 참아야 할까요? 사실 우리에게는 절제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앞서 예를 든 성품이나 습관이나 언어 뿐 아니라 정말 너무 절제할 게 많아서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제일 절제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그 답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몰라서 절제를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결단을 못해서 못하는 것이지요. 

세상의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운동선수들은 그렇게 참고 절제하는데,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을 위해 내가 이것 하나 못 참을까? 우리가 복음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싸워보지도 못하고 시합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실격하지 않으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절제해야 할까? 이 시간 깊이 생각해 보고 결단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난 ‘그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내게 절제하라고 명령하신 것인 줄 알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기 바랍니다. 바로 ‘그것’을 절제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상급을 받고,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를 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1970년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어떤 권투선수가 세계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겪은 일이랍니다. 너무 가난하게 자란 이 선수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통닭이었는데 그날따라 통닭이 그렇게 먹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시합 전 겨우 계체량에 통과하고는 급히 몰래 사먹은 통닭이 탈이 나 경기를 망치고 말았다지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싸워보지도 못하고 탈락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싸워보지도 못하고 달려보지도 못하고 탈락하게 만드는 나의 ‘통닭’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며 그 나의 통닭을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잘 절제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향기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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