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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는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요 1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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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요 15:16-19)

이제 무덥고 힘들었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가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풍성함과 추수입니다. 들판에 영글어가는 곡식과 열매를 보는 우리 마음도 흐뭇한데, 일 년 내내 땀 흘려 수고했던 농부들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마 농부이신 하나님도 우리 성도라는 나무에 열린 열매를 보시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 예수님도 열매를 중요시 여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시면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버림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흔히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등의 성령의 열매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매는 사람입니다. 잠 11:30절에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것이 생명나무의 열매, 즉 사람을 열매로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시며 지상 최대의 명령을 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주어진지 2천년이 지났지만 세계 70억의 인구 중에 아직도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20억이 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과연 우리에게 불가능한 명령을 주셨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20억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아직도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지옥과 천국이 어떤 곳인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의 그 지상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교인숫자가 3만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조사해 보았는데, 교인 중에 직접 전도해서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인도한 숫자는 5%밖에 안 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석 가능한 교인이 5백 명이나 되는데, 올 해 전도한 인원이 현재까지 총 41명입니다. 전체 10%가 안 됩니다. 이 중에는 한 사람이 2-3명 전도한 것을 빼면 순수하게 전도한 인원은 29명 정도로 정말 5%가 채 안됩니다. 그러니 나머지 95% 이상은 단 한사람도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세상을 복음화 하는데 실패하는 데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영혼구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지를 안다면, 어떤 희생도 지불하고, 어떤 불편도 참고서 한 영혼을 구원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바칩니다. 공부가 중요하니 시간, 돈, 젊음을 다 바치며 공부합니다. 집이 중요하니 집을 사는데 안 먹고, 안 쓰고, 죽으라고 저축하고, 은행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삽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돈 생각지 않고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내 자식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의 자세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가 왜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1. 전도가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의 가치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한 의사가 사람의 영혼의 무게가 얼마인지를 알아냈다고 주장했습니다. 환자가 죽기 직전에 매우 섬세한 저울에 올려놓았답니다. 그리고 그 환자가 죽고 난 바로 직후에 다시 무게를 달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죽고 난 후 몸무게가 21g이 줄었답니다. 그래서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무게가 얼마가 되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막 8:36-37절에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귀하고 가치 있고 값비싼 것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명이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리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전도의 중요성과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한 영혼의 귀중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지옥 불에 떨어지고 영원히 죽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하면서 아직 믿지 않은 가족, 친척, 이웃의 영혼의 가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엄청난 죄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이미 지불된 그 구원의 완성,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주님의 그 선포를 잊지 마시고 영혼구원에 힘쓰시기를 축복합니다.  


2. 전도가 중요한 것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처한 위험성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누구나 다 구원을 얻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갑니다. 여기에 예외란 없습니다. 

요 3:18절을 보시면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아무리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남은 일은 심장이 멎는 순간 지옥으로 가는 일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지옥을 꾸며낸 이야기로 알고,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이야기로 안다면 일생일대의 최고의 착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옥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옥은 실존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영원한 고통이 있는 곳이며, 그곳은 스스로를 구해 낼 수도 없는 곳이며, 심지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1946년 12월 7일 아침에 미국 아틀란타 시에 있는 위네코프라는 호텔에서 대형화재가 있었습니다. 이 화재로 투숙객 304명 가운데 119명이 죽고 65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화재가 나자 사람들이 불길 속에서 살기위해 호텔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도로에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고압전선에 떨어져 감전되어 타 죽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나무 위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왜 이들이 죽음의 위험을 알면서도 뛰어 내렸습니까? 그것은 불이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뜨거우니까 고압선도 안보이고 도로도 안보입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의 불은 위네코프 호텔의 불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뛰어내릴 창문도 없습니다. 불길을 피할 수 있는 길이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영혼은 다 이렇게 불 심판을 받아야 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전도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영혼들이 처한 위험성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해야 합니다. 

미국 새들백교회 담임이시며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이신 릭 워렌 목사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때문입니다. 

그의 부친은 2년 정도의 암 투병을 한 후에 임종을 맞았는데,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암의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고, 돌아가시기 이틀 전 부터는 안절부절 못하시며 자꾸 일어나려 하셨습니다. 그때 그가 아버지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복음을 전해야겠다. 예수님을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시켜야 해!” 그의 부친은 한 시간 동안 이 말을 150번 정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임종하시기 전에 릭 워렌 목사님의 머리위에 손을 올리시고는 “아들아, 예수님을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해라. 예수님을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란 말이다. 예수님을 위해서”라고 마지막 유언의 말을 남기셨습니다. 

이때부터 릭 워렌 목사님은 자신의 인생을 전도하는 목적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릭 워렌 목사님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전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릭 워렌 목사님처럼 될 수도, 될 필요도 없지만 그의 가슴에 불을 붙였던 그 사명의 말은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3. 전도가 중요한 것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지불하신 대가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여섯 번째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죄의 빚은 완전히 갚았다. 완성되었다”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보다 더 귀하신 예수님께서 생명을 대신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이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이 우리는 그저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생명을 대신 희생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예수님께서 우리 죄의 빚을 위해 지불하신 고통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 거기서 영원히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속의 대가보다 비싼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여러분, 혹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가보셨습니까? 그 신생아실에서는 엄마들의 얼굴에 슬픈 얼굴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들 기뻐합니다. 아빠나 할머니나 누구나 다 미소를 짓습니다. 새 생명 때문입니다. 우는 사람도 있으나 슬퍼 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기뻐서 웁니다. 

그런데 이러한 새 생명의 탄생까지는 산모의 엄청난 고통이 있습니다. 임신한 후부터 10개월간 불편하고 힘든 몸을 견뎌야 합니다. 또한 출산시 엄청난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가 있어야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을 보면 기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일꾼 되어 충성하는 것을 보면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먼저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힘들고 어렵지만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과 눈물과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데 우리는 아직 살아 존재하는 것일까요? 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우리는 먼저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것일까요? 여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예수를 믿기로 작정 된 사람들이 아직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전도는 내가 감당해야 할 최고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전도대상자를 놓고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아니 일주일에 혹은 한 달에 단 한번이라도 기도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가고 전화하고 있습니까?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물질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투자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신앙생활에 전도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내가 이 땅에 보냄 받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많은 나라 중에 대한민국에, 대한민국 중에 포항 땅에, 포항에서도 이 땅에 있는 많은 교회가운데서도 우리 교회에 보내신 데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내게 맡기실 일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구원해야 할 영혼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매월 둘째 주일을 전교인 전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 영혼의 소중함을 기억하시고, 남은 후반기에 더욱 전도에 최선을 다하셔서, 우리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선택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복된 삶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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