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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횃불 언약 (창 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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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언약 (창 15:1-17)
  
한 번만 불의와 타협하면, 부귀영화를 얻었을 텐데, 원칙대로, 말씀대로, 양심을 따라 살다가, 오해 받고, 손해 본 적이 없는가? 그래서 후회하거나, 섭섭한 마음을 가진 적은 없었나? 아브람이 그랬다. 한 번만 불의를 받아들이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아브람은 포기했다. 
  
오늘 배경은 (창14장)이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21中)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고 했다. 당신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내 백성들을 구했으니, 백성들은 돌려주고, 전리품으로 얻은 모든 재물은, 다 당신이 가지라고 했다. 그때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택한다.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왕이 주는 제물을 받으면, 아브람을 부자로 만든 것은, 소돔 왕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제물받기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브람이 천막에 들어와 생각해보니, 빼앗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하며, 후회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손해 볼 수 있는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이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복을 주겠다고 말씀했다. 

1.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산 아브람에게 주는 복은 무엇인가? 

(1) 방패가 되어 준다(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후에’는 말씀을 붙들고, 전리품을 다 돌려보낸 이후다. 

그때 하나님이 ‘네 방패’라며, 아브람을 안전히 지켜주겠다고 했다. 아브람은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타향에서 객지생활을 하는 유량자로서, 의지할 것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방패가 되어서,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말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되었다. 

방패는 싸움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도구다. 인생은 태어나는 그날부터, 죽는 날까지, 전쟁의 연속이다. 안팎에서 나를 공격해 온다. 환경, 병, 사람들이 공격해 온다. 그러나 나를 막아 주는 분과 방패가 있으면 된다. 지금도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를, 하나님은 지켜주는 보호자가 된다. 

(2)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1下).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상만 주지 않고, 상급 자체가 되어 준다다는 말이다. 

여기서 상급은 사카르(ר󰗇󰙻)로, “이득, 가치”를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고 따를 때, 이득이 되고, 가치가 되어 주신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따르기 위해, 죄악이 넘치는 풍요로운 요단들을 선택하지 않았고, 기근이 있던 가나안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한 손길이, 결코 손해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는 나중에 천국을 소유하기에, 영적인 면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손해 보지 않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3) 네 씨가 상속자가 된다(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은 집에서 길린 자, 내 집에서 태어난 종의 자식이, 상속자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자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약속을, 믿지 못하자,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끌고 나와, 말씀했다. 

(5中)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내가 있는 조그만 천막을, 전부로 생각하지 말고, 하늘의 별들을 보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을, 내가 만들었다. 셀 수 있느냐? 아브람이 도저히 셀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혼자지만, 네 후손은 저 별들보다, 더 많은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손해 보았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직 자식이 없지만,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었다. 믿음으로 살면, 결코 손해가 아니다. 

(4) 땅을 주어 소유자가 된다(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아브람이 믿자, 땅을 주겠다고 했다.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땅에서 시작된다. 

아브람은 새로운 민족을 이루도록, 땅을 보장받았다. 땅의 보장은, 먹을 것이 포함되는 계약이다.  그때 아브람은 아직 믿음이 부족하여, 약속에 확신이 서지 않아, 하나님께, 조금 더 확실한 증언을 요구했다. 


2. 확실한 약속을 달라(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우리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태도는, 잘못된 믿음이다. 

우리의 고민된 마음을, 하나님께 다 털어놓기 바란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만이, 해답을 얻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을 맺자며, 제물을 준비하게 한다. (9中)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무 짐승이나 가지고 와서, 언약을 맺을 수 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소, 양, 염소, 비둘기, 이 4가지를 드렸다. 보통은, 1가지 제물만 드렸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람은, 4가지 제물을 한꺼번에, 모두 다 드렸다. 성경에서 제사에 필요한 짐승을 모두 하나님께 드린 것은, 이곳 밖에 없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제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언제나 최선을 다할 때, 받는다. (10-11)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는 제사 형식은, 고대 근동 국가에서, 언약을 체결한 후, 이를 보증하던 관습이다. 언약은 히브리어로 베리트(תי󰙞󰔶)다. 바라(ה󰙜󰔯, 함께 먹다, 고르다, 선택하다.)라는 뜻에서 왔다. 그런데 언약을 맺으려면, 실행해야할 의무가 있다. 카라트 베리트(תי󰙞󰔶 ת󰙝󰗏)가 되어야 한다. 

‘카라트’(자르다, 둘로 쪼갠다.)이다. 그래서 계약을 맺는다는, 둘로 쪼갠다는 뜻이다. 아브람과의 계약에서, 계약의 정신이 드러난다. 함께 먹고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계약은, 평화롭게 식물을 같이 먹기 위함이다. 계약은 공평하게 재물을 쪼갬으로, 계약이 이루어진다. 

짐승을 죽여 반으로 갈라, 마주 보이도록 놓고, 그 고기 사이를 계약당사자가 지나감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는 생명을 담보로, 성실히 그 언약을 지키겠다는 의미한다. 만약에 어길 경우에는, 죽음이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당시 일반화된 관습을 따라, 손수 보증해 주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 측이,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앉는 이유가 무엇일까? ① 관행을 따라서 ② 부조금 관리가 쉬워서 ③ 양쪽 가문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 답은 여기에 없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고 앉지만, 양쪽으로 나뉘어 앉은 모습은, 언약을 맺는 모습이다. 

자신이 맺은 언약은,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지키겠다는 맹세의식이다. 따라서 이 언약을 파기하면, 갈라놓은 짐승처럼, 죽음을 당하게 되니, 꼭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이다. 만약에 이 언약을 어기면, 제물처럼 된다는 의미다. 곧, 죽음을 걸고 하는, 언약식이었다. 

여기에서 새는 쪼개지 않았는데, 새는 조각으로 자를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다.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어떤 주석은 (레1:17-19)에, 새는 쪼개지 않고, 통째로 불에 태우도록 규정을 했다면서, 쪼개지 않음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17上)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했다. 찢되(솨싸 ע󰘎󰚂, 찢다, 쪼개다, 가르다는 말이다.) 아주 ‘찢지’ 말고(바달, ל󰕈󰔯, 나누다, 완전히 분리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쪼개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쪼개야 피의 제사가 된다. 

아브람은 쪼갠 짐승들의 피를 드렸고, 하나님은 이 피를 받았다. 이 피는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확인하는 피였다. 피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구약에는 짐승의 피로, 신약에는 예수님의 피로, 약속을 맺게 된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사랑을 맺는다. 

온전히 쪼개지 않았을 때, 솔개는 사체위에 내렸고, 아브람이 쫓았다. 솔개는 맹금류이다. 솔개는 (아이트, ט󰖹󰘞 몹시 굶주린 새), ‘이트’(טי󰘟 급습하다, 덮치다, 꾸짖다.)라는 말에서 파생됐다. 8번 사용되었는데, 좋지 않은 의미이다. 

이사야는 독수리, 예레미야는 매, 에스겔 선지자는 ‘움키는 것’으로 사용했다. 본문은 짐승의 사체 위에 달려들어, 썩은 것을 먹는, 솔개로 번역했다. 좋은 의미의 독수리는, 네세르(ר󰚆󰗾)이다(사40:31). 사체를 먹기 위해 접근했기에, 솔개로 번역했다. 솔개는 죽은 것을 먹는다. 

죽은 것(페게르, ר󰔻󰘵), ‘누그러지게 하다, 기진하다, 피곤하다.’는 말에서 왔다. 아말렉은 약하거나 피곤하여, 뒤에 떨어진 자를 공격한다(신25:18). 장차 원수에게, 고난 받는 이스라엘을, 예표 한다고 보는데,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냄을 멸망당하지 않고, 원수들을 격파함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3. 무조건적인 은혜(12-16).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깊은 잠(타르데마)로, ‘혼수상태’ 같은 잠을 말한다. 라담(ם󰕈󰙜, 기절하다, 정신을 잃게 하다)에서 파생되었다. 요나가 이런 잠을 잤다. 아브람은 깊은 잠에 들어 있었다. 이는 아브람이 구원을 위해, 잠만 잤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로, 구원받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이 땅을 주지 않았다. 400년 후에, 4대 만에, 이 땅을 네 후손들이, 차지하게 된다. 하나님은 400년이 지나서, 이 땅을 아브람의 후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객이 되어, 나그네 된 서러움을 당하다가, 큰 재물을 얻어서,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온다. 

믿음의 훈련이 되지 않았을 때, 훈련을 받고, 성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믿음 없는 행동이 가정과, 자녀들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흑암의 세계를 말한다.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더욱 찬연히 빛이 날 것이다. 

믿음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믿음이 자라난 것처럼, 아브람의 후손들도 이방 나라에서 방황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될 것이라는, 계획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전혀 고생이 없고, 슬픔이 없고, 괴로움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삶에도, 시련과 고난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시련과 고난 속에는 미래가 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고난은, 혼자당하는 고난이니,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가? 

성도는 하나님이 내게 주실 평화를, 믿어야만 한다. 불안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평화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바란다. 아브람과의 피의 언약은, 갈보리의 보혈을 예표 한다. 갈보리에서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언약을 했다.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장면이, 매우 이상하지만, 이 부분을 읽을 때, 눈물이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성경의 가장 위대한, 내용 중의 하나다. 

그 사이로 횃불이 지나갔음은, 하나님이 언약을 맺은 행위이다. ‘화로’와 ‘타는 횃불’은 소위 “신의 현현”이다. (출3장)의 떨기나무에, 타는 불과도 같다. 하나님의 현현은, 사람의 눈에 보이고, 들을 수 있게, 실제적으로 시공간에 나타남을 말한다. 

하나님이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갔다. 그러므로 이 제사는, 응답되었다는 뜻이다. 계약을 맺을 때, 당사자가 그 가운데를 지나가는데, 이 계약에서는 하나님만 지나갔다. 이는 쌍방 의무계약이 아니라, 일방 계약임을 보여준다. 부패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할 수 없다. 

아브람의 신실함과 관계없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당신의 명예를 걸고, 친히 주도적으로 이루어 감을, 이 행동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일의 성취를 위해, 믿음으로 기대하며, 기도할 뿐, 다른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구원은, 일방적인 언약 때문에 이루어진다. 

만약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면, 쪼개진 고기처럼, 하나님이 죽는다는 약속이다. 놀라운 일은 인간이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 된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기 위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해서, 육체로 오셨고, 그 사랑의 극치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했다. 하나님이 한 약속은, 결단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문제와 해결의 연속이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우리를 쓰러뜨리거나 진보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 혼자 하지 말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라.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생에서 겪게 될 문제들을 통해, 어떻게 선을 이루어 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언약을 세우신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다. 

  
결론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만 남아 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그러나 쉰천지나 다미선교회 같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면, 정신병자와 같이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가짜의 피해를 많은 사람들이 입고 있다. 

쉰천지 같은 이단은, 예수님의 영이 자기에게 임해, 구원을 받으려면 쉰천지에 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말하기 참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다시 분명히 오신다. 다시 오셔서 심판하신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분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살기가 힘들다고,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떠나지 말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자. 하나님이 세운 언약은, 우리를 구원해 주기 원한다.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하자. 언약하신 바에 대해서, 결코 변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믿는바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고, 확신이 없을 때, 피로서 세운 주님의 나라를 기억하고 꽉 붙들자!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약속을 믿고 있는지 살펴보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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