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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요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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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요 14:1-7)

이제 곧 추석명절입니다. 추석은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이번 추석을 통해서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시고, 가족 간에 귀한 사랑을 나누는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매년 추석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민족대이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합니다. 평소 걸리는 시간보다 몇 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고생길입니다. 오가는 길이 힘들고 고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해마다 고향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고향은 모든 사람의 안식처입니다. 세월이 변해도 고향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과 삶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향이야말로, 세상살이에 피곤하고 지친 인생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는 곳입니다. 제아무리 출세를 했어도, 혹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해도, 고향은 변함없이 대해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무릅쓰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육신의 고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영혼의 고향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 주시고,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가시는 길을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 3년 동안 단 한 번도 제자들만 버려두고 먼 곳을 떠나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에게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년 동안 자신들을 인도하였고, 자신들의 정신적인 기둥이었던 예수님이 자신들을 버려두고 떠나가신다는 말을 듣자 제자들은 깊은 근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본문 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2-3절에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내 아버지 집”이란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육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흥해에서 태어나 이곳에서만 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각지에서 이곳으로 오셔서 생활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비록 육신의 고향은 다르지만 우리가 가야할 본향은 같습니다.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천국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이 흥해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아닙니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서울 등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아니고 우리의 고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3: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라”고 했고, 고후 5:1-2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벧후 3:13절에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면서 천국을 소망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이 사모해야 할 곳은 바로 영원한 안식처요, 우리 영혼의 고향인 저 천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라는 우리 모두의 진정한 본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것처럼 불쌍한 일도 없습니다. 추석 때만 되면 망향의 한을 품고, 슬픔 속에 있는 실향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갈 수 있는데도 가는 방법을 몰라서 못가고 있다면 더더욱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을 보세요. 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예수님께 무엇이라고 합니까?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이 질문에서 우리가 놀라는 것은 제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주님의 능력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시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제자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오랫동안 믿었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이 바로 영원한 천국을 위한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제자들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곧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길입니까? 아버지께로 가는 길입니다. 천국의 길입니다. 

딤전 2: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죄로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히 10:20절에서 이 길을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여러 길 중에 그저 하나의 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 가는 길이 어디 예수뿐이겠는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종교다원주의 사상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 같다. 어느 종교든 구원이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행 4: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슬람교도였던 한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깨닫게 되고, 영접하게 되어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회교 공동체 집회에 잡혀 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왜 마호메트를 배신하고 기독교로 개종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세상을 살면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 죽은 사람이 한 사람 누워 있고, 그 옆에는 산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까?” 

이에 회교인들이 “우리를 놀리느냐, 당연히 산 사람에게 물어 보아야지.”라고 하자 그는 “제가 보니 마호메트는 죽어서 그 무덤이 메카에 있고, 예수님은 무덤이 없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마호메트에게 길을 묻는 대신에 살아계신 예수님께 길을 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어딘가에 분명히 천국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길을 모릅니다. 길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그러므로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사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소망과 기쁨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착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물질의 복도 받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를 안 믿어도 얼마든지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예수를 안 믿어도 얼마든지 부자도 되고, 건강하게 살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구원입니다. 구원이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국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들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성경은 육신의 삶을 ‘나그네’와 ‘행인’에 비유하였습니다. 하룻밤 쉬어 가는 행인 같은 존재들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유행가 중에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이란 두지 말라.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그렇습니다. 모든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있는 곳은 영원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떠날 곳, 떠날 날이 있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지금 이 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은 내 소유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은 후에도 땅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서만 땅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만 천국을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땅에 살면서도 누릴 구원의 축복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죽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참 자유 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평안한 삶, 참으로 만족하고 감사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용기 있는 삶, 담대한 삶, 아름다운 삶,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구원 받은 자의 삶이요, 천국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천국 백성의 삶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들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참으로 불쌍한 사람은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다리는 가족이 없고, 돌아가서 육신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육신이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보다 더 가련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훗날 내 영혼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 영혼이 돌아가 편히 안식할 영혼의 집이 없는 사람. 돌아갈 본향이 어디인지 그 길을 알 수 없는 사람. 이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도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떠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성도가 가야 할 진정한 고향은 이 땅에 있는 고향이 아닙니다. 자동차 타고,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는 고향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시면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고,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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