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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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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롬 12:1-2)


하나님의 사람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낙심도 넉넉히 이기게 하는 하늘의 소망을 품게 합니다.  믿음은 어떤 흑암의 권세도 이길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공급해 줍니다.  무엇보다 믿음은 모든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해 줍니다.  비록 실개천 같은 작은 믿음이라고 할지라도 그 믿음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넉넉히 이기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믿든 못 믿든 한 주간을 믿음으로 살면서 늘 한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계략과 방법들 앞에서 늘 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쓰는 방법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쓰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언제나 두 가지의 방법 앞에서 갈등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의 계략과 방법들에서 나온 행위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행위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는 행위를 선택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 조카 롯과 함께 기나긴 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길에서 그들은 상당히 많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분가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때 조카 롯은 인간의 눈에 좋은 땅을 차지하겠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과 방법 앞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아브라함이 차지했던 그 땅은 훗날에 거룩한 땅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에스더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하만을 보십시오.  하만은 인간적인 지혜와 잔꾀를 가지고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협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하만이 승리하는 줄 알았습니다.  모르드개도 처음에는 하만의 인간적인 방법 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풀어 가시는지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위기의 순간에 절대 은혜의 사건을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높이 세웠던 단두대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방법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는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 자에게 제일 되고 가장 근본적인 삶의 원리는 모든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말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통로로서의 귀한 삶이 될 수 있는 길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체취가 강하게 풍기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잔꾀나 재주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는 기독교인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만족하는 교인으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의 내용이 있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세상은 교회를 향해 아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래가지고 교회가 될까?"  교회가 세속적인 세상을 염려하고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잘못되었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 땅에 기독교인들은 많은데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의 마당을 밟는 교인들은 많은데 주님의 삶을 살아 드리는 제자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던 원인을 아십니까?  혹자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심판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1차적인 원인은 맞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최종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성경을 정확하게 보십시오.  창세기 18장을 읽어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은 그 곳에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다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세상은 원래 죄악 가운데 있습니다.  세상은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그 타락한 세상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믿음의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보시면 하나님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십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이 세상을 향해 보시다가 의를 행하는 믿음의 사람을 보시면 자랑하고 싶어서 못 견뎌 하십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욥입니다.  욥기 1장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욥을 보시고 얼마나 자랑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욥을 너무 자랑하시니까 사탄이 질투했습니다.  그것이 욥기 1장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사탄이 질투할 정도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그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외쳤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모름지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하여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이 한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 땅 위에 나타났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저들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서 증인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에게 최고의 능력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 시대 속에서 보는 눈이 복이 있습니다.  듣는 귀가 복이 있습니다.  내 영혼의 가장 고귀하고 고상한 기품을 한 번 가져 보는 길은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려야만 살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저들은 저들대로 가게 하고, 우리는 믿음의 사람답게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저들이 가는 길과 우리가 가는 길은 차원이 다릅니다.  저들이 가는 길은 저주의 길이요, 우리가 가는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저들이 가는 길은 사망의 길이요, 우리가 가는 길은 영생의 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믿는다면 그는 세상을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흉내내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다."  사도 바울, 그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의 잔꾀와 재주를 부리려면 부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들을 모두 배설물 같이 내버리고 사람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자신의 삶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학문을 자랑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문을 자랑한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던 그 삶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때가 되면 모두가 저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주님 앞에서 고백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자녀들과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 무엇이어야 할까요?

내가 세상에서 공부를 참으로 많이 했다고 자신의 학문을 자랑할까요?  아니면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재물을 자랑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명예를 자랑할까요?

다 부질 없는 짓입니다.  저는 이 한 마디의 말이면 족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에게도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왔다.  주님께서 나의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본문 2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타락한 세상 문화나 세상 사람들의 행동을 본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들 세상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 생각과 행동으로 산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산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맛보게 될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의 마음을 유일한 구원자이신 주님께만 두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생명의 기쁨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은 이 진리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예수는 분명히 좋은 분이시지만 꼭 예수만이어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사람들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때문에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절대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절대적 신앙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상대적 신앙으로 예수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구원의 길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과 길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양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푸른 초장과 쉴만한 곳으로 자신들을 인도해 줄 목자입니다.  목자는 피곤한 양들에게 휴식과 안정을 줍니다.  사실 자세히 보면 양들은 끝없이 방황합니다.  끝없이 싸웁니다.  양들은 생존을 위해 그 작고 족진 발로 맹수들에게 쫓기며 한없이 걸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몸을 쉬게 할 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수십 kg의 몸을 조그만 두 발에 의지하고 다닙니다.  더구나 여인들은 그 작은 하이힐 뾰족한 굽에 의지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 피곤함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휴식과 참된 평안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들에게 진정한 휴식과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 휴식과 참된 평안이 더 많은 재물을 얻으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재물의 팽창이 일어나도 정신적인 팽창이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망하고 맙니다.  소련이나 동유럽이 왜 무너졌습니까?  그들에게 사상은 있었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투쟁은 있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가 없으면 무너집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과 명예가 있다고 해도 예수가 없으면 아침의 안개와 같이 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됩니다.  서유럽을 보십시오.  저들은 12세기까지 절대 다수가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의 조상은 바이킹으로 해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의 문명을 이끌어 가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해답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증거 되는 그 영혼 속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그 마음을 두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평안을 얻은 사람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가득한 생수의 강이 우리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 깊은 곳에서 이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변치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변치 말고 예수님만을 의지해야 됩니다.  변치 말고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로만 두어야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 예수님 안에서 삶의 행복을 찾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인생의 유일한 휴식의 현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풀밭이 펼쳐집니다.

모든 생명체는 무엇인가를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볼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방황하는 모든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그 방황은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모든 인생들에게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생활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좋은 분이시지만 꼭 예수님만 아니어도 된다는 그릇된 다원주의적인 사상을 멀리하십시오.  예수님도 좋고, 세상도 좋다는 것은 아담 이래로 사탄이 우리 인간을 유혹하는 전략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속아넘어가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때마다 이렇게 노래하며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편할 수 있는 방법, 우리의 마음이 어떤 풍랑과 고난 앞에서도 든든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주님께 두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번째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몸된 교회에 두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마땅히 그 마음이 주님께로만 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주님은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들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며 구원된 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셔서 우리들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르치기를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그가 쓴 기독교 강요라는 책에서 교회의 필연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지하고 게을러서, 게다가 기질이 변덕스럽기까지 하여 우리 속에 믿음을 낳고 키워가고 그 목표에 이를 수 있도록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교회를 주셨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흥왕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보배를 교회 안에 간직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칼빈은 교회를 가리켜 "신자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그 뱃속에서 잉태하고, 낳고, 가슴의 젖으로 우리를 양육하며, 또한 마지막으로 우리가 죽을 육체를 벗고 천사들과 같이 되기까지 그 보살핌과 기도 아래 우리를 지키는 것처럼 교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는 평생토록 교회라는 학교의 학생들로 있어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 나타납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힘써 모이는 곳에는 역사가 일어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성냥불 하나는 콧바람에도 쉽게 꺼집니다.  그러나 불길이 모이고 커지면 태풍도 그것을 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불길은 마을을 삼키고 산야를 태웁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께로만 마음을 둔 주님의 제자들은 당연히 주의 몸된 교회에 그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모여야 합니다.  잘 모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입니다.  우리가 힘써 모일 때 주님은 일하십니다.  모임을 등한히 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사모하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을 사랑하십시오.  힘들고 바쁠 때일수록 더 모이기를 즐거워하십시오.  모이기를 즐거워한다는 것은 그 마음이 교회에 두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에만 나오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성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언제나 교회로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구세군 창설자 부츠 대장은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소홀히 생각하지 마라.  주의 성령도 주의 제자들이 모일 때 임했고, 주의 재림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임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의 모임은 생명과도 맞바꾸어야 할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백화점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백화점에 얼마나 잘 데리고 갑니까?  교회는 학교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6년이나 3년 있다가 졸업하고 말 학교에는 자녀들을 부지런히 보내면서 영원히 살아야 할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왜 데리고 나오지 않는 것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이 나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 실수한 사람이나 잘못된 일들을 보고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통 사고가 많다고 해서 자동차 무용론을 주장하시겠습니까?  속지 마십시오.  변명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을 세상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에 두십시오.  그리고 모이기를 힘쓰고 즐거워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더니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 시대의 부흥 운동도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의 모임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도 성도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폭발되었습니다.  이 땅의 평양 대부흥운동도 성도들의 모임에서 일어났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모일 때 주의 성령께서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주님을 찬양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관심인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마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당연히 잃어버린 영혼들, 세상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 불쌍한 영혼들에게 두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대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아니, 오늘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불행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하는 데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울타리 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울타리 밖에 있는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역사를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사역의 중심에는 잃어버린 방황하는 영혼들을 불러 주님의 제자로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주님의 제자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아니라 저 밖에서 방황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병들었을 때에 생기는 첫 번째 증상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상실한 사람, 세상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는 사람,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병든 신앙인입니다.

이 시간 자신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있습니까?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목자의 수고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집나간 아이를 찾아 나서는 아버지의 애 타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것이 없다면 당신은 병든 신앙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맏아들이 집을 나갔습니다.  맏아들은 집을 나간 이후 십년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환갑날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친구분들을 초청하고 동네 어른들을 초청해서 거나하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얼굴은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눈길은 대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둘째가 아버지를 위로한답시고 한 마디를 합니다.
"아버지, 집을 나간 형님은 이제 잊어버리세요.  십년이 넘게 연락도 없는 형님은 자식도 아닙니다.  제가 형님 몫까지 해서 아버지를 잘 모실게요.  오늘 마음껏 즐기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아닙니다.  아버지는 지금 잔치에는 전혀 마음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오직 십년 전에 집을 나간 맏아들에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전도에 두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면 하늘 나라에서는 하나님께서 일어나 춤을 추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잔치입니다.  구원의 잔치입니다.  생명의 잔치입니다.  최고의 천국 잔치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날마다 이 생명의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잔치가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서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거리로 나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그냥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믿어야 합니다.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보람되게 믿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상급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따라 살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마음을 전심으로 주님께 두고 있다면 당연히 그 마음은 주님의 몸된 교회로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저들로 하여금 이 자리를 채우는데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 가운데 참된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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