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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고후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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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고후 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7∼10절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로마총독의 사형선고를 받고 유대인들의 참소를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 조금 더 깊이 알고 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실 로마의 정부도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에게 손을 대거나 죽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해서 죽으시고, 스스로 생명을 십자가에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자기 생명을 내놓지 아니하면 바로 우리가 버림받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죄와 허물, 질병과 허약함, 저주와 가난, 죽음과 음부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기 위해 자원해서 자기 생명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 알 수 있는 십자가 사건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은 예수의 부활과 생명을 우리 몸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우리 죽음, 예수 부활 우리 부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우리의 죽음으로 걸머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바라보면 보혈의 은혜가 우리의 의가 되고 거룩함이 되고 건강이 되고 축복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그 은혜를 우리의 삶 전체로 받아들여 누리며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깊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1.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음

성경은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흙에서 빚어진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를 담아 놓은 질그릇입니다. 예수님은 보배중의 보배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담고 있는 질그릇이므로 얼마나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질그릇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예수님이 보배이기 때문에 질그릇을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때문에 우리를 멸하려고 하는 여러 가지 험한 일들이 다가와도 종국적으로 우리를 멸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한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무엇도 그분을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조차도 멸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기고 그리스도 품에 안겨있는 우리들을 흔들거나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험하고 심한 광풍이 아무리 불어와도 예수님과 같이 있으면 예수님은 광풍을 피하는 안식처가 되십니다. 폭우가 내려와서 온 도시가 물에 잠길지라도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면 폭우를 가리 우는 자가 될 것이고, 메마른 땅에서 의지할 곳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메마른 땅에 냇물이 되어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습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고달픈 곳에서 유일한 바위 그늘이 돼 주셔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성경학자들이 조사해 본 결과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말이 365번이나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매일 한 번씩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질그릇이지만,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니 죄가 와도 두렵지 않고, 허물이 와도 두렵지 않고, 병이 와도 두렵지 않고, 저주가 와도 두렵지 않고,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참으로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가 죄와 허물, 질병과 저주 그리고 죽음으로 우리를 우겨싸서 위협하고 있으나,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을 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모든 것들을 다 청산해 버리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기록합니다. 죄와 허물의 종, 질병과 가난의 종, 낭패와 실망의 종, 고통과 죽음의 종이 되어 끌려 다니는 마귀의 종노릇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를 붙들고 마음에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부탁하시듯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얼마나 원하시는 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음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 답답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게 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겨납니까? 정말 답답한 일이 많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답답한 일을 다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며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3편 4절에서 5절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도 주께서 같이 하시므로 우리는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원수가 오면 원수 앞에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가 찾아와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셔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46절로 48절은 “야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의 힘이요 담대함이요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십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형용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격려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로 2절은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 이같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담대해야 됩니다. 우리는 겁을 내지 말고 스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마음으로 원수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시편 3편 6절에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스스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귀 앞에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 27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어두운데 빛이 비춰서 흑암 가운데 떨어지지 않고 구원이 되어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생명의 능력이 되시니 살아있는 힘이 되시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이와같은 말씀을 의지하면 마음에 굉장한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이 자리에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맙시다. 답답한 일을 당하면 주님께 나와 기도하고 주님께 맡기고 기다리면 주님께서 우리의 답답한 것들을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3.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음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박해하고 돌보지 않고 쫓아내버리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소외를 당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온 세상이 다 우리를 버려도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형제들에게 핍박을 받고 소외돼 애굽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그가 바로의 장군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갔지만 주님께서 요셉을 통해 그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는 것마다 일이 잘됩니다. 그러나 보디발 아내의 참소로 감옥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서도 간수장을 도와 죄수들을 돌보아 주는데 복이 임하니 간수장이 모든 일들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나중에는 요셉을 애굽 왕 바로가 불러다가 국무총리를 시켰는데 요셉이 국무총리로 앉자 애굽의 모든 국사가 형통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박해를 받아도 버림 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만사에 형통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이 핍박하면 하나님이 더 사랑해 주시고 세상의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은 그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형통케 해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로 12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박해하면 하나님께서 보응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를 더 잘되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깨달아 알게 만들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 아무리 핍박을 당해도 절대로 버림받은 소외된 사람들이 될 수 없습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이 다가와도 곤고가 다가와도 박해가 와도 기근이 와도 적신이 와도 위험이 와도 죽음이 와도 예수를 믿는 우리는 버림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음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죽임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죽음입니다. 우리가 그 십자가를 우리 몸에 걸머지면,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께서 가져가고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불의를 사망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살아났으니 우리도 이겨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마귀의 궤계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셨으나, 망하지 아니하고 살아나셨으므로 우리도 항상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으나 사망권세를 모두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거꾸러뜨림을 당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부활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18절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합니다. 이제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므로 우리가 죽음의 고통이 있으면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의 부활을 주장해야 됩니다. 

이제 예수님의 의로움은 우리의 것이고 예수님의 거룩함도 우리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건강은 우리의 건강이고 예수님의 축복은 우리의 축복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 아니고 학문도 아니며 삶을 통해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기록된 것처럼 전인적인 삼중축복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가 깨어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반드시 이뤄주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은 바람처럼 우리 곁에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 성령이 그 기도를 받아서 가족 가운데 역사하시고,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은 그 기도를 받아서 사업장에 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적인 존재이며, 4차원적인 존재로서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기록합니다.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부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가 바람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로 14절은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에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하고 어느 민족에게도 꾸어주더라도 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극빈 국가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란 보배를 우리의 삶이란 질그릇에 모시면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 진치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누가 감히 예수님의 생명을 짓밟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마귀가 강력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생명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으니 우리는 정말 최고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장차 천당에 갈 것만을 생각하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장차 천당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살고 있을 동안에도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게 되므로 끊임없이 예수의 생명이 성령을 통해 나타나 우리의 삶에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주셨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의 몸으로 짊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예수님의 생명만이 우리 몸에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인도하시고 도와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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