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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믿음의 명문 가문을 만들라 (출 32: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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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명문 가문을 만들라 (출 32:25-29) 

오늘 설교 제목은 ‘믿음의 명문 가문을 만들라.’는 제목입니다. 저는 제 본이 평창 이 씨입니다. 평창 이 씨 혹시 아세요? 잘 모르시죠? 전주 이씨, 경주 이 씨 하면 잘 아실 거예요. 저도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도 좀 이왕이면 전주 이 씨 정도 되지. 왜 조그만 평창 이 씨인가? 어디가 누가 물어도 잘 몰라요. 평창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고 이승복 때문에 그나마 알고 동계 올림픽 때문에 조금 알지. 평창이 어딘지 잘 몰라요. 얘기하면 감자바위 뭐 그렇게 아는데 잘 몰라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언젠가 한 번 누가 평창 이 씨 족보를 보내줘서 그것을 봤더니 거기에 아주 훌륭한 조상이 계시더라구요. 그분이 누구냐 하면 한국 최초로 영세를 받은 분이예요. 그리고 한국 천주교 설립자 중에 한 사람 이예요. ‘이승훈’ 선생! 참 대단한 분이죠. 그분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분이예요. 이분이 참 훌륭한 신앙인 이예요. 그리고 그 가정에서 네 명의 순교자가 나왔어요. 그분도 물론 1801년 서대문밖 광장에서 형을 받아서 순교했어요. 참 그런 순교자의 조상이 우리 가문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이제 누가 물어보면 당당히 ‘평창 이 씨’입니다.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가문을 자랑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요. 제가 제주도에 2년 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가면 곶자왈 환상 숲이라는 자연 생태 그대로 보존해 놓은 숲이 있어요. 거기를 누가 소개해서 갔더니 정말 좋더라구요. 자매가 안내를 잘 해줘서 잘 듣고 돌아와서 가려하는데 차를 한잔 하고 가라고 해서 그 마루턱에 앉았더니 할머니 한 분이 대접을 해요. 

그런데 그 환상 숲 대표이름을 보니까 ‘이형철’씨예요.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어디 이 씨냐고 물어봤더니 그 할머니가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평창 이 씨라는거예요. 그래서 나도 그렇다니까 할머니가 너무 반가워하는 거예요. 내가 제주도 와서 평창 이 씨를 처음 만났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할머니 집에 좀 자고 가라고 하고 밥도 먹고 가라고 하고 그렇게 반가워하시는 거예요. 

그분은 평창에 계시다가 온 가족이 해남으로 내려가셨대요. 거기서 백년 이상 사시다가 제주도로 건너가신 거예요. 그러다가 제주도에서 처음 평창 이 씨를 만나니까 그렇게 반가워요. 그 집 아들 주인인 이형철씨가 그 동네 통합측 교회 안수집사예요. 그래서 제가 목사라고 하니까 더 반가워하더라구요. 이렇게 평창 이 씨가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그 다음에 다시 한 번 갔더니 평창 이 씨라고 아예 돈도 안받더라구요. 그런 일도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인터넷에 보니까 풍양 조 씨에 대해서 기사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 풍양 조 씨는 조선 후기 막강한 세도 정치를 폈던 그런 가문이었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그 조상들이 굉장한 공을 세워서 나라에 상을 받은 집안 이예요. 그런데 경북 상주에 가면 풍양 조 씨 연수원이 있어요.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그 후손들을 다 모아 놓고 한 주간씩 연수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강사들, 집안의 훌륭한 강사들을 모셔다가 대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강의를 하는데 그 구호가 ‘가문의 영광을 우리가 잇는다.’ 그거예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먹고 자고 교육받고 그리고 떠날 때에는 풍양 조 씨 가문에서 200만원씩 장학금을 줘서 보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학생들이 가서 일주일 동안 훈련 받고 200만원씩 장학금을 받아가지고 돌아오는데 그 일을 30년째 하고 있다는 거예요. 대단한 가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세상의 가문 훌륭하죠. 좋죠.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명문 가문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으로는 우리 가문이 볼 것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명문 가문을 이룰 수 있다면 축복의 가문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냐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훌륭한 가문들이 있습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후손들이 지금도 장로님들이 되고 교회의 일꾼이 되어서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일이 있습니다. 

또 몇 년 전 우리 마석 기도원에 와서 간증하셨던 김명규 장로님. 국회의원이신데 그 형님은 국정원 장을 지내신 김승규 장로님. 아주 훌륭한 집안이죠. 고향이 순천인데요. 그 부모님이 그렇게 믿음이 좋아요. 어려운 집안에서 자녀를 키웠는데 자녀들이 다 잘됐어요. 국회의원이 되고 법무부 장관이 되고 국정원장이 되고 그리고 집안의 내력이 아주 존경받는 분들이예요. 그래서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미국에도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으로 계셨는데 그 후손들 한 900명을 조사해봤더니 그 후손들이 다 잘 됐어요. 후손 896명 중 대학총장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목사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법조인 130명, 공무원 80명, 하원 상원 의원이 5명, 미국 부통령 1명이 있습니다. 그 집안이 믿음이 너무 좋은 내력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교회가 물론 명문 교회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의 가정이 축복의 명문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정말 축원하고 싶어요. 왜? 우리가 추석이 되니까 이제 가정을 생각하고 가문을 생각하고 가족들이 모일 때 우리 기도 제목이 있다면 믿지 않는 우리 가족 예수 믿게 해 주시고 우리 가문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하는 가족 되게 해주세요. 저희 집도 늘 이렇게 다 7남매가 모이면 하나님 앞에 먼저 예배하는 것이 아주 습관이 되어 있지요. 그래서 여러분의 가문에도 명절 때 모이게 되면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가져가시면 아마 명문 가정이 될 확률이 높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명문 가정은 없어요. 다 처음에는 그저 별 볼일 없고 초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가문을 들어 쓰시면 위대한 가문으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후회 할 것 없어요. 원망할 것 없어요. ‘왜 우리 가문에는 훌륭한 조상이 없나!!’ 걱정할 것 없어요. 여러분이 훌륭한 조상이 되시면 되는 거예요. 옆에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세요. ‘훌륭한 조상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믿음의 조상이 되면 여러분의 후손은 복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왜? 믿음의 복음 몇 대까지 가니까? 믿음의 복은 천대까지 가니까요. 나 하나 잘 믿으면 복은 천대까지 갑니다. 저주는 삼대까지 가지만 복은 천대까지 간다는 거예요. 시편 121편에도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에는 이 땅에서 잘 되고 번성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는 강영우 박사님 얘기를 종종합니다만 양평에서도 한 참 시골로 들어가 서정리라는 조그만 동네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자랐잖아요. 중학교 때 축구하다가 눈을 실명당하고 아버지 먼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화병을 앓다가 돌아가시고 누나는 동생 학교에 보내야 하니까 봉제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눈이 안 보이는 이 시각 장애 강영우 학생. 어떡합니까? 너무 딱하잖아요. 그래서 어렵게 어렵게 소개를 받아서 한빛 맹아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누나는 벌어서 학비를 대줍니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부모도 없는 세상 천지에 이런 고아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 무슨 소망이 있어요. 그러나 그는 오직 기도하고 공부하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한빛 맹아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리고 그는 연세대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이지만 교육학과에 입학을 했어요. 그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차석으로 졸업을 했어요.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공을 했어요. 그는 백악관 장애인 정책 차관보라는 한국인으로서는 미국에 가서 최고의 고위직에 올랐어요. 그 집안이 명문 가정이 되었어요. 두 아들이 명문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명문 대학을 나왔어요. 그리고 한 아들은 의대를 나와서 의사가 되고 한 아들은 법관을 나와서 법률 고문이 되어서 백악관에서 어느 상원위원의 법률 자문위원으로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 집안을 다 부러워합니다. 여러분 시각장애인인 한 고아와 같은 소년. 그가 무슨 믿음의 조상을 이루겠어요. 그러나 그 한 사람이 바로 믿고 신앙생활을 했더니 하나님이 그 가문에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복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한사람이 바로 믿고 신앙생활을 했더니 하나님이 가문에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복을 주셨다. 여러분 여러분 처지 너무 비관해하지 마세요. 우리 집안이 뭐 이것 밖에 안 되는데 여러분이 바로서면 여러분의 가문이 여러분의 후손이 복 받을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문제는 없어요 간단해요 원리는 나 한사람이 바로 서면 되요

지금부터 우리 가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전해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명문 가문을 이루려면 물론 주일성수도 열심히 하셔야 되고 기도생활도 열심히 하셔야 되고 십일조와 헌금생활도 잘하셔야 되겠지요. 말씀에 순종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조건들 외에도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있어요. 오늘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여호와의 편에 서서 헌신함으로써 위대한 가문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습니다. 제일 장남이 르우벤이야. 근데 르우벤은 장자의 구실을 못해요 왜 자기의 서모인 이 빌하라는 여인과 간통을 했거든요. 그게 들통나가지고 그래서 그는 장자로서는 가격을 상실해 버렸어요. 둘째 셋째아들이 누구냐 시므온과 레위입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도 장자를 이어받을 그런 존재가 안 되요. 그들도 범죄 한 게 있거든요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을 불러모아놓고 다 축복을 하는데 이 시므온과 레위는 축복기도를 받은 게 아니라 저주의 기도를 받았어요. 왜 그들이 한 짓이 너무나 악랄했기 때문에 창세기 49장 5절 이하에 보면 시므온과 레위인은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그들은 분노대신 사람을 죽였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집에서 흩트리로다 

이건 아버지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예언이에요. 이제 시므온과 레위인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죠. 여러분 시므온과 레위인이 왜 이런 저주를 받았는지를 아시지요? 창세기 34장에 보니까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와 가지고 그가 세겜성이라는 곳에 거주했는데 어느 날 자기 여동생이 그 놀러나갔다가 세겜성 성주의 아들의 눈에 들었어요.

그랬더니 성주의 아들이 다짜고짜 이 디나를 추행해버렸어요. 그 소식을 들은 이 시므온과 레위가 분노하고 혈기가 올랐어요. 그래가지고 거짓말을 해서 그들을 속이고 다 할례를 받게 한 다음에 꼼짝 못할 때 가서 다 죽여버렸어요 자기 여동생 하나 추행했다고 해서 그 복수를 수백 명 남자의 씨를 말려버렸어요. 이건 너무 지나친 복수에요. 

너무 지나친거지요 여러분. 그러니깐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이 야곱의 일가를 공격하려고 야곱의 가족이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야곱은 얼른 깨닫고 벧엘에 올라가서 회개하고 뉘우칩니다. 기도합니다. 그는 겨우 위기를 모면하지요 그러나 야곱의 기억에는 그 시므온과 레위가 행한 엄청난 그 폭력의 일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결국 그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도 축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이 저주대로 되었다면 시므온과 레위인은 완전히 망해야 되요. 그런데 보세요. 놀라운 사실은 말이에요. 민수기 1장에 보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첫 번째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근데 그때 이 시므온지파의 장정의 수 남자로서 20세 이상의 장정의 수가 오만 삼천 구백 명 여자들은 세지도 않아요. 아이들하고 그냥 그렇게 아세요 여자분들은. 남자 장정숫자만 오만 삼천 구백 명 그리고 40년이 지났어요. 민수기 20장 13절에 다시 한 번 세었더니 숫자가 이만 이천 명으로 줄었어요.

몇 명 줄었습니까? 60프로가 줄었어요. 그러니까 시므온지파는 사십년 동안에 절반 이상이 줄었버렸어요. 이 저주가 시행되고 있다는 거예요. 거기다가 그들은 땅도 변변히 얻지를 못하고 이 곳 저 곳에 흩어진 존재가 돼 버리고 말았어요. 그런데 시므온 지파는 그렇다 친다고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레위 지파는 달라요 레위지파족속이 처음 인구조사를 시행할 때 이만 이천 명이었어요.

그런데 40년 후에 해보니까 이만 삼천 명으로 천명이 늘었어요. 이는 복을 받은 증거거든요 이거 신기하다 왜 그러냐 말이지요. 그것만 아니에요 레위지파는 제사장의 지파가 됐어요. 그래서 그 레위지파 후손 가운데 대 제사장이 나오고 제사장이 나오는 거에요. 그리고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성구를 관리하고 이 모든 제사를 섬기는 사람이 됐어요.

이 놀라운 축복을 받은 거지요. 명문 가문이 된 거에요. 민수기 2장 52절에 보니까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진저 다른지파 사람들은 성막 가까이 오면 하나님이 그냥 쳐서 죽이셨어요.

레위인만은 성구를 만져도 괜찮아요. 민수기 2장 53절에 보니까 레위인은 증거의 장막에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이 성막에 대한 모든 책임이 레위인에게 있어요. 막중한 책임을 가진 그런 지파가 됐어요.

자 이런 저주 받은 레위지파가 시므온지파와는 달리 어떻게 이런 축복의 지파, 명문지파가 되었을까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레위지파의 헌신 여호와의 편에 서서 우상숭배한 자들을 척결한 그 헌신이 그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 헌신한 지파에요.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32장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시내산 밑에 까지 왔습니다.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뵈었습니다. 40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시내산 아래서 사람들이 불안해서 모세가 안보이니까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말이에요. 아론을 충돌질 해가지고 뭐했어요. 금송아지를 만들었어요. 

그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어요. 금송아지를 향해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게 뭐예요? 내 형상을 만들지 말라 이 우상을 숭배한 거예요. 그리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황송아지 앞에서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그 앞에서 찬양을 하고 놀면서 춤을 추면서 먹고 그렇게 혼란을 일으켰어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야!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큰일났다. 우상숭배하고 있다 빨리 내려가봐라 그래서 십계명 돌판을 받아가지고 내려와 보니 이게 가관이에요.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셔서 내가 이스라엘 민족을 모두 멸절시킬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 했어요. 하나님 제발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럼 남들이 하나님을 뭐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은 면해주셨어요. 모세가 내려와 보니까. 정말 그 모습 그대로에요.

모세가 내려와 보니까 정말 그 모습 그대로 그는 화가 나서 십계명 돌 판을 던져서 깨드렸어요. 왜? 이런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받을 자격이 없어. 그리고 그들이 섬기던 금송아지를 깨뜨려가지고 그 금송아지를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서 물에 타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다 먹였어. 그것이 속죄의 방법이에요.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돼요. 그 공동체 속에 죄가 아직 있어요. 그 우상숭배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모세는 명령합니다. 너희 중에 우상을 숭배하지 아니 하고 여호와의 편에 서는 자들이 있으면 나와라. 그랬더니 누가 나왔느냐. 레위지파가 뛰어 나왔어요. 레위지파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칼을 차고 회중을 다니면서 범죄한 자들. 우상숭배한 자들. 다 척결 하라고 했어요. 

그들이 내형제든 내 아들이든 내 부모이든 다 가리지 말고 공동체 내에서 죄악은 척결하라.
그래서 레위지파가 그 일을 감당했어요. 얼마나 죽였느냐. 3,000명을 죽였어요. 3,000명을. 자기 형제를 3,000명을 죽였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모세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레위지파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자 우리 29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29절입니다. 시작. (29절)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아멘. 
이게 바로 레위인의 헌신이에요. 이 헌신이란 말은 “손을 채운다” 그런 뜻인데.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다 이런 원어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이때부터 이 레위 지파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게 되고 성전에서 구별된 사람들로서 성소를 섬기게 되었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레위지파는 땅이 없습니다. 분배받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에요. 레위지파는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그런 지파에요. 오늘 레위지파의 헌신이 너무너무 위대한 것입니다. 

오늘 레위지파의 헌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헌신은 자립적인 헌신이에요. 어느지파 나와라. 누구 나와라. 이름 부르지 않았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의 편에 설자가 나와라. 자발적으로 뛰어 나왔어요. 자발적인 순종이에요. 물론 억지로 하는 순종도 좋지만 하나님은 자발적인 순종을 더 기뻐하시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레위지파는 자립적으로 순종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편에 여호와의 편에 서서 그들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디에 서겠습니까? 세상 편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편에 서계십니까? 
여러분도 오직 여호와의 편에 서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의 편에.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말씀의 편에 여호와의 편에 서야 돼요. 
내가 기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이 그 가문을 들어 쓰실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과 세상사이 중간 지대는 없어요. 천국과 지옥사이 중간지대 없습니다. 
천국이냐 아니면 지옥입니다. 멸망이냐 아니면 구원입니다. 

또한 이들의 헌신은 사사로운 정에 매이지 않는 헌신이었어요. 자기 친척 이웃 형제 자녀들. 범죄한 자들은 정말 슬픔을 무릅쓰고 그들을 척결해야 돼요. 이 어려운 거죠. 그들은 인간적인 정에 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정에 매이지 않았어요. “아 우리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 같이 한 친구니까 우리 편이지” 이런 적이 없어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거기에 따른 것이지 인간적인 관계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에 억매이지 않았어요. 사사로운 정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여호와의 명령이 무엇이냐. 여기에 헌신 해야해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모든 인간관계 보다 우선해야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에요. 여호와의 명령이 우선이에요. 

이 헌신은 또한 복을 가져오는 헌신이었다. 그때부터 레위지파가 이 복을 누리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경에 보면 시시한 사람으로 살다가 여호와의 편에 서서 헌신함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된 분이 너무 많아요. 여호수아 2장에 보면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라는 여자가 나옵니다. 이 기생의 말 그대로 그걸 좋게 표현해서 기생이지 나쁜 말로 하면 매춘부에요. 매춘부 몸 파는 여자에요. 그런데 거기에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 두 사람이 들어왔어요. 자기집에 숨어들어왔어요. 그 라합은 그들을 숨겨주었습니다. 자기는 여리고 백성인데 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숨겨주면 이건 민족에 대한 배신이죠. 

그러나 그 여인은 여호와의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걸 다 아셔야 돼. 왜? 여리고는 지금 우상의 땅이기 때문에 곧 멸망당할 땅이에요.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어요. 위에 위대한 분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편에 섰어요. 그리고 여호와를 위해 헌신했어요. 그래서 정탐꾼을 숨겨주고 그 사람들 떠났다고 그렇게 둘러대었어요. 나중에 여리고 성이 멸망할 때 라합의 가문은 그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서 다 보호 받았어요. 그리고 이 라합이 결국 누가 됐어요. 라합의 아들이 보아스입니다. 

보아스. 보아스가 누구냐. 룻의 남편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어요. 남편이 죽고 어떻게 합니까. 시어머니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여호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어머니의 고국이 나의 고국이라고. 그도 여호와의 편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와서 룻은 과부된 여인 이지만 자기 시어머니를 정성것 모셨어요. 어머니를 잘 섬기고 정말 헌신의 삶을 살았어요. 그랬더니 이 보아스 하고 결혼하게 되었어요. 재혼하게 된 거죠. 그리고 그가 복을 받았는데 그 룻의 후손가운데 다윗 왕이 나왔어요. 바로 롯은 다윗왕의 중조 할머니가 되었어요. 참 놀라운 일이죠. 그리고 또 나아가서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적인 조상이 되었어요. 명문 가문이 된 거에요. 

마태복음 1장 5절에 보니까 기생 라합의 이름이 나오고 그리고 모압 여인 룻의 이름이 나와요. 그들은 명문 가문의 조상이에요. 예수님의 육신적인 조상이면 명문 가문 아닙니까 여러분. 그래요. 이방인일지라도 상관없어요. 초라하고 볼품없는 여인이라도 상관없어요. 여호와의 편에 서서 여호와께 헌신했더니 하나님이 축복의 명문가문으로 만들어주신 것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가 중요한 거에요.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27장 30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시는데 너무 지쳐서 놀라가지 못하세요. 로마군병이 답답하니까 지나가는 한 사람 붙들어서 예수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어요. 억지로 진 십자가에요. 시몬은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억지로 졌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셨어요. 그는 십자가를 진 것을 인연으로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의 후손이 복을 받죠. 로마서 16절 13절에 보니까 사도 바울이 이런 편지를 로마에 보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루포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에요. 십자가를 졌던 그의 아들이 로마의 신앙의 지도자가 됐어요. 그리고 구레네 시몬의 부인이 사도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 여자에요. 신앙의 위인인 사도 바울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인물이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에요? 억지로 진 헌신, 십자가였지만 그것이 가문의 축복이 된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고. 오늘 우리구역 주방봉사야. 도망가자.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하세요. 여러분 억지로 해도 하나님이 그것도 기억하십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하면 더 좋지만 구레네 사람 시몬을 보니까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그것이 그에게 축복이 되었어요. 그렇습니다. 이게 헌신이에요. 헌신이란 내 몸을 드리는 거예요.

로마서 12장 1절에 보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우리 몸을 드려야 해요. 어떤 분들은 예수 믿는 다고 하면서 주일 날 몸은 다른데 가있어요. 안됩니다. 몸이 바로 여기 와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다른데 가있으면 안되요. 몸과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해요. 이것이 헌신이에요. 

헌신예배 백날 드려도 마음과 몸이 주님께 드려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죠. 한 시간을 드려도 내 몸을 드리고 내 마음을 드리고 내 물질을 드릴 때 그것이 진짜 헌신이에요. 여러분 우리 생애가 주님 앞에 헌신하는 생애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배에 헌신하세요. 주일 날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 토요일에 일찍 주무세요. 그래야 맑은 정신으로 와서 예배드리지 늦게까지 TV보고 그러지 마세요. 온전한 몸으로 내 마음을 온전히 드리세요. 내 몸과 마음이 있는 곳에 헌신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제가 전에 섬겼던 양평교회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경순 권사님이라는 분을 잊을 수 없어요. 그 권사님 정말 훌륭하신데 양평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시골에 시집을 가셨어요. 그런데 남편이 몸이 약해요. 겨우 딸 하나 낳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시부모님 계시고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아이 키우고 시부모님 섬기고 이게 너무 힘든 거예요. 힘들어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데 어느 날 교회에서 새벽 종소리가 나는 거예요. 

새벽에 그는 자기도 뭔지도 모르고 끌려서 교회를 갔어요. 전도사님이 설교하는데 뭔가 마음에 뭉클한 것이 있어요. 그래서 계속 새벽기도를 나갑니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다 보니 찬송을 다 암송해 버렸어요. 초등학교 앞에는 가본적 없는 까막눈인데 찬송을 부르다 보니까 글씨를 다 깨우쳤어요.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상황을 보니까 시골에서는 땅도 없고 자기 딸이랑 살 수 가 없어요. 그래서 부모님 돌아가시니까 딸을 들쳐 엎고 양평 시내로 나왔어요. 사내로 갔는데 집이 없어요. 양평교회에 가보니까 허름한 창고같은 방이 있어요. 그래서 목사님께 부탁을 했어요. ‘제가 갈 곳이 없는데 이 방을 좀 쓰면 안되겠습니까? 그리고 대신 제가 월세는 못내니까 사찰 일을 하면서 교회 청소 다할테니까 저한테 맡겨 달라고’ 그리니까 목사님이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사찰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보니까 교회에서 토요일 마다 꽃꽂이를 하는데 이걸 보니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래서 그걸 배웠어요. 아! 내가 꽃꽂이를 하면 되겠다. 화원을 하면 되겠다. 싶어서 양평 시내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얻어서 드보라 화원이라고 화원을 냈어요. 그런데 화원이 그런대로 잘되는 거예요. 사찰일도 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두 번째 성전건축을 하게 됐어요. 지금 건물이 세 번째 건축인데 두 번째 건축을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한 50년 전 이야기에요. 그런데 이 분의 마음에 감동이 오는데 하나님께서 헌금을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 내가 사찰 주제에 무슨 헌금을 합니까? 했더니 하라는 거예요. 얼마나 할까요? 했더니 50만원. 

여러분 지금 50만원은 별거 아닐 수 있는데 그 당시에 가장 많이 헌금한 장로님이 80만원 건축 헌금하셨어요. 50만원을 작정을 했어요. 그랬더니 다들 미쳤데요. 아니 사찰 주제에 지가 무슨 돈이 있다고 헌금을 해. 그런데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화원을 축복해주시는데 정말 쏟아 부어주세요. 그래서 그 50만원 액속한데로 다 헌금했어요. 그래서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생활에 걱정이 없으니까 사찰 일도 그만뒀어요. 

그리고 그 권사님이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그분은 40일 금식 기도를 몇 번씩 하셨어요. 제가 양평에서 너무 과로해서 목이 쉬어서 설교를 못하게 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아산 병원에 목 수술을 하려고 예약을 잡았어요. 목 수술하면 3개월 동안 말을 한 마디도 못합니다. 설교도 못하고 목회도 못해요. 

그런데 그 권사님께서 저를 위해서 금식 기도를 하겠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분이 40일 기도를 마쳤는데 제 목은 다 나았는데 그분 목이 쉬어버리더라고요. 하여튼 대단한 분이에요. 목회자를 위해서 40일 금식 기도를 했어요. 저는 그분이 늘 기억나요. 그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저는 그분이 늘 기억되요. 왜 그분은 하나님께 헌신 하셨으니까. 

하나님 앞에 헌신 하셨어요. 자기 몸을 드려 기도했어요. 예배에 헌신하고 물질로 헌신했어요.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바꿔주셨어요. 초등학교 앞에도 못간, 남편이 먼저 떠나간 과부에다 외딸 하나 키우는 정말 허름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그를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헌신해야 해요. 예배에 헌신 하세요. 3천 시간 기도운동 일주일에 한 시간이래도 헌신하세요. 장로님들도 헌신하시고 안수집사님들도 헌신하세요. 10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10분 20분 모아서 3천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을 주님 기뻐하세요. 내 몸과 마음을 드리는 이 헌신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여러분의 가문 가운데 날마다 있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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