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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어주소서2 : 내 귀를 열어주소서! (삼상 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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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소서2 : 내 귀를 열어주소서! (삼상 3:10-14)
 
 
❚귀가 중요하다

우리 얼굴을 보면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입은 하나고, 귀는 두 개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여러분, 왜 하나님이 입은 하나만 만드시고, 귀는 두 개를 붙여주셨을까요? 그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잘하라고, 두 배 더 잘 들으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귀는 하나만 만드시고 입을 두 개 만드셨다면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 살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지금 입 하나만 가지고도 너무 말이 많고 시끄러운데 입을 두 개 달아주셨으면 큰일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를 두 개 만들어 주신 이유가 또 있을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유가 있더군요. 우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 욕을 듣거나 나쁜 말, 더러운 말을 들었다, 그러면 이쪽 귀로 듣고 저쪽 귀로 흘려버리면 됩니다. 또 중요한 말을 들었다, 꼭 필요한 말, 아름다운 말을 들었다, 그러면 두 귀를 활짝 다 열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머릿속에 잘 담고 마음으로 내려 보내시면 됩니다. 그런데 거꾸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듣고 흘려버리면 될 말인데 두 귀를 활짝 열고 절대 안 잊어버리려고 머릿속,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는 분들이 있어요. 

“저 사람 나 욕했어? 저 사람 이런 심한 말을 했어?” 절대 안 잊어버리고 꼭꼭 담아두었다가 수시로 꺼내서 되새기고 또 묵상합니다. “두고 보자!” 하고 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또 꼭 기억해야 할 말, 잊지 말아야 할 말은 반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우리 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이 달려있어서 때로는 아예 이 문을 닫고 안 들어버리기도 합니다. 귀를 꼭 막고 “누가 뭐라든, 무슨 소리를 하든 난 안 들어!” 하고 고집을 피우기도 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귀는 단지 소리를 들으라고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귀로 소리를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 이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디 가서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으면 집에 와서 귀를 씻었다는 것 아닙니까? 

더러운 말, 잘못된 말 들으면 새기지 말고 흘려버리거나 씻어버리고, 귀한 말, 좋은 말 들으면 지나가지 않도록 잘 듣고 새기는 자세, 이런 귀 관리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태도인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영적인 귀가 열리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은 <열어주소서!> 시리즈 설교,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내 귀를 열어주소서!>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동안 여러분의 영적인 귀가 활짝 열려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잘 깨닫고, 잘 순종하는 복된 시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

요즘 시대를 두고 한심하다, 큰일 났다, 말세다 하는 분이 많은데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사무엘상 3장 1절부터 보면 이 시대가 참으로 한심한 시대였음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1~2절 읽습니다.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로 응답 받아 사무엘을 낳은 뒤 아들 사무엘을 실로의 성소에 있는 엘리 제사장에게 데려갑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기도를 그대로 지켜서 젖을 떼자마자 그 귀한 아들을 주의 종으로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을 도와 하나님을 섬길 이 때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어땠다는 뜻입니까? 

1절에 의하면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나 선지자 같은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를 받아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때는 완전히 영적으로 캄캄한 암흑시대였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안 들리고 말씀이 아주 희귀해서 하나님의 이상, 즉 계시도 드물었다는 뜻입니다. 정말 한심한 시대지요. 

그런데 제사장 엘리는 나이가 점점 들어 눈이 어두워져서 기도하지도 않고 말씀 듣지도 않고 자기 처소에 가서 드러누워 자고 있어요. 지난주에 말씀 나눈 것처럼 육신의 눈도 나이 들어 점점 어두워져갔을 뿐 아니라 영적인 눈도 어두워진 것이지요. 이런 제사장, 이런 영적 지도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니 얼마나 한심하고 캄캄한 영적 암흑시대였겠습니까?

그런데 3절부터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워 자려하는데 누군가 “사무엘아!” 하고 부르는 거에요.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가서 “왜 부르셨어요?” 하는데 엘리는 부른 적이 없거든요? 이상하다 하면서 사무엘이 다시 가서 누워 자려는데 또 부르는 소리가 나요. 또 달려가니 부른 적 없답니다. 

세 번씩이나 똑같은 일이 반복된 후 엘리 제사장은 비로소 “아, 이건 하나님이 부르시는 거다” 하고 깨닫습니다. 참 빨리도 깨닫네요. 이건 엘리 제사장이 단지 늙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만큼 영적인 눈도 어두워지고 영적 감각도 무뎌졌기 때문이에요. 아무튼 그제야 깨달은 엘리 제사장은 또 한 번 부르는 소리가 나거든 이렇게 대답하라고 일러줍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 바로 오늘 본문인 10절 이후의 사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또 사무엘을 부르시지요.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러자 사무엘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 준 대로 대답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일러주신 말씀이 참으로 놀랍고도 충격적입니다. 내용이 뭡니까? 엘리 제사장의 집을 심판하여 망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죄는 제사나 제물이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죄악이란 홉니와 비느하스 두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된 후 하나님의 제물을 착복하고 성전을 섬기는 여인들과 간음하고 별 해괴망측한 죄를 저지르는데도 엄하게 책망하지 않고 모른 체 한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니 영적인 눈, 영안도 어두워지고, 자녀들에게는 눈이 멀고, 완전 눈 먼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눈만 멀었습니까? 귀도 멀었어요. 하나님이 이제 엘리 제사장에게 더 이상 말씀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앞서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해졌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말씀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엘리에게 경고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영적인 눈도 멀고 영적인 귀까지 멀어서 하나님 말씀도 못 듣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깨달아도 순종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제 더 이상 엘리 제사장에게 말씀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하나님이 성전에서 심부름 허드렛일이나 하던 어린 아이 사무엘에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이 어린 사무엘은 다행히 귀가 아직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실 때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예,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하고 반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게 바로 영적인 귀가 닫힌 사람과 열린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렇게 비록 어린 사무엘이지만 들을 귀가 열려 있으니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다. 19~20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이 점점 자라면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늘 사무엘에게 말씀하셨고 사무엘은 잘 듣고 순종했겠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 사무엘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틀릴 수 있어요. 사람의 말도 얼마든지 어긋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틀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니 그 말씀 잘 듣고 순종하면 우리의 말도 사무엘처럼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으니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게 되고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 받게 된 것입니다.

❚내 귀를 열어주소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영적인 눈, 영안이 열려야 하나님을 똑똑히 볼 수 있고, 진리의 말씀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귀도 열려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의 말씀을 밝히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무엘처럼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영적인 귀가 어두워지고 영적 눈이 어두워진 엘리 제사장, 그리고 귀가 밝히 열려 하나님 말씀을 누구보다 잘 들은 사무엘 선지자, 이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귀를 밝히 열어 해야 할 일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우리의 귀를 열어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듣는 귀’라고 부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가 사무엘처럼 이 ‘듣는 귀’가 발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개’라는 동물을 욕이나 아주 나쁜 말에 자주 인용하잖아요? 하지만 개는 말이지요, 어떨 때는 사람보다 나아요. 죄송한 말이지만 교활하고 비열한 인간보다, 남을 위해 조금도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 충직하고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개가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개는 사람보다 청력이 탁월합니다. 개는 인간보다 훨씬 넓은 음역의 소리를 듣고 대략 인간의 4배 정도의 청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이 미처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개를 닮으라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도 듣는 귀가 발달되어야 남이 듣지 못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귀를 쫑긋 세우고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듣고 깨닫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듣는 귀’가 발달해서 다른 사람들이 미처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간구하는 것이지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설교 후에 찬송가 366장을 부를 것입니다.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이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만 이 찬송 366장의 2절 가사를 한번 살펴봅니다.

막혀진 내 귀 여시사 주님의 귀한 음성을 이 귀로 밝히 들을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이 가사처럼 우리의 귀가 열리고 그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들으면 그 누구도 깨달을 수 없는 기쁨을,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잘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잘 깨닫는 일입니다. 이 귀를 뭐라고 부르느냐? ‘깨닫는 귀’입니다. 여러분, ‘듣는 귀’와 ‘깨닫는 귀’는 엄연히 다릅니다. 물론 우리가 제일 먼저 듣는 귀가 발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들은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듣기는 잘 들어요. 그런데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찬송가 366장 2절 가사 끝부분을 보세요. 뭐라고 간구합니까?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귀를 열어 주소서 성령이여

이 가사처럼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을 알고자 하신다면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떨 때 듣고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은 누가복음 8:10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보세요.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 봐도 모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귀로만 듣고 영적인 귀를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들어도 내 머리나 내 생각, 내 지식으로만 이해하려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듣고 깨달은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귀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순종하는 귀’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골라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디모데후서 4:3~4절에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참 놀라운 말씀이에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만 많이 두고 바른 교훈을 안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 아닙니까? 귀가 가려워서 자기 가려운 데 긁어줄 소리만 골라 듣고 불편한 말, 마음에 안 드는 말은 귀를 딱 닫고 안 듣는다는 뜻 아닙니까? 혹시 이게 오늘 우리의 모습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몰라요. 우리 가운데 귀는 멀쩡히 달고 있는데 그 귀에 문이 달려서 참 편리하게도 듣고 싶은 말이 오면 문을 열어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문 닫아 안 듣는 성도들이 있지는 않은지요. 

그래서 교회도 잘 고르고, 목사와 설교도 잘 골라서 내 듣기 좋은 말 편리한 말만 하는 목사와 설교, 그런 교회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요. 요즘 세상에 헌신해라, 충성해라, 하나님 위해 손해 좀 봐라 하는 말은 정말 인기가 없답니다. 희생과 헌신은 이미 인기 없는 주제가 된 지 오래고, 천국과 지옥 설교, 헌금 설교 이런 설교를 하는 목사는 인기가 없답니다. 오직 축복과 은총, 예수 믿고 잘 되고 잘 살라는 설교가 인기 최고랍니다. 죄에 대해 지적하는 설교나 무거운 주제를 가진 심각한 설교는 인기가 없고, 가볍고 경박하고 재미난 설교를 선호한답니다. 물론 우리 효자교회 성도들은 그렇지 않지요? 하지만 이런 세태가 곧 다가올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예언하면서 이런 성도들을 ‘귀가 가려운 성도’라고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 골라먹지 마세요. 마치 슈퍼나 대형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것만 골라 사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 편하고 쉽고 듣기 좋은 말씀은 “아멘!” 은혜 받았다고 하고, 좀 불편하고 힘든 말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은 “노멘!” 하고 귀를 닫아버리는 그런 어리석음은 범치 않기 바랍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귀’가 없으면 앞서 말한 대로 아무리 ‘듣는 귀’가 좋고 ‘깨닫는 귀’가 있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사무엘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듣고 싶은 말씀, 쉬운 말씀만 골라 듣겠나이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듣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제 큰 아이가 근무하는 공군부대에는 자그마한 군인교회가 있습니다. 주일예배 드리는 병사가 너무 적어 너무 썰렁했는데 얼마 전부터 수십 명으로 갑자기 늘었다는 겁니다. 이유는 예비역 장성 부부가 매주일 예배에 참석해 정성스럽게 직접 만든 샌드위치(초코파이가 아니라!)와 간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랍니다. 신기한 마음에 이 이야기를 제 친구인 공군 군목 중령에게 했더니 바로 자기가 파송한 장로님 권사님 가정이라네요. 

공군본부교회에는 예비역 장성들이 수두룩한데 “교회에 와서 나 별입네 폼 잡고 대접 받지만 말고 좀 작은 예하부대 교회에 가서 섬기라”고 했더니 불과 한 두 가정만 순종했고, 이 장로님 권사님 가정이 그 중 하나랍니다. 너무 귀하지요.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다 순종하나요? 힘들고 어려운 길이면 듣고도 들은 체 만 체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멘으로 순종하고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길, 좀 힘든 길로 가면 그 섬김과 순종은 너무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순종하는 귀’를 갖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 맺습니다. 얼마 전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 그 지방에 ‘귀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와 양민과 군인을 몰살할 때 내가 얼마나 사람을 많이 죽였느냐 그 전공(戰功)을 증명하기 위해 조선 사람들의 코나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본국에 보냈는데 그 코와 귀를 모아 놓은 무덤이 바로 ‘코 무덤’과 ‘귀 무덤’이라는 끔찍한 얘기입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새삼 몸서리 쳐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국에 가도 ‘귀 무덤’과 ‘입 무덤’이 있지 않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기는 그렇게 많이 듣는데 듣기만 하고 실천을 안 하고, 입으로 말로만 하고 순종을 안 하고 사니 아마 천국 가면 예수장이들 귀와 입만 모아 놓은 곳이 있지 않겠냐는 참 엉뚱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단지 엉뚱한 생각만은 아닌 것을 저와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정말 천국에 ‘귀 무덤’ ‘입 무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가 있으려면 오늘 우리는 진정 영적인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참 뜻을 깨달아,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그 말씀을 그대로 전파해 우리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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