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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순간 (몬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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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순간 (몬 1:8-20)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기운이 다시금 우리를 추스르게 하고... 무엇인가 이제껏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결단과 도전도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가을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위에 시달리느라고 풀어졌던 마음의 고삐를 단단히 죄고... 무엇인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결심들이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대하다... 대단하다... 워낙 소심해서 설교를 하면서도 이런 표현을 잘 하지 못했었는데요...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가 남긴 글을 읽고 제 스스로가 고무되어서 이런 제목을 오늘 말씀에 붙여 보았습니다. 그녀가 미국 유학 중에 머물던 기숙사의 경비아저씨의 전직이 택시 운전사였는데요... 그분이 경험했던 위대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새벽이었는데요... 공교롭게도 당번이었습니다. 그는 시내의 어떤 주소로 가서 손님을 태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어벨을 누르니 한참 있다고 문이 열렸고... 마치 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 나온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쓴 나이든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엔 가구가 모두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시면 돌아가게 되는 데요?’ ‘괜찮아요. 난 시간이 아주 많아.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식구도 없고, 의사선생님말씀으론 이젠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대...’ 
   
이렇게 말하는 그 할머니의 두 눈엔 이슬이 반짝입니다. 토니라고 하는 그 기사는 미터기를 아예 꺼버리고는 두 시간 동안 할머니를 태우고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 절로 일하던 빌딩이며, 처음으로 댄스파티에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들을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마침내 할머니는 말을 합니다.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 병원에 도착해서 토니는 몸을 굽혀서 할머니를 안고서는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할머니는 이렇게 그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토니에겐 그 일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난 그날 밤 한참 동안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당번이 걸렸다고 심술이 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돌이켜보건대 나는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 본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고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지 몰라...’ 
   
이런 순간도 위대한 순간일 수 있구나... 오히려 이런 시간이야 말로 위대한 순간이로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을 만들어서가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순간에... 특별히 어떤 사람이 나에게 간절한 도움을 청해오는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비록 작은 것이지만... 성실하게 그의 요청에 응답하는 일... 그것이 이렇게 아무 말 없이 택시에 그녀를 태우고 다니는 일이라고 하여도... 바로 이런 일들이 참 소중하고 위대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은 우리들에게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마치며 장영희교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 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코 건넨 한 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그 순간은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신부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자동차 정비공에게도... 모두에게 골고루 온다.’  

오늘 우리가 읽은 빌레몬서라는 편지는 독특합니다. 분량이 아주 짧아서 한 장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어떤 심오한 교리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깊은 신앙적인 가르침을 말하려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교회 생활은 어때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다... 그런 것을 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사사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신입니다. 편지를 쓴 사람은 바울입니다. 이 때 그는 이미 나이도 많았고, 감옥에 갇혀서 부자유스런 상태였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이 빌레몬입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골로새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아마도 골로새교회가 세워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한 것 같습니다. 모임 장소가 그의 집이었고, 그 뿐 아니라 가족들이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읽으시면서 짐작을 하셨겠지만,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편지 속에 나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서 이 편지를 쓴 것이지요. 아마도 바울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 알게 된 사람이겠지요. 처음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는데요...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마치 빌레몬처럼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오네시모가 감옥에 갇힌 바울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혹시 일부러 오네시모가 바울에게 접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바울과 빌레몬은 서로가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는 여러분이 짐작하신 것처럼... 지금 결코 편안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노예였고, 주인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도망친 노예는 아주 엄격한 벌로 다스리게 되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네시모의 주인이 빌레몬이었습니다. 세상 참 좁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의 분량을 재 보려고 이렇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네시모가 의도적으로 바울에게 접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냥 돌아가면... 엄한 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좀 피해보려 하는 생각이 있었는지... 게다가 그는 도망을 치면서 빌레몬의 돈이나 소중한 것을 훔쳐 가지고 온 모양이니... 다시 돌아가야 하기는 하겠는데... 눈앞이 캄캄했던 것이겠지요.

도대체 바울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요? 그가 정성을 다하여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 그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변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던 사람... 그가 말하는 것처럼 처음엔 도무지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젠 쓸모 있고 아주 소중해진 사람이... 알고 보니... 도망친 노예라니... 게다가... 그의 주인이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빌레몬이라니...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바울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고...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 것인지... 그의 마음을 정리합니다. 
   
먼저 그는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를 자기 곁에 두고... 감옥에 갇힌 자기를 돕게 하고 싶지만... 그를 돌려보내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v.13) 이것이 순리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돌려보낸다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오네시모가 돌아가면 어떤 형편에 처하게 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생각해 봅니다. 도대체 내가 오네시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일까? 이러한 고민 속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이 편지인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왜 노예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 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노예제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소중하게 지으신 하나님의 생각엔 잘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노예제도에 대한 바울의 언급을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제도이니까 없애야 한다고... 개혁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노예나 종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 하듯 잘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골3:23) 물론 주인에게도 종을 대할 때, 인격적으로 대할 것을 권합니다.(골4:1) 
   
바울이 이렇게 노예제도를 없애야 합니다... 마치 오늘의 사회운동가처럼 그렇게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 마음속에서는 노예나 시민이나, 주인이나 종이나... 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그의 마음엔 더 이상 노예제도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골3:11)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새롭게 되면... 오로지 새롭게 된 인격뿐인 것이지... 사회적인 차별이나 어떤 장벽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뼛속까지 예수의 사람이었던 바울에겐... 오히려 이게 정말 중요하고도 유일한 갈등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회적인 제도나 법이 바뀌는 것... 그것은 우리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완전히 해소 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노예제도는 아니더라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사람들을 편 가르고 구분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 것일까요? 법과 제도가 바뀌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서로의 내면이 변하고 새롭게 되는 일이라고 바울은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빌레몬서를 통해서 나타난 바울의 노력과 시도는 하나의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제도는 없앨 수 없겠지만... 내면을 통해서는 진정한 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네시모가 무사히 돌아가서 벌을 받지 않고 예전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단지... 그렇게 살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로 다시 돌아가게 될 때... 여전히 그는 빌레몬의 가문에 속한 노예일수 밖엔 없겠지만... 그래서 둘 사이는 여전히 노예와 주인의 관계이겠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관계가 아닌... 그런 모습으로 둘이 새롭게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신의 바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제부터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v.16) 바울은 단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아무런 벌도 주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데서 그치지를 않습니다. 이제는 형제로서... 그를 맞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나아가서 그를 동지처럼 맞이할 것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생각하면, 나를 맞이하듯이 그를 맞아 주십시오.’(v.17) 

저는 단지 바울이 빌레몬을 압박하려고... 어떻게 해서라도 오네시모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 보면서... 노예라고 하는 겉모습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멋진 모습을 보게 된 것이지요. ‘위대한 순간’이란 말이 어울리는 대목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대했을 때... 이미 그에게서는 노예와 시민이라는 장벽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오네시모를 아들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v.10a)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말들...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것입니까?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런 감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착실하게 은행원으로 생활하다가 그만 부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하던 그가 소장에게 발탁됩니다. 소장이 돈을 빼돌리는 일을 도와주게 되지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게 된 그는 상부 기관에 편지를 보내어서 감옥 안에 도서관을 만들기도 하고... 동료 죄수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즐겨 듣던 모차르트의 오페라 아리아를 동료들에게 틀어 줍니다. 

두 여성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가 감옥의 구석에 울려 퍼지자, 죄수들은 하나같이 멍해져서 하던 일을 멈춥니다. 그 때 그는 그 음악을 틀어주면서 죄수들을 ‘친구’라고 부릅니다. 감옥 안에서 친구라는 말을 듣는 것은 누구나 처음이었습니다. 죄수들은 하나같이 음악 때문에... 그리고 친구라는 말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물론 그는 이런 대형 사고를 치고서는 엄청난 벌을 받아야 했지만... 정말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살벌한 감옥에 자유과 사랑이 충만해 지는... 

‘빌레몬... 자네에게 오네시모를 보내네... 난 자네가 그를 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그에게서 단지 노예가 아닌 멋진 한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될 꺼야... 그것이 물론 오네시모에게도 좋은 일이겠지만... 자네에게도 참 좋은 친구가 생기는 아주 행복하고 기쁜 일이 될 거야...’ 물론 오늘의 말씀 자체가 아주 짧지만... 저는 그 내용을 이렇게 더 간단하고 명료하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비로소 제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전에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읽으면 참 밋밋하지만...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가진 뜻이 바로 쓸모 있는... 유용한...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 주었겠지요? ‘비록 노예라는 운명을 안고 세상에 태어났지만... 오네시모... 너는 정말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예란 운명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전에는 이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었는데... 오히려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도망을 쳤었는데... 그런 사람이 이젠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바울은 이야기를 합니다. 나아가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v.10a) 이렇게 오네시모를 소개하는 바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이제는 좀 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오네시모를 통해서 노예가 아닌 멋진 인격을 갖추고 훌륭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전혀 새로운 사람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 이것은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나에게 보내시는 편지로구나...’ 이 편지의 수신자는 단지 빌레몬뿐 아니라 나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전엔 빌레몬의 행동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할텐데... 그런 바램을 가지고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기도 하고... 오네시모가 다시 집으로 잘 갔으면 좋겠다... 그 후에 오네시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었는데요... 문득... 말이지요... 아 이것은 주님이 내게 보내시는 편지이기도 하구나... 내가 빌레몬이로구나... 내가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선택해야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겐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이 없습니까?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오네시모 같은 사람은 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고 잘 대해 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등을 돌린 사람... 나는 그 사람에게 정말 하느라고 했는데... 나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준 사람... 나아가서 나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끼쳐서 지금도 나를 힘들게 만든 사람... 마치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아픈 상처였던 것처럼... 생각해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런 사람은 누구나 다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단순하게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어떻게 했을까? 여기에만 관심을 가질 수는 없겠지요. 주님은 우리들에게 나의 삶의 오네시모를 이야기하면서 그를 다시 생각하고 바라볼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너는 그 사람 때문에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도 역시 나에겐 소중한 자녀란다... 그가 전엔 너에게 전혀 쓸모없고 아픈 상처를 남긴 사람이었다면... 이제 그는 너의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야... 그 사람을 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어... 네가 그를 다시 바라보려 한다면... 이제 너는 그에게서 마치 형제와 같은 느낌을 가질 수가 있을 거야... 아마 그 사람처럼 너의 인생에 소중하고 좋은 친구는 없을 거야... 난 네가 이제 그를 다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다시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좋겠어...’ 주님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부탁할 하고 계십니다. 

'그가 나에게 입힌 손해가 얼마인데...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직도 그 상처가 깊은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해도 이런 머뭇거림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마음을 다시 열고 다가가는 순간... 그리고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순간... 우리 마음에 있는 이런 생각들은 다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이런 계산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풍성함을 우리는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진정 위대한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끝 부분에서 참 재밌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 그것을 내 앞으로 달아놓아 주십시오...’(v.18) 바울이 좀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도대체 이 분이 무슨 돈을 가지고 있다고... 감옥에 갇혀있는 분이 어떻게 하려고... 그것을 나에게로 돌려놓으라고 하는 걸까요? 아마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을 쳐 나오면서 돈이나 중요한 것을 훔쳐 갖고 나온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겠지요. 이 대목이 빌레몬의 맘을 더 상하게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이 대목을 강조합니다. ‘나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 내가 그것을 갚아 주겠습니다.’(v.19a) 자신이 오네시모가 훔쳐간 것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하고서는 거기에다가 직접 친필로 서명까지 합니다. 바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설마 빌레몬이 나에게 돈을 받겠어... 그럴 수는 없을 거야...’ 바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는 이어서 이렇게 빌레몬에게 말을 합니다. 참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대가 오늘의 그대가 된 것이 나에게 빚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v.19b) 그 어느 누구도.. 이 말에서 자유롭고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잊고 있을 뿐이겠지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항상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내가 이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나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과 은혜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바울에겐 항상 이런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고전15:10a)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나타난 소중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오늘... 이런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그에겐 모든 것이 다 감당하기 힘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항상 자신의 모습을 빚진 사람의 마음으로 살게 합니다. 그는 이런 소중한 깨달음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나는 그리스 사람에게나 미개한 사람에게나,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다 빚을 진 사람입니다.’(롬1:14)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돈을 꾸었다든지 어떤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누구를 대하든지... 빚을 진 사람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내가 저 사람에게 무엇인가 해 주어야 하는데... 내가 저 사람에게 베풀 것이 있는데... 그런 마음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깨달음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면... 그는 정말 너무 감사하고 풍성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그렇기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설혹 그가 오늘 처음 마나는 사람이라고 하여 무엇인가를 베풀어야만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게 바로 바울이 예수를 알게 된 후에 가졌던 아름답고 소중한 마음입니다. 

빌레몬에게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오네시모에게는 받을 것이 명백하게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넓게 생각해보면... 너도 받은 은혜가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도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고 빚을 져서 오늘의 너의 모습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받은 사랑과 은혜란 오네시모에게서 그가 받을 것에 비할 수 없는 크고 엄청난 것이겠지요.
그런 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해지는지... 누구나 다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누구나 다 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빚진 자의 마음이 되어서 세상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위대한 순간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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