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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도 이방인의 스승이 되자 (딤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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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방인의 스승이 되자 (딤전 2:1-7)
     
오늘의 유대력으로 보면 7월 티쉬리월이고, 초막절-장막절 기간입니다. 장막절은 티쉬리월 15일부터 21일까지 한 주간 지키고 하루 더 연장하여 안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8일, 하루 연장하여 지키는 제8일을 ‘쉬미니 아쩨렛’(Shimini Azeret)라고 부릅니다. 쉬미니 아쩨렛이 되면 모든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 과부, 고아들을 초청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고 위로하는 날로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지난 수요일은 추석 명절 하루 전 날이었는데, 민수기를 강해하면서 공부하게 된 것이 장막절을 상고하는 차례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달력을 보니, 그 날이 7월, 티쉬리월이었고, 티쉬리월 14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15일부터 21일까지 초막절 장막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수요일 저녁은 15일이 시작되었기에 초막절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민수기를 설교하면서 초막절에 대하여 강해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시간이 장막절이 시작된 시간이었습니다. 억지로 맞추려고 해도 힘이 드는데, 초막절이 시작되는 날에 초막절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초막절이 되면 수장절이라고 하여 모든 곡식을 추수하고 모든 과실을 수장한 후에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지키는 감사절이었습니다. 이 초막절은 혼자서 지키는 절기가 아닙니다. 오늘은 유대력에 따르면 초막절 4일째의 날입니다. 초막절이 되면 자기 가족들끼리만 즐거워하지 않고,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들, 나그네들, 고아와 과부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더 연장하여 지키는 제8일은 쉬미니 아쩨렛이라고 하여 동리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고아와 과부들, 레위인들을 돌아보는 날로 보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나를 위한 것으로 출발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좋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의논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협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도 이방인의 스승이 되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7절 말씀에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모든 사람을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갔습니다. 

1절에서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2절에서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4절에서도 “모든 사람이” 라고 하셨고, 6절에서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나 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한 사람인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모든 사람이 함께 복 받는 사회를 위하여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1. 우리는 기도하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1-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인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생 기도를 들여다보면 언제나 나만을 위한 기도, 내 가정만을 위한 기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기도의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씀이 3번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로서는 그를 위하여 기도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주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겠습니다. 

기도라고 하면 다 같은 기도가 아니요, 기도에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먼저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으로의 기도, 대화로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한 아룀을 의미합니다. 간구는 긴박한 상황에서 탄원의 기도를 말합니다. 애원의 기도, 탄원의 기도입니다. 도고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중보적인 기도입니다. 기도의 용사들을 보면 중보적인 기도, 도고의 기도에 힘쓴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과 같은 기도의 용장들이 중보적인 기도에 힘쓴 사람들입니다.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에 관하여 용어를 정리할 필요는 있지만, 기도를 이론적으로 구별할 수 있어도 실제에 들어가 보면 엄격하게 기도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세 가지 네 가지로 구별할 필요도 없으며, 지금은 제가 일반적인 기도를 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릴 것도 없고, 이제부터는 감사의 기도에 들어간다고 보고할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기도요, 간구와 도고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기도를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기도의 동의어를 나열한 것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뿐입니다. 

여러분, 숨을 돌려야 하지 않습니까?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일거리가 쌓여있고, 여기저기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머릿속에는 정리해야 하는 많은 문제들로 복잡하십니까? 그 어느 때보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간혹 생각하고 계획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까? 여기저기서 문제가 튀어나오고, 그것을 해결하느라고 골머리를 썩고 있습니까?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입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날, 숨 돌림 틈마저 없는 날일수록 문제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합니까? 큰일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까? 결심하고 도전한 일이지만, 자신감이 없어지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고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선멈춤’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렴하게 파는 책방이 있어 책을 구경하다가 그냥 나오기가 죄송하여, 그래도 읽어보고 싶은 한 책이 있어 사서 읽은 책입니다. 

그 책에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700년대 후반에 스코틀랜드 탐험가인 ‘먼고 파크’는 겨우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가 갔지만, 전설적인 모험으로 널리 명성을 떨쳤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파크는 탐험 중에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홀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들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겨우 손가락만할까 한 작은 꽃이었습니다. 그 꽃은 완벽한 균형미를 갖추고 있었고, 아름다움에 감탄하였습니다. 가장 어려운 위기 가운데에 이런 경이를 발견한 파크는 “이처럼 척박한 곳에도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그리고 완벽하게 꽃을 피우신 이(하나님)가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의 고통을 과연 모른 체 하실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은 “절대 아닐 것이다”였습니다. 용기를 얻은 파크는 배고픔과 피로도 잊은 채 다시 일어나 구조를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파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그는 삶에서 만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정말 견디기 어려운 순간입니까? 한 송이 들꽃을 들여다봅시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또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얼마나 주고 싶어 하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잠깐 멈추고 생각하십시오.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따라 빨간 신호동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멈춤 불빛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의 바쁜 하루 일과 중에도 역시 멈춤 불빛이 필요합니다. 바쁘다고 하여 생각하기를 멈추시겠습니까? 아니면 멈추어서 생각하시겠습니까? 모든 시간을 활동으로 채우시겠습니까?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겠습니까? 

사귐의 기도를 쓰신 김영봉목사님은 “기도는 영이신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이란 그의 유명한 설교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진심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기도는 모두 위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과의 사귐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하나님께 모두 드려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대가인 존 웨슬리는 기도는 사귐의 기도인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식사하는 기도라도 정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그냥 간단한 감사의 표시로 눈을 뜨는 것을 보면서 기도할 때에 그래도 주님과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힘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사도바울이 장차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특별히 아직 예수 믿지 아니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우리가 작정한 예비신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어떤 능력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정말 당신입니까?” 국제예수전도단을 창설하신 유명한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쓰신 책인데, 그 책에는 기도의 응답이란 것이 어떤 것임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2장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유산’이라는 주제입니다. 

로렌이 어렸을 때에 로렌의 어머니 주엘 니콜슨은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기도의 응답으로 복음전도자의 길을 가던 중에 로렌의 아버지 톰 커닝햄을 만나서 결혼하였습니다. 힘들게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로렌, 우유가 떨어졌구나. 과부 아줌마 가게에 가서 우유를 사오겠니?” 어머니에게는 잔돈이 없었고, 5달러짜리 지폐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당부합니다. “이 돈은 한 주간 쓸 식료품 값이니 조심해서 다녀오너라.”고 말했습니다. 로렌은 지폐를 바지 주머니에게 넣고 강아지를 끌고 가게에 갔습니다. 그 가게는 먼 곳에 있었는데, 그는 깡통을 발로 차면서 길을 갔습니다. 

우유를 골라 돈을 지불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어린 로렌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바지 안주머니, 뒷주머니, 윗도리 안주머니, 샅샅이 뒤졌지만 돈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돈을 잃어버렸어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에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돈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얘야, 이리 와서 기도하자. 그 돈이 어디 있는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도록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로렌의 어머니는 서신채로 로렌의 가냘픈 어깨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그 5달러가 정확히 어디에 숨겨 있는지 아십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합니다.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우리의 생각 속에 말씀해주세요. 그 돈이 한 주간 저희 가족의 식료품비라는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기다렸습니다.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이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로렌의 어깨를 꼭 쥐면서 “로렌, 그 돈은 수풀 아래에 있다고 방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셨고, 로렌도 따라 갔습니다. 날이 너무 어두워져 무엇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어머니가 외칩니다. “저 나무 밑을 살펴보자” 어머니와 로렌은 나무 밑으로 가서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런데 그루터기 아래쪽에 구겨진 5달러 지폐가 있었습니다. 로렌은 말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하나의 학교였다. 이것은 이후 내가 자라면서 더 많이 감사했던 우리 부모님의 풍족한 유산이었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기도의 본을 보이시고, 가정에서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은 

교회에 가서 선생님에게 배우고 교역자에게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2.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암송해야 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 구원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큰 쟁점을 불러일으키는 난해한 말씀입니다. 17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칼빈주의자들과 감리교회의 알미니안 주의자들 사이에 ‘모든 사람’이 누구를 말하느냐고 하는 것으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칼빈은 예정론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사람의 총수를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알미니안 주의자들 가운데서는 두 파로 나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론,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전체와 전혀 맞지 않은 주장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비 되어 있지만, 그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만 구원을 받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실제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실제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도 구원받는다고 하면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미리 제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아버지 하나님이 나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을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신 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알기를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드려야겠습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면 지금은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다른 종교에 빠져 있지마는, 그를 위해서도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5절 말씀은 4절 말씀과 연관을 지어야 합니다. 4절의 빛 아래에서 5절을 보고, 5절 말씀을 가지고 4절도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5-6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우리 구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속량이라고 하는 개념을 잘 아셔야 구원받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속, 속량, 속전이란 말을 알아야 합니다. “몸값을 지불하여 구입한다”는 뜻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사오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본래 상거래에서 값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행동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 비용을 갚아야 풀어줍니다. 돈을 갚지 못하여 노예로 팔려간 사람이 있습니다. 국가에 벌금을 물지 못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속전을 가져와서 사가면 그는 해방될 수 있습니다. 몸값을 지불해주어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이 속전이 되어 주셨습니다. 몸값을 대신 지불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죄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죄에 대한 처벌을 생략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님에게 모든 심판과 저주를 내리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인류의 죄악을 처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짊어지시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는데, 죄인의 몸값을 사탄에게 지불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죄인들에게 부과된 처벌을 대신 받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들이신 예수님이 몸값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시면서 십자가로 나아가시는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6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아들 안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전 인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그 귀한 뜻은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실 때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아들 안에 있기만 하면, 아들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였으면, 동서고금,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다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보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만을 위하여 비를 내려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아 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중보자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예수님이 들어서야 합니다. 구원받은 길은 오직 한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길로만 가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믿음과 진리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7절 말씀에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만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이 복음전도자로 세움을 입었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사도는 성도들을 온전한 봉사자로 양육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믿음과 진리 안에서 스승이 되어, 가르치고 양육하여 사람을 세웠습니다. 

사도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였고, 모든 사람을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나갔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성숙한 성도들, 그래서 기도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되시고, 말씀의 사람으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적인 소명자로, 자기 몫을 충분히 감당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을 이끌어주고, 세워갈 수 있는 사람들, 주님의 몸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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