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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찾으라 (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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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으라 (히 11:6)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두 사람의 머슴을 둔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두 머슴 중 한 명은 주인이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상관없이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와는 달리 다른 머슴은 주인이 없을 때는 일을 하지 않다가 주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열심히 알을 하는 척 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모른척했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던 어느 날 주인은 두 머슴에게 새경(한해 품삯)을 주고자 두 머슴을 불렀습니다. 

“이보게, 자네들.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았네. 내일은 내가 자네들에게 새경을 줄 것인데 오늘 마지막으로 가마니를 짤 가느다란 새끼를 좀 꼬아주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머슴은 아무 말 없이 짚을 물에 축여서 가느다란 새끼를 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하는 우리 주인집 일인데 잘 해주고 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새끼를 꼬았습니다. 다른 머슴은 생각하기를 “내일이면 이 집을 나가는데 마지막까지 일을 부려먹는 구나.”하며 투덜거렸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새끼를 꼬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밝자, 주인은 어제 밤에 각자가 꼰 새끼를 가지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창고 문을 열고 엽전을 담아둔 큰 항아리 곁으로 두 머슴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 새끼줄에 엽전을 꿸 수 있는 대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말을 잘 듣던 착한 머슴은 간밤에 가늘게 꼰 새끼줄에 많은 엽전을 꿰어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주인 눈치만 살피며 꾀만 부리던 머슴은 자기가 꼰 새끼가 너무 굵어 엽전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주인을 원망하며 항의하는 머슴에게 주인은 호통을 치기를 “네 이놈, 너는 1년 동안 내 눈을 속이며 꾀만 부렸어. 네가 한 일은 밥값도 안 된다.”라고 야단을 쳐 쫓아 보냈습니다. 개으른 머슴은 후회가 막심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원리 중 하나는 내가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리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고 하셨습니다. 
역대하 15:7 말씀에도“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 사람이 행한 대로 상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을 받는 데에는 인간이 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살아간다하여 누구나 다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축복은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되 열심히 주의 영광을 위해 땀 흘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행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한 가지가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하셨습니다.“자기를 찾는 자”즉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구약성경 예레미야 29:13에 기록하시기를“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하셨습니다. 잠언 2:4~5에는“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귀한 것일수록 더 많은 노력과 더 많은 정성을 요하고 있습니다. 땅속에 묻혀 있는 황금이 그렇습니다. 검은 황금 석유도 그렇습니다. 바다 속 진주가 그렇습니다. 큰 힘이 되는 지식도 그렇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8:18~19에 말씀하시기를“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야 할까요? 예레미야 29:13에“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2:4~5에는“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성경 역대상 28:9에“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하셨습니다. 
또한 역대하 16:9에도“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의도하는 바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고 섬기되“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하셨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것저것 먼저 쓰고 남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경우는 없습니까? 이일 저 일을 다 하고 시간이 남으면 교회나 갈까하는 경우는 혹 없습니까? 이러한 마음은 하나님을 찾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말라기 1:6,8에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정성이 결여된 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여름이면 스콧트랜드에 해마다 휴가를 갔습니다. 하루는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모여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가까운 농가로 들어가서 우산을 좀 빌려주면 사용하고 내일 돌려드리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집의 여자 주인은 낯선 사람에게 좋은 우산을 빌려 주기가 싫어서 구멍 나고 살이 부려진 우산을 골라서 빌려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궁중 복장에 금줄을 띤 사람이 찾아와서 그 집의 문을 노크했습니다. 부인이 문을 열고 눈이 둥그레지자 그는 말했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이 우산을 잘 쓰셨다고 감사하며 보내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주인은 정신 나간 듯 중얼거렸습니다.“아, 내가 어떤 기회를 놓쳤단 말인가?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것을!”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결코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분주하지만 하나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축복의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일본 군인들이 천황을 위해서 바치는 헌신도는 세계적인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만주 사변 당시 여순항을 포위하는 일본 군대가 철조망을 자르지 않으면 진군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약 300-400명의 중대원을 데리고 있던 중대장이 "여러분 가운데 10여 명을 희생시켜야 되겠습니다. 달려가면 총에 맞아 죽지만 한 사람이 가면 둘째 사람이 가고 또 셋째 사람이 가고 한 10여 명이 가서 한 사람이 한 줄씩만 자르면 저 철조망을 모두 자를 수 있는데 누가 천황을 위해서 가겠는가?" 라고 말하자 그 중대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300명이 다 나섰습니다. 그래서 중대장이 열 사람을 골라서 희생시킨 후에 그 철조망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을 위해서도 이처럼 생명을 아끼지 않는 군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 나라의 왕에 비기겠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세상의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겨야 하겠습니다. 

二.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기도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주시며 크신 능력은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4:2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3:3에는“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5:16~18에“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하셨습니다. 

빈손으로 기도하여 4만 여회의 응답으로 3천여 명의 고아를 길러낸 영국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뮬러 목사는 말하기를“기도는 하나님이 오시는 첩경”이라고 했습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는 말하기를“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기도용사였던 존 낙스는“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더 강하다.”라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기도를 지붕이라고 합니다. 지붕 없는 집은 집이 아니듯, 기도 없는 삶은 지붕 없는 삶입니다. 기도는 환난의 찬비를 막아주는 지붕입니다. 기도는 고난의 태양열을 막아주는 지붕입니다. 기도는 고통의 폭풍을 막아주는 지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 하셨습니다. 이사야 62:7에는“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큰 역사를 행하시기까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삶의 승리를 얻기까지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시도록 간구에 간구를 거듭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 얍복강가에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그 순간 야곱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차있던 에서의 마음이 눈 녹듯 녹아지고 동생을 부둥켜안고 반갑게 맞았습니다. 

한나라는 여성도는 자식을 낳지 못한 서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가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본 주위 사람들은 술 취한 여자로 오인 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눈물로 간구하며 하나님을 찾는 한나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태를 열어 사무엘이란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아들이 훗날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히스기야가 나라를 다스릴 때 앗수르 군대의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격이 되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와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찾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간구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하나님은“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왕하 19:20)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모두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성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들이 기도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들의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청소년 문화가 너무도 피폐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성령충만함과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나라의 발전과 평안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예배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23~24의 말씀에“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맘과 온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배자의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분은 전도, 어떤 분은 구제, 또 어떤 분은 사랑의 교제, 어떤 분은 봉사 등 여러 가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교회에서 꼭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이에 앞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할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가 교회에서 해야 할 최우선의 사명인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예배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배를 통해 영혼이 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결과가 전도, 봉사, 구제, 친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배(worship)라는 용어는 “최상의 가치를 최상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최상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신학적 의미에서의 예배란“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시요, 절대적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존경과 복종과 경외와 숭배를 표현하는 인간 최고의 도덕행위를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참된 예배 자에게는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가 있습니다. 
참된 예배 자에게는 겸손히 고백하는 회개가 있습니다. 
참된 예배 자에게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참된 예배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이 있습니다. 
참된 예배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복종하고자 하는 다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교제가 원만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만족함과 삶의 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핵심적 주제는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여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창조의 목적이요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예배, 선교, 교육, 친교, 봉사라는 5대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목표 중에서 교회의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우선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예배에 실패한다면 다른 사명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예배가 예배다워질 때 교회는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들이 전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장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미술가이며 시인인 제임스 스메탄이라는 사람은 몹시 가난 하게 살았습니다. 그에게 “당신은 왜 교회에 나갑니까? 하고 묻자 “축복을 받으려고 나갑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슨 축복입니까?”하고 묻자 “분노와 경멸, 그리고 냉대를 갖게 하는 유혹이 사라지고 기쁨과 만족이 가득 차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둡고 복잡한 생각으로 꽉 찬 마음으로 교회에 가면 평안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오지요. 모든 근심은 사라지고 내가 구원받은 기쁨과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배는“최상의 가치를 최상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인간 최상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만나주시며 이러한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달았던 영국의 명재상 그래드스턴은“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몽골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용규 선교사가 쓴“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명예와 미래가 보장된 사람인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몽골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대학교를 세운 평신도 사역자입니다. 이분이 쓴“내려놓음”가운데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유학 생활과 몽골 선교를 통해, 내려놓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받는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체험했다. 2005년 봄,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드리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다. 그녀는 몇 달 전 우리 팀의 기도를 통해,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였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그녀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달 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안 되면 자신의 실패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다가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기도했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잃었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를 먼저 찾아온 것이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한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함께 얻었다. 먼저 믿은 우리 중에는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묻고 싶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자기가 죽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과정 중에 꼭 거쳐야 할 단계이다. 세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일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이 차이입니다. 
참 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를 중히 여기는 것과 소홀히 여기는 것의 차이입니다. 
복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첩경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한 인식은 곧 하나님에 대한 인식입니다. 예배에 대한 태도는 곧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三.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시는 상은 무엇입니까?

1. 모든 좋은 것을 부족함이 없이 채워 주십니다. 

시편 34:9~10에“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자는 백수의 왕자입니다. 더욱이 젊은 사자는 굶주릴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보다 더 분명하게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형통과 평안함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15:15에“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하셨습니다. 우주와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에는 누구도 해할 자가 없습니다. 이곳에는 사방의 풍성한 평안이 있습니다. 매사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모스 5:6에 권면하시기를“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55:6~7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이토록 존귀하신 하나님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찾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기도로 찾아야 하겠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예배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을 찾아 만난 사람의 마음속에는 평안과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만난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지키시며 인도하시므로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진리를 깊이 깨달은 다윗은 시편 23편에 노래하기를“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1~6)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정성 다해 하나님을 찾으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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