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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창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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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 (창 22:1-8) 

아브라함의 인생은 창세기 11장을 기점으로 변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잘되고, 실수해도 하나님이 막아주시고, 하나님이 복주시고 함께 하시며 어디를 가든지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에서 절정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23장부터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들 이삭이 장가간 이야기와 아브라함이 새장가를 들었다는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인생의 최고봉입니다. 아브라함이 인생의 최고봉에 올랐을 때에 하나님의 가장 어려운 시험이 아브라함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가장 위대한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창세기 22장은 가장 큰 시험과 가장 위대한 승리가 기록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인 메튜 핸리는 아브라함의 승리는 교회의 불가사의 중 하나(wonders of the church)라고 말했습니다. 

22장 1절은 ‘그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21장 사건 후에’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 그 동안 어렵게 지내던 그랄 왕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어 블레셋 땅인 브엘세바를 얻게 되었고, 거기에서 평안히 여러 해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약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삭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알기 어렵지만 한 가지 힌트가 있습니다. 

23장 1절을 보게 되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에 죽었습니다.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낳았으니 사라가 죽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37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2장에 이삭의 나이는 37살 미만이고 어깨에 나무도 질 만하니 20대 중반쯤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20여년 평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어려운 시험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과의 문제도 해결되고 가정의 문제도 해결되고 하갈과 사라 사이의 갈등의 문제도 해결되었고 맏아들 이스마엘에 대한 자신의 사랑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삭도 20여세가 되었으니 아브라함의 마음도 이삭을 통해 위로를 받게 되었고 그로인해 이삭을 향한 마음이 집착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평안하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하나님의 가장 어려운 시험이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고 평안하면 그것을 질투하여 고난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것은 나중에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골고다에서 죽일 사건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반드시 겪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로서 십자가를 보여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 어려운 시험을 겪을 수 있도록 창세기 1장부터 22장까지 온갖 복을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려운 시험을 주실 때에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준비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그리고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더 큰 복과 평안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 병에서 치료받고 난 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사 38:17상). 성도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하나님이 더 큰 복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와도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세 가지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의 순종입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놀라운 명령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Ⅰ. 하나님의 “놀라운 명령”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얼마나 기괴하고 놀라운 명령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20여 년 동안 이삭을 양육한 아브라함의 마음은 아들인 이삭에게 완전히 몰입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표현하시는 방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얻어서 20여년 키웠으니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이 밀접한 관계가 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삭과 하나님 중에 누가 더 아브라함에게 귀중한 존재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이삭을 살리고 하나님을 두 번째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하나님은 두 번째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려면 이삭을 완전히 포기하고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시험이라고 하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혹, 다른 하나는 테스트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유혹해서 죄에 빠뜨리는 일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3~14). 

하나님은 악으로 유혹하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유혹받는 것은 자기 욕심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기 위한 시험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사람이 하나님의 시험을 받게 되면 그 사람 마음이 어떤지 다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은 두 가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이 과연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합격증이 창세기 22장 12절입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첫째로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았고 둘째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줄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의 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씀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창세기 22장 12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식의 근본도 없는 사람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진실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임을 이 시험을 통해서 입증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어려운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을 1등으로 사랑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세로 대한다면 그 시험이 도리어 우리에게 큰 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Ⅱ. 아브라함의 “놀라운 순종” 

두 번째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놀라운 명령에 보인 반응은 놀라운 순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 22:3).

 아브라함은 아무런 질문이나 항의가 없습니다. 지체 없이 순종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순종을 시작했습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시 119:60). 

사람에게 맨 처음 오는 생각이 하나님 생각이고, 두 번째 생각은 자기 생각이고, 세 번째 생각은 마귀 생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꾸 지체하면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거짓말도 집어넣고 의심도 집어넣어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시험에 떨어지는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지체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 

순종이 곧 경배입니다. 순종이 없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예배한다, 경배한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는 순종이고 순종이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을 하고 돌아오겠다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히 알면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불신자들을 향해서 명령하십니다. 불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나는 천지를 지은 여호와니라. 내가 살아있는 참 신이니라. 너희를 내가 지었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나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나를 향하여 죄를 지었느니라. 죗값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 지옥에서 영영한 형벌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나 내가 피할 길을 내어 주었다. 나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받아 죗값을 갚았으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노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이 말씀에 반항하지 말고, 질문하지 말고, 항의하지 말고, 미루지 말고 순종하면 영원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항의하고, 따지고, 믿지 않고, 불순종하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이고 무조건적인 순종이고 항의가 없는 순종이고 진실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더 큰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Ⅲ. 아브라함의 “놀라운 믿음” 

셋째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놀라운 믿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히 11:17).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는 믿음은 그 대상이 분명합니다. 믿음의 대상이 천지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주신 인격적인 하나님, 아브라함의 인생을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불가능해보여도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부활 신앙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 

내가 아이와 함께 경배하고 함께 돌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셔서 이삭과 함께 돌아올 것이라는 확고한 부활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부활 신앙입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다시 살고 그때에는 죽지도, 썩지도, 병들지도, 쇠하지도, 추하지도 않습니다. 부활할 때는 영광스럽게 부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예수 믿는 우리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납니다. 살아날 때의 영광은 다 다릅니다.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들의 영광이 다르듯 부활시의 영광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부활시에 얼마만큼 영광을 얻느냐 준비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무궁한 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 22:7~8). 

아브라함은 이삭의 곤란한 질문에 대답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개입하셔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리라고 믿고 대답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대답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좋은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갖가지 장애물을 극복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가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삭을 향한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이삭을 죽이려면 인간적인 사랑을 극복해야합니다. 다른 하나는 논리적인 모순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하시더니 그를 죽이라고 하시는 것은 모순입니다. “양립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고 논리적인 모순을 가지고 따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다 극복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방해하는 것을 믿음으로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아브라함이 평안할 때 시험이 온 것처럼 우리 인생도 평안할 때 시험이 오기 쉽습니다. 요즘은 중년이 80세까지이고 노년기가 80~100세까지입니다. 중년기, 노년기가 길어져 이제 자식 다 키우고, 직장 갈 일도 없고 평안하니 믿음도 은퇴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기도할 것도 없다. 더 이상 성경 볼 것도 없다. 더 이상 내가 무슨 봉사를 하겠느냐.”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은퇴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125세 정도에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아도 믿음은 전진해야 합니다. 은퇴 후에도 기도도 하시고, 성경도 보시고, 봉사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어려운 시험이 와도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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