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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 화음을 만드는 삶의 공동체 (엡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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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화음을 만드는 삶의 공동체 (엡 4:11-12)


얼마 전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우리말로는 <마지막 사중주>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원제목에 충실하자면 <한 편의 후기 4중주곡>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편의 후기 4중주곡>이란 베토벤의 작품 131번으로서 열여섯 편의 현악4중주곡 중 열네 번째 곡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곡을 공연하기 위해 한 유명한 현악4중주단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네 단원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애증과 고뇌를 그린 영화가 <마지막 사중주>입니다. 지난 주간 뉴스에 따르면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예술영화로는 최초로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현악4중주에 있어서 단원 각각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 아는 것이겠지만 현악4중주단은 바이올린 연주자 두 명과 비올라 연주자 한 명 그리고 첼로 연주자 한 명으로 구성됩니다. 
그중 제1바이올린 연주자는 치밀하고 정확한 연주로 사중주를 이끌어갑니다. 그는 다른 단원들의 조련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제2바이올린 연주자는 음악에 색깔과 질감과 리듬을 부여하는 연주자입니다. 그는 제1바이올린 연주자의 뒤에서 튀지 않게 연주를 하면서 제1바이올린이 빛을 발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의 연주자들은 급이 다른 것이 아니라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2바이올린이 없으면 나머지는 불쌍한 3인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솔로를 담당하는 제1바이올린을 비올라와 첼로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2바이올린이기 때문입니다. 수면 바로 밑에서 흘러가듯 하면서 모든 음률을 어울리게 합치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제2바이올린 주자의 질이 현악사중주단의 질을 판가름해줍니다. 특히 제2바이올린은 사중주의 화음을 위해서 제1바이올린이 되고 싶은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비올라는 다른 악기가 낼 수 없는 소리를 냅니다. 마치 상처받은 영혼의 소리를 내면서 이유 없이 울게 만드는 음악에로 연주를 승화시켜줍니다. 
첼로는 다른 악기들보다 높은 소리를 내려하지 않으면서 다른 악기들이 그 아름다움을 발휘하도록 밑바닥을 튼튼히 받쳐줍니다. 
이렇게 네 연주자가 각각 정확하게 자기의 고유한 역할을 담당할 때 현악4중주는 다른 어떤 음악보다도 감동적인 내면의 울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영화 <마지막 사중주>는 현악4중주단에 있어서 각 단원의 역할에 관한 음악적 지식을 넘어서서 인생이 무엇이며 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귀한 통찰을 주는 영화입니다. 사람마다 재능과 능력이 다릅니다. 누구나 꼭 같을 수 없고 또 모두가 같은 일을 꼭 같이 잘 할 수도 없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언제나 완벽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바로 알고 만족할 줄도 알며 감사할 줄도 알고 겸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남의 다른 능력을 인정할 줄도 알고 칭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남의 실수를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며 실수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는 더더욱 인내할 줄 알고 양보할 줄도 알며 희생할 줄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분담할 줄도 알아야 하며 능력이 같아도 역할을 달리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 사중주>에서 그려낸 갈등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제2바이올린 연주자가 자기가 제1바이올린 연주자보다 실력이 뒤지는 게 뭐냐 하며 자기도 제1바이올린을 맡겠다고 나서면 좋은 4중주단이 될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제2바이올린 연주자가 자기의 역할을 잊어버리고 제1바이올린을 배려하지 않은 채 막 튀는 연주를 하거나 다른 악기 연주자들도 전체 화음과 균형을 무시한 채 각자 독자적인 연주를 해댄다면 그런 4중주단은 빨리 해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모두가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단 한 차례의 실수도 하지 않는 완벽한 연주를 해야만 칭찬할 것이 아니라 한 순간 한 대목에서라도 빛나며 감동적인 연주를 했을 때는 그것을 인정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단체생활 또는 사회생활의 원리도 꼭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한 지체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세우신 이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켜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롬12:4-8에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또 고전12:4-11에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그리고 또 쓰기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했습니다(고전12:27-30).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합니다. 

교회 안에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으며 집사도 있고 권사도 있지만 각각의 직분이 다 다르며,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의 모든 지체는 각각 다른 지체들의 존재가치와 역할과 능력을 인정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충성됨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현악4중주에 있어서 제1바이올린 연주자는 치밀하고 정확한 연주로 사중주를 이끌어가며 다른 단원들의 조련사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바른 말씀의 진리로 교인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목회자의 역할이 거기 해당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2바이올린은 제1바이올린 뒤에서 튀지 않게 연주를 하면서 제1바이올린이 빛을 발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음악에 색깔과 질감과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 제2바이올린이라 했습니다. 수면 바로 밑에서 흘러가듯 하면서 제1바이올린을 비올라와 첼로에 연결시켜주고 모든 음률을 어울리게 합치는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2바이올린 주자의 질이 현악사중주단의 질을 판가름해준다고 했습니다. 사중주의 화음을 위해서 제1바이올린같이 되고 싶은 생각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이 제2바이올린의 역할에 해당하는 직분이 장로이리라고 생각됩니다. 

한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아닌지는 장로들의 수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가 있어도 장로들의 의식과 능력이 그에 못 미치면 목사가 빛이 안 나고 교회는 수준 낮은 교회, 발전 못하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장로들이 목사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서 목사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거나 수면 아래에서 교인들을 섬기며 목사와 교인들 사이를 잘 연결시켜주는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하면 그 교회는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장로들은 교회 안에서 제2바이올린 같이 해야 합니다. 

비올라는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다른 악기가 낼 수 없는 영혼의 소리를 냅니다. 스스로를 요란스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기도 많이 하며 소리 없이 열심히 교회의 구석구석에서 섬기는 권사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현악4중주 연주에서 비올라가 다른 악기들을 다 압도하며 혼자 소리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권사들이 목사고 장로고 다 제치고 교회의 온갖 일을 주장하려 하면 교회가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권사만이 할 수 있고 권사들만이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뒤에 물러가 앉아있으면 교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권사들은 교회 안에서 비올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첼로는 다른 악기들보다 제일 낮은 데서 소리를 내며 다른 악기들이 그 아름다움을 발휘하도록 밑바닥을 튼튼히 받쳐줍니다. 교회의 온갖 궂은일들을 다 담당하는 집사들의 역할이 그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집사들이 얼마나 묵묵히 그들의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해주느냐에 따라 목사, 장로, 권사들의 하는 일이 힘을 얻고 빛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현악4중주는 네 연주자가 각각 정확하게 자기의 역할을 이해하고 수행할 때 다른 어떤 음악보다도 감동적인 내면의 울림을 일으킵니다. 현악4중주에서 제2바이올린이나 비올라나 첼로처럼 모든 제직이 각자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써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고 세상의 그 어떤 공동체보다도 감동을 주며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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