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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디딤돌 인생, 걸림돌 인생(2) (삼상 11:14 - 삼상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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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인생 걸림돌 인생(2) (삼상 11:14 - 삼상 12:5)

여러분, 지난 한 주 동안 디딤돌처럼 사셨습니까? 걸림돌처럼 사셨습니까? 

몇년 전에 <블랙>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2005년도에 만들어진 인도 영화인데, 너무너무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셸이라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아이입니다. 정신지체아가 아님에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다는 이유로 8살이 될 때까지 그 아이는 거의 동물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허리춤에는 깡통을 매단 줄을 달고 다녀야 하고, 손으로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조금만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괴성을 질러댑니다. 도저히 그 아이를 집안에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미셸을 요양원으로 보내려 하지만, 어머니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전문 선생님을 모셔 교육을 시키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모셔온 사람이 사하이 선생님이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사하이 선생님은 자신의 남은 생애를 그 아이를 위해서 바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미셸의 집에 찾아옵니다. 사하이 선생님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미셸에게 오직 하나 남은 감각을 통해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고집쟁이 미셸에게 사하이 선생님이 처음 가르쳐준 단어가 블랙(BLACK)이라는 단어입니다. 단어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손바닥에 입을 대고 단어를 말하면서 입모양을 통해 감각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팔에다 수도 없이 알파벳을 써 줍니다. 그러면서 물(water)이란 단어를 가르치고, 꽃(flower)이란 단어를 가르쳐줍니다.
  
사하이 선생님은 오직 그 아이 하나를 위해서 자신의 생애 전부를 바쳤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미셸을 대학에 입학시켰고, 남들은 4년 만에 졸업하는 대학을 미셸은 12년 만에 졸업하게 됩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 미셸이 사하이 선생님의 희생적인 노력을 통해서 12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지만, 미셸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사하이 선생님은 그 감격적인 미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입니다. 미셸이 졸업 가운을 입고 병원을 찾아가지만, 선생님은 미셸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병이 너무 깊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짐승과 다름이 없이 살던 미셸이 사하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8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2년 동안 사하이 선생님은 오직 미셸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 32년이라는 자신의 남은 생애 전부를 바쳤던 사하이 선생님이 계셨기에, 버림받고 짐승처럼 살아가야 할 한 여인이 참된 인생을 찾게 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잘 아는 헬런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0)와 그녀의 선생님이었던 앤 설리번(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1936)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입니다. 
  
헬렌 켈러가 헬렌 켈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불가능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 전부를 희생했던 앤 설리번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 뒤에는 그들을 위해서 희생했던 위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에게는 한나라는 기도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성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에게는 이교도에 빠진 아들을 위해 30년 동안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19세기 최고의 부흥사인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에게는 빚쟁이가 몰려드는 가난 속에서도 신앙으로 아들을 키운 호오튼 부인이 있었습니다. 
  
배후에서 누군가를 위해 디딤돌이 되어주었던 이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기도와 내 희생을 통해서 누군가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디딤돌이 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디딤돌입니까? 걸림돌입니까? 내가 있음으로 우리 가정이 행복하다면, 내가 우리 가정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디딤돌입니다. 내가 있음으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내가 있음으로 가정이라는 자리가 불편하다면 우리는 가정에 걸림돌입니다. 

그건 교회에서도 그렇고 직장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있음으로 기쁘고 행복하다면, 내가 그곳에 유익된 사람이라면 나는 디딤돌입니다. 그러나 내가 교회에 있음으로, 내가 그 직장에 있음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생겨나고 불화가 있다면 나는 그곳에 걸림돌입니다. ‘차라리 그 사람은 없는 것이 나아!’라는 말을 듣는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 걸림돌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디딤돌이었던 사람입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이 자신을 밟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한 디딤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데 1등 공신이었지만, 나라를 세우는데 1등 공신으로서의 어떤 대우나 명예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딤돌 인생을 사는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제물이 된다 하더라도 그곳에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필요로 할 때에 언제든지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은 왕이 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왕이 될 때에는 굉장히 겸손했고, 믿음도 좋았는데, 왕이 되면서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버리시고 새로운 왕을 세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사울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무엘은 새로운 왕에게 부을 기름병을 챙겨 가지고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자기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늙은 사무엘에게 새로운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으로 가는 그 발걸음을 결코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울에 대한 실망감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의 위험을 안고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긴 했지만, 사울이 여전히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사울 왕이 이 소식을 안다면 사무엘을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다른 왕을 세우기 위해서 이새의 집을 찾아갔고,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누군가를 새로운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알려지면 사울이 사무엘을 죽이려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새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사무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니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삼상 16: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노라고 말하라.’고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으로 갑니다.

옛날에 왕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 하다가는 대역죄인으로 큰 벌을 받습니다.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 하는 것은 역모를 꾸미는 짓으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베들레헴 이새의 집을 향해 가는 사무엘의 모습을 왕좌에 앉아 있는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대역죄로 처단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나라를 살리는 길이 그 길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는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그 길 가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무엘을 이스라엘 역사의 디딤돌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디딤돌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디딤돌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복음 증거 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았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그 복음 증거 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면서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죽을 고비도 참 많이 겪어야 했습니다. 반대하는 무리들과 싸워야 했고, 비방하는 사람들의 온갖 비방과 조롱소리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묵묵히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도 바울을 디딤돌로 하여 복음의 역사가 세계를 향해 뻗어가도록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사명의 길을 갈 때에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가라 하시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습니까? 아무도 나를 지지해 않아도 주님께서 가라 하신다면 묵묵히 그 길을 갈 수 있습니까? 내가 가야할 사명의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께서 내게 주신 길이기에 십자가라도 지고 갈 수 있습니까?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에는 디딤돌이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내가 디딤돌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길에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실 때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사람이 디딤돌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디딤돌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신앙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당장 보기에는 디딤돌 같아 보일지라도 후에는 그 깨끗하지 못함 때문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러자 백성들이 일제히 소리칩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모든 백성들이 당시 이스라엘의 사사요 선지자로 사역했던 사무엘을 향하여 그의 생애가 얼마나 깨끗했는가를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5절 말씀에 의하면, 사무엘이 왕으로 기름을 부었던 사울도 사무엘의 깨끗함을 증거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도 사무엘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깨끗하다는 것을 증거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사무엘의 역할은 사사였습니다. 그는 선지자이며 동시에 사사였습니다. 사사(士師, Judges)는 백성의 지도자요 재판관이었습니다. 나라가 이방 민족으로부터 압제를 당했을 때에는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을 통해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했고,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에는 백성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재판관의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재판관의 역할은 자칫 잘못하면 큰 비리에 휘말릴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사무엘이 말한 것처럼, 재판을 핑계삼아 백성들로부터 뇌물을 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 정치적인 지도자요 재판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백성들을 압제하여 백성들에게서 소나 나귀와 같은 재산을 탈취하여 부정축재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런 모든 불의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고, 깨끗하게 직임을 감당했다고 자부했습니다. 백성들도 그것을 다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 사무엘이 자신의 직임을 깨끗하게 감당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성들이 사무엘이 세운 지도자인 사울을 왕으로 인정할 수 있었겠습니까? 왕은 사사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무엘이 만일 백성들을 압제하고 뇌물을 받아 불의한 재판을 일삼았다면, 그런 사무엘이 세운 왕은 사무엘보다 더 백성들을 괴롭고 힘들게 할 게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졸라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이 세운 왕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런 모든 것에서 깨끗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새 역사의 지평을 여는 디딤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의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거짓되고 부패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자행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먼 다른 나라 말고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대통령의 권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비리들이 속속 들어났습니다. 부끄러우니까 일일이 다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늘 비리에 휩싸이게 됩니까?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없고 힘이 없는 곳에는 비리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 같이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업에서 몇 억, 몇 십억, 몇 백 억씩 갖다 주겠습니까? 아마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겠다고 좀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면, 가짢다는 듯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권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그만큼 비리에 노출되어 있고, 비리에 얽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리에서 깨끗할 때에 권력은 참된 힘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정치에도 사무엘과 같은 깨끗한 정치인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더 좋아집니다. 

정치인들만 탓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권력이 없다고,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처럼 큰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우리가 그들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할 수 있습니까? 권력이 없는 우리의 삶에서 깨끗하지 않으면 우리나 그들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권력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큰 비리에 휘말리는 것이고, 권력이 없는 우리는 작은 것에 휘말리게 되는 것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의 작은 삶에서 깨끗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신앙인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걸림돌도 장소만 바꾸면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바꿔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만 되었던 걸림돌 인생도 성령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고 하나님의 말씀의 정으로 쪼개지면 디딤돌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걸림돌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 안에서 거듭나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니까,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딤돌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라』라는 제목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샬린 파웰이란 여성은 마흔 두 살에 바지 사이즈가 40인치가 넘었습니다. 어머니가 정맥염으로 세상을 떠나자 비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살을 빼기 위해서 에어로빅 클럽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같은 곳을 오래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뚱뚱해서 ‘저런 사람도 있나?’ 하고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그 시선도 부담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날씬한 에어로빅 선생님이 하는 동작을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을 빼려고 에어로빅 클럽에 다녔는데, 살을 빼기는 커녕 뚱뚱하다는 것 때문에 수치심과 절망감만 깊이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나 같이 뚱뚱한 사람을 위해 에어로빅 클럽을 만들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빚을 내서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전문 강사도 초빙했습니다. 그러나 두 달 만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날씬한 에어로빅 강사가 뚱뚱한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에어로빅 강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지도자 과정을 다 마치고 ‘뚱뚱한 여성을 위한 피트니스 클럽’을 다시 만들어 자신이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클럽에 오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자신처럼 뚱뚱한 사람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동작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든 ‘뚱뚱한 여성들을 위한 피트니스 클럽’은 미국 전역에 52개의 지점을 둔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뚱뚱하다는 것 - 그것이 샬린 파웰에게는 인생의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까 그것이 오히려 성공하는 인생을 만들어준 디딤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디딤돌 인생과 걸림돌 인생은 아주 작은 차이입니다. 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걸림돌 인생이 디딤돌 인생으로 바꿔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 삶에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배우지 못한 것? 건강이 좋지 못한 것? 가난한 것? 나이가 많다는 것? 혹시 그것 때문에 걸림돌 인생으로 살고 계시진 않습니까? 그것을 신앙의 눈으로 조금만 바꿔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 내 인생이 디딤돌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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