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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구나! (시 5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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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구나! (시 58:1-11)


1 너희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말 정의를 말하느냐? 너희가 공정하게 사람을 재판하느냐? 2 그렇지 않구나. 너희가 마음으로는 불의를 꾸미고, 손으로는 이 땅에서 폭력을 일삼고 있구나. 
3 악한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곁길로 나아갔으며, 거짓말을 하는 자는 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빗나갔구나. 4 그들은 독사처럼 독기가 서려, 귀를 틀어막은 귀머거리 살무사처럼, 5 마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않는구나. 

6 하나님, 그들의 이빨을 그 입 안에서 부러뜨려 주십시오. 주님, 젊은 사자들의 송곳니를 부수어 주십시오. 7 그들을 급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십시오. 겨누는 화살이 꺾인 화살이 되게 해주십시오. 8 움직일 때 녹아내리는 달팽이같이 되게 해주십시오. 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가 죽어서 나와 햇빛을 못 보는 것같이 되게 해주십시오. 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것과 불붙은 것이, 강한 바람에 휩쓸려 가게 해주십시오. 10 의로운 사람이 악인이 당하는 보복을 목격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악인의 피로 그 발을 씻게 해주십시오. 
11 그래서 사람들이 "과연, 의인이 열매를 맺는구나! 과연, 이 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세상이 악해져 간다고 말합니다.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세상이 악해질 때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악한 세상을 묵상하다가 심령이 상하여 무너지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원망하고 탄식하다가 절망하거나, 악한 자를 닮아 버리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아무리 크고 그 세력이 강하여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더 크고 강하신 주님입니다.
그래야 악한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살던 시대는 악한 왕이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시 58:1-2 너희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말 정의를 말하느냐? 너희가 공정하게 사람을 재판하느냐? 그렇지 않구나. 너희가 마음으로는 불의를 꾸미고, 손으로는 이 땅에서 폭력을 일삼고 있구나. 
다윗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악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3절 악한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곁길로 나아갔으며, 거짓말을 하는 자는 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빗나갔구나.  

악한 자는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심판도 믿지 않습니다.

다윗은 6-10절까지 하나님께 악한 자들을 심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6 하나님, 그들의 이빨을 그 입 안에서 부러뜨려 주십시오. 주님, 젊은 사자들의 송곳니를 부수어 주십시오. 7 그들을 급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십시오. 겨누는 화살이 꺾인 화살이 되게 해주십시오. 8 움직일 때 녹아내리는 달팽이같이 되게 해주십시오. 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가 죽어서 나와 햇빛을 못 보는 것같이 되게 해주십시오. 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것과 불붙은 것이, 강한 바람에 휩쓸려 가게 해주십시오. 10 의로운 사람이 악인이 당하는 보복을 목격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악인의 피로 그 발을 씻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악한 자들에게는 이런 말이 우스울 뿐입니다.

그러나 낙심만 할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이렇게 악해져 가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 것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다윗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이 온통 악한데도 더욱 믿음 위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축복이고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이 악한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능력입니다.

[바보의사]라는 별명이 붙은 안수현 형제가 의대 본과에 올라갔을 때, 너무나 궁금한 것이 있어서 선배에게 물었습니다.“형, 본과 올라가도 교회생활 잘할 수 있어요?”그 질문에 그 선배가 조금도 망설임없이 분명하게“그럼.”하고 대답하더랍니다.‘그렇게 쉽고 간단한 문제였나?’순간 멍하였지만 그 대답을 준 선배에게 내내 고마웠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4년 내내 주일예배를 드리러 갈 것인지, 교회 모임의 리더생활을 계속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그 선배의 대답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려고 애써왔다고 했습니다. 인턴을 할 때도 딱 한주 외에는 주일예배 다 드리고 성가대 활동도 하고 그룹의 리더도 다 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아무리 골치 아픈 문제라도 결론이 명확합니다. 

결국 사람은 믿는대로 사는 것입니다. 안 믿어지니 악하게 사는 것이고, 믿어지니 굿굿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의로운 자로 살아갑니다. 

욥의 아내는 겹치는 시련 앞에서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이라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안 믿어지니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믿어지니 어떻게 합니까?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돌 던지는 자를 축복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신 주님이 눈 앞에 보이는데 어떻게 합니까?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으려 혈안이 된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던 것도 하나님이 믿어지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막연한 믿음, 지식으로서의 믿음이면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믿을 때가 옵니다. 다윗이 기도한 대로입니다.
11절 그래서 사람들이 "과연, 의인이 열매를 맺는구나! 과연, 이 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문제는 도무지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지 알 수 없을 때 하나님을 믿고 의의 길을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이런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릅니다. 순교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 여러분은 담대하게 “나는 의롭게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선언할 수 있겠습니까? 이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토요일인 어제, 이천중앙교회에서 연회 어린이 성경경시 및 예능대회가 열렸습니다. 올해 제가 연회 교육분과위원장이어서 개회예배 설교를 하러 가야 했습니다. 2시간을 오고 가는데 설교는 10분, 그것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해야 했습니다. 이 스케쥴에 대하여 전해들었을 때‘이거 꼭 가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간 부담도 그렇고 어린이 설교를 해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는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큰 예배당에 거의 다 들어찬 어린이들에게 설교하려고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들 앞에서 10분 동안“주 예수님께서 마음에 계심을 믿으라”고 설교하였는데, 조용히 집중하여 저를 쳐다보는 아이들로 인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교회의 어른들의 모습은 부끄럽지만 어린 아이들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음에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믿음의 시련을 겪게 될까? 생각하며 간절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른입니다. 믿음도 어른입니까?
어린 아이가 세월이 지나면 어른이 되듯이 예수님을 믿은 지 세월이 지나가면 믿음도 강하게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훈련에서 가장 힘든 것은 믿음이 실재가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다릴 것입니까?
막연하게 기다려서는 중간에 다 쓰러지고 맙니다.
 
미국 워싱턴에 갔다가 2차대전 중 독일에 의하여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갔던 수용소 생활을 재현해 놓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너무 충격적이라 곳곳에서 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도 마음이 너무 무거워 며칠 동안 몸에 이상이 왔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악명 높았던 폴란드 아이슈비쳐에서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유롭게 된다는 예언이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수용소 안에 죽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는 믿음이 사람을 그렇게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되어도 자유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무너지자 견딜 힘을 잃은 것입니다.

이번에 애틀란타에 갔다가 돌아가셨지만 존경받으시는 목사님 한 분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한번은 교회협의회 정기모임 때 설교하다가 느닷없이 이미자가 부른‘동백아가씨’노래를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다들 코미디같은 분위기에 웃었지만 목사님은 개의치 않고 2절까지 불러댔답니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2절을 부를 때, 사람들의 웃던 입을 다물어지고 눈에 눈물이 맺혔답니다. 목사님께서 왜 그 노래를 불렀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와서 사는 이민자들의 마음은 동백꽃보다도 더 빨갛게 멍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민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교인이 될까 하여 마음을 다해 섬기고 도왔지만 얼마 교회 나오다가 떠나간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언제 다시 돌아오나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음은 빨갛게 멍이 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고백했습니다.“동백꽃은 빨갛게 멍이 들었지만, 제 가슴은 빨갛다 못해 까맣게, 아주 새까맣게 타버렸어요.” 

그날 참석자들은 모두 자기 가슴을 어루만져가면서 지나온 이민살이를 생각하며 울었답니다. 그 목사님은 동백꽃잎이 떨어지듯이 66세 비교적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그를 사랑하던 분들이 유고집을 냈는데 제목이 [동백아가씨를 노래하는 목사]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민 목회자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은 그저 막연히 응답의 날,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친히 이루실 주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중에야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겠지만 믿음의 사람은 악한 자가 득세한 순간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 보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눈을 떠야 합니다.
절망적인 순간이 올 때, 오히려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할 좋은 기회라고 여겨야 합니다.

강화도에 있는 에덴교회가 어느 해 필리핀 단기선교를 갔었는데, 재정 담당자가 가져간 돈을 다 분실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다들 긴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 이런 일 속에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비상금을 털자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부족하지만 재정이 모아져 겨우 선교여행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필리핀을 출국하려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잃어버린 돈 봉투를 발견한 것입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그 택시가 입국 때 타고 갔던 택시인 것을 알고 꼼꼼히 차 안을 뒤지다가 의자 틈에 끼어 있는 봉투를 찾은 것입니다, 공항에서 선교팀들은 주님이 재림한 것 같이 모두 뛰면서 기뻐했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을까?’생각하다가 그 돈을 선교사님이 짓고 있는 학교 부지 헌금으로 드리고 왔답니다. 

교인들이 고백하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자신들이 쇼핑하지 않게 하신 것이라고 간증하였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쇼핑할 생각만 했을텐데, 비상금 다 털어내고 나니 선교 여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돈을 잃어버리고 더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세상이 다 악해도 의인의 삶을 사는 자가 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사람들이 "과연, 의인이 열매를 맺는구나! ..." 하고 말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위해 드린 기도를 생각해보십시오.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악을 고쳐 달라고도 하지 않았고, 좋은 위정자를 세워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 "의인이 있어도 멸하겠습니까?" "하나님이여 의인 열이 있어도 멸하겠습니까?" 기도했습니다. 
의인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5장에 보며 더 기가 막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의인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다 악한데,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의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자연스러워 지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 집회는 출발할 때부터 특별하였습니다. 늘 하던 것처럼 출국하면서 주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주여 이번 여행도 인도해 주소서 기도할 때, 주님은 이번 여행은‘하나님의 나라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체험이라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지만, 함께 제 일정을 잡아주는 일을 위하여 동행하였던 부목사님께 일정을 잡을 때 관광보다는‘하나님의 나라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도록 일정을 잡아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이번 미국 집회는 설교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사람들을 만나는 중에 중간 중간에 집회를 인도한 것 같은 일정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나오면서 박우영 목사와 서로 쳐다보며“참 놀랍지 않아!”하는 표정을 지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 일정 마지막 날인 어제는 너무나 특별했고 놀라왔고 흥분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하루를 쉬는 일정이었습니다. 특별히 사람을 만날 일정이 없었고 그저 워싱턴을 하루 둘러보도록 안내해 준다는 제의만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면서“주님, 오늘은 무엇을 할까요?”하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마음에 강하게‘하나님의 나라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사람이다!’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에 확신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안내해 주신다는 집사님이 그 사람인가?’하는 마음으로 워싱턴 D.C를 보러 나섰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를 해주시는 집사님이 운전해 가시다가 대학 동창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사람이 KBS [성공시대]에 방영된 분이라면서 이름이 Tim Haahs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애틀란타에 도착한 날,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였는데 방송국장에게‘혹시 하나님의 나라 사람이라고 소개해 줄 사람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 사람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언급한 사람이 Tim Haahs 라는 한국계 미국 실업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대단히 성공한 실업인으로 오바마 연방 정부에서 건축 관련 백악관 자문위원으로 임명된 분이라 하였습니다. KBS [글로벌 성공시대]에서 소개된 분이라면서 자신이 만나본 사람들 중에 이 분처럼 놀라운 신앙의 사람은 없었다면서 이 분을 꼭 만나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이렇게 빨리 응답해주시는가?’하는 마음에 매우 흥분하였지만 그가 펜실바니아에 산다는 말에 마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미 연방정부 회의에 참석하려고 지금 워싱턴에 있다는 것이었고 안내하시는 집사님과 대학 동기동창이며, 우리를 만나도록 연락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차 안에서 너무 놀랐습니다.
연방 정부의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인 분이었는데, 순탄히 연락도 되고, 흔쾌히 만날 약속도 되어 결국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나 보니 이 분은 그저 성공한 실업인이 아니었습니다. BAM 사역을 가장 놀랍게 이루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목사였고 기업 경영을 철저히 성경 말씀과 성경적인 원리대로 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기업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KBS [글로벌 성공시대]에서 이 분에 대하여 방영하였지만, 이 분의 경영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인 성경적 경영원리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헌신 부분은 방송국 방침상 뺄 수 밖에 없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한국에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년 BAM 컨퍼런스에 초청도 하였습니다. 

호텔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에디오피아 사람이었는데, 너무나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의 때가 임박하였다고 설교도 하고 내릴 때“천국에서 만나자.”고 인사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마치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시는 날로 정하신 것 같았습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제 삶과 사역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는 것처럼 황홀한 일이 있을까요?

이번 두 주간도 미국도 한국 사회도, 교단 문제도 마음이 상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어찌 이리 담대한지 모르겠습니다. 
악한 세상만 크고 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더욱 크시고 강하신 분이십니다.
믿음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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