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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 (마 21: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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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 (마 21:33-46)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욕심이 가져오는 결과는 백해무익이고 너도 사망, 나도 사망, 모두가 사망이다. 돈 때문에 어머니도 죽이고 아내도 죽이고, 보험금을 타려고 집에다가 불을 지르는 것은 모두 욕심이 잉태한 결과들이다.   

오늘 비유의 이야기도 욕심, 죄, 사망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인데, 청중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다. 즉 비유의 내용 그대로 주인이 보낸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는데 그 악한 일을 한 포도원 농부가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이란 말이다. 집 주인은 자기가 보낸 자기 종들이 수난을 당하고 난 후 어쩔 수 없이 다른 종들을 보냈는데 악한 포도원 농부는 전과 똑같이 행동하였다. 결국 집 주인은 자기 아들을 보낸다. 그러나 농부들은 마21:38에서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한다.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그래서 아들을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인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 비유의 마지막 질문 앞에 청중은 대답한다.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결국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이 비유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악한 자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악한 자의 될 일을 대답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유를 말씀하신 그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아는대로 행동하지 않고 해서는 안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오늘 비유를 통해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가장 성스러운 종교 지도자들이지만 그들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는 자들이고 하나님 나라는 제 때에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 하나님 나라의 열매란 무엇일까? 마태는 이 비유 안에서 열매란 단어를 4번 사용하고 있다. 

마21: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마21:41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마21:43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열매란 단어는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마가는 7번, 누가는 13번 열매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마태복음에는 모두 19번이나 나오는데 세 복음서 중 최고로 빈번하다. 열매란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두 아들의 비유에서도 “뉘우치고” 가 핵심 단어 및 구절인데 오늘 비유에서도 종교 지도자들이 비유의 뜻을 알면서도 뉘우침 따위가 전혀 없이 예수를 잡으려는 것을 볼 때 이 열매는 뉘우치고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의 열매이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했고 마3:8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며 또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라고 한 것을 보면 회개는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가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할 때 외치신 메시지가 마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였다. 

그러므로 오늘의 비유의 결론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열매란 회개의 열매인데 오늘의 비유에서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인가?
  

1. 주인의 것을 내 것으로 아는 욕심을 회개하라. (마21:33)

마21:33을 보면 포도원 농장의 주인은 포도원을 위해 산울타리를 만들었다. 거기에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었다. 또 망을 보고 포도원을 지키는 망대도 만들었다. 포도원 농장은 주인이 만들어 놓은 주인의 것이다. 다만 주인이 타국에 가야 하기에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떠난 것이다. 분명히 농부들은 소작농들로서 세를 떼어 내야 한다. 그런데 주인이 타국에 가고 없으니까 농장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욕심이 자라나 주인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그 허상을 쫓는 꿈을 품었다. 이는 착각이고 망상이다. 

누구나 욕심을 가지고 살면 불행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탐욕, 그것을 회개해야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지 않는다. 거룩하고 의롭고 희락과 평강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는 내 것이 된다.
  

2. 주인의 명을 받드는 종을 박해하는 죄를 회개하라. (마21:35)

마21:34 “열매를 거둘 때가 가까우매...” 주인은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마21:35을 보면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이라 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이 사실을 알고 마21: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냈다. 그런데 똑같이 종들을 대하였다. 이것은 악한 농부들의 무서운 살인, 폭력, 강도의 죄이다. 그러나 이는 한 시대의 죄가 아니고 구약 시대의 죄이다. 

즉 종들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명을 받고 보내어진 선지자들이다. 역사 속에 나타난 아모스, 호세아 등의 선지자를 비롯해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무수한 선지자들이다. 하나님이 이들을 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보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을 종교 지도자들이 핍박했다. 거절하고 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의 종된 악한 농부들은 살인을 하면서도 살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백성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따라 똑같이 의인을 핍박하였다. 욕하고 돌을 던지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이런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받을 수 있는가? 선지자들이 모두 다 외칠 때 돌아오라. 그리하면 산다. 

하나님에게, 주인에게 돌아오면 산다고 외치고 주인의 뜻을 전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더욱 강퍅해지고 폭력, 살인, 강도짓을 계속했다. 어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이 무서운 죄악, 패역에 해당하는 죄를 회개해야 하나님 나라를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주인의 뜻을 전하는 이를 도와라. 순종하라. 협조하라. 그것이 마땅한 할 일이다.
  

3. 예수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는 살인 죄를 회개하라. (마21;38)

주인은 너무도 실망하였다. 악한 농부들의 행태는 너무나도 극악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들에게 주인은 아들을 보내기로 한다. 아들은 사환이 아니다. 아버지의 분신이다. 주인은 마음을 새롭게 작심하고 마21:38을 보면 아들을 보낸다. 그 아들이 보내어졌을 때 악한 포도원 농부들은 서로 말한다.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악한 농부들은 모의하였다. 주인의 작심된 마음을 조롱하듯 서로 의견이 어긋나지도 않았다. 아들을 죽여 유산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음모에 하나가 되었다. 

이 아들은 누구인가? 바로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 자신이시다. 메시야로 보내어진 예수, 예수가 가면 악한 죄에 빠져 있는 이들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길 없다는 듯 아버지, 아들로 이 땅에 보내신 예수를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인다. 예수는 정말로 영문 밖으로 이끌림을 당하고 골고다에서 죽는다. 

어떻게 보면 슬픈 비유다. 자신이 누구에게 죽는다는 것을 말하는 비유이니 안타깝다. 이 비유를 듣는 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이 앞장서서 예수를 붙잡으려고 처형의 십자가에 넘겨 죽도록 하였다. 

이 비유 이야기 끝인 마21:41에서 그들이 말한다. 바리새인들이, 대제사장들이 말한다. 말만 가지고 악한 농부를 갈아치우라고 말한다.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그들은 당연한 말을 하였다. 정확하게 맞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오히려 핍박자가 된다. 살인자가 된다.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자! 저들 자신이 아들 예수를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으니 어찌 하나님 나라가 저희의 것이 되겠는가? 메시야를 죽인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는 저희에게 주어지지 못한다. 죽이는 자들은 대상을 죽어버리면 이기는 줄 안다. 잡고 때리고 돌로 치고 협박하면 악한 뜻이 이루어질 줄로 안다. 참으로 죄가 가져다주는 오판이다. 이는 욕심에 빠진 미치광이의 생각이다. 삶이란 죽여 버리면 이기는 것인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승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비유는 포도원 주인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21:40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즉 종말에 있을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악한 농부는 종말 심판, 주의 재림이란 것을 믿지 않으니 죄가 승리하는 줄 안다. 허나 우리는 심판을 믿고 재림을 믿고 죄가 패배함을 본다. 그리고 오늘의 비유에 첨부된 주님의 말에 주의하라. 아들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부활하여 심판의 돌이 된다는 것이다. 

마21:42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유대 백성이 외면하고 거절한 예수가 버린 돌이 아니고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 그 분이 심판의 기준이다. 의의 기준이다. 그래서 마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셨다. 예수는 부활의 산 돌이 되신다. 산 돌 되신 예수님에게 악한 농부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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