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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10) : 처음 사랑 (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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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10) : 처음 사랑 (계 2:1-7)

요즈음 교회 중에 싸우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강북에 있는 한 교회는 3년 째 분쟁 중인데 담임 목사가 출장비를 받고서 출장을 가지 않았다고 해서 출장은 아파서 가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교인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담임목사는 교회를 나갔습니다. 하모 집사가 주동이 되어 목사의 재정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횡령· 배임으로 고소하였답니다. 법원에서 혐의 없음으로 판결이 났다고 합니다. 목사는 떠났고 목사가 떠난 지 2년이 넘었지만 교인들은 셋으로 찢어졌고 교회 돈 15억 원을 누가 썼느냐며 교인들끼리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교인들은 일부 교인은 하집사를 추궁했고 횡령 혐의로 고소했답니다. 

목사 청빙을 두고도 교인들이 대립했고 청빙위원회를 꾸렸지만 하 집사를 비롯한 일부 교인들의 방해로 청빙위원회는 제대로 모이지 못했답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하 집사가 특정인을 담임목사로 데려오려 한다며 의심했답니다. 

목사를 보내기 위해 한때 뜻을 같이한 이들의 싸움은 더 지독했답니다. 주먹다짐이 비일비재했고, 부상자가 생겨 경찰과 용역이 수시로 등장했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일부 교인들이 하 집사를 신천지 교인이라고 주장하여 다시 시끄러워졌답니다. 당회 반대 측을 이끄는 두 집사가 신천지 신도인데 위장하여 교회에 침투해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빼앗으려고 하려한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입니다. 

‘산 옮기기’란 이단 신천지가 정통 교회에 침투해 통째로 교회를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교회가 위치한 서울 강북지역은 신천지 야고보지파가 있는 지역"이라면서 "신천지 야고보지파 내부에서 최근 교회를 장악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신천지 탈퇴자들을 상대로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신천지 야고보지파에서 탈퇴한 이들 중 여러 사람들이 교회에 신천지가 침투해있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면서 "의심의 여지없이 신천지가 교회를 상대로 ‘산 옮기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분쟁교회에 많게는 100명, 200명도 들어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신천지측은 “허위사실 보도 및 유포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법원에 고소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4부는 “피고들이 그렇게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하였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신천지가 개입했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신천지가 신도들을 다른 교회로 보내 신앙생활 하게 하면서 이 교회 신도들을 데려오는 방법으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점, 신천지 교육자들이 신도들에게 다른 교회에 출석해 기존 신도들이 서로 멀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기존의 목사 전도사 신도들이 나가게 하는 방법으로 포교활동을 하라고 교육했던 점, 신천지 탈퇴 신도들이 신천지는 다른 교회를 차지하는 방법으로 포교를 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던 점 등이었습니다. “하 씨 등은 교회 내분의 한 축에 있었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신도들의 교회 출입과 예배, 부목사의 설교 등을 방해하고 폭행 감금 등의 강압적 방법을 사용했다”면서 “하 씨 등이 신천지 신도이고 교회를 탈취하려 한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시했습니다. 

교회가 이런 일을 겪으면 무엇이 없어질까요? 사랑이 없어집니다. 교회는 다 잃는다 해도 사랑만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사랑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얻는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교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은 교회는 교회의 존재 의미가 없어집니다. 오늘 성경에 소개된 에베소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Ⅰ. 첫 사랑을 잃은 교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은 교회가 되었습니다(4).
 
1.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이 있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였습니다.(엡18:18-23; 19:1-8) 바울이 3년 동안 눈물과 희생으로 목회한 교회였습니다.(행20:17-38) 나중에 아볼로가(행18:24-) 목회하였고 디모데가 목회한 교회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목회하였습니까? 사랑도 전염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정이 있던 사람들이 목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엡1:15; 3:18 4:2 4:15; 5:2)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엡 1:15)”

사도 바울은 이미 30여 년 전에 에베소 교인들의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언급하바 있고 사랑을 권고하였습니다. 성경을 한 번 찾아보세요.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이별하는 장면 말입니다.(행20:17,19,24,31,35,36,37)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1)”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행 20:35)”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1장 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니고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이 참 사랑을 알게 하시고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랑으로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목회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도 전염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랑이 있었습니다. 

2.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이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버렸다는 말은 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배신하였다는 말입니다. 식어졌다는 말입니다. 

3. 우리는 첫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최고의 덕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1-3절을 보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방언도 천사의 말도 예언도 지식도 구제도 헌신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어느날 서기관(율법사)이 와서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마22:37-40)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벧후 1:7에서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말씀하면서 가장 위에 오는 덕목이 무엇입니까?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교회가 개척될 때는 뜨겁게 사랑하며 생일 케이크도 자르고 서로 축하해 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내일처럼 돌보아 줍니다. 예배도 생기가 있고 기도도 능력이 있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기쁨이 있습니다. 왜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면 모든 것이 힘이 들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똑같은 꽃을 만들더라도 사랑하는 애인에게 주기 위해 만드는 경우와 먹고살기 위해 만드는 경우는 다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사랑하니까 어떻습니까? "창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창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한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설교들 들어도 생동감 있게 듣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어떤 말씀을 주실까? 하고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으면 감격이 없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남편이나 아내 말을 듣는 것이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잔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정열이 있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가? 귀를 기울이며 웃을 준비를 하고 기뻐할 준비를 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복음 송)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Ⅱ. 첫사랑을 잃은 이유(2,6)

왜 사랑이 식어 집니까? 에베소 교회는 이단과 싸우다 보니까 그랬습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불평하지 않고, 단점을 보지 못하고, 이성적 판단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진리를 파수하다 보니 잃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정해 줄 정도로 진리에 서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의심이 강하다 보면 사랑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1,2,3,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안다는 말은 성경에서 기노스코, 오이다, 에피스타마이라는 말입니다. 

(1) 기노스코라는 말은 어떤 경험과 얻어진 지식을 통하여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창2:17, 마6:31) 
(2) 오이다라는 말은 본래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절대적 전지전능의 지식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요13:7, 계21:7) 
(3) 메피스타마이는 사실과 사건에 대하여 아는 전문적이고 과학적이고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지식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창47:6; 딤전6:4) 

여기서 안다는 말은 하나님만이 소유한 전지전능으로 아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1)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2)
(2)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2) 
(3) 참은 것(3) 
(4)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딘 것(3) 
(5) 게으르지 아니 한 것(3) 
(6)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6) 등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그들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는 곧 수고와 인내입니다.

1. 그들은 수고의 행위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수고라는 말도 세 종류로 나와 있습니다. (1)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모크도스라 하고 (2)온 힘을 다하여 노동하는 것을 포노스라하며 (3)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노동과 온힘을 다하여 행한 수고의 결과로 일어나는 녹초가 될 것 같은 피곤함을 코폰이라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말하는 수고는 코폰이라는 말로 녹초가 될 정도의 수고를 말합니다. 체험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마라톤을 뛰고 난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고한 그들의 수고는 무엇입니까?

(1)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2)입니다. 악한 자들은 에베소 교회에 현저하게 나타난 이간자로서 거짓 사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의 교리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2)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 된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2)
니골라당(6)이 있습니다. 니골라당이란 초대교회 7집사 가운데 니골라 집사(행6:5)가 타락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일컫는 다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사람의 육신은 영원히 악한 것인 데 선한 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믿으면 영혼은 정결케되기 때문에 육신으로는 성결한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도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절) 하셨습니다. 

(3)게으르지 않았습니다.(3)


2. 그들의 인내의 행위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1)오래 참았습니다.(3)

오래 참는 다는 것도 성경에서는 두 가지로 쓰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말은 “마크로 수미아”라는 말을 쓰고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것은 “후포모네”라는 말을 씁니다. 여기서는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말입니다. 곧 에베소 교회는 율법주이 외식주의, 인본주의와의 싸움에서 인내하여 승리하였습니다. 

(2)견디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온다할 지라도 참고 견디었습니다. 

에베소라는 말은 욕망과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이 도시는 케이스터 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소 아시아의 최대의 도시로 경제적으로 풍성한 도시였고 민주정치가 발달된 도시였으며, 운동경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다이아나 신전”이 있어 이방신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여사제만 해도 수천 명이었고 신전 청소를 위하여 수천 명의 노예가 일하였다고 하니 과연 어느 정도였을 것인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부적을 팔았고 범죄자가 신전 300M 이내에 오면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온갖 범죄의 소굴이 되었다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각종 유혹으로부터 인내하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이 없어졌습니다. 

3. 우리는 어떤 수고를 하고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인내한다하여도 사랑만큼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불의한 교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열을 내다보면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신문을 보니까 절반 가까이 총회장 등 역임한 교회가 세습했다는 것입니다. 61개 교회가 교회세습을 완료했고 22개 교회가 세습 의혹이 짙다는 것입니다. 1973년부터 시작된 교회세습은 2000년 이전만 해도 8개 교회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서 2010년까지 31개 교회가 교회세습을 진행했고, 2011년부터 2013년 6월까지 무려 22개 교회가 교회세습을 마무리했다는 것입니다. 

고소고발이 난무합니다. 세계 최대 교회라고 자랑하던 교회가 고소고발하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이, 교단이 서로 고소 고발하고 있습니다. 성도 간에 고소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2011년 법원에 접수된 소송 사건은 1,929만 5,844건이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 법원이 다룬 소송 사건은 628만 7,833건이었답니다. 

이러한 고소·고발 사건 가운데 종교별 분류나 통계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할 수는 없습니다. 2006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민사소송 사건의 약 18%가 교회 또는 교인과 관련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랑이 식어집니다. 교인들이 서로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옳은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습니까? 사랑이 식어집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성도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교회가 핍박받을 때 하드리안 황제가 크리스천이라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아리스티데스라는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행동을 본 아리스티데스는 보고서를 황제에게 제출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서로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를 보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저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봐라! 저들이 서로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봐라! 저들이 서로를 얼마나 비판하는지!”, “봐라! 저들이 서로 어떻게 싸우는지!”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프랜시스 쉐퍼는 그의 저서 「20세기말의 교회」에서 “교회는 죽어가는 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세상에 주고 있는데 그 기준은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보십시오. 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일제와 싸웠습니다. 총회에서는 국민의례라고 신사 참배를 찬성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은 감옥에 5년 동안 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딸들은 고아원에 가야 했지만 끝까지 싸웠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와 싸웠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1948년 10월 21일 여수ㆍ순천사건으로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좌익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그 때 아들을 죽인 범인을 양아들로 입적시켰습니다. 큰 딸 손동희 권사님의 간증을 들어 보니까 이 때 손권사님은 매산 여중 1학년 때였는데 가마니에 덮여 있는 두 오빠의 시체를 보고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너무 매를 맞아서 멍이 다 들었고 눈이고 머리고 총알자국이 여기 저기 있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 왜 이러셨어요. 사랑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 고작 이런 것들인가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 떨어진다고 했는데 왜 죽였어요. 전지전능한 하나님 다시 살려 내 주세요. 우리 오빠를 지켜주지 않은 하나님이 너무 너무 미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었고 잔인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두고 보셔요. 내가 예수님을 믿는가 봐요. 예수 안 믿겠어요.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장례식을 끝내고 일주일 뒤에 동인, 동신 죽인 놈 잡았다고 소식이 들려 왔답니다. 큰 오빠랑 같은 학교 다니던 3학년 안재선으로 밝혀졌답니다. 붙잡혀 사형선고 받고 사형집행 날만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은 그 아이를 빼내 아들을 삼겠다고 하셨답니다. 손권사님은 용납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때 "1,2계명을 위해 이토록 견뎌왔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같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찌 안 지킬 수 있겠느냐." 손권사님은 "용서는 하시되 아들 삼는 것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손목사님은 " 

사랑하라는 것은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아들을 삼아야 사랑하는 거다."라시며 아들을 삼았답니다. 자신은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답니다. 죽기 얼마 전에 그 오빠가 찾아 왔답니다. 후두암에 걸려 몸을 비틀거리며 찾아와 두 손을 붙들고 울기 시작했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용서받았답니다. “동희야, 나 이제 돌아가면 천국간다. 천국 가면 네 두 오빠께 사죄할 거다." 하고 돌아가 15일 만에 세상 떠났답니다. 

질병과 싸웠습니다. 애양원에는 나병환자들이 1000명을 섬기며 “오! 주님 이들을 사랑하되 내 부모 형제 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하옵소서. 만약 내 몸이 저들처럼 될지라도 사랑하게 하옵소서, 저들이 나를 싫어 버릴지라도 내가 여기서 쫓겨날지라도 그래도 사랑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답니다.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자와 싸우면서도 끝까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6.25가 터져 얼마든지 피할 길이 있었답니다. 교인들이 몇 번이고 배에다 밀어 넣으면 어느새 밖으로 나오셨답니다. "나환자들을 두고 내 어찌 나만 살자고 도망가겠는가. 나는 양떼들과 함께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것이다." 라고 하시며 남았다가 결국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 상처받고 마음 상하고 신앙을 잃으면 안됩니다. 

무디지에는 소개하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망하게 하는 10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실었습니다. 

①교회 내 특정 교인의 요구 사항에만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라 
②교회 안에 떠도는 모든 소문과 비평을 다 귀담아 들어라 
③목회자의 약점만 찾아내 이야기 하라 
④사랑 안에서 결코 참된 것을 말하지 말라 
⑤불평불만의 씨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라 
⑥남을 용서하되 오직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자만 용서하라 
⑦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위선으로 가장하라 
⑧공중기도 시간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을 다 토해내라 
⑨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항상 이기기에 힘써라 
⑩하나님이 당신에게 교회를 분열시키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행하라.

교회는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책임감 때문에 신앙생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인내는 짜증만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런 인내는 화목하게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는 지루할 뿐입니다. 설교도 찬송도 길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는 지겨울 뿐입니다. 예배니 인내니 봉사니 충성이니...... 얼마나 중요한 신앙행위들입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앙행위가 될 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겉보기에는 그럴듯해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형식과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뿐이요 피차의 저주와 정죄와 아집과 교만만 남을 뿐입니다. 

직분을 맡아 봉사하든 가정에서 집안일을 하던 회사에서 일을 하든 그 모든 것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단과 싸우는 것도 진리를 파수하는 것도 목숨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심리학의 태두로 불리는 프로이트에게 어느 날 누군가가 물었답니다. "선생님 노이로제 증세가 없는 건전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이 물음에 프로이트는 대답하기를 "노이로제 증세가 없는 건전한 사람이란 바로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무신론자인 그도 이렇게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건전한 신앙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하여 "첫째, 사랑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둘째, 사랑은 존경하는 것이며 셋째, 사랑은 이해하고 넷째, 사랑은 책임을 진고 다섯째, 사랑은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하여 이보다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Ⅲ. 첫사랑의 회복

첫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5)

1.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고 항상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떨어져 있는 것을 계속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라는 것입니다. 

2.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잘못된 길에서 180도 돌려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3.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여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람을 되찾으려면 3단계의 명령을 준수해야 합니다. 첫째는 어디에서 떨어졌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고 2단계는 회계를 시작하는 것이며 3단계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탕자 눅15:17-32)

4. 첫사랑을 회복합시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를 파수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파수한다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뼈만 남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 없는 사랑 역시 궤도를 잃은 기차와 같지만 사랑 없는 진리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회복하는 가정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가 교회에 들어와도 사랑이 넘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오셔서 회복해 주시는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부인할 때 숯불이 보입니다.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세 번 물어 봅니다. 처음 고기를 잡을 때 그를 불렀습니다. 똑같은 현장입니다. 

요21:15,16,17을 보십시오. 내가 처음 아내와 남편과 결혼할 때의 상황으로 돌아 가보십시오. 처음 예수님을 믿고 감격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잃은 것이 많습니까? 얻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갖가지 기적을 체험했고, 교훈을 받았고 무식한 어부이지만 한 때 대장노릇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대로 해주지 않고 돌아가시니까 그 큰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잘해주다가도 한 순간 내 마음대로 안 되면 사랑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내 사랑을 잃었는가를 진단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음화 율이 가장 높은 곳이 신안군이라고 합니다. 증도는 약 90%의 복음화율을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것은 문준경 전도사의 사랑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도사님은 사랑의 어머니였답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였던 고(故) 김준곤 목사님이나 이만신, 정태기 목사님 등이 바로 문 전도사님의 신앙을 본받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사랑을 전한 믿음의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사택은 목민센터였다고 합니다. 항상 네댓 명씩 귀신 들린 여인, 반신불수가 되어 오갈 데 없이 버려진 여인들의 숙소였답니다. 새벽같이 큰 바랑 같은 것을 둘러메고 나가 누룽지나 잔칫집 음식을 거둬 가난한 집에 나눠주는 '대신 거지'였답니다. 바랑 속에는 감기약이나 연고 같은 게 있어서 병자들을 심방해 부담 없이 약을 먹이고 발라주고 만져주고 기도해줬답니다. 

그는 그 마을의 사제였고 간호사였으며 목자이면서 만인의 어머니였답니다. 17세 때 신랑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혼례를 치렀는데 첫날부터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조차 가질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첩의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받아내야 했답니다. 

당시 유명한 부흥강사인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과 전도훈련을 받고 고향에 내려가 임자도의 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증도의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등 많은 교회들을 세웠다고 합니다.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싣고 이 섬, 저 섬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답니다. '염병'이라 불리던 전염병이 신안의 섬 일대를 휩쓸 때에도 그녀는 1년에 아홉 켤레의 고무신을 바꿔 신을 정도로 부지런히 섬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보고, 장례를 치르고, 가족들을 위로했답니다. 

공산당에게 순교 당했는데 죄목은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었답니다. 그녀에겐 자녀가 한 명도 없지만 이런 죄목이 붙은 건, 증도 일대의 섬 마을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믿음의 자녀'들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50년 10월 5일. 순교 당할 때 "나는 이제 가더라도 우리 교인들에게는 손대지 말고 잘 살펴서 살려 달라."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5) 순종하지 않으면(5) 첫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1)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내가 네게 임하여" (2)네 촛대를 옮기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6:22)

교회사가들은 에베소 교회와 에베소 시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등대가 옮겨진 사실을 실제적으로 확인한다고 합니다. 즉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주후 330년 5월 11일 신 로마를 만들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라 호칭하면서 대 주교의 권한이 에베소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의 영광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1세기에는 감독권마저 폐지되었으며 1308년에는 터어키 군에 의하여 점령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날의 에베소는 볼품없는 철도와 왜소한 정거장 허름한 여관과 빈민가만 보일 뿐 바울 당시 아시아 제일의 항구도시였던 사실은 추억 속의 그림자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는 교회든 예수님이 붙들고 있습니다(1). 에베소(2:1) 서머나(2:8) 버가모(2:12) 두아디아(2:18) 사데(3:1) 빌라델비아(3:7) 라오디게아(3:14) 모두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큰 건물을 가진 교회나 셋방살이 교회나 만 명 나오는 교회나 세 명 나오는 교회나 다 주님께서 친히 붙드시고 일하십니다. 거닌다는 것은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며 구경하고 다닌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맹목적으로 서성대며 걸어 다닌다는 말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계속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매일 냉혹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교회 공동체만큼은 사랑이 샘솟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친밀하게 지내며, 서로 책임을 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첫 사랑을 회복하시는 우리,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열정은 매우 빠르고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3년을 버티지 못합니다. 그러나 책임감은 시간 경과에 따라 정비례로 증가하고, 관계가 길어지면 더욱 가속하는 것입니다. 친밀감은 시간 지나면서 상승 속도는 줄어들지만 그래도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 가능한 것입니다.

평생 사랑으로 살았던 사랑의 사도 요한은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였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7-11)”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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