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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눅 24:50-53)


주일학교 수준의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어떤 분은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닙니다. 분명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8:20) 그러나 이것은 영으로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사도신경이 성경을 요약해서 이렇게 정리해 줍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의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현 주소는 ‘하늘, 하나님 우편’입니다.

하늘 그리고 하나님 우편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하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땅과 구분되는 공간으로서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 표현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영어에서 물리적 공간으로 저 하늘을 ‘sky ’리고 합니다. 비행기가 날고 인공위성이 떠있고 태양과 별이 떠 있는 우리 머리 위의 공간을 sky 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서 상상의 공간, 죽은 후 가는 곳, 천사와 신들이 사는 공간, 그리고 영적인 공간이란 의미에서 하늘을 ‘heaven’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바로 이 heaven을 말합니다. 우리 머리 위의 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공간으로의 하늘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장차 우리가 들어갈 저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하늘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뜻에서 승천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은 저 높고 높은 우주 공간 어느 지점으로 가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공간 곧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하나님의 공간으로 가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우편도 인간의 공간 개념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의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부질없는 질문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 하나님 좌편에는 누가 있느냐? 앉아계시다면 어떤 의자에 앉으셨는가? 하나님 앉으신 의자와 예수님 앉으신 의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의자는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등등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 우편이란 원래 성육신하시기 이전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 전, 본래 계시던 그 자리로 돌아가셨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태초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 계시던 그 자리로 복귀하셨다는 뜻합니다.

승천하셔서 하시는 일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무엇을 하시고 계실까요? 성경을 보면 지금 예수님께서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하시는 일들을 여러 가지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를 위해서 하고 계시는 일을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십니다. 

요 14: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장차 우리가 들어가 거하게 될 거처를 예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천국에 들어갈 때 영원토록 거하게 될 거처를 마련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롬 8:3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 재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행 1:1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승천하셔서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재림하셔서 이미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살아있는 자들은 휴거하게 하시고 그리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그날 이루어질 재림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도 정말 우리를 위해 쉴 새 없이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승천하신 뒤에도 역시 우리를 위해 쉴 새 없이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늘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승천을 믿으면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줍니다.

우선 신앙의 초점이 바뀝니다.

본문 5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이 바로 ‘베다니’라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다니’(Bethani)라는 말은 원어적인 의미를 풀어보면 집이라는 뜻의 ‘벧’(Beth)과 고통 또는 가난이라는 뜻의 ‘아니’(ani)라는 말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베다니라는 말은 가난의 집, 고통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고대시대에 이곳은 문둥병자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도 이곳은 고통 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들을 가까이 하시면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이곳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이 베다니에서 승천하신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세상에서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저 하늘을 바라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만 바라보고 살던 사람들에게 저 하늘을 바라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골 3: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것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초점을 바꾸게 해 줍니다. 아래의 것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본질적이고, 보다 고상하고, 보다 영원한 가치를 찾는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소년이 길을 가다가 5달러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그 때부터 또 그런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자주 땅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몇 차례 생각지 못하던 것들을 주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예 길을 갈 때면 땅만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면서 동전 수천 개를 주웠고, 단추 29,519개, 머리 핀 54,172개 그리고 기타 자질구레한 것들을 주웠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그가 땅만 바라보며 살다가 정작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푸른 하늘과 하늘을 나는 새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 일출의 아름다움과 일몰의 경이로움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초점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땅의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의 것에 신앙의 초점을 맞추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도 하늘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주님을 믿음의 눈을 들고 바라볼 때 우리는 위의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본문 51절을 보면 “축복하실 때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올려지시니’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올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가장 낮은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말구유에 나시게 하셨습니다. 이름 없는 동네 나사렛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공생애를 살게 하시면서도 가장 낮은 곳에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갈릴리로 보내셨습니다. 죄인들과 버림받은 사람들 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낮고 천한 자리에서 큰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낮고 천한 자리에 계시던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리신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승귀’(Exaltation)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이것을 빌 2:6 이하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바울처럼 당시 제자들이 이 점을 깨달은 것입니다. 비록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시지만 끝내 고난의 자리에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고난의 자리도 마다않고 달려 나가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스데반의 순교이후 계속해서 순교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순교자들은 모두가 다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평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저들이 죽음의 그 순간에도 평안할 수 있었을까요? 그토록 고통스럽고 두려운 그 순간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행 7:55-56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이 순교의 그 순간에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순간이 지나면 자기도 주님 곁으로 가서 주님 품에 안기게 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그 어떤 순간에도 그 고난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본문 52-5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뒤에 어떻게 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정말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그리고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배가 달라졌습니다. 저들은 이미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승천을 체험한 뒤 저들의 예배가 달라졌습니다.
우선 기쁨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저들이 큰 기쁨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큰 기쁨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갈 수 있었을까요?

한 마디로 예배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신 하나님께 예배할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하늘 하나님 우편으로 올리신 주님께 예배할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과거에 저들은 특별한 예배의 이유 없이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율법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면 마땅히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배가 의무감으로 드려졌습니다. 그러니 무슨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자리로 나옵니다. 그러나 예배할 이유를 가지고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드리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어떤 다른 목적 때문에 예배 자리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승천하신 예수를 믿는 믿음의 고백을 제대로 드린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예배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은 다른 모든 일을 중단하고 성전에 머물며 찬송만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간단히 말하면 찬송하기를 즐겼다는 것입니다. 틈만 나면 성전을 찾고 또 성전에 가기만 하면 찬송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찬송을 드려야 할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들은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께 찬송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자기들이 부르는 찬송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순서에 따라 찬송했습니다. 누가 받으시는 지도 모른 채 찬송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자기들이 부르는 찬송을 주님께서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서 살아있는 찬송, 신령한 찬송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많은 찬송을 드립니다. 그런데 과연 그 찬송들을 주님께서 받으실까요? 아니 우리가 주님께서 받으신다고 믿고 찬송을 드리고 있을까요? 아니 그 찬송을 정말 주님께 드리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올바로 하게 되면 우리의 찬송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예배가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셔서 하늘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이를 믿고 올바른 신앙고백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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