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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치 있는 꿈을 향하여 (고전 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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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꿈을 향하여 (고전 3:10-15)


먼저 부족한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이 갈보리교회에 말씀을 전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저에게 귀한 기회를 주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시간 부족한 종을 단에 세우시고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 말씀만 전하게 해주시고 그리고 전하는 말씀이 잘 박힌 못처럼 우리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게 하옵소서.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우리 성도들의 삶에 큰 열매가 맺히는 귀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김형석, 암병욱 철학의 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두 분 교수님의 철학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놓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매월 한 번씩 김형석 교수님의 철학 강연이 있습니다. 저와 반은 달랐지만 저의 동문, 대 선배님이 되십니다. 늘 존경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강연마다 꼭 듣고 있습니다. 2시간을 강연하시는데 구수하고 아주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혀 힘들어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아십니까? 94세이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혈색도 아주 좋으시고 꼿꼿하게 2시간을 계속 명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하도 병약하셔서 그 부모님 소원이 ‘이 녀석이 한 20살 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소원을 갖고 계셨답니다. 이 김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꿈이 없는 20대는 죽은 인생이다. 20대는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 이상이 없는 40대는 방황하는 사람이다. 40대는 이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살면서 늙을수록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우리 인생은 젊어서부터 나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이 꿈과 이상을 향해서 달려가야 하고 또 그렇게 지음 받은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김 교수님은 병약했던 자신이 점점 건강해져서 100세를 바라보도록 오래 사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치 있는 이상을 꿈꾸면서 또 그것을 실천하면서 계속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10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가치 있는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 가치 있는 꿈과 그 이상에 눈 뜬 한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아주 잘 아는 분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 이전에 이 사도바울의 삶의 기준은 아주 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혈통을 자랑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이 분은 자기 지혜와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이 분은 율법의 거두인 가말리엘 학파, 그 당시 최고의 율법을 가르치는 학파였습니다. 거기에서 수학한 율법학자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수님이고 학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자랑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주 부러워하는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으로서 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것이었고 또,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봐서 이 사도바울은 그 당시 사회에 유력한 지위에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니까 그의 눈에 씌어졌던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성경은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보다 높은 가치에, 그리고 보다 영원한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참 생명을 살리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일이었습니다. 이후에 이 사도 바울은 이 꿈을 위해서 자기 온 일생을 다 바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살고 간 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도 가치 있는 꿈을 향해서 달려가라. 그 꿈을 이루는 멋진 인생이 되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가치 있는 꿈을 향해서 달려가는 삶을 집을 짓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지혜로운 건축자처럼 인생의 터를 잘 닦아두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집을 짓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집을 짓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집의 기초가 든든하지 못하면 그 집은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초가 튼튼한 집은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이 견디어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나도 끄떡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의 인생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성도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인생의 집을 짓는데 유일한 터요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의 터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나의 생명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위해서 내 대신 피를 흘려 내 죗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인생이 존재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꿈과 이상을 펼쳐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의 인생은 너 자신을 터 삼고 있느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터하여서 지어져 가고 있느냐? 너의 삶은 너를 위한 삶이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냐? 네가 좋아하는 꿈과 이상은 너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냐?”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이제 제 이야기를 조금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꿈이 교수나 법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후학을 가르치고 또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돕는데 제 가치와 꿈을 두었습니다. 사실 어려서는 꿈이 막연합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가면서 구체화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려서부터 계속해서 이 꿈을 가지고 그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공부했지만 그러면서 계속해서 그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찍이 군대에 가서 예수님을 영접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좋았고, 예수님의 삶이 너무너무 멋졌습니다. ‘생명 구원을 위해서 섬기고 또 섬기다가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거 얼마나 멋진가?’ 그 삶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제가 되고 싶었던 교수나 법관이 되어서 그 가치를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다니는 교회는 아주 조그만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형제는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대답을 했습니다. “저의 꿈은 교수나 법관이 되어서 기독교 정신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약자를 돕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렇게 확신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대답을 잘했지 않습니까? 얼마나 멋집니까? 기독교 정신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치고 올바르고 실력 있는 인재들을 길러내는 거 멋진 꿈임에 틀림없습니다. 가치 있는 꿈임에 틀림없습니다. 법관이 되어서 억울한 자를, 약자를 도우면서 사회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 정의를,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거 얼마나 멋있습니까? 정말 가치 있는 이상 아닙니까? 그런데 몇 년에 걸쳐서 똑같은 제안이 여러 목사님으로부터 또 지인들을 통해서 저에게 들어왔습니다. “형제님은 신학을 하고 목사님으로서 주님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들으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그냥 흘리다가 ‘이거 좀 고대해봐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여러 번 거듭되다 보니까 저의 마음이 점점 갈등이 생겼습니다. ‘정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정하고 여러분도 아마 많이 가보셨을 텐데 영락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지금의 건물이 아니라 아주 옛날의 낡았던 시절 그 건물에 올라가서 3일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전에는 금식 한 번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인생 절체절명의 기로에 있는 이 상황에서는 금식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간절해서 제 꿈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원합니까?”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교수가 되고 법관이 되고 그 꿈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너 자신을 위한 것이냐? 너 인간적인 꿈을 위한 것이냐?” 그렇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깊은 고뇌 끝에 겸손히 무릎 꿇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교수가 되고 법관이 되고자 했던 것은 명분이 그랬던 것뿐이지 사실은 저의 인간적인 성취의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는 저의 인간적인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주님이 저에게 주신 그 사명, 생명구원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도 모두 지금 하시는 일을 다 내려놓고 목사가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면 정치는 누가 하고 법질서는 누가 잡습니까? 후학들은 누가 가르치고 공장에서 물건은 누가 만들어내고 이 세상의 일은 누가 하는 겁니까? 

여러분! 은혜 받았다고 무조건 다 목사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목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 정말 예수님이 원하시는데 가치를 둔 꿈인가 이것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바라기는 명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과 그리고 꿈의 초점, 그것을 예수님처럼 정말 가치 있는 삶에 맞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가치 있는 인생의 재료로 집을 지으라고 말씀합니다. 기초가 든든하게 세워졌으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냥 기초만 만들어놓고 끝납니까? 무엇을 하려고 그 기초를 만들었습니까? 그게 집을 세우려고 만든 거 아니겠습니까? 그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집의 기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 중요합니까? 집을 무엇으로 짓는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집을 짓는 재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재료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품질이 좋은 고급재료가 있는가 하면 품질이 나쁜 싸구려재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품질이 좋은 고급재료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 재료로 비유하고 있고, 품질이 나쁜 재료를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재료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집을 짓는데도 같은 논리가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사용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또,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슨 종류의 일을 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일을 많이 하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어떻게 행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일컬어서 공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뜻이 뭐냐 하면 어떤 종류의 일을 했는가, 그리고 그 행한 일의 질이나 특성이 어떠했는가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인생의 집을 짓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가진 것, 여러분의 건강이나 시간이 물질이나 지위나 지식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이 모든 것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고 계십니까?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은 보배롭고 가치 있는 꿈을 향해서 그렇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혹시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된 낡아지고 쉽게 썩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위해 사용하는 분은 혹시 없으십니까?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소출이 풍성해서 곡간을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그곳에 차곡차곡 다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겁게 지내보자.’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물으셨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내가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누가복음 12장 19절과 20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여러분이 아마 들어봄직한 분인데 혹시 최의숭 회장님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장로님이셨는데 지금은 목사 안수도 2006년에 받으셨습니다. 이분이 대의그룹 회장님이십니다. 기업인으로서 유일하게 세계평화상을 받은 분입니다. 자동차 부품 제조가 그 그룹의 주요 기업인데 이 분은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세 가지 꿈을 꾸었답니다. 첫 번째는 박사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세계에 100개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100개의 교회를 세운다는 거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꿈은 단지 꿈일 뿐이다.” 이 소년이 장성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추상적인 것으로 보였던 그 꿈들이 점점 현실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년은 단 한 번도 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세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했는데 그것이 점점 구체화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분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 교수가 되었고, 그리고 사장, 이어서 회장이 됩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교회를 짓기 시작합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제가 최근 것은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2010년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일본 기타큐슈 지역에 73번째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몇 개를 더 지었겠지요? 머지않아서 그의 꿈인 100개 교회를 짓는 그의 원대한 꿈이 현실화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개 교회를 세우는 것도 대단한데 교회 100개를 세운다,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되겠습니까? 얼마나 멋진 꿈이 아니겠습니까? 이 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부를 활용해서 “주님! 이를 위해서, 생명 구원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금, 은, 보석으로 된 인생의 집을 짓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물질을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고 계십니까? 바라기는 할 수만 있으면 어려운 사람들과,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 많이 사용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더 많이 가지셨습니까? 그러면 더 많이 나누시고 더 많이 아주 값지게 사용하시고 더 주의 일에 값있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분을 소개합니다. 이 분은 물질로 이렇게 그 꿈을 향해 나가시는가 하면 또 한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외의 것들, 자기의 지식, 지위, 명예, 권력 이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종합적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분입니다. 아마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베네수엘라의 음악가이고 경제학자이고 또 정치가이고 또 사회운동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오 박사님입니다. 이 분이 자기 음악적인 재능을 어려운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경제학자였고 정치가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지위, 명성, 명예, 권력을 가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어려운 이웃들, 특히 청소년들을 위해서 사용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브레오 박사님이 먼저 마약과 총기와 폭력과 범죄가 판을 치는 카라카스라고 하는 도시의 빈민가 차고에서 빈곤층 청소년들의 교육과 재활 사업을 시작합니다. 전과 5범의 소년을 포함해서 11명의 청소년들에게 사비를 들여서 악기를 사줍니다. 그리고 연주법을 가르치면서 음악 교육을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가 1975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분의 열정이 점점 더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어려운 아이들에게 음악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정부에 제안을 했습니다. 청소년 예술 교육 시스템인 엘시스테마를 창설합니다. 

이것은 그 나라 말로 제도 시스템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청소년 예술 교육 시스템을 정보를 통해서 제도화 시키는 교육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꿈과 이상은 단순히 이 음악 교육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서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에게 “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야. 너는 소중한 존재야.” 이런 것을 일깨워주고 싶었습니다. 소속감을 주고 질서를 배우게 하고 책임감을 가르쳐주고 의무와 배려와 같은 아주 값지고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들 청소년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 이웃까지 빈곤과 무질서의 이 악순환 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이분의 값진 꿈이 현실화 되었습니다. 

전과 기록으로 얼룩진 11명의 아이들로 시작했는데 그 엘시스테마라고 하는 청소년 예술 교육 시스템이 현재는 200여개의 지역별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30만에 가까운 단원을 거느리는 초대형 오케스트라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세계적인 지휘자가 나왔고 이 가운데서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수속 주자들이 나옵니다. 이제 이분이 공적을 인정받아서 서울 평화상을 받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주어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 봉사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 분의 가치 있는 이 사역에 감동을 받아서 여러 나라에서 지금 점점 자기의 재능을 기부하고 명예를 기부하고 그러면서 이 뜻 깊은 사역에 동참하는 그런 나라,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지휘자, 금난새 지휘자입니다. 이 분이 먼저 말씀드린 아브레오 박사님 그 영향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 분이 자기의 재능을 농어촌 청소년들을 위해서 지금 계속 3년째 기부를 해오고 계십니다. 농어촌 지역의 초등학생, 그리고 중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전국에서 오지를 뽑습니다. 서울은 해당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지만 뽑습니다. 그래서 20개 지역을 선정해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작년부터 매년 8월 이들을 모아서 5박 6일 동안 합숙 훈련을 한 다음에 세종문화회관에서 합동연주회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가 두 번째였습니다. 제가 공연을 관람하면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어린 아이들이 연주를 잘 할 수 있을까? 저렇게 서툰 아이들이 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면서 힘차게 연주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 결과 세종문화회관대강당 3층 저 높은 데까지 있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가득 매운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그들이 그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멋진 일은 어떤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얼마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도 그와 같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한번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쁘게 할 수 있는 그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만큼 가치 있는 그 기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을 한번 이 시간 깊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불로 시험하여도 변함없는 가치 있는 인생의 집을 지으라고 말씀합니다. 건축 재료로 다시 돌아갑니다. 평소에 겉만 봐서는 이게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습니까? 겉보기는 잘 모릅니다. 겉보기에는 멋지고 튼튼하게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아닌 경우가 여러분 있지 않습니까? 화재 같은 재난이 일어나면 그것이 잘 일어납니다. 그 품질이 드러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화재가 나면 어떻습니까? 끄떡없습니까? 금방 다 타버리고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됩니까? 불이 나더라도 그 형체와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인생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보다 높은 가치, 보다 영원한 가치에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까? 나의 선한 의도, 가치 있는 꿈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값진 꿈과 이상을 가졌다고 해서 박수만 쳐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너만 고상한 꿈을 가지고 사느냐?” 그러면서 은근히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 숨겨진 저의가 있어서 좋은 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자꾸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해하고 모함하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처럼 생명 구원이라고 하는 고귀한 가치를 위해서 자기 인생을 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무엇입니까? 모함이고 박해입니다. 방해와 협박이 왔습니다. 때로는 굶주리고 매 맞고 박해와 비방과 모욕을 받고 심지어는 감옥에까지 갇히기도 했다고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가 받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오늘 본문 13절에서 불시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고귀한 꿈과 이상을 불태워버리려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절대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불같은 시험이 닥칠 때마다 누구를 바라봤습니까? 그의 삶의 기초, 인생의 집의 기초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푯대를 향해서, 꿈을 향해서 계속 달려간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올해가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연설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런 연설을 그분이 하신지 꼭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50년 전 그 자리에서 킹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그 날이 올 것이라는 그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그리고 작은 산마다 낮아지고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하게 되고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그래서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꿈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은 극심한 인종 차별에 대항을 해서 “피부색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은 모두가 존귀하다. 그러기에 흑인, 백인 구별 없이 모든 인종은 평등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헌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박수만 쳐주었습니까? 폭파의 위협이 옵니다. 협박을 합니다. 온갖 방해와 위협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이 분이 무엇을 했습니까?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를 감싸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틴! 고결함을 위해서 일어나라. 정의를 위해서 일어나라. 진리를 위해서 일어나라.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그분은 그 꿈을 위해서 살다가 암살당해 돌아가셨지만 이분이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고 하는 그 연설을 한지 50년이 지난 지금 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꿈은 그 뜻을 같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이 고귀한 꿈을 간직하기는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낙심하고 그 열정이 식어가는 그런 분들이 혹시 이 자리에 계십니까? 그래서 그동안 잘 싸워온 가치 있는 그 공적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워진 그 집처럼, 그것들이 타버리듯이 점점 사그라져가지는 않습니까? 

다시금 겸손히 무릎을 꿇어서 우리 인생의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다시금 그 꿈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가치 있는 꿈, 어떤 불같은 시험이 오더라도 끝까지 이기면서 끝내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고귀한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전 인생을 투자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 공적을 따라서 합당한 상급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부족한 종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정말 우리 모든 갈보리교회 성도들의 마음,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하시고 이 말씀을 붙들고 참으로 고귀하고 가치 있는 꿈을 향하여 주님이 주신 꿈을 향해서 열심히, 열심히 달려가고 그래서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이루어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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